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수부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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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어쩌다 이 지경까지⋯강원의 변방으로 전락한 춘천

 

[추락하는 수부도시]

도청 소재지 이점에도 원주에 밀려인구,경제규모 격차 점점 확대

민선 8기, 각종 국책사업 배제 ⋯정치력, 리더십 위기

 

강원도 수부도시 춘천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강원 대표 도시라는 위상은 사라진 지 오래다. 특별자치도 출범과 함께 중심에 설 기회를 되찾는가 했지만, 오히려 경쟁 도시에 밀려나는 수모를 연달아 겪었다. 지난해 출범한 민선 8기 춘천시정에 들어 이같은 위기가 더욱 심화하자 “육동한 시장의 행정력이 문제”라는 평가까지 나온다.<편집자 주>

 

춘천시의 경쟁력 약화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드러난다. 도시 경쟁력을 보여주는 인구수는 이미 20년 전 원주에 역전당했고, 경제 규모의 차이도 점점 벌어지고 있다.

 

1994년만 해도 춘천 인구는 18만7159명으로 원주 17만9828명보다 1만명 가까이 많았다. 그러나 1995년 도시와 농촌 지역을 통합하는 도농통합시가 탄생하면서 원주(23만7537명)가 춘천(23만2682명)을 4855명 앞지르기 시작했다.

 

28년이 지난 올해 기준 춘천 인구는 28만6850명, 원주는 36만752명으로 7만3000여명 이상 격차가 벌어졌다. 이 기간 원주 인구는 12만3215명이 증가한 반면 춘천은 5만4168명이 늘어나는 데 그쳤다.

원주와 춘천의 지역내총생산과 인구 격차.(그래픽=박지영 기자)

 

경제 규모도 이미 원주에 추월당한 지 오래다. 2020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은 춘천이 8조1333억원으로 원주(9조669억원)보다 1조원(10.3%) 가량 뒤처진다. 특히 산업의 핵심인 제조업 분야에서 춘천(5347억원)은 원주(1조4891억원)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도소매업 분야에서도 춘천(3212억원)과 원주(4965억원) 간 격차가 1753억원(35.3%)이나 벌어졌다. 

 

시군구별 GRDP가 추산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자료를 보면, 춘천은 최근 10년간 경제 규모 측면에서 원주와 10~20% 수준 뒤떨어진 격차를 유지하고 있다. 두 지역 간 총생산액은 건설경기 주기에 따라 변동이 큰데, 2015년 당시 1조5420억원(19.3%)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는 고용률은 몇 년째 도내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다. 춘천시의 최근 5년간 고용률 평균은 58.5%로 원주(60.6%), 강릉(59.6%)보다도 낮은 수치다. 도청 소재지라는 지리적 이점을 안고도 도내 최저 수준이며, 전국으로 범위를 넓힌다 해도 최하위권이다.

 

인구 격차만큼 경제활동 규모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노동시장에 참가할 수 있는 15세 이상 인구는 지난해 하반기 기준 춘천이 25만5300명으로 원주(31만3000명)보다 18.4%(5만7700명) 적은데, 경제활동인구는 춘천 15만4900명, 원주 19만5200명으로 이보다 더 큰 20.6%(4만300명)의 격차가 난다.인구 규모와 비교해 생산 활동에 나서는 인력이 적다는 의미다.

 

춘천시의 입지는 민선 8기 들어서 더욱 급격하게 좁아지고 있다. 최근 각종 정부 정책과 국책사업 선정에 밀리면서다. 지역 사회에서는 춘천시가 홀대받는 배경에 안일한 행정력과 단체장의 리더십의 부재를 지적한다. 당장의 경제 위기를 극복할만한 묘안도, 장기적인 성장 전략도 보이지 않는다.

 

나철성 강원평화경제연구소장은 “가장 큰 문제는 육동한 시장의 행정력”이라며 “그가 내세운 사업 자체가 거칠고 뚜렷한 계획이 없다. 취임한 지 1년이 다 돼가는데도 뭘 중심으로 육성하겠다는 로드맵이나 치밀한 계획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②연이은 춘천 패싱, 지켜만 보는 시장⋯허탈한 시민들
 
천연물 바이오 산업단지에 강릉 선정
30년 공들여온 바이오 대표도시에 ‘상처’

‘3춘 2경’, 기재부 경력 내세웠지만, 9개월간 5번 서울 방문
“계획없는 시장, 준비 안 한 집행부가 초래한 결과”

지난달 정부는 국가첨단산업단지 후보지 중 하나로 강릉시를 선정했다. 정부는 도내 세 번째 국가산업단지로 3000억원을 들여 강릉에 ‘천연물 바이오 산업단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전국 15곳 중 강원도에서는 강릉이 유일하게 뽑혔다.

 

최근 천연물 바이오 산업단지 후보지 소외는 수부도시 춘천의 추락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춘천은 지난 30년간 강원도 바이오산업 대표 도시를 자부해 왔다. 민선 8기가 시작할 때만 해도 춘천은 지역 바이오산업 매출 홍보에 열을 올렸고, 민선 8기 공약 사업으로 바이오산업 활성화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강원도를 대표할 바이오산업단지로 강릉이 선정되는 동안 춘천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한 퇴직 공무원은 “바이오산업 특화단지인 동춘천산업단지를 10년째 분양하고 있는데 아직도 2필지가 안 팔렸다”며 “수십년간 애써온 사업을 강릉시가 가져가도록 손을 놓고 있었다는 건 춘천시의 현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지적했다.

 

민선 8기 시정이 출범한 이후 춘천시는 국가나 도 주도 개발 사업에서 사실상 논외로 치부됐다. 세계적인 전기차인 테슬라 공장 유치와 관련해서도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강릉을 먼저 거론했고, 최근 강릉 제2청사 설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춘천시의 의견은 뒷전이었다. 

 

원주에서는 반도체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밑그림이 한창이다. 경기 남부와 원주를 잇는 정부의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계획이 정부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지난달 원주에서 반도체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는 반도체 교육센터가 문을 열었다. 국비 200억원과 도비 130억원 등 총 46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미래차 육성과 관련된 정부 공모사업도 원주와 횡성에서 추진될 예정이다.

 

춘천시민은 “육동한 시장과 춘천시는 대체 뭘 하고 있느냐”고 묻는다. 육 시장은 지난달 춘천바이오기업 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산업을 일으킬 만한 요소가 없어 고립돼 있다. 외롭다”고 했다. 이를 두고 야당 시장이라는 정치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탓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도지사와 원주·강릉시장이 국민의힘 소속이고 춘천시의회도 국민의힘이 압도적인 여소야대 구조다. 

 

김지숙 더불어민주당 춘천시의원은 “시장 입장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번에 국가산단 지정 관련해서도 도에서 알려주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섭섭하다는 표현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3춘 2경’ 약속도 못 지키고⋯정치력, 행정력 위기

 

하지만 정치적 불리함을 따지기 전 육동한 시장의 행정력·리더십 부재가 문제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지역 정계 관계자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여당 지지 여론이 높은 가운데서도 춘천시민이 육 시장을 선택한 것은 특기인 행정력을 살려 경제만큼은 일으켜주길 바란 것 아니겠느냐”며 “시장이 성과로 이야기해야 하는데 정치적으로 불리한 환경을 핑계 대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육 시장이 후보 시절부터 스스로 강점으로 내세운 ‘중앙 정부 인맥’ 활용도 쉽지 않은 모양새다. 육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3춘 2경 세일즈 시장’이 되겠다고 자처했다. 주 3일은 춘천, 2일은 서울에서 예산과 기업, 사람 유치를 하겠다는 다짐이다. 중앙부처 잔뼈가 굵은 경력을 살려 국책 사업이나 예산 확보에 힘을 내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9개월이 지난 현재 3춘 2경 약속조차 지키지 못한 데다 이렇다 할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본지가 육 시장의 9개월간 동정을 파악해보니 취임 후 서울 또는 중앙부처를 방문한 횟수는 단 5차례에 그친다.

 

이현민 춘천시청 비서실 팀장은 “중앙부처나 서울에 공식적으로 방문하는 일정은 내용을 공개하고 있지만, 그 외에 중앙부처에서 생활하며 알던 분들과의 개인적인 만남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이런 방문을 통해)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까지 말씀드릴 입장은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잘랐다.

 

일각에선 시청 직원들과의 호흡에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앙부처 경험이 장점으로 발휘되지 못하는 가운데 지역사회 기반이 부족하다는 단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 인수위원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지역 현안을 두고 의견 차가 생기면서 인수위와 직원들 사이에 불만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청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시장이 공무원들과 조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업무 콘트롤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 내부적으로 고립된 것 같다. ‘외롭다’고 언급한 배경에는 시청 직원들의 호흡 문제도 담겨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운기 국민의힘 춘천시의원은 “춘천 패싱이나 소외론은 솔직히 정치적인 표현이다. 춘천이 가져오지 못한 사업은 정치적인 문제라기보단 대부분 공무원의 준비가 안 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집행부의 준비 부족과 안일한 대처가 현실적인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육 시장도 어떤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못했고, 아직 손에 잡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③아직도 춘천이 강원도 첫번째라고 생각하십니까

[추락하는 수부도시] 써브웨이, ‘강원도 1호’로 원주 선택


인구와 경제 규모, 원주보다 10~20% 뒤쳐져
수입차 전시장도 춘천보다 원주 선호
공공기관‧금융 서비스도 춘천 외면

 

써브웨이는 맞춤형 주문 제조 방식 샌드위치로 인기가 많은 프랜차이즈다. 미국 본사의 승인과 상권 조사, 입지 분석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가맹점을 선정한다. 20여 년 전 춘천과 원주에서도 매장을 운영했으나 각각 1999년, 2005년 철수한 이후 그동안 강원지역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써브웨이가 재진출을 선언하고 ‘강원도 1호 매장’으로 원주를 선택한 건 그 사이 벌어진 춘천과 원주의 격차를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강원도 내 유일한 ‘써브웨이’ 매장이 올해 2월 원주 무실동에 개업했다.

 

2023년 현재,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춘천을 꼽는 사람은 춘천시민뿐이다. 이미 객관적인 지표상 강원도의 첫번째 도시는 원주가 됐다. 인구와 지역 내 총생산 같은 수치뿐만이 아니다. 눈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반시민과 민간 기업의 인식에서는 이 점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춘천시가 강원도 내에서 갖는 위상은 날이 갈수록 쪼그라든다. 춘천은 ‘수부도시’가 아니라 ‘변방’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춘천과 원주 경제 규모 비교.(그래픽=박지영 기자)

▶ 원주에만 있고 춘천에는 없는 것

올해 기준 춘천 인구는 28만6850명으로 원주(36만752명)보다 7만3000여명(20.2%) 적다. 2020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은 춘천이 8조1333억원으로 원주(9조669억원)보다 1조원(10.3%) 가량 뒤처진다. 

 

경제 분야 주요 지표들 중 춘천이 원주에 앞서는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기업의 경쟁력을 가늠하는 수출 실적에서부터 차이가 확연하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춘천지역 기업의 수출 실적은 연간 3억3407만달러로 원주(10억3687만달러)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팬데믹 여파에도 원주는 수출액이 전년 대비 7210만달러(7.5%) 성장한 반면, 춘천은 그마저도 1년 새 2745만달러(7.6%) 감소했다.

 

지난해 하반기 기준 춘천(60.7%)의 경제활동참가율은 원주(62.4%)에 밀리고 강릉(60.7%)과 비슷한 수준이다. 고용률(59.1%) 역시 원주(59.9%)와 강릉(59.4%)에 비해 저조하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춘천에는 3만6682곳의 중소기업이 운영 중으로 원주(4만7699곳)에 비해 1만1017곳(23.1%)이 적다. 소상공인 규모 또한 춘천(3만4725곳), 원주(4만5210곳) 등 1만485곳(23.2%)이 뒤처져 있다.

 

수입차 보유 비율은 지역의 경제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원주시에 등록된 수입 승용차는 1만8523대로 춘천(1만2629대)보다 5893대(46.7%) 많다. 원주(36만752명) 인구가 춘천(28만6850명)보다 7만3902명(25.8%) 많은 것을 감안해도 원주의 수입차 보유가 훨씬 많은 셈이다. 춘천시민들은 수입차를 구매하려면 원주나 서울로 간다. 아우디, BMW, 포드링컨, 렉서스 등의 매장이 원주에만 있다.

 

그나마 춘천의 관광산업이 원주에 앞서 있지만, 실질적인 경제 효과 면에서는 물음표가 달린다. 한국관광 데이터랩에 따르면 올해 2월 춘천을 방문한 내국인이 신용카드로 소비한 금액은 113억7880만원으로 원주(111억4040만원)에 소폭 앞섰다. 소셜미디어(SNS) 언급량이나 내비게이션 목적지 검색량 등은 춘천이 훨씬 많지만, 춘천을 찾은 관광객들은 체류 시간이 짧고 숙박일수도 적은 데 비해 원주를 찾은 관광객들은 더 오래 머물고 숙박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 공공‧금융 서비스도 춘천 외면

도청 소재지 춘천이 비교 우위를 가진 공공행정이나 금융 분야도 점차 원주와 강릉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육 시장은 지난 1월 파크골프장, 출렁다리 조성 등에 대한 협의를 위해 원주로 향했다. 원주지방환경청, 원주지방국토관리청, 한국관광공사 본사, 한국산업단지공단 강원본부 등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공무원 도시’라 자부했던 춘천은 이미 강원의 중심에서 멀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강원혁신도시가 들어선 원주는 공공기관 규모에서도 춘천을 따라잡고 있다. 2013년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되면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보훈복지의료공단, 대한적십자사, 한국관광공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도로교통공단,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지방행정연구원 등이 원주 혁신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무려 10개 기관이 원주에 본사를 두고 있다.

 

우정청, 주택도시보증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경제 분야 공공기관 역시 춘천 대신 원주에서 지역본부와 지사를 운영한다. 금융 분야도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 강원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춘천지역 예금은행 점포 수는 25곳으로 원주(30곳)보다 5곳이 적다. 노승만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춘천시가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 동향도 파악하고,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데 노력을 안 한 게 경쟁 도시에 뒤처지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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