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 남면 구암리는 양구의 명산인 봉화산 자락에 아늑하게 자리잡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양구의 명산인 봉화산은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보다 10m 높은 해발 875m의 산으로 조선시대 초기에 봉화대가 설치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양구읍에서 춘천 방면으로 나가는 길의 왼쪽 편에 우뚝 솟아 있는 봉화산은 산림이 울창하고 석양이 비칠 때와 적막한 밤 달빛이 비칠 때 장관을 이룬다.


옛날 봉화산에 거북바위가 있어 구암(龜岩)이라 했다는 설과 봉화산에 아홉 개의 바위가 있어 구암(九岩)이라 불렸다는 설이 있는데 지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밧막골이 합쳐지면서 마을 이름이 구암리(九岩里)로 결정됐다.


83가구 중 54가구 논농사 지어

'구암샘터'는 물 맛 좋기로 유명

광복 이후 38선 북쪽에 위치해

北 통치받으며 고초 겪은 아픔도

현재 농촌종합개발사업 박차 중



구암리 마을 83가구 가운데 54가구가 논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고 산자락과 골짜기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어 밭농사는 거의 짓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비닐하우스에서 민들레 등의 작목을 재배하는 농가가 늘고 있다.


마을에는 군부대와 군인 관사가 자리 잡고 있어 군인들이 정기적으로 의료 지원을 펼치는 것은 물론 노인들을 위한 이발 봉사, 마을 청소 등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으며 주민들도 군인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있어 민·군 화합의 모델이 되고 있다. 군인 관사에서 생활하고 있는 군인과 가족들도 마을 일에 적극 동참하고 모임에도 활발하게 참여하는 등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다.


광복 이후 남북으로 갈리면서 38선 북쪽에 위치해 있던 구암리는 북한의 통치를 받게 됐는데 북한의 공산 통치를 반대하는 운동으로 인해 많은 주민이 심한 고초를 겪었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한과 멀지 않았던 이 마을 주민들은 남한 첩보원들에게 동조하는 등 북한의 체제에 저항하는 운동을 은밀하게 벌였었는데 이같은 사실이 발각되면서 마을은 쑥대밭이 됐다고 한다.


이 일로 많은 주민이 끌려가 심한 고초를 겪었던 사실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 몇몇 어르신들에게북한 체제에 저항했던 마을의 역사가 이제는 가슴속에 자긍심으로 남아 있다.


구암리에는 물 맛이 좋기로 유명한 구암샘터가 자리 잡고 있다. 예전에 한 주민이 이 물을 자식에게 먹여 피부병을 낫게 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알려졌다고 하는데 물 맛이 좋고 시원해 양구지역 주민들이 식수로 애용하고 있다.


샘터를 찾는 주민들이 늘어나자 양구군에서도 몇년 전 주차장을 확충하는 등 샘터 주변을 정비했으며 최근에는 관광객들의 발길도 이어지는 등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구암리 노인회원 66명은 서로 사랑하면서 즐겁게 지내 마을 분위기를 더욱 밝게 만들고 있으며 마을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는 등 대소사에 앞장서고 있다. 영농철에는 서로 농사를 도와주는 등 단합된 힘을 보여주고 있고 겨울철에는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노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등 웃음이 넘친다.


도촌리 등 인근 마을들과 함께 국토정중앙권역 농촌종합개발사업을 진행하면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구암리에도 변화의 기운이 새롭게 싹트고 있다.


조경묵(59)이장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주민들은 샘터 정비사업과 함께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 주변을 쉼터로 조성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마을 경관 정비, 마을 주변의 등산로 정비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하천정비사업이 마무리되면서 마을이 깨끗해졌는데 이제 농촌종합개발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마을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와 연계, 면회객들이 찾아와 머무는 마을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


또 주민들은 내년부터 새농어촌건설운동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새농어촌건설운동을 통해 친환경농업을 더욱 발전시켜 마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전국적으로 인정받고 판매되는 기반을 다져간다는 장밋빛 청사진을 만들고 있다.


쌀과 수박, 멜론, 오이 등 친환경 농산물을 인터넷을 통해 직거래하는 시스템을 정착시켜 소득을 지속적으로 늘려가겠다는 구상도 실천해 나갈 계획이다.


조경묵 이장은 “주민들의 지혜와 열정을 모아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구암리를 친환경 농산물, 몸에 좋은 샘물 등의 테마가 있는 마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며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을 전국 각지에 직거래로 판매한다는 계획을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봉화가 피어올라 이름 붙여졌다는 봉화산을 뒤로한 채 자리 잡고 있는 구암리에 이제는 행복과 희망이라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길 기대해 본다.

구암리사람들


“벼농사 천직으로 알고 평생 살았지…

낼모레 팔십이지만 힘 닿을 때까지 계속 지을거야”



△오정현(74) 노인회장=우리 마을은 노인들 단합이 잘되고 마을 일이라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팔을 걷고 나선다는 것이 자랑이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노인회에서 휴경지에 농사를 지어 얻은 수익금으로 기금을 만들어 좋은 곳에 쓰는 정말 정이 넘치는 마을이야.


△이종옥(73) 노인회 총무=농협에 근무할 때 양구에 발령받아 살기 시작했는데 이곳에 정착한 지 어느덧 40년 세월이 흘렀네. 양계와 양돈을 양구지역에 확산시키고 계통출하와 축사 관리 체계를 마련해 가면서 보람을 느끼며 일했었는데 이제는 정이 듬뿍 들어 고향과 마찬가지지.


△조돈하(76)씨=이 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살고 있는데 농사 박사라 불렸지. 양구에서 기계화 영농을 가장 먼저 시작한데다 옛날에는 지하수를 파는 일도 척척 해내고 기계도 잘 다뤄 주변에서 그렇게 불러줬어. 지금도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힘이 닿을때까지 계속 지어야지.


△권부희(72)씨=군청에서 기능직으로 근무하다 30대에 농사를 시작했는데 소를 키우다 실패해 이제는 벼농사만 한다. 옛날에 손으로 농사지을때는 참 힘들었던 반면 요즘에는 기계로 농사를 지어 편하긴한데 품앗이 같은 전통이 점차 사라지고 있어 아쉽지.


△최용환(61)씨=홍천 서석이 고향인데 군대 제대하고 25살때 이곳에 정착해 살기 시작했지요. 장비 사업을 해왔고 지금도 덤프트럭을 몰면서 전국을 누비고 있는데 구암리만한 마을이 없지요. 겨울철인데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 일이 많이 줄어 힘든데 새롭게 맞이하는 봄에는 좀 나아지길 기대해야지.


△조돈설(75)씨=구암리가 고향인데 어릴 적 1·4후퇴때 경북 상주까지 피란을 갔다 원주 등에서 5년여간 피란 생활을 했었는데 그땐 참 힘들었어.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벼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데 다른 물가에 비해 쌀값은 오르지 않아 농사 짓기가 점점 힘들어.


△조돈무(71)씨=6·25전쟁 때 원주와 춘천에서 피란 생활을 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평생 벼농사를 지었는데 천직으로 생각하고 있어. 우리 마을은 주민들끼리 잘 어울리고 정이 많아 서로 잘 돕지. 마을에 주둔하는 부대의 군인들이 이발도 해주고 건강도 챙겨줘 너무 고마워.


△강산옥(여·74)씨=춘천 북산면에서 시집와 50년 넘게 살았으니 여기가 고향이지. 벼농사도 지었는데 오래전 남편과 사별하면서 남의 집에서 일도 하고 장사도 하면서 5남매를 키웠어. 그 땐 정말 힘들었는데 자식들이 모두 장성해 이젠 즐거운 마음으로 지내지.


△박남해(여·73)씨=인제 신남에서 시집와 벼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길러냈지. 요즘은 이웃들과 함께 마을회관에 모여 점심도 같이 해 먹고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살고 있고 그래서인지 더 젊어지는 것 같아.


△조옥녀(여·76)씨=배후령 고개를 넘어 이 마을로 시집와 56년째 살고 있으니 평생 구암리에서 산 셈이야. 구암리는 샘터가 유명한데 한 주민이 피부병이 있는 자식에게 이 물을 먹였더니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해 지금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지.


△정금녀(여·70)씨=지금도 남편과 함께 5,000여평의 논에 벼농사를 짓고 있는데 기계로 하니까 농사짓지 예전처럼 해야 한다면 못할 걸. 옛날에 밥을 논으로 나르고 모판을 나르고 했던 일이 이제는 다 추억이 됐지.


△박정원(여·76)씨=공기 좋은 것은 물론이고 마을에 있는 샘물을 양구지역의 많은 주민이 떠다 먹으니 깨끗한 물도 최고지. 이렇게 공기 맑고 물 맑은 곳에서 즐겁게 사니까 주민들이 젊음을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아.


△김옥수(여·71)씨=인제 원통에서 광치령 넘어 시집와 평생 농사짓고 살아. 남편이 거동을 잘 못해 혼자 농사를 지은 지 14년 됐는데 쉬운 일이 아니야. 요즘 농촌에 사람이 없어 인부 구하기가 힘들어 비료 치는 것부터 대부분 혼자 하다 보니 힘겨워.


△최옥순(여·78)씨=옆 마을 대월리가 고향인데 6·25전쟁 이후 수복되면서 결혼해 이 마을로 오게 됐어.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지내고 있어 이젠 농사 못지어. 마을 노인들과 매일 모여 노래도 부르고 재미있게 지내다보니 즐거워.


△장산옥(여·76)씨=6·25전쟁 당시 엄마와 피란다닐 때 쏟아지던 폭격 등의 기억이 생생한데 그땐 너무 무서웠고 정말 고생 많았어. 태어난 마을은 소양강댐이 건설되면서 사라졌고 시집와서 평생 농사짓고 살고 있는 이 마을이 고향이지.


△장계춘(여·75)씨=평생 벼농사 지었는데 남편과 사별한 후로는 농사 못 짓고 주민들과 재미있게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지. 요즘 농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돌아오는 농촌이 됐으면 좋겠어.


△정애자(여·77)씨=춘천에서 구암리로 시집왔는데 시댁이 종갓집이었어. 종갓집 며느리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래서인지 시어머니가 많이 예뻐해줬지. 농사지을 때는 논에 밥을 해다 날랐고 제사는 1년에 10번도 더 있어서 정말 많이 힘들었는데 이젠 추억이지 뭐.


△전옥순(여·70)씨=경기도 수원에 살다 아들이 마을에 있는 부대에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으로 오게 됐고 이제 25년 됐어. 구암리는 공기 좋고 물 깨끗한 것은 물론 마을 주민들이 인정이 많아 늘 함께 어울리며 잘 지내요.


△조경묵(59) 이장=현재 진행하고 있는 농촌종합개발사업과 앞으로 추진할 새농어촌건설운동을 통해 마을을 한 단계 도약시키도록 하겠다. 구암리 하면 친환경 농산물이 떠오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주민들 소득도 늘어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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