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산 산행기
0 산행지 : 중국 황산(1,873m)
0 위치 : 중국 안후이성[安徽省] 남부에 있는 산
0 기간 : 2006. 2. 3(금) ~ 2.7(화) /5박6일
(산행시간)
□ 2006. 2. 3(금) /상해
04:30 춘천출발
10:30 OZ363편으로 인천 국제공항 출발 / -기내식 1회 제공(조식)
11:40 상해 푸동공항
14:20 점심
14:50 강남의 명원인 "예원" - 상해 옛거리 포함 /15:30
15:50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15위엔
16:30 윤봉길의사 의거 현장이자 노신을 기리기 위한 "노신공원(홍구공원)"
18:00 저녁식사
20:15 상해 MU5561편으로 상해 공항 출발/-간단한 음료 제공
21:00 황산 둔계공항 도착.
21:30 황산국제호텔 투숙 및 휴식
□ 2006. 2. 4(토) /황산
09:00 황산국제호텔 출발
09:30 조성시기와 배경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인공 동굴 "화산미굴"
11:20 포씨가문의 영예를 보여주는 패방과 사당, 민가가 있는"당월패방군"
13:05 금원식당 중식
14:10 운곡사~백아령구간 케이블카
14:30 백아령도착/14:45 산행시작
15:00 백아산장
15:15 황산 제2봉 광명정
15:40 비래석
15:45 행지정
16:00 배운정
16:15 서해 대협곡 /배운정 회귀
17:50 황산 서해호텔
□ 2006. 2. 5(일) /황산, 항주
08:10 후자관해
08:20 청량대 /사자봉
09:15 호텔 출발
09:40 몽필생화
10:00 시신봉
10:50 백아령~운곡사 구간 케이블카 하산
13:00 청나라 시대 거리를 재현한 "청하방 거리" 관광
12:50 중식
15:10 항주로 이동
20:50 송성가무쇼 관람
22:50 항주 황관호텔 투숙
□ 2006. 2. 6(월) /항주
08:40 항주 황관호텔 출발
09:15 서호(西湖) 도착
09:30 화항관어 공원
09:45 서호 유람선 탑승 /10:40 서호 출발
10:50 중국 선종 10대 고찰 "영은사" 도착 /35위엔
11:05 비래봉/11:50 영은사 출발
12:30 진주판매장 관광
13:00 산외산 식당 중식
14:35 국보로 지정된 목조 건축 "육화탑"
16:40 휴게소
17:40 상해 천후식당 석식
20:20 상해 써커스
22:20 이국적인 건물 전시장 "외탄" 야경
23:00 화정그랜드호텔 투숙
□ 2006. 2. 7(화) /상해. 인천
09:30 화정그랜드호텔 출발
11:00 상해 푸동 공항
14:30 OZ364편으로 상해 푸동공항 출발 /-기내식 1회 제공
16:40 인천 국제공항 도착
(산행기)
0 2. 3(금) /상해
상해 포동공항
서울보다도 더 화려하고 역동적인 상해시
소리 없이 다가온 중국은 이제 전 산업 분야에서 메이드인 차이나의 기치를 걸고
걷잡을 수 없는 노도의 기세로 밀려들고 있다.
예원(預園,위위엔)과 시장
역사적 유적이 많지 않은 상해에 남아 있는 몇 안되는 옛 조경림 중 하나
4백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명나라 시대의 관료였던 '반윤단'은 자신의 아버지 '반은'의 노후를 위해
1559년에 착공하여 18년이라는 긴 시간을 들여
고향인 상해의 한복판에 대저택, 예원을 세웠다.
북경의 황궁정원 이화원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과거 황제만 쓸 수 있었던 용문양을 예원에 조각하면서
용발가락을 한개 더 만들어 역적으로 몰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이후, 예원은 4백여년의 시간 동안 주인이 몇 차례 바뀌고,
중국 근대화 시기에는 영국군들과 태평 천국군, 프랑스군 등에게 점령되어
불타버리는 수난을 당하기도 하였다.
공산정권이 들어선 후, 중국 정부는 예원의 문화적 중요성을 깨닫고
1956년에 대규모 복원 작업에 착수하였으며,
1961년부터는 일반인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했다.
예원의 전체 면적은 약 20㎢며, '예원'이라는 이름은 '유열노친(愉悅老親)',
다시말해 '부모님을 즐겁게 해드리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정원 안에는 40여 개의 정자와 누각이 있으며,
그 중 예원 입구에 있는 차관 '湖心停'은 가장 유명하다.
오솔길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회랑과
다리를 따라 돌며 40여개의 정자와 누각,
연못과 가산(假山)을 관람하게 되어 있다.
예원 옆에는 다양한 종류의 독특한 기념품이나 전통 공예품,
먹거리들을 파는 예원 시장이 있는데,
전통적인 건물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항일 독립운동의 중심지로서 마당로(馬當路)에 있는 3층 벽돌집으로,
1926년부터 윤봉길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1932년직후까지 청사로 사용하던 곳이다.
매우 낡고 도로 옆에 위치해 있어서
언뜻 보면 쉽게 지나쳐버릴 수도 있을만큼 초라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이다.
1층에서 비디오를 시청하고 2층과 3층의 전시관을 관람하게 된다.
전시관 내에는 당시 쓰였던 가구, 서적, 사진 등이 전시되어있다.
노신공원(홍구공원)
상해시 중심부에서 약 4km 떨어진 홍구공원
중국의 사상가 노신의 고향인 소흥성의 건축 양식을 따라 지어졌으며,
기념관 안에는 작가의 필체가 담긴 원고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무덤에는 모택동이 직접 쓴 노신선생의 묘 라는 글자가 있다.
노신 기념관은 1951년에 세워진 것이다.
이 노신묘는 1956년 교외의 만국 공묘에서 지금의 곳으로 옮긴 것이다.
1932년 4월29일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투척했던 의거 현장이다.
홍구공원내에는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2층 누각 매정(梅亭 : 메이팅)이란 이름의 정자가 세워져 있지만,
주위에 '윤봉길 의거현장'이라고 세겨진 비석만이 홀로 서 있어서
단지 한국인 관광객을 위한 관광지가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게 한다.
0 2. 4(토) /황산
화산미굴
주차장에서 입구 다리까지 10여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대부분의 관광객은 걸어서 가지만 두 사람 태우고
1,000원을 받는 인력거를 타고서 멋을 부리면서 달리는 사람들도 있다.
새로 가설된 듯한 다리를 건너면 곧장 굴 지대에 이른다.
이 굴은 근년에 발견된 인공석굴로서 언제, 누가, 왜 파냈는지
아무런 가록이 남겨져 있지 않는, 말 그대로 미굴인데,
그 많은 석재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도 없고,
돌 굴 속에 남겨 놓은 알만한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굴은 모두 36개가 있는데 우리는 2호굴과 35호굴을 들어가 보았다.
규모가 방대하여 가장 높은 석굴의 높이가 30m이고,
가장 큰 석굴은 12,600평방미터나 된다고 한다.
2001년 강택민이 참관한 후 화산석굴을 화산미굴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화산미굴은 그 이름대로 아직 미굴로 남아 있을 뿐이다.
당월패방군
패방은 모두 7개인데 명대의 것이 3개, 청대의 것이 4개이다.
패방의 옆에는 2개의 사당이 있는데 하나는 포씨관본당사(鮑氏郭本堂祠)
즉 남사(男祠)이며 하나는 포씨비사(鮑氏秕祠) 즉 여사(女祠)이다.
이는 휘주종법제도와 휘주의 상업역사를 연구하는 생동한 교재이며
그중 여사는 "여자는 상당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구례를 타파하였으므로
국내에서 보기 드물다
황산 가는 길
산세나 계곡을 흐르는 물이며 들풀 까지 우리의 산하와 별 차이가 없다.
멀리 보이는 산세가 범상치 않음이 본격적으로 황산 풍경구에 들어선 느낌.
길목에서 청솔과 함께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장쾌한 굵은 대나무들은
소나무재선충 방제를 위해 둘레 4km를 베어내고 심은것이다.
황산풍경구
양쯔강 수계와 첸탕강[錢唐江]의 지류인 신안강과의 분수령을 이룬다.
옛 이름은 이산이다.
주로 화강암으로 이루어졌으며, 현애절벽의 기암괴석이 많이 솟아 있고
진기한 소나무 등의 노목이 많고 운해·온천 등이 유명하다.
황산은 흔히 앞산과 뒷산으로 나누어 지는데
반산사-옥병루-연화봉-광명정까지를 앞산이라 부르고 이곳은 천해에 속한다.
그리고 운곡사-백야경까지의 뒷산은 서해와 북해를 안고 있다.
흔히 케이블카로 이동할 경우 뒷산의 서해와 북해의 절경만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운곡사 케이블카
운곡사는 황산에서는 최초로 건립된 불교 사원으로
신라의 승려에 의해 건립되었다는데
사원은 모두 파괴되어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백아령
살짝 얼어붙은 돌계단은 미끄러지면 끝장이다
아이젠을 차기에는 빙판이 얇고 그냥가자니 미끄럽고..
황산의 모든 등산로는 화강암을 깍아 만든 돌계단
난간에는 화강암을 깍아 만든 손잡이가 있고
경치를 바라보면서 쉴 수 있는 휴식처가 곳곳에 있다
백아산장
매점, 화장실 그리고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점점 오르면서 시야가 트이게 되면서
기암괴석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풍광에 길을 멈추고..
운해 사이의 봉우리는 마치 바다에 떠 있는 섬을 연상할 만틈 무척 신묘하다.
평평한 길을 지나면 다시 갈림길. 직진하면 광명정이다.
광명정(光明頂:광밍딩; 1840m)
일출이 가장 아름다운 곳,
황산에서 연화봉 다음으로 높은 곳이지만
황산의 36개 봉우리에는 들지 못한다.
기이한 경관과 서해의 무리져 있는 봉우리,
천도, 연화, 옥병 등을 바라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의 광경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또 봉정에는 화동지구 해발 최고의 황산기상대가 설치되어 있다.
비래석(飛來石)
거석이 하늘을 나는 형태의 비래석
산죽이 있는 내리막 계단이 나타나고
돌이 하늘에서 떨어져 꽂힌 듯한 모양의 비래석이 보인다
높이 12m, 600톤 무게의 거석이 하늘을 나는 듯한 형태라
비래석이라 이름 붙여졌다 한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소설인 홍루몽의 영화에 나오기도 한다.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의 봉우리들과 눈을 맞추고
깊이를 알 수 없는 계곡아래서 솟구쳐 오르는 운무와 바람을 맞으며
긴 세월에도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본다.
행지정
배운정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정자
아래 호수를 내려다보는 풍광이 일품이다
배운정
황산의 기암 절경의 명당 배운정
중화민국 24년, 서해입구에 세워졌으며, 이곳에서는 시야가 확 트여
황산의 기암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명당이다.
구름과 안개가 서해의 골짜기들을 휘감아 솟아오르다
이곳에 이르면 저절로 걷혀져 물리칠 배(排) 에 구름 운(雲)을 써서
배운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웅장하고 깊은 계곡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난간의 쇠사슬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는데
중국에는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을 약속한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를 버리는 풍습이 있다.
등산로 평균10m간격으로 돌로 만든 쓰레기통이 있다.
또, 등산로 대부분이 금연구역.
서해 대협곡 /배운정 회귀
본격적인 공중돌계단이 시작되는 곳
서하객은 五嶽에서 돌아 나오면 볼 산이 없고
黃山에서 돌아오고 나면 오악을 볼 필요가 없다고했다.
서해 대협곡은 개발된 지 오래지 않아
아직 선이 그려지지 않은 등산안내도뿐이니 방향판단이 않된다
魔의 幻影 같은 경치라 하여
“魔幻世界” 혹은 “魔幻景區” 라고도 불리운다.
서해 대협곡의 기암 그리고절벽위에 서있는 황산송
비인간 세상이 여기에 있다.
신선이 살았을 그 땅 위로 공중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다
위험구간이라고 모두 포기한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계단길에서
비로소 고산다운 정적을 되찾는다.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가며 날카로운 침봉들을 올려다보며
시시각각 바뀌는 풍광에 잠시도 쉴 시간이 없다.
0 2. 5(일) /황산, 항주
청량대(1,640m)
어둠속에서 일출을 보기위해 부산을 떤다
모두들 어디서 잤는지 사람들이 많기도 하다.
40여분.. 시원한 바람이 목을 휘감는 능선에 올라섰다.
7시가 넘어 희미한 여명이 뜨고 푸른 새벽이 달려 온다.
아쉽게도 날씨가 너무 흐리고 운무가 자욱해서 일출을 볼 수가 없다.
북해빈관 건너편으로 울창한 소나무 사이길을 오르면 청량대
청명한 공기는 가슴을 찌르고 바람은 거칠 것 없는 허공으로 불어 온다.
이런 세상도 있구나
일출맞이 명소라는 청량대에서 그렇게오랫동안 서 있었다.
후자관해, 사자봉(1,670m)
청량대는 사자봉의 중간에 북해빈관의 맞은켠에 있으며
북해의 경치를 관상하는 중요한 지점
청량봉에는 하나의 교묘한 돌이 있는데 형태가 원숭이와 같으므로
"후자관해" 또는 "후자망태평"이라고 한다.
망태평이라고 하는 것은 원숭이가 바라보고 있는 곳이
예전의 태평현(현재의 황산구)이었기 때문이다
일출을 기대하던 무수한 사람들은 안개 흐르는
천상의 궁전을 배회하다아쉬움을 뒤로하고
안개가 짙어진 산길을 걷는다.
중국말 보다는 한국말이 더 많이 들리니
마치 지리산 천왕봉 해돋이 가는 듯하다.
북해빈관
광명정에서 바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북해빈관이다.
북해빈관으로 가는 도중 단합송이라 하여 중국의 한족을 포함한
56개 소수민족을 표현한 소나무가 10대 기송에 속한다.
몽필생화(夢筆生花)
북해빈관 앞의 산화오(散花塢)내에 자리잡고 있으며, 필가봉과 가까이 있다.
뾰족하게 솟은 석봉 가운데 구불구불 굽은 한 그루의
기묘한 형태의 고송이 나무그늘을 길게 드리우고 자라고 있으며
봉우리 아래에는 누워서 잠자고 있는 사람의 모습 같은 기이한 돌이 있어,
관광객들이 이 봉우리를 가리켜
夢必生花라 이름 붙이면서 황산의 유명 풍경이 되었다.
안타깝게 70년대 초에 소나무는 고사했고,
현재 봉우리 가운데에 서있는 소나무는 모조소나무이다.
운무가 오락가락하는 돌길을 따라 짙은 안개속을 헤메고 간다
시신봉
황산의 절경을 이 봉우리를 오른 후 비로소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짙은 안개속으로 보였다 사라졌다 하다가 아주 잠겨버린 기기묘묘한 봉우리
북해 주변에는 흑호송, 연리송, 용가송, 와룡송 등 황산 10대기송이 모여있다.
백아령 케이블카
다시 운곡사까지 케이블카
산행을 원하는 경우에는 운곡사까지 하산할 수도 있는데
약 2~3시간 정도 걸린다
풍경구
황산은 아름다웠다.
백두대간과 한국의 내노라하는 비경들을 보아온 내 눈에도
황산은 산의 개념을 달리 하는 별세계였다.
그 심대한 계곡에서 하늘을 향해 솟구친
장대한 암봉들에 걸터앉아 기나긴 세월을 인내하며
푸르름을 잃지 않은 소나무들은 감동이었다.
“황산에 오르고 나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라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수많은 봉우리와 기암괴석
그리고 아름다운 소나무의 조화로운 풍광이 빚어내는 비경
황산을 가려면 늙기 전에 가라
청하방 거리
청나라 시대 거리를 재현한 "청하방 거리"
처음으로 문방사우를 파는 곳을 만났다
서예용 붓 하나를 어렵게 흥정해서 산다
그리고 사브사브를 잘 한다는 식당에서 점심
항주 가는 길
3층 집이 많은데 대부분 1층은 창고, 2층은 응접실, 3층은 방으로 사용한다.
항주만의 특색 중 하나가 납골함이 있는 작은 옥탑이다.
등소평의 시신을 화장한 후부터 이곳 사람들에게 화장문화가 발달했고,
조상을 집에서 모신 채 살고 있다.
항주 송성가무쇼
중국의 라스베가스 쇼라고 불리는 송성가무쇼는 종합쇼로 공연시간은 1시간이다.
1인당 30불로 예술수준과 종합적인 기획력이 돋보인다.
프로그램이 다채로운데 우리나라의 고전 춤까지 볼 수 있어 흥미롭다
□ 2006. 2. 6(월) /절강성의 성도, 항주(杭州 : 항조우)
항주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절강성의 성도(城都)로,
7대 고도의 하나이며 중국이 자랑하는 관광지 중의 하나로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수려하다.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유명한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항주에 들렸다가 도시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항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칭송했다고 전해진다.
물고기와 쌀이 풍부한 고장이라 항주를 어미지향(魚米之鄕)이라고 한다.
더운 날도 뜨거운 녹차를 마셔 사람들의 성격이 온순하고 치안이 발달했다.
중국인들이 소망하는 것은 경치 좋은 항주에 집을 짓고,
소주에서 나는 비단옷을 입고,광동요리를 먹고, 항주의 용정차를 마시고,
유주에서 나는 나무로 짠 관에 묻히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의 자랑은 절강, 절강의 자랑은 항주, 항주의 자랑은 서호라고 한다.
서호(西湖)
항주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진
서호(시후 西湖)는 만리장성, 계림산수와 함께 중국 3대 명승지로 꼽힌다.
중국에 4대미인(초선,서시,양귀비, 왕소군)中
춘추전국시대의 서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
오나라 왕 부차에게 패한 월나라 왕 구천이
미인계로 서시를 부차에게 바친 후
섶에 누워 자고 쓸개를 먹으며 원수를 갚아
와신상담(臥薪嘗膽)이란 고사성어가 탄생했고,
수중에 둥근 구멍 5개가 뚫린 3 개의 탑이 있는
삼담영월에서는 이태백이 노래하던 십오야 밝은 달의 15개 달을 볼 수가 있다.
유람선을 탔는데호변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우측 산등성이에 "성황각"이라는 높은 탑모양의 집이 보이는데
최고급 찻집이라 한다.
특히 백제(白堤) 소제(蘇堤) 일대가 그렇다.
백제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소제는 송나라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항주의 지방장관을 하면서 쌓은 큰 제방이다.
수문을 설치하여 서호의 물을 관개에 이용하기 위해서다.
서호는 중국 4대 호수 중 가장 빼어난 자연호수로 소동파가 관리를 역임했다,
영은사(靈隱寺 : 링인쓰)
중국 선종 10대 고찰
항주 서북쪽에 위치해 있고, 비래봉(飛來峰)을 마주하고 있다.
비래봉에는 10-14세기 경에 만들어진 석불 330여 개가 전시되어 있다.
영은사는 동진시대에 인도 승려 혜리에 의해 지어졌으며,
선종 10대 사찰 중의 하나이다.
천왕전에는 "雲林禪寺"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청대 강희황제의 자필로 알려져 있다.
강희가 남쪽 지방을 순찰하던 중 항주에 들러서 북고봉(北高峰)에 올랐는데,
구름이 자욱하고 안개가 덮인 곳 속에 영은사가 있는 것을 보고
이 네 글자를 생각해 냈다고 한다.
대웅보전은 높이 33.6미터의 중국 저명안 건축물중 하나다.
보전안에는 24.8미터의 여래불상이 있는데,
1956년에 절강미술대학 교수와 예술인들이 합작해 만든 걸작이다.
대전 양 옆에는 20존자천불상이 있고,
대전 앞에는 송대에 건축된 8각 9층석탑이 있다.
사천왕전은 규모가 크고 가운데에 달마상이 있다.
대웅전 뒤쪽에는 100여 보살들이 모셔져 있다.
약사여래전 주위에 12지신상이 모셔져 있는데
자기 띠 앞에서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고 알려져 있다.
비래봉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209미터의 봉우리로,
인도에서 날아왔다는 혜리가 갔다는 데서 비래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암벽상에는 오, 송, 원에 이르는 석각조상 330여개가 촘촘히 새겨져 있다.
육화탑(六和塔 ; 리우허타)
국보로 지정된 목조 건축물로 북송 개보(開寶) 3년(970년)에 지어진 것으로,
전당강(錢塘江) 북쪽 연안 월륜산에 위치해 있으며
조수 간만의 차가 심한 전단강 때문에 백성들의 원망이 많아지자
하늘, 땅, 동, 서, 남, 북의 힘을 빌려 조수를 막기 위해 쌓았다는 목조탑이다
어머니가 전단강의 용왕에게 잡히자 화가 난 육화가
하루에 한번씩 돌을 던져 용왕을 굴복 시켜다는 일화가 있고,
육화(六和)라는 의미는 원래 불교에서의 규약인
'육합(六合)' 즉, '천지사방(天地四方)'의 의미다.
당시 건축계의 거장인 유호(喩皓)가 목경삼수(木經三首)를 근거로 설계하여
외관은 13층이며, 내부는 7층으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게 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9.89m이며, 중국 목조 건축 분야의 걸작.
상해 써커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서커스를 중국에서는 잡기(雜技)라 부른다.
잡기는 북경, 사천, 상해 등 중국 여러 지방마다 각각 그 특색이 조금씩 다른데,
그 중에서도 상해의 잡기를 가장 최고로 여긴다.
이곳 상해 잡기장은 매일 저녁 중국 최고의 서커스 묘기를 볼 수 있는 곳으로,
인민공원에서 南京西路 방향으로 5분정도 걷다보면 오른쪽에 있다.
무엇보다 서커스의 가장 하이라이트는 오토바이 묘기로
철제 원통에 4대의 오토바이가 들어가 아슬아슬한 묘기를 한다.
매일 약 1시간 30분가량 공연하며 인기가 높다
이국적인 건물 전시장 "외탄" 야경
상해의 강 대부분이 속해 있는 황포강은
무석의 태호(太湖)를 그 원천으로 하는 총길이 113㎞의 하천으로,
상해 중심을 흐르며 이 강을 중심으로 상해는 포동지구와 포서지구로 나뉘어 있다.
또한 강 주변에 외탄이라는 산책로가 관광지구로 발달되어 있어서
상해를 방문하는 이들에게 상해의 낭만적인 추억을 남겨주고 있다.
황포강에서 야경이 특히 아름다운 아시아에서 제일 높다는
동방명주 TV 수신탑, 웅장한 양자강 하구의 경관 등을 감상하는 것이다.
100년의 역사와 10년의 역사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외탄거리
강변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간다. 강건너 불구경이다.
어둠 속에 명멸하는 네온이 밤바다를 가르고
현란한 불빛으로 치장한 유람선은 어두운 강물을 미끄러져 간다.
□ 2006. 2. 7(화) /상해. 인천
인천에 폭설로 시간이 변경된다
상해 푸동 공항 출발
인천도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