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잼버리 이후 버려진 새만금...“그때도 지금도 방치됐다”
빗물에 잠긴 농지, 잡초만 무성한 들판...“지역 망신, 상처만 남았다”
[시사저널-경실련 공동기획]
 

시사저널과 경실련은 전문가 설문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진행된 도시개발·공공사업들과

현재 추진 중인 사업들 중에서 최악의 사업을 선정했다.

 

1위는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가 차지했다.

이 밖에 서울-김포 통합, 4대강 사업, 레고랜드, 가덕도 신공항이 TOP5에 올랐다.

무안·청주·양양 공항, 도시재생 사업, 새만금 사업, 대구 신공항, 해운대 엘시티 사업이 뒤를 이었다.

 

잼버리가 최악의 사업으로 선정된 이유는 ‘관리 부재와 운영 미숙에 의한 인재(47표)’였다.

예상 가능한 변수에 그 누구도 정석대로 준비하지 않아 발생한 대참사였다.

시사저널은 잼버리 사태 1년여 후 현장을 찾았다.

 

오전 내내 비가 내린 4월3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의 잼버리 야영장은 물웅덩이로 뒤덮여 있었다.

‘잼버리 경관 쉼터’ 안내판 아래로 빗물에 잠긴 농지가 펼쳐졌다.

갈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잡초만이 제각각 길이로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여의도 면적 3배(8.8㎢) 규모인 잼버리 부지는 그야말로 허허벌판이다.

굵은 빗줄기가 황량함을 더했다. 인적 없는 이곳은 지난해 8월 4만여 명의 손님을 맞이한 국제 행사장이다. 

 

4월3일 전북 부안군 하서면 백련리 ‘2023 새만금 제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야영지
 
 

“부끄러움은 저희 몫”…새만금 주민들 울분

행사가 끝난 지 8개월이 흘렀다. 잼버리 야영장은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잼버리 부지는 새만금기본계획상 ‘관광·레저용지’로 구분된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새만금개발청이 기본계획 재검토에 착수하면서

토지 용도가 변경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다만 당장은 구체적 계획에 수립되지 않아

수개월째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날 잼버리 야영장에 가기 전에 들른 텅 빈 ‘새만금홍보관’의 한 안내원은

“거기 지금 아무것도 없는데 왜 가느냐”고 의아해했다. 

 

전북 부안군에서 9년째 숙박업을 하고 있는 박태홍씨(52)는 “수년간 준비한 지역 행사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는 걸 직접 보면서 너무 처참했다”며

“잼버리는 저희에게 망신만 안겼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수준이 이 정도인가 싶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행사 준비 기간부터 매일 출근길에 잼버리 야영장을 지나갔다고 했다.

 

그는 “제가 보기엔 야영장에 아무 변화가 없는데 정부는 계속 ‘준비가 완벽하다’고 홍보해 황당했다”며

“그때부터 이상한 게 한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잼버리 효과를 기대했던 소상공인들도 당시 실망감을 전했다.

익산역 인근에서 만난 부안군 주민 성아무개씨(53)는 “숙박이나 식당 운영하는 지인들 모두

외국인 관광객 수요가 늘어난다고 좋아했다”면서도

“행사가 급하게 끝나니까 장기간 투숙하겠다는 손님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서

불만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했다.

이어 “사실 이런 손해는 버틸 만해도 지역 망신은 너무 큰 상처로 남았다”고 토로했다.

“악마는 디테일에”…변수 무시, 지도력 분산

이날 현장에는 이양재 원광대 도시공학과 명예교수가 동행했다.

그는 새만금 사업 초창기부터 방조제 공사 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잼버리와 관련해선 ‘전북도 새만금잼버리 추진준비단’ 일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이 교수는 잼버리 개최 과정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는 조직위의 안일한 대처가 꼽혔다

. 행사 부지의 지반이 연약한 만큼 충분한 사전조사와 변수 예측이 필요한데,

준비가 턱없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새만금은 전북 군산과 김제, 부안 앞바다의 갯벌을 메워 만든 간척지다.

특히 잼버리 야영장은 행사를 위해 2020년 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매립한 신생 토지다.

 

잼버리는 이곳에서 진행된 첫 대규모 행사다.

이양재 교수는 “일본도 성공리에 마친 제23회 잼버리를 간척지에서 개최했고

(여성가족부가) 답사까지 갔다 왔다”면서 “물웅덩이와 폭염, 해충 등은

전문가라면 다 예상할 수 있는 변수”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양재 교수는 “일본 간척지와 환경 조건이 유사한 우리나라도

충분히 행사를 성공시킬 역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규모 행사는 주최자가 참가자의 심리와 행동을 사전에 파악하는 등

‘디테일을 얼마나 챙기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며

“잼버리 조직위는 예상 가능한 디테일조차 무시하고 FM(정석)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조직위가 사전조사에서 발견한 문제를 은폐했다는 논란도 제기됐다.

조직위는 잼버리 개최 약 1년 전에 예행 차원의

‘2022년 프레 잼버리’를 진행하려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취소했다.

 

이 교수는 “알고 보니 당시 취소 이유는 코로나가 아닌 ‘폭우 시 배수시설 미흡’이었다.

사실상 야영이 불가능한 상태임을 이미 인지했음에도 이를 밝히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잼버리 야영장의 황폐한 모습은 지난해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2023년 8월, 158개국에서 온 4만3000명의 청소년과 지도자는

세계적인 야영대회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새만금에 도착했다.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연일 35도를 넘는 역대급 무더위 속에 참가자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소나기가 쏟아지는데 제대로 된 배수로가 없어 텐트 바닥이 잠겼다.

폭염과 염분 탓에 모기떼가 몰려와 공포까지 더했다.

화장실이 부족해 오물이 넘쳤고 샤워장도 열악했다.

‘미지의 땅’ 새만금에 순식간에 ‘국제적 망신’이라는 곤혹스러운 수식어가 달렸다. 

 

잼버리는 2017년 8월 새만금이 개최지로 선정된 이후 6년의 준비기간이 있었다.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은 점은 이번 시사저널·경실련 조사에서

잼버리가 최악의 공공사업으로 꼽힌 결정적 배경이 됐다.

 

이양재 교수는 “공동위원장을 구성한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에 책임이 분산돼

모호하게 운영됐다”며 “중앙정부는 전북도에 너무 많은 역할을 맡기면서

컨트롤타워 기능을 못 했고 전북도는 기본 시설조차 제대로 준비하지 않았다”고 질책했다.

 

현장과 가장 밀접한 지자체가 기본시설조차 허술하게 준비한 가운데

잼버리 유치를 빌미로 신항만과 공항 등

대형 국책사업 추진 가속화만 꾀한 게 아니냐는 불편한 시선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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