탈권위적인 시민들만의 공간 /8호광장 시민 분향소
춘천에서는 세곳에 분향소가 마련되었다
공무원과 한나라당 분향소는 도청 4층 구석에,
민주당사 그리고 시민단체는 8호광장으로 이렇게 3곳이다
8호광장 분향소는 그야말로 시민들만의 공간이다.
국가와 상관없이 시민단체 네트워트가 주관이되어
시민들의, 시민들에 의해, 시민들을 위해 창출된 그 공간이다.
때문에 이곳은 다양하고 재기발랄했다.
도청이 근엄하고 엄숙하다면 8호광장은 탈권위적이었고 자유로웠다.
좀 더 많은 계층의 사람들이 어울려 제각각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고 있었으며,
그만큼 그 공간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노란색. 하나같이 애통한 마음에 그를 그리는 글들이었고
현 정부와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들이 적혀 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이 만들려고 했던 사회는 바로 이와 같은 사회가 아니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행할 수 있는 곳.
아마도 그것은 지금의 권력층들이 죽었다 깨어나도 도달할 수 없는 사회일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마냥 한심하고 어지러운 카오스일 테지. 그러고 보니 또 서글퍼졌다.
결국 노 대통령은 죽어서도 우리에게 그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주고 가셨구나.
도청과는 달리 슬픔보다는 각오를 새기는 시간이었다.
결코 노 대통령이 왜 죽었는지 잊지 않으리라.
-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길은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 국민 10명 중 1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 그를 떠나 보낸 날 서울광장에는 50만명이 넘는 시민이 운집했다.
◆5,000,000=전국 301곳에 설치된 노 전 대통령 분향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500만을 넘어섰다.
장의위원회에 따르면 28일 오후 5시 현재 432만여명이 분향했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빈소에만 100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몰렸다.
역대 조문객 규모 중 가장 크다.
◆500,000 VS 163,000 그리고 18,000=장의위측은 29일 12시30분 현재
서울광장에 50만명의 추모객이 모인 것으로 집계했다.
경찰은 같은 시각 16만3000여명이 모였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서울광장 주변에 경비병력 1만8000여명을 배치해 질서를 유지했다.
◆100,000=봉하마을 분향소에선 국화가 하루 10만 송이 이상 쓰였다.
장의위는 국화 물량이 몰려드는 조문객을 감당하지 못하자 깨끗한 꽃을 재활용했다.
◆5,000과 900=전국 분향소에서 장례를 도운 자원봉사자만도 5000여명에 육박했다.
장례식 기간 봉하마을에서 조문객에게 국밥을 대접하는 데 쌀만 900가마가 들어갔다.
무게로 70t이다. 국밥에 들어간 콩나물만 18t, 나눠준 생수는 500㎖짜리 100만개 정도다.
물품은 대부분 시민이 자발적으로 조달했다.
◆1,700과 2,000=서울 경복궁 영결식을 위해 봉하마을을 떠날 때
만장 1700여개가 노 전 대통령 운구행렬을 뒤따랐다.
서울광장에서도 만장 2,000여개가 펄럭였다.
◆1,383=국민장 장의위원 숫자로 역대 최대 규모다.
한승수 국무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가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전직 대통령과 전현직 정부·정치권 주요 인사, 종교계 인사 등으로 구성됐다.
최규하 전 대통령 국민장 장의위원은 680명이었다.
◆800=운구행렬이 봉하마을∼서울∼봉하마을을 이동한 거리는 800㎞에 달한다.
노 전 대통령은 봉하마을을 떠나 경복궁에서 영결식을 거친 뒤
수원 화장장을 거쳐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될 당시에도 같은 길을 지났다.
이승에서 마지막 외출이었다.
◆1=노 전 대통령은 마지막 남긴 글에서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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