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아, 그리움 찰찰 넘치면 또 너를 만나리

금정산 장군봉 사전답사 산행
▲ 금정산 장군봉 정상에서 흐린 날에도 활짝 핀 얼굴들...
ⓒ 등산선교회
장군봉

프롤로그

'내 가슴 속에는/ 햇볕에 푸른 분수가 찰찰 빛나고 있다/ 내 가슴 속에는/ 오동잎에 바스러지는 바람이 있다/ 내 가슴 속에는/ 바람에 사운대는 꽃이파리가 있다/...... / 내 가슴 속에는/ 강물에 조약돌처럼 던져버린 첫사랑이 있다/ 내 가슴 속에는/ 산에 사는 나무와 나무에서 지줄대는 산새가 있다.' (신석정, '내 가슴 속에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등산. 다시 만나기 위해 산을 등지고 하산하면 바쁜 일상 가운데 뒤로 밀려나 가슴 저 밑바닥에 가라앉는다. 일상이 뻑뻑해지고 건조해질 때면 문득산이 그리워지다 그리움이 찰찰 차올라 정수리 위로 넘실거리면 산을 만나러 간다. 산을 만나 산의 속살 헤집고 몸을 맡긴다. 산은 자신의 가슴팍 안으로 안겨드는 이를 거절하지 않는다. 우린 그 넉넉한 품에 안겨 마음껏 쉼을 누린다. 마음 묵은 때를 씻고 눈을 씻는다.

금정산 장군봉도 만나고 사람도 만나고...

▲ 금정산 장군봉 가는 길 산행 하기 전 기도하는 모습
ⓒ 등산선교회
장군봉

다시 산으로 가는 날. 금정산 장군봉 사전답사 산행엔 몇 명이나 동참할까. 한 번도 답사 산행에 참석하지 않아망설이다 '가자' 하고 나선 길이다. 옆지기도 함께 하니, 날은 흐려도 마음은 가볍다. 교회에 도착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함께 목적지로 향한다.답사 산행에 참가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 모두 14명. 화명역까지 걸어서 이동해 지하철을 타고 호포역에서 내렸다. 호포 지하철역을 빠져 나와보니 어느새 오전 9시 50분. 기도로 마음을 모은 뒤 호포 농원을 지나고 호포마을 희망공원을 지나자 길이 끊기고 산으로 접어든다.

산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고, 마음과 마음 거리를 가깝게 해 준다. 운문산 등산 후 2주 만에 다시 만난 얼굴빛들이 흐린 날씨와 상관없이 환하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틀을벗어나 산에 가니 마음은 활기차고 몸은 날개가 돋아날 듯 가볍다. 길 위에서 주고받는 대화는 이어지다 끊기고 다시 이어지기를 반복한다.

▲ 장군봉 가는 길 힘찬 발걸음...
ⓒ 등산선교회
등산

사람은 무슨 일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면 생기가 돋는가보다. 에스겔 골짜기에 누워있던 마른 뼈들이 생기를 입고 일어나듯 핏기가 돌고 생기가 돋는다. 캄캄한 어둠 속에 잠겨있던 방에 불이 켜지듯이. 흐린 하늘에 해가 구름 사이로 내비치듯이 그렇게 마음에도 몸에도 불이 켜지나 보다. 생기가 피어나는가보다. 일상에서 여러 가지 일들로 굳어 딱딱해져 있던 얼굴들이 숲 속에서 생기를 입는다. 어린아이들처럼 얼굴에 꽃 같은 웃음이 피어나고 얼굴이 환하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보면 조르바란 인물은 과연 놀랍다. 그는 모든 사물을 처음 보듯 대한다. 그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처음 보는 것이고 경이롭다. '저기 저 건너 가슴 뭉클거리게 하는 파란 색깔 저 기적이 무엇이오?' 처음 보듯 놀라고 그가 일에 옴을 빼앗기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일이 되고 석탄이 된다. 그가 산투르(악기)를 연주하면 산투르가 되고 춤을 추면 춤이 되었다. 꽃 한 송이에도 냉수 한 컵에도 처음 대하듯 하였다. 산에 오면 우리들도 어린아이 같고 여린 새순 같은 감성이 깨어나는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것일까.

▲ 장군봉 가는 길 조망 바위에 오르고 있다.
ⓒ 포도원등산선교회
등산

숲은 아직 봄이 오지 않았나 보다. 봄은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렇게 오고 있다. 서서히 언 땅을 녹이고 나무들은조심스레 기지개를 켜면서 봄을 움 틔우고 있다. 봄의 기미가 감지된다. 흐린 날씨에도 숲길 걷는 사람들 모습은 그 빛깔이 다채롭다. 색을 입은 등산복들의 움직임이 밋밋하고 앙상한 산 빛에 색을 입힌다.

숲에 드니 계곡물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우리 일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다 쉬다 반복하며 다시 걷는다. 잠시 앉아 쉬는 동안 가져온 간식들을 꺼내놓고 먹는 즐거움도 크다. 막간을 이용해 자기 소개하는 시간도 가졌다. 갈수록 산길은 점점 가파르고 숨이 차다. 산 조릿대 길로 이어지고 바위를 오른다. 좁은 산죽 길을 오르고 오르다가 싸락눈이 휘날린다. 잔뜩 흐린 하늘에서 내려오는 싸락눈이 머리 위에도 길에서도 머리 위에도 옷에도 길 위에도 내려앉았다.

금정산은 재미있다. 지리산만큼은 고도가 그렇게 높지 않지만 제법 산이 우뚝한 데다 산 들머리도 많고 표정이 풍부해서 다채롭다. 금정산을 수없이 오르내렸건만 언제 와도 좋다. 이 길은 처음 걷는 길이다. 산죽 길 이어지다 높은 조망바위에 다다랐다. 제법 탁 트인 조망에 가슴이 뻥 뚫린 듯 상쾌해진다. 잠시 바위 위에서 망중한, 계속 오르막길 이어진다.

웅산(雄山)은 설레고, 장산(壯山)은 헐떡이고, 육산(肉山)은 숨차고, 악산(惡山)은 어질하고, 고산(高山)은 앙다물려 지고, 야산(野山)은 허둥댄다'지만, 그 어떤 산이건 산은 산, 힘들지 않은 산은 없다. 어느 산이나 더 힘들거나 덜 힘들거나 조금 차이가 있을 뿐 힘들게 오른다. 가끔 맞닥뜨리는 사람들에게 함박웃음과 함께 전도지를 전한다.

▲ 장군봉 정상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비타민도 전달하고 화기애애.
ⓒ 등산선교회

이제 고당봉과 장군봉으로 갈라지는 길 위에 선다. 오른쪽으로는 금정산 고당봉 가는 길이고 왼쪽은 장군봉 가는 길이다. 계획대로 장군봉으로 향한다. 장군봉은 금정산 고당봉과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금정산 북쪽 끝에 달린 봉우리다. 얼음이 녹기 시작하면서 길은 질척거린다. 계속 오르막길로만 이어지다가 능선을 만나고 산책하듯 걷는 산길이 반갑다.

참 많이도 걸었나 보다 뱃속이 허전하다. 산길에서 조금 벗어나 넓은 바위 위에 두런두런 모여앉아 점심을 먹는다. 산행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 바로 먹는 즐거움이다. 멸치와 고추장만 있어도 맛난 점심이다. 산에서는 절로 입맛이 돈다. 서로서로 반찬이 오가고 나눠 먹는 즐거움도 크다.

커피까지 알뜰히 마신 후에 다시 출발. 이제 계속 이어지는 길은 그렇게 힘든 길은 없다. 완만한 경사로다. 반갑다! 장군봉 평원. 흐린 하늘 아래 평원은 적당히 아담하고 편안하게 펼쳐져 있다. 장군봉 정상에 도착했다. 양산 다방동을 들머리로 삼아 올라온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전도지와 비타민씨를 전해주자, 힘든 산행에 기쁜 표정이 감돌았다.

우리 일행과 함께 사진도 찍는 적극성을 띤 사람도 있다. 성악을 전공한 김미경 집사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성원을 힘입어 짧은 산상음악회를 방불케 하는 '신 아리랑'을 불러 즐거움을 더한다. 날은 흐리고 싸락눈이 날려도 좋아라. 모든 피로가 씻겨 나가고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화기애애한 시간이다.

쉬어가는 길에 잠깐! 자기 소개시간^^
ⓒ 포도원등산선교회
등산

제법 긴 시간 동안 계속된 오름길 끝나고 장군봉 정상에 오른 기쁨과 망중한을 즐기며 짧은 휴식을 취한 우리는 이제 하산한다. 밀물 때가 있으면 썰물 때가 있듯이 또다시 산에 오르기 위해 내려가야 한다. 그렇게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들은 계속되리라.

장군봉에서 내려와 옹달샘 약수터를 거쳐 금정산 고당봉 아래로 해서 북문에 이르러 잠시 휴식하고 금성동 마을로 내려간다. 북문에서 금성동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반은 흙길 반은 시멘트 길인데다 제법 긴 하산길이다. 오름길도 있고 내림 길도 길게 이어져 고달플 텐데 모두 밝은 표정이다. 금성동에서 산성버스를 타고 일상으로 간다. 장군봉아! 다시 만나자. 그날까지 안녕!

에필로그

저녁이 내리는 시간이다. 길은 많은 것 같지만 난마처럼 얽힌 길 위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방황한다. 가끔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멀리서 등산길을 올라 볼 일이다. 멀리서 보면 오히려 가깝고 더 잘 보일 때도 있는 법. 가끔은 일상을 내려놓고 산과 조우 할 일이다.

바쁠수록 쉼표를 찍어볼 일이다. 길이 끝나는 데서 시작된 등산. 다시 오르기 위해 내려왔다. 소중한 오늘을 알뜰히 살며 또 만남을 준비하리라. 이 그리움이 자라고 깊어져 찰찰 넘칠 때쯤이면 또 나는 산을 만나러 가리라. 그리움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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