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
봄에는 어느 곳을 가도 무릉도원인가.
이 산 저 산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다.
정말 올 봄은 이 산 저 산 유난히 진달래가 장관이다.
소생의 계절,
생명이 약동하는 4월은 한마디로 방안에 앉아 있기에는 시간이 아까운 것 같다.
무르익은 봄은 시대를 초월한다.
조선 후기에 널리 불린 잡가 '유산가(遊山歌)'에도 봄은 난만(爛漫)하다.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함'을 뜻하는 난만은
유산가 첫 머리의 '화란춘성(花爛春城)'과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결과다.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
삼춘가절(三春佳節)이 좋을씨고 도화만발 점점홍(桃花滿發點點紅)이로구나.
어주축수 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이라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예 아니냐.
유산가에서도 난만한 봄의 풍경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노래한다.
무릉도원은 서양 사람들의 '유토피아(Utopia)'에 대응하는 동양의 이상향이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듯이 무릉도원도 상상과 동경의 공간이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 속세를 떠난 이상향은 곧 '복사꽃이 흐드러진 곳'이다.
한 어부가 물에 떠내려 오는 복사꽃잎을 따라 오르다 발견한
이 아름다운 풍경 '도원경(桃源境)'은 시인 자신도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라 말한다.
하긴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누가 거기를 그리워하였으랴!
무릉도원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거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 동양의 이상향에 핀 꽃이 복숭아일까.
왜 하고 많은 꽃, 하고 많은 과일 가운데 복숭아일까.
복숭아는 동양문화권에서 불로불사와 신선세계, 그리고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복숭아와 관련된 신선설화가 많다.
우리 민속에서 복숭아는 장수의 의미도 갖는데
이는 <서왕모와 천도복숭아>라는 전설에서 비롯한다.
천도복숭아는 천상에서 열리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장수한다고 한다.
따라서 세속을 떠난 이상향에 도화가 우거져 있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 '축사(逐邪)의 힘'을 지녔다.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고 제상에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어린 시절 동요에서 그려지듯 시골에 복숭아꽃 살구꽃은 흔하디흔한 꽃이었다.
진분홍 복숭아꽃과 연분홍 살구꽃으로 무르익는 봄의 고향…….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바람 없는 밤을 꽃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는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이호우 시인은 살구꽃 핀 마을의 따뜻한 인정을 노래했다.
박완서의 단편 <그 여자네 집>의 곱단이네 집에도 큰 살구나무가 서 있었다.
그 여자의 연인 만득이는 '개울물이 하얗게 하얗게 실어 나르는 살구꽃을
연서처럼 울렁거리며 바라보았을 것'이라 했던가.
맞다, 그 마을은 이름조차 살구마을, '행촌(杏村)'이었지.
/빌려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