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암리사람들 | |||||||
“벼농사 천직으로 알고 평생 살았지… 낼모레 팔십이지만 힘 닿을 때까지 계속 지을거야” △오정현(74) 노인회장=우리 마을은 노인들 단합이 잘되고 마을 일이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고 나선다는 것이 자랑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인회에서 휴경지에 농사를 지어 얻은 수익금으로 기금을 만들어 좋은 곳에 쓰는 정말 정이 넘치는 마을이야. △이종옥(73) 노인회 총무=농협에 근무할 때 양구에 발령받아 살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정착한 지 어느덧 40년 세월이 흘렀네. 양계와 양돈을 양구지역에 확산시키고 계통출하와 축사 관리 체계를 마련해 가면서 보람을 느끼며 일했었는데 이제는 정이 듬뿍 들어 고향과 마찬가지지. △조돈하(76)씨=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살고 있는데 농사 박사라 불렸지. 양구에서 기계화 영농을 가장 먼저 시작한데다 옛날에는 지하수를 파는 일도 척척 해내고 기계도 잘 다뤄 주변에서 그렇게 불러줬어. 지금도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힘이 닿을때까지 계속 지어야지. △권부희(72)씨=군청에서 기능직으로 근무하다 30대에 농사를 시작했는데 소를 키우다 실패해 이제는 벼농사만 한다. 옛날에 손으로 농사지을때는 참 힘들었던 반면 요즘에는 기계로 농사를 지어 편하긴한데 품앗이 같은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아쉽지. △최용환(61)씨=홍천 서석이 고향인데 군대 제대하고 25살때 이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지요. 장비 사업을 해왔고 지금도 덤프트럭을 몰면서 전국을 누비고 있는데 구암리만한 마을이 없지요. 겨울철인데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일이 많이 줄어 힘든데 새롭게 맞이하는 봄에는 좀 나아지길 기대해야지. △조돈설(75)씨=구암리가 고향인데 어릴 적 1·4후퇴때 경북 상주까지 피란을 갔다 원주 등에서 5년여간 피란 생활을 했었는데 그땐 참 힘들었어.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데 다른 물가에 비해 쌀값은 오르지 않아 농사 짓기가 점점 힘들어. △조돈무(71)씨=6·25전쟁 때 원주와 춘천에서 피란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벼농사를 지었는데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어. 우리 마을은 주민들끼리 잘 어울리고 정이 많아 서로 잘 돕지. 마을에 주둔하는 부대의 군인들이 이발도 해주고 건강도 챙겨줘 너무 고마워. △강산옥(여·74)씨=춘천 북산면에서 시집와 50년 넘게 살았으니 여기가 고향이지. 벼농사도 지었는데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면서 남의 집에서 일도 하고 장사도 하면서 5남매를 키웠어. 그 땐 정말 힘들었는데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지. △박남해(여·73)씨=인제 신남에서 시집와 벼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길러냈지. 요즘은 이웃들과 함께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도 같이 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살고 있고 그래서인지 더 젊어지는 것 같아. △조옥녀(여·76)씨=배후령 고개를 넘어 이 마을로 시집와 56년째 살고 있으니 평생 구암리에서 산 셈이야. 구암리는 샘터가 유명한데 한 주민이 피부병이 있는 자식에게 이 물을 먹였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해 지금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 △정금녀(여·70)씨=지금도 남편과 함께 5,000여평의 논에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기계로 하니까 농사짓지 예전처럼 해야 한다면 못할 걸. 옛날에 밥을 논으로 나르고 모판을 나르고 했던 일이 이제는 다 추억이 됐지. △박정원(여·76)씨=공기 좋은 것은 물론이고 마을에 있는 샘물을 양구지역의 많은 주민이 떠다 먹으니 깨끗한 물도 최고지. 이렇게 공기 맑고 물 맑은 곳에서 즐겁게 사니까 주민들이 젊음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김옥수(여·71)씨=인제 원통에서 광치령 넘어 시집와 평생 농사짓고 살아. 남편이 거동을 잘 못해 혼자 농사를 지은 지 14년 됐는데 쉬운 일이 아니야. 요즘 농촌에 사람이 없어 인부 구하기가 힘들어 비료 치는 것부터 대부분 혼자 하다 보니 힘겨워. △최옥순(여·78)씨=옆 마을 대월리가 고향인데 6·25전쟁 이후 수복되면서 결혼해 이 마을로 오게 됐어.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어 이젠 농사 못지어. 마을 노인들과 매일 모여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지내다보니 즐거워. △장산옥(여·76)씨=6·25전쟁 당시 엄마와 피란다닐 때 쏟아지던 폭격 등의 기억이 생생한데 그땐 너무 무서웠고 정말 고생 많았어. 태어난 마을은 소양강댐이 건설되면서 사라졌고 시집와서 평생 농사짓고 살고 있는 이 마을이 고향이지. △장계춘(여·75)씨=평생 벼농사 지었는데 남편과 사별한 후로는 농사 못 짓고 주민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지.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농촌이 됐으면 좋겠어. △정애자(여·77)씨=춘천에서 구암리로 시집왔는데 시댁이 종갓집이었어. 종갓집 며느리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인지 시어머니가 많이 예뻐해줬지. 농사지을 때는 논에 밥을 해다 날랐고 제사는 1년에 10번도 더 있어서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추억이지 뭐. △전옥순(여·70)씨=경기도 수원에 살다 아들이 마을에 있는 부대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오게 됐고 이제 25년 됐어. 구암리는 공기 좋고 물 깨끗한 것은 물론 마을 주민들이 인정이 많아 늘 함께 어울리며 잘 지내요. △조경묵(59) 이장=현재 진행하고 있는 농촌종합개발사업과 앞으로 추진할 새농어촌건설운동을 통해 마을을 한 단계 도약시키도록 하겠다. 구암리 하면 친환경 농산물이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민들 소득도 늘어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갈 겁니다. |
구암리사람들
2011. 2. 24. 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