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편리한 비닐봉지의 역습

비닐봉지, 한때는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는데

 

글: 심혜진
이 물건, 언제 생겼지?

 



1954년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문=일본에서 들어오는 고무책보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입니까?
답=고무책보가 아니라 비니루 보자기입니다. 비니루란 아세찌렝(아세틸렌)에서

직접 만들어지는 합성수지의 총칭으로 종류가 많습니다. (중략)

염화비니루계의 인조섬유로써 레인코트, 핸드백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1954.4.11. 경향신문)



아세틸렌은 석탄에서 나오는 카바이드로 만든 것으로 합성섬유와 플라스틱을 만드는 재료로 쓰였다.

1954년은 이제 막 비닐을 생산하는 공장이 들어서던 시기이다.

인조섬유로 만든 책보자기가 신기했던 이는 그것이 고무로 만든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1950년대까지 비닐은 몇몇 상품포장이나 우비, 농업용으로 많이 쓰였다.

공산품을 비닐로 포장해 물건을 사고팔 때 비닐봉지까지 주고받게 된 건 196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시장에 갔다 오면 비닐봉지가 몇 개씩 생긴다. 물건을 종이에 싸주는 경우도 있지만

요즘 포장에는 비닐봉지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큰 것은 무엇에 쓰려고 남겨두겠지만 적은 것들을 그냥 버리기 쉽다. (중략)

썩는 냄새가 지독히 나는 요즘 찌꺼기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담지 말고

이 비닐봉지에 넣어 주둥이를 꼭꼭 묶은 다음 쓰레기통에 담아보자.

냄새도 덜 날뿐더러 파리도 들끓는 일이 없어진다.' (1961.8.7. 동아일보)


당시로선 비닐봉지는 신문물이었다. 살림을 담당했던 주부들은

물건을 살 때마다 따라오는 비닐포장지를 그냥 버리기 아까워 활용 방안을 서로 공유하기도 했다.

'요즈음 과자, 사탕봉지는 물론 옷과 신발의 포장까지 폴리에칠렌(폴리에틸렌) 주머니가 등장하고 있다. (중략)

빨래할 때, 변소 소제할 때, 물 뿌릴 때 주머니를 양말 위에 신고 꼭 고무줄을 졸라매면 양말이 젖지를 않는다.

비오는 날 장화 속에 덧신는 것도 마찬가지. (중략)

 고무신이 들었던 홀쭉한 폴리에칠렌 주머니 같은 것은 두었다가 토란을 깎을 때 쓸 수 있다. (중략)

시장에 갈 때도 몇 개 준비해가면 비린내 나는 생선 토막을 넣을 수 있고 장바구니가 젖지 않는다.' (1962.6.12. 경향신문)

 

 


생활의 일부분을 조금씩 차지해가던 비닐이 뒤통수를 친 사건도 일어났다.

포장지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시중에서 식료품 포장지로 대요되고 있는 신문지, 폐지와 일부 비닐포장지에

과망간산칼륨 등 많은 유해물질일 함유되어 있음이 23일 서울시 검사로 밝혀졌다. (중략)

신문지와 폐지는 73.7%가, 어포를 포장한 비닐봉지는 55%가, 기타 비닐포장지는 24%가

식료품 포장지로 적당치 못하며(중략)

서울시보건당국은 이러한 불순물로 식료품이 변질되거나 인체에 직접 해를 끼칠 염려가 있다고 경고,

시민들에게 이를 사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1970.7.23.매일경제)



이후로도 시민들 사이에서 비닐에서 유해성분이 나올 수 있다는 불안감은 계속 되었다.

그러나 비닐만큼 값싸고 가볍고 편리한 재료는 찾기 어려웠다.

비닐의 유용함은 독성에 대한 불안과 썩지 않는 물질에 대한 거부감을 누를 만큼 강력했다.

환경 오염이 주부 손에 달렸다?

비닐은 서민들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상품을 만들고 생산하는 이들이

상품의 손상이나 오염을 막고 돋보이도록 하기 위해 비닐을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누가' 사탕의 포장처럼 말이다.

비닐은 공산품의 증가와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비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지 불과 20년이 지난 1980년대부터

이 '썩지 않는 쓰레기'가 사회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 대상으로 비닐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쪽이 아닌 소비하는 쪽, 그 중에서도 주부들이 흔하게 지목되었다.


 

'한 가정에서 버리는 쓰레기, 오물, 고물 등을 살펴보면

그 집 식구들이 어느 정도 알뜰하고 헤픈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중략)

 

우선 쓰레기가 많이 나오지 않게 생활을 한다.

쓰레기 중에는 썩거나 삭아서 자연에 환원되는 것들도 있지만 각종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 등은

썩지도 쓰지도 않아 자연을 파괴하고 농사에 피해를 준다.(중략)

따라서 식품의 경우 각종 야채는 물론 생선육류 등 버리는 부분이 적은 것을 선택하여

조리할 때는 폐기부분이 가장 적게 조리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면 무잎, 미나리잎, 당근잎 등을 버리지말고 볶아 먹든가 국을 끓이면 훌륭한 영양식이 된다.

또 선물은 물론 자기 집에서 쓰는 물건도 부피에 비해 과대포장된 것은 사지 않도록 한다.'

(1982.1.14.매일경제)

 

비닐봉지로 방석을 만들거나 온갖 재활용하는 방법이 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했고 심지어 대회까지 열어 상을 주었다.

기발한 아이디어라 칭찬하며 이 '알뜰하고 현명한' 주부들의 생활 모습이 신문과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급기야 주부들은 반 공해운동에까지 앞장섰다.

'수은중독, 수질오염 등 공해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자 주부들이 생활속의 반공해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중략)

132가구 주부들이 참여한 <수은건전지 수거운동>은 수은건전지를 땅속에 그대로 묻거나

쓰레기와 함께 태울 경우 토양과 대기를 오염시키게 돼 이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운동이다. (중략)

 

2년 전부터 집안에서 합성세제 안 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이정숙씨는 그릇을 씻을 때

쌀뜨물이나 밀가루를 푼 물로 씻고 빨래는 꼭 빨래비누로 한다는 것. (중략)

심순옥씨는 이웃주부 7,8명과 함께 가루비누 안 쓰기, 샴푸 안 쓰기, 비닐 안 쓰기 등을 실천하고 있다.'

(1988.8.10.경향신문)


1991년 경상북도 구미시 두산전자에서 30톤의 페놀 원액이

상수원인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간 사건이 발생하자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은 더욱 커졌다.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동아일보>에 '환경보전 주부 손에 달렸다'는 기사가 실렸다.

이 글에는 합성세제 안 쓰기, 샴푸 덜 쓰기, 폐기름으로 세탁비누 만들기 같은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비닐 덜 쓰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전국주부교실중앙회는 장바구니 되쓰기,

종이봉지 쓰기 운동을 벌이고 있으며 젖은 것도 넣을 수 있도록

코팅된 헝겊주머니를 제작, 배포하고 있다.' (1991.3.27.)

물론 '의식 있는 주부'들이 물건을 안 사고 안 쓰면 쓰레기는 분명 적어질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환경오염이 줄었다'고 표현하는 대신 '경기불황'이라 말한다.

경기가 살아나기 위해선 상품을 많이 소비해야 하는데 물건을 사면 살수록 쓰레기가 늘어난다.

물건은 사되 쓰레기는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는, 불가능에 가까운 이중메시지는

국가와 사회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동시에 주부들에게 떠넘기는 교묘한 수단이었다.

작가 공지영씨도 답답함을 호소했다.

'각종 매체에서는 주부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환경을 지키는 파수꾼 어쩌구 하면서 추켜세우기도 한다.

마치 주부들의 손에 이 나라의 땅과 미래가 전적으로 달려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략)

 주부들은 할 만큼 하고 있다. 신문지도 모으고 우유팩까지 설거지하고 말리고 오려가면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공은 정부나 기업 쪽으로 넘겨져야 한다.' (1994.9.18. 한겨레)


없으면 없는 대로 산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환경오염 문제가 내 건강을 해치고

삶의 토대를 흔들 만큼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지자체에서 쓰레기 분리수거를 시범 운영하기 시작했고 기업은 역시 발 빠르게 움직여

환경, 안전, 신소재 등을 강조한 '녹색' 광고를 쏟아냈다.

 

1994년부터 쓰레기 종량제가 실시됐고 일정 면적 이상의 상점에서

물건 담는 비닐봉투를 유상판매하는 법이 만들어졌다.

백화점에선 비닐쇼핑백을 재생종이봉투로 바꿨다.

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다. 2003년 연간 125억개 수준이던 비닐봉투 생산량은 2015년 216억개로 늘었다.

1인당 연간 420개 정도를 쓰는 셈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2010년 기준 유럽의 일회용 비닐봉지 연간 평균 소비량은 1인당 176개이었다.

폴란드가 460개으로 가장 많고 그리스가 250개, 스페인은 120개, 프랑스 80개 독일은 70개 수준이다.

 

일찌감치 장바구니 사용 정책을 폈던 북유럽의 아일랜드(20개)와 핀란드·덴마크(4개)는

이미 거의 사용하지 않는 수준까지 왔다. (2017.10.5. 경향신문)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플라스틱 업체들의 반발과 은밀한 로비도 그중 높은 산에 속한다.

우리 생활도 물론 비닐봉지를 마구 사용할 때에 비하면 신경 쓸 것이 많아지고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썩지 않는 비닐과 플라스틱 무덤으로 변해가는 바다를 마주하는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불편함도 습관이 되면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불편함을 선택할 것인가. 망설이기엔 이미 늦었다.

하루라도 빨리 국가와 사회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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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상위권…재활용 대책 서둘러야

1인당 연간 132t 소비…해양 환경오염·생태계 교란 피해 방지 시급

최근 전국적으로 벌어진 재활용 쓰레기 수거 대란은 중국의 수입 금지 정책이 주된 요인이었다.

수요 감소가 쓰레기 수거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킬 수도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상위권인 우리나라가 해양 유입으로 인한 환경오염과 생태계 교란 피해를 줄이려면

재활용을 확대하는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1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생산된 플라스틱의 총량은 83억t에 육박하며 75%인 약 63억t이 쓰레기로 배출됐다.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자료사진]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인 바다[자료사진](런던=연합뉴스) 황정우 특파원 = "플라스틱과 스티로폼으로 뒤덮인"

카리브 해를 담은 충격적인 사진이 인간에 의한 해양 파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중 촬영가인 캐롤린 파워가 카리브 해 온두라스 영토인 로아탄 섬과 카요스 코키노스 섬 사이의 바다를 최근 촬영한 사진은

말 그대로 '플라스틱 쓰레기 바다'였다. 2017.10.27 [텔레그래프 홈페이지 캡처=연합뉴스]

  

 

플라스틱 쓰레기의 79%에 해당하는 약 50억t은 매립이나 해양 유입 등으로 자연환경에 노출돼 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50년까지 120억t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자연환경에 노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매년 해양으로 유입하는 플라스틱은 약 1천만t에 이른다.

 

미국 국립생태분석센터가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발생에 기여한 192개국을 조사한 결과

상위 20개국에 아시아 국가가 13개나 포함됐다.

 

플라스틱은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입자로 부서져 미세 플라스틱이 되고

바다 생물의 몸속에 쌓여 최종적으로 사람이 섭취함으로써 인체에도 해를 끼친다.

 

 

 

발리 바닷속을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
발리 바닷속을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유튜브 캡처=연합뉴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은 132.7t으로 미국(93.8t), 일본(65.8t)보다 훨씬 많다.

2020년에는 145.9t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주요 국가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해양수산개발원 제공=연합뉴스]
주요 국가의 1인당 플라스틱 소비량[해양수산개발원 제공=연합뉴스]

 

 

소비 행태 변화와 관리 정책의 개선이 없다면 바다로 유입하는

플라스틱 쓰레기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해양수산개발원은 지적했다.

해양 쓰레기는 염분과 이물질 때문에 품질이 떨어져 재활용이 쉽지 않아 더욱 문제가 된다.

 

우리나라 연근해 어업과 양식장에서 연간 4만3천t가량의 폐어망 등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폐어망은 수산생물 피해, 선박 운항 장애, 미세 플라스틱 발생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는 수거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염분과

이물질 때문에 재활용 자원으로서 가치는 낮아 민간의 시장기능에 의존한 처리는 한계가 있다.

 

 

연평도 주변 어장에서 건져 올린 폐그물[자료사진]
연평도 주변 어장에서 건져 올린 폐그물[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지난해 폐그물 인양작업 모습. 2009.7.21 << 해군 >>

 

 

 

유럽과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재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2008년에 설립된 노르웨이의 농어업 폐기물 처리업체인 노피르사는

어망 분리수집 시설, 플라스틱, 가죽, 고철 재활용 공장이 연계해 폐어망을 수거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유럽 내 9개국에 구축해 플라스틱 재생원료를 생산한다.

 

지난해에만 어망과 로프 7천240여t을 수거해 재활용했다.

미국은 2008년부터 해양대기청과 민간업체가 협력해 주요 어항에서 폐어구를 수집해

금속 등은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전력 등 에너지 생산에 쓴다.

 

폐어망 1t에서 한 가정이 25일간 쓸 수 있는 에너지를 회수한다.

일본은 스티로폼 부표를 파쇄해 압축한 뒤 보일러 연료로 제공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해양 쓰레기의 관리 영역을 유입 예방과 신속한 수거에 그치지 않고

재활용을 촉진하고 수요를 늘리는 쪽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해양수산개발원은 주장했다.

 

민간업체들이 재활용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기술개발을 지원하고 공공기관이

수거와 보관을 맡아 민간 재활용 업체의 부담을 덜어주며 어항에서 수거한 폐어망 등에서 회수한 에너지를

지역주민에게 되돌려 주는 어촌형 순환경제 모델 개발 등을 제시했다.

 

기업들이 재활용이 쉬운 재질을 사용하도록 생산방식의 변화를 유도하고

관련 소재 개발과 디자인을 정부가 지원하는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해양수산개발원은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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