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일본 정부 대변하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관련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마땅히 그래야 하는 문제다. 원전 사고와 오염 문제가 이웃 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미래세대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는 사태로 전개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막중한 책임이 당사국에 부여되기 때문이다.
원자력 안전 문제야말로 그 불확실성이 초래할 위기의 양태와 확률을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불확실성의 문제다. 섣부른 확률적 판단으로 성급한 결정을 내리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투명하고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 논란에서 지금 한국 정부가 취하는 입장은 기괴하다. 일본 정부의 자국 중심주의가 한국 정부의 입장으로 보일 정도여서 경악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시찰단'의 역할과 활동에 대한 양국 정부 실무자들의 협의가 끝나기도 전에 한덕수 총리는 시찰단의 역할을 스스로 축소하고 민간 전문가의 참여도 배제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기자들에게 했다.
국회의원들도 기괴한 정부의 입장을 두둔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 이명박 정부 때의 광우병 사태를 상기시키며, 당시 반정부 시위가 광우병 '괴담'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비판적인 사회여론을 괴담으로 몰아가는 지극히 저열한 논쟁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괴담'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전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허위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그게 과연 허위 사실이고 공포를 조장하는 잘못된 선동이었을까?
당시 광우병의 피해는 확률이 지극히 낮아 무시할 수 있을 정도의 불확실성이 아니라, 그 확률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깊은 불확실성이었다. 북미와 서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처럼 깊은 불확실성을 기피하려는 시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확산됐고, 가축 복지와 동물 사육 윤리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소 사육과 소고기 유통의 전 과정에서 광우병의 피해를 막는 새로운 법과 규제를 도입했다.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한 한국 정부 역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는 방향의 규제를 도입했다. 괴담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기피하려는 시민들의 의지가 전 세계적으로 만들어 낸 역사적 진보, 윤리적 진보의 순간이었다.
지금 원자력 안전에 대한 글로벌 거버넌스는 매우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처럼 안이한 방식과 불투명한 절차로, G7이 방패가 되어 서방 선진국 중심주의의 무책임이 정당화되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원자력 안전을 감시하고 관리하는 적절한 권한과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크다. 작년 11월 IAEA 관계자들이 인정했던 것처럼, 설사 오염수 방류가 국제 안전기준을 지키지 않더라도 방류를 할지 말지의 결정은 일본 정부에 맡겨져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오염수 방류의 직접적 피해 당사자로 이루어진 태평양도서국(島嶼國)포럼(PIF)은 현재 일본 정부가 과학적 판단의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자료의 신뢰성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최근 <타임>은 "오염수 방류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중요한 자료가 없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과학적 판단의 근거가 되어야 할 데이터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이었다", "데이터 수집에 장기간의 공백이 발견됐다" 등 이 포럼에 참여하는 학자들이 제기하는 문제점을 전하기도 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통계자료의 문제, 오염수 처리 시스템의 부실, 일본 정부가 무시하고 있는 주요 오염물질 정보, 일본 외교부가 저장 오염수에 대하여 부정확한 사실을 유엔 인권 특별보고관들에게 전달했던 점 등을 지적하며 다른 대안을 모색하지 않고 오염을 퍼뜨리는 일본의 무책임한 방류 결정을 비판하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 역사가 남긴 교훈은 국제기구와 글로벌 사회가 돈의 힘을 대변할수록 인류의 지속가능성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와 같은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1달러 1표'가 아니라 '1인 1표'의 권리를 존중하는 글로벌 사회의 민주적 의사결정뿐이라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원자력 안전에 대한 투명하고 민주적인 글로벌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기후위기의 도전이 에너지 전환의 기회가 아니라 원자력 발전의 확대로 이어진다면 위험을 위험으로 막는 잘못된 길이 열리게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지금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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