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57조 퍼붓고도 북 도발 때마다 구멍 뚫리는 국방
대응 출격 항공기는 추락, 경고용 미사일은 거꾸로
안보 의식과 무기 총체적 점검으로 빈틈 막아야
북한이 다양한 방식으로 도발할 때마다 거의 예외 없이 우리 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전선 곳곳에 사각지대가 즐비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다. 유사시 우리 군이 싸워 이길 수 있을지 국민은 불안하다. 그러니 불신도 커진다.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평화 지상주의’가 득세하면서 군과 국민의 안보의식은 흐릿해졌다. 북한 눈치 보느라 지난 몇 년간 군대는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내년도 57조원을 비롯해 매년 5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방 예산을 쏟아붓지만, 최신형이라는 각종 무기는 걸핏하면 오작동이다.
국방 태세를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때라는 질타가 쏟아진다.
지난 26일 북한의 기습적인 무인기 도발은 우리 군의 대비 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우리 영공을 침범한 북한 무인기 5대 중 가장 먼저 포착된 1대는 서울로 진입해 세 시간 동안 남측 상공을 휘젓고 다녔다. 군 당국은 부인했지만 용산 대통령실 일대까지 촬영하고 돌아갔을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최고 수준의 방공망을 유지해야 할 수도 서울의 한복판마저 뚫렸다면 이만저만 심각한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수도권 핵심 시설에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가 2019년 도입한 드론 테러 방어용 레이더(SSR)와 주파수 무력화 시스템이 있었지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앞서 2014년에는 청계산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를 등산객이 찾아주는 코미디 상황이 벌어졌는데 이번에도 군의 대응은 실망스럽다.
K방산 수출이 올해 사상 처음 24조원을 돌파하며 세계 4위 방산 강국으로 도약했다고 국방 당국이 흥분하며 자랑한 게 최근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무기 실상을 들여다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무인기에 대응하려던 KA-1 경공격기 1대는 이륙 도중 추락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10월 북한의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2형 도발 당시 우리 군이 동해상으로 경고 사격한 에이태킴스 미사일 2발 중 1발이 실종됐다.
같은 날 발사한 현무-2C 탄도미사일은 발사 방향과 정반대로 비행하다 30여 초 만에 영내 골프장에 떨어졌다.
이뿐이 아니다.
육군의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KUH-1) 2대가 지난 9월 공중 충돌해 비상착륙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앞서 2018년 7월 포항에서 MUH-1 마린온 헬기가 시험비행 도중 추락해
해병대 1사단 항공대 소속 해병대원 5명이 사망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연평부대가 보유한 K-9 자주포 6문 중 2문은 전자회로 장애를 일으켰고,
1문은 훈련 때 쓴 불발탄이 끼면서 무용지물이었다. 전시의 우리 무기는 과연 믿을 만한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무인기 도발 당일 보란 듯이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더욱 격앙되고 확신성 있는 투쟁 방략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7차 핵실험을 포함해 육·해·공 도발이 이어질 것을 시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제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주요 군사시설을 감시·정찰할 드론부대 창설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어제 사건을 계기로 해서 드론부대 설치를 최대한 앞당기겠다”고 말했다. 만시지탄이다. 방위사업청이 당초 편성한 무인항공기 및 정찰 드론 도입 예산 260억원을 삭감했던 국회 역시 판단 착오를 인정하고 신속히 되살려야 옳다. 완전무결한 국방이 아니라면 그건 국방이 아니다.
北무인기 잡는 '재머' 이미 국내 있는데…軍 "4년 내 개발하겠다"
하드파워 전투력 집착 줄이면서AI 활용 막는 보안제도 개선 필요
민간기술 활용 네트워크 만들고
신속시범획득사업 대폭 개선해야
드론과 무인기를 활용해 대규모 공중 공격작전을 하고 있는 미국 공군의 상상도. 최근 많은 국가가 무인기에 대해 투자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사진 미국 공군연구소
요즘 국방부에선 ‘국방혁신 4.0’이 화두다. 한국군을 AI(인공지능)에 기반한 첨단과학기술군으로 변신시키는 게 혁신의 목표다. 국방부는 구체적인 추진 방안을 담은 로드맵인 ‘국방혁신 4.0 기본계획’을 이달 말까지 완성키로 했다. 이를 위해 민간 과학기술계와 군사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분야별 회의와 세미나를 지속하고 있다.
육·해·공군과 해병대도 국방혁신 4.0에 맞춰 기본 전략과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국방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대통령실도 나서고 있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방혁신위원회를 신설해 컨트롤타워로 삼는다는 것이다.
근육질 군사력에서 소프트 파워로
국방혁신 4.0에서 주로 거론되는 용어는 AI, 빅데이터, 기계학습(ML), 로봇, 드론, 무인화, 자율시스템, 레이저, 사이버, 전자파 등이다. 4차 산업혁명 기술의 핵심 키워드들이다. 이미 민간에선 자율자동차, 로봇청소기, 휴대폰, 택배 드론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 신기술이다.
하지만 그동안 근육질 위주의 군사력에 집착해온 우리 군에선 여전히 생소하기만 하다. 전차와 야포, 전투기 등 눈에 보이는 전통적인 무기를 가져야 안심이 됐기 때문이다. ‘국방혁신 4.0’이 본격화하면 수십 년 동안 유지해온 전술과 작전, 부대 형태와 병력 구조, 군수지원체계는 크게 변한다. 그러나 친숙하지 않은 소프트파워 환경을 수용하려니 부담이 이만저만 아니다.
지난 26일 경기도에 침투한 북한군 무인기 대처를 보면 우리 군이 근육질 하드파워 전투력에 얼마나 안주했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북한 무인기는 2014년부터 12차례나 우리 상공을 침투했다. 하지만 우리 군의 대응능력은 크게 변한 게 없었다.
이날 군 당국은 속도가 빠른 전투기로 북한 무인기를 요격하려 했다. 그러나 느리고 작은(2m) 무인기를 전투기 기총으로 맞추긴 어려웠다. 지상공격이 주임무인 육군 공격헬기의 벌컨포로 100발을 쐈지만 격추하지 못했다. 벌컨포의 유효사거리는 불과 1.2km다. 더구나 기총소사 때 민가를 피해야 하니 쏠 기회는 더 줄어든다. 결국 북한 무인기 1대도 잡지 못했다.
파리 잡는 파리채나 에어로졸이 필요한데도 우리 군엔 큰 칼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사청은 전파 교란으로 무인기를 잡은 파리채에 해당하는 K-재머를 2026년까지 개발한다고 지난 11월에야 발표했다. 북한 무인기가 처음 침투한 2014년이니, 8년이나 허송세월한 셈이다. 더구나 이런 기술은 국내 업체에 있는데도 K-재머 개발에 4년이나 걸린다니 이해할 수 없다.
피해갈 수 없는 국방혁신 4.0
국방부는 국방혁신 4.0을 통해 북한 핵·미사일 대응능력의 획기적 강화, 선도적인 군사전략과 작전개념 발전, AI 기반 핵심 첨단전력 확보, 군구조 및 교육훈련 혁신 등을 하겠다고 한다. 2040년대까지 3단계로 추진한다.
그런데 국방혁신 4.0을 추진하려니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는 말이 곳곳에서 나온다. 심지어 신기술을 알만한 국방과학연구소장을 지낸 모 예비역 장성까지 “우리 기술과 현실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당장 기술이 확보돼 있지 않은 상태에선 맞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미국조차 계획 수립에 8~9년 걸렸다.
하지만 AI와 무인체계는 우리 생활에 이미 깊이 들어와 있다. 군이라 해서 피해갈 수도 없다. 더구나 2035년쯤엔 인구절벽 영향으로 군 병력이 40만명 이하로 줄어 현재 우리 군 시스템은 유지가 어렵다. AI와 무인체계로 전투력 재구성이 불가피하다. 혁신을 지체할수록 군사적 역량이 떨어지고 예산은 더 들어간다.
AI, 국방혁신의 알파에서 오메가
국방혁신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AI다. AI에 의한 이미지 인식, 문장 해석, 자율차량, 게임 플레이 등 분야가 전투와 작전, 정보와 군수지원 등에 적용될 전망이다. 그러나 아직은 어느 것도 완전하지 않다. RAND 연구소에 따르면 이미지 인식은 사물 인식과 탐지에서 컴퓨터가 사람보다 뛰어나지만, 아직까지 실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AI로 작동하는 무기가 적과 아군을 식별하지 못해 아군에게 사격하는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사람이 통제하는 유·무인 복합체계부터 하려는 것이다.
AI의 문장 해석력은 사람과 무인체계와의 소통에 핵심이다. 현재로썬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의 도움으로 핵심 요약이나 감정 표현을 이해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심층신경망은 기계학습 분야의 하나인 심층학습을 구현하는 인공신경망이다. 그러나 새로운 데이터나 표현에 대해선 해석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AI에 의한 자율주행과 게임 플레이(작전) 능력은 거의 완전한 수준으로 가고 있지만, 안전성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능형 유·무인 복합전투 체계를 만들려면 매개변수가 많아 대용량 연산이 가능한 컴퓨터 인프라가 필수다. 이를 기반으로 AI가 대규모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인간처럼 사고하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빅데이터를 생성해야 한다. 그런데 빅데이터 관리는 현재 우리 군 보안체계로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우리 군은 대규모 군사훈련에서 쌓은 결과 데이터를 보안을 이유로 모두 파기하고 있다.
민간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
이런 사정을 일찍 간파한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 영국 등은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군 혁신에 몰두하고 있다. 대부분 기술이 대학과 연구소, IT업체에 있어서 민간과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있다.
미 육군은 AI를 관할하는 부대인 A-AITF를 민간대학인 카네기멜런대학(CMU)에 뒀다. CMU가 AI분야 선두주자여서다. 미 육군은 또 컴퓨터 네트워크에 구글 클라우드를 활용키로 했다. 미 육군 미래사령부(Army Future Command)는 4500여개 업체와 계약해 신기술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까다로운 보안규정과 복지부동식 방위사업제도로 민간기술을 적극 활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방위사업청이 2019년 11월 발표한 신속시범획득사업 제도 공문. 이 제도는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신속하게 활용하기 위해 도입했다. 그러나 방사청은 이 공문에서 무기 또는 장비의 시범운용에 합격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겠다고 공표하고선 후에 또다시 경쟁입찰을 거치겠다고 말을 바꾸어 신속이라는 제도의 취지를 퇴색시켰다. 국방혁신 4.0을 지원하기 보다는 발목을 잡을 우려도 제기된다.
걸림돌이 된 방위사업제도
국방혁신 4.0 추진에 최대 걸림돌은 비리 방지에 초점을 둔 방위사업법이다. 우리 규정으로는 아무리 산뜻하고 획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어도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신무기 개발에 10년 이상 걸린다. 그러다 보니 예산은 더 들고 막 나온 신무기도 배치할 때면 이미 구닥다리가 된다.
최근 K-방산이 인기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럽 선진국들이 탈냉전 이후 우크라이나전 같은 큰 전쟁이 없을 것으로 오판한 나머지 방위산업을 소홀히 한 데 따른 어부지리라는 지적이 있다. K-방산이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을지는 속단할 수 없다.
방위사업청이 국방혁신 4.0에 필수적인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만든 신속 시범획득사업 제도는 의도와 다르게 변질하고 있다. 미국을 벤치마킹해 10~15년 걸리는 방위사업을 5~6년으로 단축하는 게 목적이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20년 도입한 이 제도는 지난해까지 674억원을 들여 30개 사업을 추진했으나 성공한 건 없다. 드론을 잡는 휴대용 안티드론건(gun), 자폭무인기, 레이더와 연동된 안티드론 통합 솔루션 등이다.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공무원의 복지부동 때문이다. 방사청이 이 제도를 처음 소개할 때엔 ▶경쟁을 통해 업체를 선정한 뒤 ▶제품(무기)의 시범운용에서 군에 적합하다고 평가를 받으면 ▶곧바로 소요 물량을 결정하고 ▶합격한 업체와 수의계약해 납품받기로 했다.
그런데 방사청은 마지막 납품단계에서 시범운용에 합격한 업체와 수의계약을 하지 않고, 새로운 업체들을 끼워 넣어 다시 경쟁입찰을 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수의계약할 경우 나올 수 있는 감사와 조사가 두려워서다. 결국 기존의 방위사업제도보다 절차를 2번 반복하게 돼 사업기간은 더 걸리고 업체에 부담만 주게 됐다.
이처럼 국방혁신 4.0에는 곳곳에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앞으로 20년 걸릴 혁신에 성공하려면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방위사업제도나 군대 재설계 과정에서 이해 사슬도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그래야 전투기로 북한 무인기를 요격해야 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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