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월악산(1,097m)

0 위치 : 충북 제천시 한수면, 덕산면

0 코스 : 신륵사~영봉~송계삼거리~마애불~덕주사

0 일자 : 2010. 11. 28(일)

0 시간 : 4시간 /맑음

청풍명월 중원의 명산, 월악산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국시대에는 월형산이라 일컬어졌고,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다 무산되어 와락산이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월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있는 포암산 부근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나온

지맥의 끝부분에 솟아 있으며, 만수봉을 비롯해 많은 고봉들이 있다.

월악산의 으뜸은 일명 국사봉인 영봉이다.

정상에 우뚝 솟은 150m 높이의 단애절벽만으로도 영봉은 월악산을 대표할 만하다.

철계단으로 마무리가 돼 있어 겨울철에 안전산행에 유의해야 한다.

산꾼들에게 국립공원 월악산은 선망의 대상이자 기피산행지 1호이다.

그야말로 극과 극의 반응이 묻어난다.

수백길 절벽의 거대 암봉과 코발트빛 충주호의 빼어난 경관은

명산의 위용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하지만 다리를 후들거리게 하는 아찔한 바위 절벽과

질리도록 이어지는 계단은 초보 산꾼들에게 고통으로 다가온다.

흔히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을 두고 '3악'이라 부른다.

산 이름에 달 월(月)자가 들어간 산이 제법 있다.

추월산, 월출산, 월악산, 등 모두 명산의 반열에 오른 산이다.

그 만큼 산세가 빼어나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아 달을 보고 풍류를 즐겼을 것이다.

월악산은 충주호를 끼고 있어 더욱 그 이름에 어울린다.

월악산은 비운의 왕자인 신라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기 전에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랜 곳이라고 한다.

날머리의 덕주사는 그의 누이 덕주공주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태백가든

올들어 가징 추운 날씨

밖을 나서자 찬바람이 들이치는 겨울의 문턱이다

신륵사주차장

친절하게 버스는 좁은 진입로를 따라

신륵사 주차장까지 내려놓는다


신륵사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582년(신라 진평왕 4) 아도가 창건했다고 하나 추정일 뿐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전과 산신각·국사당·요사채 등이 있고

극락전 앞 200m쯤에 있는 삼층석탑은 보물 제1296호로 지정되었으며,

그밖에 괘불대와 부도 2기, 당간지주 등이 전한다.

신륵사를 지나면서 길이 약간 부드러워지지만 그것도 잠시.

산행은 처음부터 돌길과 돌계단의 연속. 계곡을 따라가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푹신푹신한 낙엽길이 이 순간만은 간절하다.

이따금 만나는 산죽과 소나무만 푸를 뿐 앙상한 가지가 온통 잿빛이다.

완연한 겨울산이다.





능선 갈림길

능선은 오르는 길은 급경사 돌길

가랑잎 아래로 살짝덮인 눈때문에 조심스럽다

신륵사 삼거리

숨이 턱에 닿도록 헉헉거리기를 2시간 여

마침내 1차 목표지점인 능선인 영봉아래 삼거리에 닿는다.

우측은 주봉인 영봉, 왼쪽은 마애불 방향.


영봉

회색 대암벽을 드러낸 영봉이 정면에 서 있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하지만 영봉 오름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등산로는 영봉 남쪽에서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영봉은 머리 바로 위에 있는데

오르고, 돌고, 또 쳐다보고 다시 오르고

월악산 영봉은, 전설조차도 나라를 위하는 내용으로 이어진다.

거란족들한테 왜침을 받아 위태로울때, 영봉은 안개를 만들어 적들을 혼란시켜서

방향감각을 잃게 하여 그만 물러나게 하는 전술을 부렸다는 이야기는 그럴법도 하다.

또 우리 나라에서 영봉을 말하라 하면, 북한에 있는 백두산 영봉과 남한에 있는 월악산

영봉을 말한다. 그만큼, 월악산 영봉은 신령한 산이란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영봉 북사면으로 들어서면 등산로의 상황이 급변한다.

음지라 그런지 눈이 녹지 않아 미끄러운 빙판이 형성되어 있다.

천길 벼랑 옆의 빙판길은 위험천만이다.

영봉에서는 역시 남쪽 조망이 최고다.

사방이 온통 장엄한 산맥의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광활한 충주호.

그 뒤로 비로봉 금수산, 날이 맑을 땐 원주의 치악산도 보인다.

남으론 포함산 대미산 등 백두대간 능선과 만수봉 주흘산 조령산 등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래불로 향하는 길

이 구간의 등산로에는 쇠그물을 친 펜스가 설치되어 있다.

산길 우측에 영봉의 절벽을 끼고 있어 그곳에서 발생되는 낙석을 막기 위해서다.


송계삼거리

우측은 동창교매표소 코스

이 길은 영봉으로 이어진 최단거리 길이어서 오름길로도 종종 애용된다.

동창교 매표소에서 초소까지 걸음이 빠른 사람은 2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하산시는 1시간30분으로 충분하다.

능선으로 부는 찬바람이 매섭다

아랫쪽으로 약간의 나뭇잎이 보일 뿐,

겨울산처럼 흑과 백의 도화지다

헬기장

널찍한 헬기장은 여러 등산객들의 중식장소로 애용되는 곳.

이후부터는 경사가 한결 완만해진다.

하산길이라지만

한 굽이 돌면 오르막길이고 또 한 굽이 돌면 내리막이다.

두 번이나 내리막 오르막을 반복하는 셈.


960m봉

삼각점과 작은 돌탑이 있는 비교적 평탄한 길.

이후부터 마애불까지는 끊임없이 나무계단과 철계단,

그리고 바위 사이사이로 내려서는 수직에 가까운 등산로가 이어진다.

질린다.

대신 이곳으로 올라오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이 길은 힘든 만큼 월악산의 진면모를 감상할 수 있다.

그래서 등산지도에 '자연경관로'라고 표시돼 있다.

전망대

영봉이 보이는 능선상의 전망대에 닿았다.

절벽 위의 테라스에 난간을 두른 그 곳에서 보는

영봉과 충주호 일대는 한 폭의 동양화 같았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과 노송이 어우러진 봉우리 뒤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가 펼쳐졌다.

전형적인 월악산의 풍광이다




사다리길

중간중간에는 쉼터들이 있고, 바위 위로 노송이 그늘을 드리운 멋진 쉼터도 있다.

멀리로는 영봉 남릉의 자유분방한 윤곽선이 바라뵈기도 한다.

왼쪽 능선은 푸르름이다

월악산에서의 지금은 소나무 외에는 푸르름이 없다

바윗길

이름높은 월악산 바윗길이 시작된다.

예전에는 밧줄만 매여 있던 급경사 바위면에 긴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급경사의 쇠사다리 길은 거의 연달아 계속된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납작 엎드릴 만큼 아찔한 곳,

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장관이라며 환호하는 곳의 연속이다.

낙석이 자주 발생하는 장소라 산행시 주의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구간이다.

특히 해빙기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마애불

유난히 푸른 산죽이 보일 무렵이면 마애불(보물 406호)에 닿는다.

계곡 중턱의 높직한 2단 석축 위,

갈색이 도는 커다란 바위면에 돋을새김으로 높이 13m나 되는 고려시대 불상이 조성돼 있다.

높이 13m의 마애불은 덕주공주가 월악산 덕주골로 와 덕주사를 짓고

자신을 닮은 불상을 새겼다고 전해지지만 고려 양식이다.

길 왼쪽의 높직한 계단 위, 근래 복원공사를 마친 덕주사 대웅전, 관음전이 있다

식수로 이용하던 샘은 화재로 대웅전이 소실되면서 사라지고

등산로도 마애불 아래도 돌려나있다

덕주산성 내성

마애불에서 내려오면 덕주산성 내성이 나온다.

덕주산성의 방어체제에 있어서 내성은 아마도 최후의 보루인 듯 하다.

1차로 덕주산성 북문과 남문을 방어하고 2차로 동문을 방어하고

마지막으로 내성에서 최후의 방어를 할 수 있도록

주변산세를 적절히 잘 이용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덕주사

6·25때 모두 불 탄 폐찰을 30여년 전부터 불사를 시작해서인지

일주문도 없고 왠지 어수선하다.

절 앞에 서 있는 1m 남짓한 남근석 세 개가 눈길을 끈다.

월악산의 음기가 워낙 세 음양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세운 것이란다.

입구에 있는 감나무에 홍시가 한창이다

그냥 두면 산새들이 쪼아 먹고

따다 말리면 홍시, 깍아서 말리면 곶감

저렇게 많이도 달릴수가.......



동문

계곡을 가로지른 덕주산성과 성문(동문)을 나선다.

덕주사는 덕주공주가 창건했다고 한다.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딸 덕주공주가 이 산성으로 피난왔다는 전설이 전하며

성문은 북쪽의 절벽에 닿아 있고 계곡을 끼고 성벽이 건너편 산까지 치달아 있다.

천혜의 지형 덕분으로 예로부터 유명한 피난처로 알려져 왔다.

기록에 의하면 덕주산성은 신라 경순왕 제 1왕녀인 덕주공주가

마의태자와 함께 피란 온 곳이라 한다.

또한,고려 고종 때에 몽고의 침략으로 충주 사람들이 피난을 와 은신한 곳이라고 전해지며,

상주에서 돌아오는 몽고군을 하늘재 밑에서 쳐부시어 적 사상 1000여명을 낸 승전지이고 하다.

김윤후장군과 용감한 충주민이 버티고 있는 충주성 공략에 실패한 몽고군은

달아난 충주민들이 있는 이 곳 월악산성(덕주산성)을 공격코자 하였으나

월악산 주변으로 갑작스럽게 안개가 자옥히 끼더니

요란한 천둥 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몰아쳐 공포에 휩싸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필히 월악산신이 노한 것으로 생각한 몽고군은 겁을 먹고

산성을 피해 문경을 넘어 상주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한다.

고려 고종 때 이 모든 것이 월악 산신이 이곳을 지켜 주시기 때문이라하여

신라 때부터 "월악신사"를 지어 놓고 신령을 제사함에 있어

국가의 안령을 비는 호국적 기도처에서 후대에는 마을의 수호신격으로 범위가 좁아지다가

일제의 의해 국토가 침략당한 후로는 퇴락하고 말았다한다.



덕주휴게소

이어 계곡을 따라 학소대 수경대 등 명승이 이어진다.

덕주사에서 통제소를 지나 덕주휴게소까지 포장길이다

주차장

콘크리트 포장도를 따르면

밝은 갈색 통나무로 외장을 한 음식점 월악산장을 지나

민박집과 음식점들이 모여서 작은 시설지구를 이룬

덕주골 입구의 노변 주차장에서 산행을 세운다





<산행시간>

06:00 태백가든

08:55 신륵사주차장

09:05 신륵사

09:15 이정표 /영봉3.1km, 신륵사삼거리2.3km,신륵사0.5km

09:25 이정표 /영봉2.6km, 신륵사삼거리1.8km,신륵사1.0km

09:40 해발440m /영봉2.1km, 신륵사삼거리1.3km,신륵사1.5km

10:00 능선 /영봉1.8km, 신륵사1.8km

10:10 이정표 /해발640m /영봉1.6km, 신륵사삼거리0.8km,신륵사2.0km

10:30 이정표 /영봉1.1km, 신륵사2.5km

10:50 신륵사삼거리 /영봉0.8km, 신륵사2.8km,덕주사4.1km

10:55 이정표 /영봉1.2km,송계삼거리0.3km,동창교3.1km,덕주사3.7km

11:10 이정표 /영봉1.5km,동창교2.8km,덕주사3.4km

11:15 해리포트

11:20 이정표 /영봉1.9km,덕주사3.0km

11:25 삼각점 /영봉2.2km,마애불1.2km,덕주사2.7km

11:40 전망대

11:45 철계단

11:50 철계단

12:15 이정표 /마애불 /영봉3.3km,마애불0.1km,덕주사1.6km

12:25 덕주사 /영봉3.4km,덕주사1.5km

12:45 표지석 /영봉4.9km

12:50 덕주사

13:05 덕주산성

13:15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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