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가덕도에 금메달 주는 격, 신공항 평가 다시 해야

 

[중앙선데이]

 

가덕도, 비용 많이 들고 접근성 부족
2016년 평가에서 밀양에도 밀려

예타 마치고 환경평가 하던 김해
김경수·오거돈 반대에 무기 연기

표 욕심에 원칙 잃은 10조 국책사업
‘고추 말리는 정치공항’ 재연 우려

 

 

박완서 작가는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순위와 관계없이 달리는 마라토너에게 성원을 보냈던 심정을 이렇게 적었다. 그 무서운 고통과 고독을 이긴 의지력에 우리는 꼴찌 주자에게도 갈채를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꼴찌에게 주는 금메달은 다른 얘기다. 정부 여당이 가덕도를 동남권 신공항으로 밀고 있다. 부산 지역 야당 의원들은 질세라 갈채를 보낸다. 내년 4월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의식한 행보다. 10년간의 갈등 끝에 결정된 10조원 규모의 국책사업이 엉뚱한 결론으로 뒤집힐 판이다. 전문가들은 “김해가 적합하지 않다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 꼴찌인가

동남권 신공항의 뿌리는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1월 당선인 시절 부산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신공항 건의를 받은 노무현 대통령은 3년 뒤인 2006년 공식 검토를 지시했다. 실질적인 조사는 대선 공약으로 ‘영남권 신공항’을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에서 이뤄졌다. 2011년 발표된 입지평가위원회의 결론은 100점 만점에 밀양이 39.9점, 가덕도는 38.3점이었다. 두 후보지 모두 기준점 이하로 ‘부적합’ 평가가 나왔고, 신공항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신공항은 2012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선거 공약으로 내걸면서 재점화됐다. 국토교통부 용역에 따라 2016년 파리공항공사엔지니어링(ADPi)은 사전타당성 검토 결과를 내놨다. 이번에도 가덕도는 꼴찌였다. 7조8000억원을 들여 국제선 활주로 1본만 만드는 방안은 1000점 만점에 635점, 10조7000억원을 들여 활주로 2본을 만드는 방안은 581점에 그쳤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가덕도가 낮은 점수에 머무른 것은 공항 건설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약점은 매립이다. 오성열 한국교통연구원 공항정책 팀장은 “인천공항을 만들 때 영종도는 수심 5m 이하의 갯벌을 매립하는 것이라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가덕도는 수심이 10~20m로 깊은 데다 외해와 면하고 있어 태풍과 파도의 영향도 심하게 받는다”며 “이걸 어떻게 해결할지 충분한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가덕도에 활주로 2본을 만들려면 예정지 남쪽 국수봉(해발 264m)을 통째로 깎아내야 한다. 비용만 활주로를 만드는데 8조3000억원, 산을 깎아내는데 1조2200억원이 들고 환경에 대한 영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접근성도 김해보다 좋지 못하다. 김해공항은 남해고속도로, 대구부산고속도로와 연결되고 부산김해경전철도 통과한다. 국토부는 2016년 내놓은 ‘영남권 신공항, 김해 건설이 최적’이라는 설명 자료에서 “동대구역에서 환승 없이 연결되는 지선 철도망을 신설하면 75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며 “김해신공항은 영남지역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관문공항”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 자료는 다운로드가 막혀 있다. 반면 가덕도까지는 부산과 거제도를 잇는 거가대교 접속도로만 있다. 철도는 가덕도 북단의 부산신항 4, 5부두까지 이어지는 부산신항선(화물철도)뿐이다. 철도와 도로를 추가로 연결하는데 1조원 이상이 든다.

#왜 금메달인가

2016년 사전타당성 조사 이후 김해신공항은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 환경영향평가를 받았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건설사업은 의무적으로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아야 한다. 김해공항은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타조사 결과 총사업비 5조8431억원, 비용편익(B/C) 0.94, 계층분석(AHP) 0.504로 평가됐다. 보통 B/C는 1, 여기에 정책 및 지역균형발전을 감안한 AHP는 0.5를 넘어야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토부는 2018년 환경영향평가를 했다. 잘 나가던 신공항은 여기서부터 암초를 만났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부산·울산·경남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과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당시 부산시장 등이 소음문제 등을 들어 환경영향평가 공청회를 무산시켰다. 신공항 건설은 기약 없이 연기됐다. 지난해 12월 국무총리실은 국무총리 훈령 제748호를 제정해 김해신공항 사업 검증위원회를 구성했다. 김수삼 위원장은 지난 17일 “산악 장애물 제거 문제를 지자체와 협의하지 않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있는 만큼 김해신공항 추진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김해신공항에 문제가 있다는 결과는 가덕도 신공항 추진으로 이어졌다. 박성식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꼴찌인 가덕도에 사업을 주는 건 지금까지 진행했던 국책 사업 가운데 전례 없는 상황”이라며 “백번 양보해서 사업이 엎어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2순위에 주던지 다시 처음부터 후보 지역을 추려 사업을 추진해야지 예타 면제 특별법까지 만들어가며 가장 타당성이 떨어지는 지역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상식 수준에서 벗어난 결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공항이 정치적인 고려에 흔들린 결과는 자명하다. YS공항이라는 별명의 양양공항은 지난해 이용객이 5만명이고, 한화갑공항으로 불리는 무안공항은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리는 사진으로 곤욕을 치렀다. 승객이 없는 예천공항은 공군에게 줬고, 울진공항은 비행연습장으로 쓰인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리실이 사업을 원점으로 돌리고, 주무 부처인 국토부가 그걸 바로 수용하겠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된다”며 “국책 사업을 이런 식으로 바꿀 거면 용역 조사나 예타 분석은 뭐하러 하느냐”고 반문했다.

가덕도에 호의적인 전문가들도 절차에는 문제를 제기한다. 박용하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개인적으로 산지가 많은 부산보다 가덕도에 공항을 만드는 게 맞다고 본다”면서도 “전문가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그걸 종합해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정부가 머릿속에 표 생각밖에 없으니 불필요한 갈등을 키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YS공항, DJ공항, 그리고 3개의 문재인 공항

/박정훈

 

우리 돈으로 1조3000억원을 들여 지었는데 단돈 1300만원에 '땡처리'된 공항이 있다. 3년 전 스페인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페인 중부의 시우다드 레알 국제공항이 경매에 나와 1만유로에 낙찰됐다는 뉴스가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연간 1000만명 처리 능력을 갖춘 최첨단 공항이었다.

 

호화롭게 지어 놓았지만 국제선을 한 편도 유치하지 못해 개항 4년 만에 파산한 것이었다.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마드리드 공항이 있어 애초부터 채산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그런데도 좌파가 장악한 시(市) 당국이 밀어붙여 황당한 실패극을 자초했다. 우매한 정치가 천문학적 세금을 말아먹은 황당한 사례다.

 

한국에도 해외 토픽에 오른 공항이 있다. 2007년 AFP통신은 '세계 10대 황당 뉴스'에 울진공항을 올렸다. "1300억원짜리 공항에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다"는 이유였다. 울진공항 역시 애당초 지어선 안 될 공항이었다. 수요 조사를 해보니 이용객이 하루 50명뿐일 것이란 예상치가 나왔다. 그러건 말건 정치 논리에 따라 추진됐고 결국 세금만 날린 채 문을 닫고 말았다. 당시 사업을 주도한 인물이 김대중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 김중권씨였다. 그래서 울진공항은 일명 '김중권 공항'으로 불렸다.

 

한국의 공항엔 권력자의 별칭이 붙은 곳이 많다.

 

청주공항은 '노태우 공항'으로 불린다. 그가 충청권 선거 공약으로 내걸어 추진했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양양공항은 '김영삼 공항', 무안공항은 '김대중 공항'으로 일컬어진다.

 

실세 정치인 이름이 붙은 곳도 있다.

예천공항은 '유학성 공항', 김제공항은 '정동영 공항'으로 통했다. 무안공항은 '한화갑 공항'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들이 권력의 힘으로 밀어붙인 덕에 도저히 생길 수 없는 공항이 생겼다는 뜻이다.

 

결코 명예로운 이름은 아니다. 이 공항들이 다 세금 퍼먹는 골칫덩어리가 됐기 때문이다.

'노태우 공항'은 5년간 2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다.

'김영삼 공항'은 몇 달간 항공기가 단 한 편도 못 뜨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BBC방송이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유령공항"으로 소개한 적도 있다.

 

'김대중 공항'은 고추 말리는 공항으로 유명세를 탔다. 텅 빈 활주로에 주민들이 고추를 펴놓은 장면이 화제가 됐다.

'유학성 공항'은 승객이 없어 폐쇄됐고, '정동영 공항'은 사업이 백지화돼 배추밭으로 변했다.

저마다 국민 돈 수백억, 수천억원을 말아먹은 세금 좀비가 됐다.

 

애초부터 예정된 결과였다. 한국은 공항을 많이 지을 수 없는 나라다. 좁은 땅에 철도·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돼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다. 그런데 공항은 15개나 있다. 항공 여행이 일상적인 미국보다 국토 면적당 공항 수가 3.4배 많다. 인구 500만명의 호남에만 4개 공항이 자동차로 1~2시간 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경제성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이 오로지 정치 공학적 계산으로 밀어붙였다. 대선이 치러질 때마다 공항이 한두 개씩 생겼다. 지난 20여년 사이 생긴 공항은 단 하나 예외 없이 '정치공항'이다. 역대 대통령 대부분이 부실 덩어리 공항에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올렸다.

 

그런 오명을 피했던 것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두 사람 다 동남권 신공항을 선거 공약으로 걸었지만 집권 후 백지화시켰다. 가덕도에 신공항을 지으면 사업비만 10조원이 든다고 한다. 아무리 표(票)가 급해도 밑 빠진 독에 10조원을 퍼부을 '배짱'이 두 사람에겐 없었던 모양이다. PK·TK 지역이 첨예하게 맞붙었는데 어느 한쪽 손을 들어주기도 곤란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또 하나의 부실 덩어리가 생기는 일은 막았다. '이명박 공항' '박근혜 공항'을 만들진 않았다.

 

그렇게 사그라든 동남권 신공항의 화약고에 문재인 대통령이 다시 불을 질렀다. PK 지지도가 급락하자 신공항 카드를 꺼내 들려 하고 있다. 돌아가는 움직임을 보면 PK·TK에 각각 하나씩 공항을 허가해줄 모양이다. 그러면 두 지역 다 만족시킬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한 개로도 재정이 거덜날 판인데 '1+1' 패키지로 해줄 수 있다는 배포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라 살림이야 어떻게 되든 선거는 꼭 이기겠다는 본심을 감추려 하지도 않는다. 이 정부는 이미 새만금공항을 타당성 조사 없이 허가해줬다. 여기에다 PK·TK 신공항이 추가되면 '문재인 공항'이 세 개 생기게 된다. 그토록 토건(土建 )·적폐라고 비난하던 전임 정부도 자제하던 일을 서슴없이 해치우고 있다.

미국 대통령의 이름은 항공모함에 새겨진다. 레이건호, 포드호, 부시호가 바다를 누비면서 미국의 패권을 지키고 있다. 한국 대통령 이름은 적자투성이 공항에 남는다. 후대 사람들은 세금 빨아먹는 부실 공항을 볼 때마다 그곳에 새겨진 권력자 이름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분노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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