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장군봉 사전답사 산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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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 헌터들
매달 한 번 이상 꾸준히 산에 가는 이들을 등산인,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산에 가는 이들을 등산 마니아, 백두대간을 완주하고 정맥과 기맥을 종주하는 이들을 산꾼이라 부른다면, 봉우리 헌터들은 그 이후 단계인 국가대표급 등산 선수, 혹은 산 중독자에 해당한다. 봉우리 헌터, 말 그대로 봉우리를 사냥하는 이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에서 누가 제일 많은 봉우리를 올랐느냐를 놓고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언론이나 대중의 관심 밖에 있는 재야 고수들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 같은 명산은 봉우리 헌터들에게 중요하지 않다. 봉우리 개수를 늘려야 하는 이들에게 이런 명산은 10년 전, 혹은 20년 전 이미 올랐던 산일 뿐이다. 중요한 건 산 높이가 100m건, 200m건 가보지 않은 새로운 산을 지도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선두권에 있는 이들이 3,000개 이상의 봉우리를 탄 걸 감안하면 이들이 가는 산행은 대부분 등산로가 없는 개척산행이다.
전국 방방곡곡의 산을 누비는 이들은 산을 타는 스타일도 일반인과 다르다. 산이 얼마나 좋은가와 상관없이 어떻게 저 봉우리를 최단거리로 안전하게 올라 능선을 접한 다른 봉우리까지 연계해 땅따먹기 하듯 해치우고 빨리 내려오나 하는 것이다. 봉우리 헌터란 별명처럼 산행 스타일이 봉우리를 사냥하는 것과 같다.
이들에게는 기록이 중요하다. 산 이름, 높이, 위치, 산행코스, 날짜, 동행인, 사진 등을 기록으로 남긴다. 봉우리 헌터들에게 오랜 이슈는 어디까지 산으로 볼 것인가다. 가령 지리산이라 통칭하면 종주했을 경우 봉우리를 몇 개를 기록에 넣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사전적으로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주관적인 것이기에 이들 사이에 오랜 논란이 되어 왔다. 봉우리 헌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과 산행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다.
세종시 산을 타려고 헌터들이 몰리는 까닭은
심명보(74) 저는 1만2,000산 목록을 만들었다가 포기했습니다. 국토지리정보원 발행 2만5,000분의 1, 영진ㆍ성지문화사 5만분의 1 도로지도, 성지문화사 10만분의 1 도로지도를 참고해서 찾아낸 봉우리가 1만2,000개였어요. 해발 높이가 나와 있는 건 다 쳤어요. 산, 봉우리, 등, 재를 다 친 거죠. 그런데 <신산경표>를 쓴 박성태 선생을 만나서 기준이 어찌 되냐고 하니 “산과 봉우리만 쳐” 라고 하는 거예요.
오상호(74) 워낙 산을 많이 타다 보니 높은 산은 이미 다 타서 낮은 데로 갈 수 밖에 없게 된 거죠. 1970~1980년대만 해도 500m 이하는 산으로도 안 쳤는데 이젠 높이가 낮은 데로만 다닐 수밖에 없는 지경이에요.
이종훈(77) 봉우리 개수를 세는 데는 산 이름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데, 등산잡지를 보면 필자들이 임의로 산 이름을 붙여서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가령 산 아래 탑산마을 이름을 딴 탑산이나, 낙지리를 딴 낙지봉 같은 거죠. 이렇게 이름을 붙이기 시작하면 5만 개도 될 수 있어요. 저는 임의로 산 이름을 붙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지 주민들이 잘 알 것 같지만 뒷산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고 골짜기 이름 정도밖에 몰라요.
최진무(72) 맞습니다. 산 이름은 민감하기 때문에 함부로 개인이 지어선 안 된다고 봐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표기된 걸 우선으로 삼아야 해요.
김홍국(60) 국토지리원 지형도가 완벽한 건 아닙니다. 저는 남편 이재곤씨와 ‘고산자의 후예들’이란 등산지도 전문회사에서 지도 작업을 해요. 국토지리원에서 지형도 작업을 하던 초창기에 한자 표기 실수로 잘못 들어간 게 굉장히 많아요. 요즘은 개인이 산 이름을 붙여서 인터넷에 올리고, 코팅해서 정상 표지로 붙여서 원래의 산 이름인양 굳은 것도 많아요. 제가 등산지도 만드는 일을 하니까 국립지리원에 산 이름을 정확하게 해달라고 항의한 적이 있었는데, ‘현실적으로 일일이 다 확인하기가 어렵다’는 답을 받았어요. 국토지리정보원 지도가 개편되면서 산 이름이 빠진 것이 많았는데 그런 걸 성지ㆍ영진에서 반영해 이름이 남아 있는 게 많아요.
김은남(69) 맞습니다. 옛날에는 측량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잘못된 게 많아요. 산이름이 대개 아래 마을에서 보고 붙인 게 많은데 막상 산에 올라가면 마을에서는 안 보이지만 더 높은 주인격의 봉우리가 많아요. 그런 봉우리 중에 이름 없는 것이 많고요.
이런 것까지 바로 잡으려면 엄청난 작업이죠. 그런 산세 좋은 무명봉에 적극적으로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산 하나에 여러 개의 봉우리가 있을 때 높이를 기준으로 주봉보다 높은 무명봉이 있으면 문헌을 찾아 새로 이름을 붙여야 합니다. 또 가장 높은 주봉이 아니더라도 조망이 탁월하고 산세 훌륭한 봉우리가 있다면 이름을 새로 붙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름 붙일 때 ‘산’의 경우 산과 산에는 반드시 재가 있어야 해요. 그게 아니면 일정 거리가 떨어져 있거나요. 그것도 아니고 재도 없고 능선이 이어져 있는 가까운 봉우리를 다 산이라고 이름 붙이면 안 된다고 봐요. 기존의 산 이름도 수정할 필요가 있어요. 여러 봉우리가 있을 때 가장 높은 주봉이 따로 있는데 낮은 봉에 ‘산’이라 이름 붙인 건 당연히 고쳐야 해요.
최진무 개인이 산 이름을 왜곡한 사례가 있는데 마바리산과 고부산이 그런 경우지요. <월간山>과 <사람과산>에 연재했던 동일 필자인데, <월간山>에 2008년에 고부산으로 소개한 산을 2009년 <사람과산>에 마바리산으로 이름만 바꿔 소개했죠. 이 분이 10분 만에 정상에 설 수 있는 십자봉을 소개한 거나, 찻길이 산보다 고도가 더 높아서 내려가며 만나는 봉우리인 말미산을 소개한 건 잘못됐다고 봐요.
문정남 저는 개인적으로 지도상의 모든 산을 오르는 게 목표예요. 누가 산 이름을 붙였건 간에 따지지 말았으면 해요. 등산잡지에 나오면 인정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심명보 조순씨가 서울 시장일 때 시청에서 나온 책이 있는데 <서울의 산>이란 책이에요. 지금 그 산을 찾아가 보면 산 흔적이 좀 남아 있는데 공원이고 나머지는 다 아파트고 집이에요. 그래서 충남 연기에 세종시를 조성한다고 발표됐을 때 개발로 산이 없어질까 봐 봉우리 헌터들이 그리로 다 몰렸어요. 사실 조금 있으면 다 없어진다고 보는 게 맞고요. 등산잡지에 연재한 필자가 임의로 이름 붙인 산을 나도 가봐요. 구름이 둥둥 떠 있다고 ‘둥둥산’, 이런 거 보면 어이없지만 결국 산 이름은 있어야 해요.
안종만(73) 저는 1985년부터 산을 타기 시작해서 1990년대 후반에 산악회를 창립하고 본격적으로 산을 탔습니다. 전국등산연합회 회장을 지냈고 산도 2,000개 정도 탔지요. 산을 타다 보면 최고봉에 정상석이 있지 않고 더 낮은 곳에 있는 걸 자주 봅니다. 정상석은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세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훈 우리가 삼각점 기준으로 산행을 많이 하는데, 반드시 높이로만 따지는 건 합리적이지 않아요. 더 경치 좋은 봉우리에 표지석을 세우는 경우도 많거든요. 꼭 높이로 정상을 따질 게 아니라 종합적인 의미를 따져 정상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김홍국 간혹 사람들이 착각하는데 삼각점이 있다고 다 봉우리는 아니에요. 삼각점은 측량기준점이에요.
문정남 우리 얘기가 너무 원론적으로 가고 있어요. 산과 봉의 정의를 내리기는 정말 어렵잖아요. 중요한 건 우리가 갔느냐 안 갔느냐가 중요한 거죠. 우리 같은 등산인은 정의를 내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탔느냐 안 탔느냐가 중요한 거잖아요.
최진무 3,000봉우리 넘게 탔지만 저는 개수 경쟁을 위해 산을 타진 않았어요. 저는 산행 기준으로 개수를 헤아려요. 가령 민주지산 석기봉만 따로 탔으면 개수를 치지만 능선을 종주해서 지나친 경우에는 석기봉을 헤아리지 않아요. 사람들 몇천 산 탔다고 기록한 걸 묶어서 내놓는 걸 보면 다 자기 과시용 밖에 안 돼요. 산 목록을 봐도 일정한 체계나 기준이 없어서 산을 찾기가 어려워요. 저는 산악회를 운영하니까 회원들을 데리고 산을 탔을 때 어떤 코스로 타면 가장 재미있을까를 생각하며 경치 좋은 곳 위주로 코스를 잡아요. 또 저는 기록에 엄격해서 반드시 정상 사진이 있는 것만 개수로 쳐요. 혼자 산행을 갈 때가 많은데 삼각대에 자동 타이머로 조정해서 찍어요. 봉우리 기준도 관악산에 여러 봉우리가 있지만 딱 관악산, 삼성산만 쳐요.
문정남 최진무 우정산악회장과 저는 스타일도 다르고 목표도 달라요. 최 회장은 산악회장으로서의 목표이고 저는 지도상의 산은 다 오르겠다는 게 목표예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이 봉을 가장 짧게 단시간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걸 생각해요. 정상 사진의 경우 다 찍어서 남기기가 힘들어요. 주로 혼자 산에 많이 가고, 기계를 다루고 정리하는 것도 어렵고요. 자기 양심과의 싸움이라고 봐요. 그렇다고 증빙자료가 없는 건 아니에요. 산행 리스트 안에 산행 소요시간, 코스, 위치 같은 정보를 다 남겨요.
심명보 나는 증빙자료로 표지기를 붙여두는데, 6,000개가 넘는 산에 표지기를 붙였으니 전화번호도 없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내서 전화를 해요. 그러면 만나서 술 마시고, 가끔 산 타러 가는 건지 술 마시러 가는 건지 구별이 안 될 때도 있지만 술 냄새 풍기면서도 산에 가요. 그게 내 방식이죠.
이종훈 나는 정상에 늘 이름과 몇 번째 오른 산인지 숫자를 써서 남겨요. 증빙자료도 되고 책임감도 생기죠. 한번은 막상 집에 와서 보니 표지기를 다른 봉우리에 잘못 붙인 거예요. 부끄러워서 다음날 새벽에 가서 바로 뗐어요. 표지기는 1,000개 넘으면서 붙이기 시작했지요. 언제부턴가 늘 보던 표지기가 보이는데, 알려지지 않은 야산에서 그런 표지기를 보면 그 사람의 내공을 알 수 있지. 전국에 2,000산 이상 탄 봉우리 헌터들이 50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김은남 나는 산을 오를 때마다 시조를 써서 남깁니다. <일천산의 시탑>도 그렇게 냈고요. 지금 2,230개 산을 올랐는데 <삼천산의 시탑>을 내는 게 목표입니다. 저는 글쓰기 위해서 산을 타요.
김홍국 저는 개수를 헤아리지 않았어요. 지도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두다 보니 개수를 헤아리진 않아요.
진정한 1인자는 누구인가
심명보 나는 1990년대 초부터 산을 다녔어요. 20년 탔고 6,300개를 올랐어요. 문정남씨는 2000년부터 산을 탔는데 10년 만에 내 기록을 따라왔어요. 이 양반은 한 달에 25일 산을 가는 사람이에요. 나는 많이 가야 20일인데, 이해가 안 가요. 게다가 암수술을 두 번 받은 ‘종합병원’이잖아요. 이해가 안 가요. 초인간이야.
이종훈 나는 3,700개인데, 좌우지간 여기 있는 사람은 다 산에 미친 사람들이야. 해발 500m 등산로도 없는 산을 올라가려고 몇 시간씩 덤불을 뚫고 가질 않나.
문정남 여기 있는 분들 산행경력으로 따지면 다 선배들인데 어떻게 그렇게 됐네요. 저는 지도상의 산은 다가겠다는 것이 목표고, 목표를 가지고 사는 것이 행복해요. 저는 산과 봉우리를 엄격하게 따지지 않아요. 제 기준은 대체로 높이만 표기된 무명봉은 안 치지만, 부근에 재나 고개 이름이 있을 때는 그 지명을 산 이름으로 붙여서 개수에 포함시켰어요. 저는 죽기 전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산과 봉우리를 오른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예요. 한 달에 평균 20~25일 산에 가고, 연중 240일 이상 산에 가고, 1년에 1,000개 정도 봉우리를 올라서 여기까지 왔어요.
최진무 우리는 워낙 산을 많이 타다 보니 어느 산악회에서 100개 산 탔다고 잔치하고 현수막 거는 거 보면 좀 우습기도 해요.
심명보 나 같은 경우는 나이가 점점 먹으면 산행이 힘드니까 여태껏 경기도 산은 많이 아껴뒀어요. 5,000개 이후부터 경기도 산을 쓸어 담기 시작했죠.
문정남 우릴 따라 잡으려고 기를 쓰고 타는 사람들도 있는데, 가까운 데부터 산을 타더라고. 우린 3,000개 산 탈 때까지는 경기도 낮은 산은 안 가고 아껴뒀지요. 산은 내 희망이야. 산이 없었으면 내가 뭐하고 있겠어요. 산을 타면서 암도 낫고 무좀까지 나았어요.
심명보 내가 문정남 다음으로 많이 탔는데, 나는 따라잡는 거 포기했어요. 건강 관리차원에서 문정남씨하고 같이 산에 다녀요. 옆에서 산행하는 걸 보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어요. 암 걸렸던 환자인데도 하루에 10시간씩 등산로 없는 산을 타고, 지방 가면 그 지역 산 쓸어 담을 거라고 며칠씩 타고…. 길 없는 가시덤불을 문정남씨가 앞에서 치고 올라가니까 미안하지. 우리가 100~200m 산 탄다고 우습게 보지만 한번 따라가 보면 두 손 드는 사람 많아요. 문정남씨 산 타는 거 보면 대한민국에 이 사람 따라올 사람 없어요. 나이 일흔둘에 킬리만자로 올랐잖아.
봉우리 헌터들을 보면 모두 60~70대의 기운 넘치는 노장들이다. 어떤 이들은 봉우리 헌터들을 두고 산을 즐기면서 여유롭게 탈 줄 모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은 산행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이고, 자기 스타일대로 타는 것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봉우리 헌터들의 산에 대한 집착은 곧 삶에 대한 집착이고 행복이다. 이들은 알고 있다.
“지금 이렇게 열심히 산에 다녀도 몇 년 지나면 죽은 사람들 많아요. 이렇게 열심히 산행하다 산에서 죽은 사람들도 많지요. 우리도 그렇게 되겠죠.”
최진무 회장의 말에 봉우리 헌터 문정남씨가 덧붙인다.
“나는 죽어도 산에서 죽겠다.”
가리왕산
진저리쳐지는 추위, 숨이 멎는 듯한 정상 조망
강원도 내륙 산골의 이른 아침 추위는 진저리가 쳐질 만큼 맹렬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찌르는 듯 엄습하는 냉기에 흠칫 놀라며 등산화 끈을 동여매는 손가락이 얼얼하게 곱아드는 데 10초가 채 걸리지 않았다. 각오를 다지듯 깊이 들이마신 들숨에 콧속이 얼어붙자 그만 다 집어치우고 따뜻하게 히터가 켜진 자동차 안으로 도망쳐 들어가고만 싶어진다.
오전 8시. 해는 이미 떠올랐지만 아우라지 정선의 첩첩산악에 볕이 가려 가리왕산의 북쪽 들머리 장구목이는 아직까지 푸르스름한 여명을 벗어나지 못했다. 추위에 기가 꺾여 행장을 다 꾸리고도 엉거주춤한 자세로 미적미적 갈피를 못 잡는 내게 김용수씨가 보온병을 꺼내 무럭무럭 김이 나는 커피 한 잔을 건넨다.
이번 가리왕산 종주산행에 길라잡이를 자청한 김용수(50)-이분순(48) 부부는 정선 토박이. 서울에 사는 사람이 오히려 남산을 모르듯 산동네에 사는 주민들은 등산 활동과는 거리가 멀게 마련인데 북평면 나전에서 닭튀김식당을 열고 있는 김씨 부부는 내외가 모두 등산 애호가다. 가리왕산은 물론 두타산, 청옥산, 각희산, 괘병산, 노추산 등 이 지역 산들을 손금 보듯 빤히 꿰고 있는 부부는 안내를 부탁하자 흔쾌히 길동무가 되어주겠다고 함께 나섰다.
하산 예정 지점인 숙암분교에 자동차 한 대를 옮겨둔 뒤 장승 한 쌍이 눈을 부라리며 서 있는 장구목이 입구에서 산행은 시작됐다. 북사면인 장구목이 초입에는 낮은 기온 탓에 습기라고는 전혀 없는 설탕 같은 가루눈이 얇게 쌓여 있을 뿐, 지난 가을 떨어진 낙엽송의 짧은 침엽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움직인 지 10분쯤 지나 워킹스틱을 잡은 손가락에 따뜻한 기운이 감돌자 비로소 추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걸음이 가벼워진다. 장구목이를 통해 가리왕산 정상에 오른 뒤 중봉까지 능선길을 타고 중봉과 하봉 사이 오장동 갈림길에서 숙암리의 폐교인 숙암분교로 내려가는 약 14km의 산길이 우리 앞에 있다.
“땀이 안 날 정도의 속도로 천천히 가자고요. 항상 그게 더 빨라요, 안전하고….”
산토끼 같은 가벼운 걸음으로 앞장서 걷던 이분순씨가 뒤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녀의 얘기엔 산골 사람이 몸으로 체득한 겨울 산행의 지혜가 들어 있다. 무리하지 않고 꾸준한 속도로 걸으면 체력 안배를 잘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특히 땀을 흘려 체온을 잃을 염려가 없다.
너무 추워서 녹지 않는 눈
고도를 높일수록 눈이 점점 풍부해져 발걸음을 뗄 때마다 뽀드득 뽀드득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듣기 좋다. 산이 높은 만큼 골이 깊어, 계곡의 꽁꽁 언 얼음장 사이로 물이 졸졸 흐른다. 등산로 주변에 제법 굵은 소나무들이 쓰러져 있다.
“지난달에 때 이른 폭설이 왔는데 그때 나무들이 많이 넘어졌어요. 날이 따뜻한 가운데 내리는 눈은 무거워서 약한 나무들이 그 무게를 못 견딘 거죠.”
박달 같은 강건한 나무들은 한 그루의 희생도 없이 굳세게 버티지만 소나무처럼 겨울에도 잎을 잃지 않는 침엽수가 특히 폭설에 취약한데, 찬찬히 살펴보니 넘어진 나무는 소나무뿐이 아니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아름드리 주목 한 그루가 부러지는 대신 뿌리째 뽑혀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다. 꼿꼿하게 서서 산을 지키던 이 나무는 이제 와불처럼 누운 채 새로운 삶을 시작한 것이다.
수십, 수백 성상을 견디며 산을 지켜온 나무들이 나뒹구는 모습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다. 대자연은 이렇게 약하고 튼실하지 못한 나무들을 도태시키는 방식으로 스스로 간벌을 진행하며 숲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쓰러진 주목 주변에는 또 다른 어린 주목이 푸르고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될 만큼 건강한 가리왕의 숲은 이렇게 생명과 생명 사이의 끈질기고 오묘한 순환을 단절 없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2시간쯤 걸어 임도 합류지점에 도착하자 눈은 더욱 깊어져 시험 삼아 길을 벗어나 발을 디뎌보자 무릎까지 폭 빠진다. 목이 높은 스패츠를 신고 온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장구목이 임도 교차점을 지나면서 경사가 다소 가팔라졌다. 행여 엉덩방아를 찧을까,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을 오르는데 돌연 머리 위로 빨간색 열매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산새 서너 마리가 마가목 열매를 쪼아 먹느라 분주하다.새들이 떨어뜨린 마가목 빨간 열매는 선명한 색 대비로 흰 눈 위에서 아름다웠다.
김용수-이분순 부부가 등산을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남편 김씨가 혈압이 높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다.
“등산이 약보다 효과가 좋았어요. 등산 시작 한 달여 만에 정상혈압으로 복구됐으니까. 그때부터 시간나면 아내와 함께 산으로 가는 겁니다.”
김씨는 산행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숲 속의 초본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덕분에 이제는 심마니 버금가는 눈썰미를 갖게 됐는데 그동안 산삼도 캐봤고, 특히 나물, 약초, 버섯에 도가 텄다.
길을 가던 김씨가 손가락으로 나무를 가리킨다. 그가 가리킨 곳은 신갈나무 높은 우듬지. 거기엔 겨우살이가 수북하게 자라 있었다.
“소형 승용차 사이즈의 겨우살이도 봤지요”
소형 승용차 사이즈의 초대형 겨우살이를 본 적도 있다는 김씨는 기생식물 겨우살이를 나무의 암(癌)인 셈이라고 설명한다. 새들이 겨우살이 씨를 쪼아먹고 다른 나무로 옮겨가 똥을 싸면 거기서 또 다른 겨우살이가 자라는데 겨우살이가 자라면 결국 나무는 죽는다는 것이다. 기세 좋게 자라는 굳센 나무에서는 싹을 틔우지 못하고 뭔가 약한 구석이 있는 나무에서만 자라는 겨우살이는 자연이 주는 귀한 약재인데 그 자체가 나무에는 암적인 존재라니 자연의 섭리는 불가해하다.
임도 아래 골짜기에서 물을 떠와야 했으나 깜빡 그냥 지나친지라 주능선 약 500m 못 간 지점의 샘터를 찾아간다. 등산로에서 샘터까지 30여 m의 길엔 눈이 내린 이후 서너 명이 다녀간 발자국이 있었지만 막상 샘터는 깊은 눈 속에 파묻힌 채 물을 뜬 흔적이 없다. 이 발자국의 주인들도 우리처럼 골짜기에서 물을 뜨는 것을 잊고 이곳까지 찾아왔으나 눈 속에 묻힌 샘을 찾지 못하고 그냥 돌아섰던 것으로 추리해 본다.
하지만 우리도 물을 얻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용수씨가 쌓인 눈을 걷어내 샘을 찾아냈으나 샘물은 대부분 눈이 섞인 슬러시 형태로 수량이 너무 적어 수통에 채우기엔 모자랐던 것이다.
장구목이를 출발한 지 3시간여 만에 주능선의 삼거리에 닿았고, 곧이어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200m 지점의 정상 상봉에 올라선다. 케른과 정상비가 서 있는 해발 1,561m 가리왕산 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한 것은 정상부에 몰아치는 찬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운해라고 하기엔 연하고, 안개라고 하기엔 짙은 가스가 광활한 남부 강원도의 산악지대의 시야가 닿는 저 끝까지 출렁이는 스펙터클. 능선과 높은 봉우리들만 위로 떠올라 있고 산 아래 골짜기는 모두 연무에 잠긴 뭔가 가슴 서늘한 우리 땅의 모습은 눈을 떼기 힘들었다.
마치 흰 바다 위에 푸른 파도가 치는 것 같은 장엄한 광경을 앞에 두고 운해 위로 둥실 떠 있는 산의 이름을 하나하나 짚어본다. 청옥산, 청계산, 천마산, 백암산…, 저 멀리 대화산, 운교산, 마대산…. 백두대간은 현재 내가 서 있는 상봉에서 운해 사이로 흘러 아스라이 떠 있는 소백산을 향해 가물가물 멀어진다.
펭귄 무리처럼 모여 점심식사 하는 등산객들
경탄스러운 정상 풍경을 뒤로하고 장구목이삼거리로 내려서니 뒤늦게 올라온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느라 삼거리가 붐빈다. 남극의 황제 펭귄이 겨울을 날 때 체온을 나누고 바람을 막기 위해 옹기종기 서로 붙어 서 있듯이 50여 명의 등산객들이 비좁은 안부에 모여 식사를 하는 광경에서 펭귄 떼가 연상되어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중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로 내쳐 걷는다.
평탄한 능선길은 러셀이 잘 되어 있는 가운데 눈이 깊어 겨울산의 흥취가 제대로 느껴진다. 능선에 눈이 풍부한 것은 바람이 양지바른 남서쪽 사면에 쌓인 눈을 응달진 북동사면으로 쉴 새 없이 옮기는 과정에서 능선에도 상당량을 공급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낮은 기온 때문에 눈이 녹을 일이 없어 등산화의 바닥으로 전해져 오는 보드라운 가루눈의 감촉이 편안하고 아늑하다. 눈밭 곳곳에 간밤에 돌아다닌 노루며 멧돼지, 토끼 발자국이 선명하다.
중봉 못미처 1400고지의 볕 잘 드는 눈밭에서 점심식사를 한 뒤 다시 길을 나서 오장동 갈림길까지 간 뒤 하산을 시작한다. 오장동 갈림길은 하봉을 거쳐 가리왕산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남쪽코스와 숙암리로 내려가는 북쪽 코스가 주능선상에서 갈라지는 포인트다.
숙암리 방향 하산길에서는 임도를 두 번 횡단하게 되는데, 임도에 서 있는 이정표에 흥미로운 글귀가 적혀 있다.
‘임도를 따라가지 말고 등산로를 따라 하산하세요. 가리왕산 임도는 100km가 넘습니다.’
아마도 가파른 등산로를 내려오다 시원하게 뻥 뚫린 임도를 만나자 저도 모르게 임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정표에 적혀 있는 경고처럼 가리왕산 임도는 길고도 긴데 중간에 탈출로가 별로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넓고 좋은 길이라 해서 좇아가다가는 하산로를 찾는 데 애를 먹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인 것이다.
오장동임도를 지나 돼지막(옛날에 돼지를 키웠다는데 지금은 비어 있다)을 넘어서자 자작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 종이처럼 얇은 흰색 껍질이 인상적인 자작나무가 30~40m 높이로 쭉쭉 뻗은 자작나무숲을 통과하며 마치 흰색 정복을 입은 근위병들이 도열한 가운데를 지나는 왕이 된 듯한 실없는 착각에도 빠져본다.
두 번째 임도를 횡단한 뒤에는 계속 임도를 내려가면 편한 길을 버리고 숙암리 뒤편 가파른 능선코스를 택했다. 바위로 이뤄진 가파른 능선 곳곳엔 안전 로프가 매달려 있는데 줄을 잡고 움직이는 동작이 그대로 산행 후 정리 운동이 된다.
능선길을 다 내려와 짧은 너덜지대를 건너면 바로 숙암리마을. 짧은 겨울 해는 어느덧 기울었고 숙암분교 옆에 동그마니 자리잡은 아라리식당의 양철 연통에서는 장작난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산행길잡이
워낙 추워 눈이 녹지 않고 깊이 쌓여…
스패츠 필수
가리왕산 정상인 상봉에 이르는 등산로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가장 짧은 것이 심마니교에서 어은골을 따라 절터를 거쳐 정상에 오르는 방법으로 5km(2시간 30분)이다.
장구목이 코스는 이보다 1km 더 긴 6km(2시간 30분), 청양골을 타고 올라 중봉을 거치는 루트가 7km(3시간 30분), 숙암리~중봉~상봉코스는 가장 긴 8.6km(3시간 30분)이다. 취재팀은 장구목이로 올라 상봉~중봉 능선을 타고 숙암리로 내려오는 약 14km의 종주 코스를 택해 점심식사와 쉬는 시간을 포함해 약 8시간이 걸렸다. ‘땀이 나지 않는 속도로 걷자’는 약속을 지키며 천천히 걸었어도 꾸준히 움직인 덕분에 이정표가 알려주는 시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장구목이나 숙암 쪽은 모두 북사면이므로 볕이 덜 들어 첫 번째 임도 이상부터는 눈이 많이 쌓여 있다. 따라서 목이 긴 스패츠는 필수 아이템. 등산로에 얼음이 생성되려면 눈이 녹았다 얼어야 하는데 워낙 추운 곳이어서 눈이 녹을 겨를이 없는 덕분에 빙판이 없으므로 아이젠은 그다지 위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다. 하산길 곳곳 짧은 구간에 등산객들이 엉덩이썰매를 탄 곳은 미끄럽지만 태백산처럼 썰매 탈 만한 곳이 많지 않은 가리왕산인지라 위험할 정도는 아니다.
출발지점인 장구목이에서 하산지점인 숙암리를 잇는 59번지방도는 4km가 조금 넘어 1시간이면 걸어갈 수 있으나 날이 저문 후 가로등도 없고 갓길이 좁은 차도를 걷는 부담 때문에 차량 한 대를 미리 하산지점에 가져다뒀다.
하산지점인 숙암분교는 2009년 별천지 박물관으로 변신했는데 오래된 책걸상, 각종 교과서, 도시락, 가방 등 옛 시골학교의 추억을 이끌어낼 만한 아이템들이 전시되어 있어 흥미롭다. 인근에 구절리 레일바이크가 있으며 유명한 정선 5일장은 2, 7일이다.
숙암, 장구목이 회동 등 산행기점을 순환하는 버스가 1시간 간격으로 있으며 막차 시간은 오후 8시. 정선이나 나전의 콜택시를 부르면 요금이 1만~2만 원이다. 정선읍에서 장구목이행 첫차 08:30 출발.
교통 서울→정선 동서울종합터미널(02-446-8000)에서 1일 10회 운행. 3시간30분 소요. 문의 정선시외버스터미널 033-562-9265.
매월 2, 7, 12, 17, 22, 27일 서는 정선 장날에는 정선까지 바로 가는 열차가 운행된다. 청량리역 오전 8:00 출발. 왕복 3만1,000원, 정선역까지 4시간 소요. 문의 코레일투어서비스 1544-7786. 구절리 레일바이크 포함한 요금 7만9,000원.
정선 시외버스터미널 033-563-9265.
정선 시내버스터미널 033-563-1094.
정선읍 영신택시 033-563-4422.
개인택시 사무실 033-592-5050.
숙박(지역번호 033) 정선역전의 말끔한 숙소인 아라리모텔(562-1554)을 비롯해 동호호텔(562-9000), 하이아트파크(563-5666), 정선장여관(563-0066), 아름장여관(562-8221~2), 대왕장여관(563-0171), 그림장여관(563-0521), 금강여관(563-0335), 개성여관(562-1555), 서울장여관(563-0042) 등의 업소가
정선읍내에 있다.
맛집(지역번호 033) 두메산골(오가피 영양밥 등, 생약초 전문음식점. 563-5108), 춘천황기닭갈비(생약초 전문음식점 562-9945), 정선골식당(황기보쌈 전문점 563-8114), 동광식당(황기족발집 563-3100), 정선황기숯불(황기 양념을 쓴 삼겹살 바비큐 전문점 563-5292), 동박골식당(곤드레 나물밥 전문점 563-2211), 짐포리식당(민물고기 매운탕 전문점 563-2479). 춘천닭갈비집(563-2683)은 뼈를 골라낸 닭갈비와 곤드레나물밥이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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