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일시 : 2002. 3. 10
0 장소 ; 대전 계룡산 관음봉 816m /27명
0 코스 : 갑사~금잔디고개~삼불봉~동학사

07:00 태백가든
08:10 문막휴계소
09:55 죽암휴계소

11:05 갑사주차장 /용문폭포 0.6k, 금잔디 2.3k, 연천봉 2.6k
11:35 용문폭포
11:55 신흥암 /갑사 2.3k
12:25 금잔디고개 /동학사 3.4k, 남매탑 0.7k, 갑사 2.3k
12:45 삼불봉 고개삼거리 /관음봉 0.8k, 남매탑 0.3k,
12:55 삼불봉(775m)
13:25 자연성릉(715m) /14:00 중식
14:30 관음봉(816m) /은선폭포1k, 삼불봉1.7k
15:05 은선대피소
15:20 은선폭포 /동학사 1.4k, 관음봉 1.2k
15:45 동학사
15:50 남매탑 갈림길
은선대피소 1.7k, 연천봉 3.2k, 갑사 5.6k, 관음봉 2.8k
남매탑 1.6k, 금잔디 2.3k, 삼불봉 2.0k,
16:30 동학사 주차장

18:00 오창휴계소
19:00 여주휴계소
20:30 태백가든

계룡산은 대전시와 충남 공주시, 계룡시, 그리고 논산시에 걸쳐 있으나
산의 대부분이 공주시에 속해 있고,
주찰인 동학사를 비롯하여 갑사, 신원사 등도 모두 공주시에 있어서
공주의 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산줄기는 과거 차령산맥의 가지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전통적인 지리개념에 의하여 금남정맥에 속한다고 본다.

즉 백두대간의 영취산(1,075.6m)에서 분기한 호남금남정맥이
진안의 조약봉(565m)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져서
호남정맥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광양의 백운산(1,218m)으로 달려가고,
금남정맥은 북으로 달려가서 완주의 대둔산(877.7m)을 지나 계룡산으로 이어진다.

※조약봉(鳥躍峰)을 주화산(珠華山) 혹은 주줄산(珠?山)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아직 정리가 안 된 상태에 있다.

그런데 산줄기로는 금남정맥에 속하면서도 계룡산 주변엔 큰 산이 없어
계룡산 혼자 돌올하게 솟아 있어서 마치 독립된 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산줄기는 남북으로 길게 주능선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천황봉에서 쌀개봉, 관음봉,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흡사 닭 볏을 닮았을 뿐만 아니라 산의 전체적인 모양이 머리에 닭 볏을 단
용의 형국을 하고 있다고 하여 계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계룡산이란 이름은 삼국사기에 이미 나타나고 있으며,
백제에서는 계람산(鷄藍山)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신라시대에는 신라 5악의 하나인 중악(혹은 서악)으로 중요하게 여겨 제사를 올렸고,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과 더불어 계룡산에 중악단(中嶽壇)을 설치하여
봄·가을에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그리하여 중악단은 지금도 신원사 옆에 온전하게 남아있다.

풍수지리설에서는 계룡산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이고,
비룡승천형(飛龍昇天形;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형상)이며,
회룡고조형(回龍顧祖形;용이 제 몸을 휘감고 뒤를 돌아보는 형상)의 명당이라 한다.

그리고 금강이 계룡산을 멀리 북-서-남으로 감싸 흐르고 있어서
산과 물이 태극을 이루는 중심에 위치함으로써
산태극, 수태극의 대길지이기도 하여 계룡산은 풍수지리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산이다.

따라서 계룡산의 남쪽, 그러니까 계룡시 남선면 부남리 일대인 신도안(新都內)에는
조선 태조가 한 때 이곳으로 천도를 하기 위해 궁궐을 지으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통과 조운(漕運)의 불편함 등이 있어서 중단하기는 하였으나
지금도 부남리에는 당시 초석으로 다듬었던 석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남아 있다.

그리고 신도안(新都內)은 풍수지리설에서 10승지의 하나로 지목하였고,
특히 정감록(鄭鑑錄)에서는 이씨 왕조 이후 신도안에 도읍을 정한 정씨(鄭氏) 왕조가
세계 통일정부를 수립한다고 예언한 바 있었다.

그래서 신도안은 이런 영향을 받아 숱한 전설과 설화가 살아 숨쉬고 있으며,
많은 신흥종교 내지 유사종교의 본산이 계곡 곳곳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던 것이 계룡산이 국립공원이 되고, 3군 본부와 이에 따른 군사시설이 들어오면서
유사종교 내지 민간신앙에 관령된 시설들을 정리하고,
이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모두 추방하여 쫓겨났으나
지금도 갑사에서 신원사로 이어지는 계룡산 자락의 691번 도로 주변에
수많은 민간신앙인들이 터를 잡고 있다.

그렇기는 하나 계룡산이 길지임에 틀림이 없고,
전형적인 화강암의 골산이어서 지기가 강하여
수련을 쌓으려는 종교인들에겐 선망의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학사, 신원사, 갑사 등이 불교계에서 수련 사찰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학의 많은 방사(방사)들 역시 계룡산 주변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므로 계룡산은 섬세하고 나약한 문사형이 아니라
아주 강인한 자존심을 지닌 고고한 선비를 연상시키는 산이다.

계룡산을 오르는 대표적인 들머리는
동쪽엔 동학사, 남쪽엔 신원사, 서쪽엔 갑사라 할 수 있다.

1)동학사 코스

동학사(東鶴寺)는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상원조사(上元祖師)가
계룡산 자락 지금의 남매탑이 있는 부근에 작은 암자를 지어 수도를 하다가 입적을 하자
그의 제자 회의화상(懷義和尙)이 중창하여 상원사(上元寺)라 하였고,
고려 초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려 태조 20년(937)에 신라가 망하자
신라의 유신 유차달(柳車達)이란 사람이 절에 찾아와서
지금의 동학사 자리에 동계사(東鷄祠)를 지어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충신 박제상의 초혼제를 지냈으며,
이때부터 절이 커지기 시작하여 절 이름도 동학사로 고쳤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시대엔 길재(吉再)가 이 절에 와서 고려 왕족과 정몽주를 위한 제사를 올렸으며,
김시습(金時習)은 단종과 안평대군, 사육신 등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래서 경내엔 이런 내력과 연관된 숙모전(肅慕殿), 삼은각(三隱閣), 동계사(東鷄祠) 등의
불당들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러한 동학사는 계룡산만큼이나 역사의 무게가 실린 유서 깊은 절이다.
그리고 지금은 비구니들의 전문 강원이고, 비구니 전문 승가대학이 있다.

주차장에서 동학사에 이르는 구간이 상당히 길어서 30여분 걸린다.
주차장을 출발하여 일주문을 지나 20여분 올라가면 길상암이 있고,
이어서 동학사에 이르기 직전 오른편으로 갈림길이 나타난다.
남매탑이나 갑사 쪽으로 가려면 여기서 오른편으로 갈라지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그리고 동학사 앞을 지나 천황봉과 쌀개봉, 관음봉을 쳐다보면서 올라가면
처음부터 끝까지 너덜길이 아니면 돌계단 길이 계속 이어져서 부담스럽다.

이처럼 계룡산은 전형적인 골산이어서 산세가 각박한데다가
등산로가 제멋대로이고 가파르기 때문에 산행하려면 상당히 힘이 든다.

동학사 앞을 지나 그런 불편한 길을 투덜대며 40여분 올라가면
쌀개봉(828m) 자락의 은선폭포 아래에 이른다.
쌀개봉의 기암절벽과 폭포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 신선이 숨어살았던 곳이라 하여
은선폭포(隱仙瀑布)라 이름 붙였다고 하나 장마철이면 모를까 조금만 가물어도
계룡산이 건산이라 폭포도 말라붙어 어디쯤이 은선폭포인지 알 수도 없다.

은선폭포 이후엔 경사가 가팔라지고, 가파른 길을 40여분 올라가면
주능선 상의 관음봉 아래 안부 4거리에 닿는다.

거기서 왼편(동쪽)의 쌀개봉과 천황봉(845m) 쪽은 군사보호구역이라 갈 수가 없다.
2002년 군사용 벙커를 철거하여 정상의 천단(天壇)을 복구하였으나
여전히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그래서 안부 4거리에서 천황봉 반대 방향으로 5분 정도 올라가면 관음봉(816m) 전망대에 닿는다.

관음봉 전망대에 올라서면 까다로운 등산로 때문에
힘들고 짜증나던 것도 말끔히 가시고
오히려 신선한 청량감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사방으로 시야가 열려서 동쪽 아래로 동학사 계곡이 펼쳐지고,
그 너머 천왕봉(605m)과 향적봉(664m)이 솟아있다.
남쪽으로는 쌀개봉과 천황봉에서 이어나간 능선이
향적산(574m) 쪽으로 뻗어나가 용의 꼬리를 이루고 있으며,

서남쪽으로는 문필봉과 연천봉에서 이어져나간 능선이 뻗어 있는데,
그 끝에 논산시 상월면 일대의 들녘이 보이고,
서북쪽으로는 공주 시가지 일부가 보인다.

2)신원사 코스

계룡산 남쪽 사면에 위치한 신원사(新元寺)는
백제 의자왕 11년(651)에 보덕(普德)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임지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그 이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신원사 바로 동쪽 옆에 조선시대에
계룡산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중악단(中嶽壇)이 있다.

이 중악단은 조선 태조 이성계에 의해 건축되었던 것이 그 후 없어졌다가
명성황후에 의해 재건되어 왕실 주도의 산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신원사 쪽에서 올라가는 길은 능선 길과 계곡 길이 있다.
능선 길은 올라가는 도중 내내 시야가 열려서 전망이 좋으나
지금은 등산로를 폐쇄하여 통행을 금하고 있으며,
신원사 앞에서 고왕암을 거쳐 연천봉에 이르는 계곡 길만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계곡 길 역시 동학사 쪽의 길과 마찬가지로
가파른 너덜 길 아니면 돌계단 길이어서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든다.

신원사 앞을 출발하여 10여분 올라가면 보광암 갈림길에 이르며,
거기서 시멘트포장길은 왼편 보광암 쪽으로 올라가고, 등산로는 오른편 오솔길이다.

오솔길을 따라 다시 10여분 올라가서 극락교를 만나 오른편으로 건너가면
가파른 너덜 길이 이어지는데, 5~6분 올라가면 고왕암(古王庵)에 닿는다.

고왕암 역시 백제 의자왕에 의해 신원사 부속 암자로 세워졌다고 하고,
백제가 멸망하자 왕자 융(隆)이 이곳에 난을 피해 와 있다가 잡혔다고 하며,
암자 이름도 이에 유래했다고 한다.

고왕암에서 지루한 너덜 길을 35분 정도 올라가서
나무다리를 왼편으로 건너가면 거기가 도치샘(440m)이란 쉼터이고,
거기 이정표에 ‘신원사 2.1km, 연천봉 고개 0.6km’라 적혀 있다.

거기서 다시 가파른 돌길을 25분 정도 올라가면 연천봉 고개에 닿는다.
신원사에서 2.7km,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연천봉 고갯마루는 4거리여서 북쪽으로 내려가면 갑사에 이르며(2.4km),
오른편(동쪽)으로는 관음봉으로 이어지는데(0.9km),
연천봉은 왼편(서쪽)으로 200여m 더 올라가야 한다.

그리하여 연천봉 쪽으로 50여m 올라가면 길이 갈라진다.
거기서 직진하면 헬기장을 지나 연천봉으로 바로 올라가고,
왼편 길은 등운암(登雲庵)을 거쳐 연천봉으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즉 등운암에 들렸다가 등운암 서쪽 뒤편을 휘돌아 5분이면 연천봉(738.7m)에 닿는다.

연천봉에서 다시 연천봉 고개로 되돌아와서 문필봉을 거쳐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길이 있으나 지금은 이곳 역시 등산로가 폐쇄된 상태이다.
따라서 문필봉 아래 산허리를 휘돌아 관음봉으로 가야 한다.

그리하여 연천봉 고개에서 25분 정도 문필봉 산허리 길을 휘돌아 가면
관음봉 아래 4거리에 이르고, 거기서 5분이면 관음봉 전망대에 닿는다.

#자연성릉(自然城稜) 길
동학사 쪽에서 올라갔든 신원사 쪽에서 올라갔든 계룡산 산행의 백미는
관음봉에서 삼불봉 쪽으로 뻗어있는 1.8km의 자연성릉을 타는 것이다.

칼날 같은 암릉으로 이루어진 능선은
자연적으로 생긴 난공불낙의 거대한 성곽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마치 설악산 서북능선을 축소해 놓은 듯하다.

동쪽은 깎아지른 천길 절벽이고,
능선의 굴곡이 변화무상하여 스릴 넘치는 아찔한 코스이다.
관음봉에서 가파른 철 계단 길을 수없이 오르내리면서
삼불봉까지 가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삼불봉 아래 갈림길에서 왼편 길은 금잔디고개를 거쳐 갑사로 이어지고,
오른편 길은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이어진다.
어느 쪽으로 내려가든 1시간 정도 걸린다.

갑사로 내려가려면 삼불봉 아래 갈림길에서
10여분 내려가면 금잔디고개 헬기장에 닿고,
거기서 다시 25분 정도 내려가면
용문폭포 옆을 지난 후 30여분 내려가면 갑사에 이른다.
갑사에서 주차장까지도 30여분 걸린다.

그리고 삼불봉 아래 갈림길에서
오른편 동학사 쪽으로 하산을 하려면 남매탑을 거치게 된다.

보물 제1284호인 남매탑은 일명 오뉘탑이라고도 하는데,
공식 명칭은 ‘청량사지 쌍탑’이다.
큰 탑은 7층 석탑이고, 작은 탑은 5층 석탑이나 지금은 4층만 남아 있으며,
탑의 외형은 부여 정림사지 석탑을 모방하고 있다.

신라 성덕왕 때 상원조사가 암자를 지어 수도하다가 입적을 하자
그의 제자 회의화상이 성덕왕 23년(724)에
그 자리에 쌍탑을 조성하여 절 이름을 청량사라 했다.

그리고 그 부근에서 ‘淸凉寺’라는 명(銘)이 새겨진 기왓장이 발견되어
이런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가 멸망하자 어느 왕족이
계룡산에 숨어들어 토굴을 파고 참선 정진을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밤 밖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호랑이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입을 벌리고 있더란다.

이에 호랑이 입 속에 손을 넣어보니 여인의 비녀가 목에 걸려 있어서
그 비녀를 끄어내어 주었더니 호랑이가 고맙다는 듯
주위를 맴돌다가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다시 밖에 무슨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그 호랑이가 처녀를 물어다 놓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아마 은혜에 보답하고자 혼자 사는 도인에게 짝을 데려다 준 것이었다.

이에 그 처녀를 토굴 속에 불러들여 내력을 물었더니
지금의 경북 상주 땅의 처녀로 결혼식을 올린 첫날밤
신방에 들기 전 바람을 쐬러 밖에 나왔다가 호랑이에게 물려 왔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수도자는 그 처녀를 돌려보내 주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처녀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자의 몸으로 결혼을 할 수는 없는 형편이니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함께 불도에 정진하여 해탈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후에 이들을 기리기 위해 쌍탑을 세웠으니
그것이 남매탑이라는 것이다.

남매탑에서 내려가는 길 역시 전형적인 돌계단 길이다.
다듬지 않은 주변의 자연석을 마구 주워 만든 길이어서 불편스럽다.

계룡산은 덩치 큰 산이 아니므로 어느 쪽에서 올라가서 어느 쪽으로 내려가든
5~6시간이면 산행을 마칠 수 있다.

/와라바라 산악회에서

'산들이야기 > 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릉 선자령  (0) 2010.01.10
예산 용봉산  (0) 2010.01.10
춘천근교 산 4개  (0) 2010.01.10
파주 감악산  (0) 2010.01.10
단양 소백산  (0) 2010.01.1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