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이야기 /숲길


봄은 식물이 몸집을 키우는 계절이라면

뜨거운 여름은 무더위 속에서 자기의 분신을 키우는 계절이다.

그리고 저녁이 오면 화려한 꽃을 피우는 분꽃을 보면

초보 농군의 서툰 솜씨지만 여기저기 모여 있는 꽃들이 아름답다.

분꽃이 훌쩍 자라 각자 다른 색깔의 자태를 보여 준다

주변에 다른 풀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생명력이 강한 꽃이기도 하다.

식물에게도 여름 한낮의 짧은 휴식은 있을 것이다.

밤에 지친 몸의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식물에게는 휴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언젠가 자기의 분신을 보내야 할 제한된 자연의 시계에 맞추기 위해

의연하면서도 치열하게 제 몸을 태우는 것처럼 보인다.



휴식의 공간인 주말농장을 일터처럼

이삼일에 한번씩 가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자연이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시골의 녹색 풍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스럽다.

거기에 새소리, 바람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날마다 커가는 야생화와 텃밭을 보면서 우리도 더위를 먹는다.


커다란 바위 앞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솟아있는

벌개미취의 군무를 보느라면 가을이 가까워짐을 알 수 있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시절, 고구마의 줄기는 흙을 덮을 기세로 뻗어간다.

조롱박이 하늘을 가리고, 밟히면 부서질 것 같은 채송화가

더위에도 지치지 않고 여린 꽃을 피우는 계절이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내 인생의 시계를 보러 가자.

사는 데 허덕이다 보니 나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들,

법과 제도에 묶여 자신의 의지대로 살 수 없었다고 고개를 숙인 사람들은

더위를 먹으며 시골 길을 걸어볼 일이다.

가급적 고향의 길을 걸어본다면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으리라.

감각적인 피서라면 도시의 시원한 에어컨보다 나은 것이 없고,

육신의 배를 채우는 일이라면 유명한 보양식을 따를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 속의 피서, 고향에서 먹는 수박 한 덩이만큼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것이 또 있으랴.


부용이 한창이다

인동초가 아직도 꽃망울을 토해내며 여름을 재촉하고

연못가로 노란 수련이 쉬지 않고 꽃대를 올린다

한낮의 열기가 숲으로 파고드는

여름은 더위를 먹는다

자연으로 돌아가자

더위를 느끼고 먹으러 가자.


하기야 가만히 앉아 있어도 날마다 열 받는 나라,

그래서 이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따로 더위 먹으러 가자고 한다면

오히려 화를 돋우는 소리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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