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50주년 맞는 '호반의 도시' 춘천

 

북한강·소양강 만나는 옛 강마을…의암댐 건설로 생긴 인공호수
호수가 생활지형도 바꿔…철거 논란 거쳐 관광자원·성장동력으로

 


강원도 춘천이라고 하면 대뜸 '호반의 도시'를 떠올린다.

이런 별칭은 그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반세기 전 의암호 탄생이 시작이다. 춘천은 원래 호반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 정확히 50년 전인 1967년 11월 근대화의 상징 의암댐이 준공됐다.

 

금강산에서 발원해 쉼 없이 계곡을 달려 내린 북한강은

설악산과 오대산에서 출발한 소양강과 춘천에서 만난다.

 

두 강줄기는 의암댐 축조로 그 물길이 막혀 거대한 인공호수를 만들었다.

그렇게 춘천은 호반의 도시가 된 것이다.

 

지금의 춘천에는 의암댐 말고도 1965년 2월 북한강 상류 유역을 막아 완공한 춘천댐과

1973년 10월 준공한 소양강댐이 있다.

 

이 두 댐은 1995년 정부의 도농 통합 정책에 따라 통합 춘천시가 탄생하기 전까지는 춘천군에 속해 있었다.

통합 춘천시의 탄생은 호반의 도시라는 춘천의 이미지를 더욱 강하게 했다.

의암호 이전 춘천은 호수가 없던 강 마을이었다.

 

 

옛 지도에 보이는 춘천의 강
옛 지도에 보이는 춘천의 강18~19세기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춘천부지도.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평양과 더불어 수계에 자리 잡은 고장 가운데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춘천을 꼽았다.

그만큼 춘천은 오래전부터 수향(水香)의 고장으로 알려졌다.

 

춘천은 고대 맥국의 도읍지를 시작으로 영서북부지역의 중심도시로 발전해 왔다.

북한강을 통한 문물과 산품의 집산이 그 힘이었다.

 

춘천의 역사를 집대성한 춘추지와 춘천수부 100년사는 사실상 '강의 역사'다.

상류 화천구간 물길은 옛 지명을 딴 낭천강으로,

춘천구간은 구간별로 모진강, 장양강, 소양강, 신연강으로 달리 불렀다.

 

1910년 지도를 보면 사람과 문물을 도시로 이어주던 나루 20여 곳이 있었고, 이들 나루가 곧 마을이었다.

댐 건설 후 나루는 하나둘 사라져 현재는 그 흔적만 남았다.

 

 

춘천의 옛 지도
춘천의 옛 지도갑오경장 시기 춘천유수부도(1845~1895)로 당시 춘천유수 민두호가

춘천이궁 건립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춘천문화원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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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가 많았다는 것은 교류와 교역이 활발했다는 의미다. 춘천 옛 강의 폭과 깊이는 어느 정도였을까.

소설가 전상국 강원대 명예교수는 "소금배와 뗏목이 소양강을 거쳐 남한강과 합류하는

양평까지 오간 것으로 보여 춘천의 강 크기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한양에서 춘천으로 오는 육로는 벼랑길이어서 물길 교통이 훨씬 많았을 것으로 보인다.

강줄기 서쪽에 자리 잡아 시내로 가려면 배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춘천 서면 주민들에게서 강마을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서면은 박사 학위자를 현재까지 150명 넘게 배출해 박사마을로 유명하다.

의암댐이 건설되기 전 서면 사람들은 나룻배로 북한강을 건너 중도(中島)에 도착해

다시 소양강을 건너 시내로 들어가야 했다.

 

마을 촌로는 "부모가 농산물을 팔기 위해 시내 새벽시장에 배를 타고 오가는

고단하고 억척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며 향학열이 남달랐다"고 기억했다.

 

강 건너편 번창한 시내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학창시절 배를 타고 학교를 오가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가난을 대물림해주지 않겠다는 부모의 헌신적인 자식 뒷바라지에 늘 진흙탕 자국이 따라붙었다.

그런 연유로 "발등이 시꺼먼 사람들은 서면 출신"이라는 웃지 못할 말까지 듣고 살았다.

 

향토학자들은 예부터 서원이 있어 학문에 열중한 유생이 많았던 역사적 배경이나

 해가 빨리 뜨는 탓에 부지런함이 몸에 뱄다는 지리적 영향이 이런 향학열을 만들었다고 말하곤 했다.

 

 

미국에서 1963년 의학박사 학위를 딴 송병덕씨가 서면 출신 박사 1호다.

유엔총회 의장이자 국무총리를 역임한 한승수씨는 3호 박사로 유명하다.

박사 명단은 1999년 마을 도로변 세운 '박사마을 선양탑'을 빼곡히 채웠다.

 

강변 정자에서 본 풍경은 춘천십경 중 하나였을 만큼 수려했으나 댐과 함께 가뭇없이 수몰됐다.

반짝거리던 모래빛이나 어머니의 빨래터, 할머니가 모래찜질하던

드넓은 백사장으로 기억되던 강의 서정은 사라졌지만 새로운 유원지 문화를 가져왔다.

 

나팔바지 차림의 통기타를 둘러맨 청춘의 발길이 경춘선 마지막 여행지인 의암호로 향했다.

그래서 춘천은 낭만과 추억의 도시가 됐다.

 

 

 

설국을 질주하는 경춘선 복선전철 [연합뉴스 자료사진]
설국을 질주하는 경춘선 복선전철 [연합뉴스 자료사진]

 

1939년 7월부터 운행한 경춘선은 군병력과 군수물자를 실어나르는

전선(戰線)역할을 하다가 의암호가 생기면서 관광열차가 됐다.

수많은 청춘이 호수에 그 시대와 그들만의 이야기를 남겼다.

 

의암호 수면에 비친 산자락과 오버랩하는 데칼코마니는 전국의 사진 애호가를 열광하게 했다.

강에서 뿜어낸 다량의 수증기가 도시 전체를 잠식하기 시작했으니,

 안개도시라는 별칭도 의암호 등장과 함께 비로소 만들어졌다고 봐도 대과가 없다.

 

강과 안개가 뿜는 몽환적인 새벽강 풍경은 호반의 도시를 대변했고,

저물녘 물안개는 수많은 문학청년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전상국, 이외수, 한수산 작가 등 수많은 문인이 안개도시 춘천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춘천은 의암댐 준공과 함께 호반의 도시를 표방했다.

 

그 마케팅의 첫 시도로 노랫말을 공모해 발표된 곡이 이미자가 부른 '춘천댁 사공'이다.

하지만 춘천은 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록 호수, 막국수, 닭갈비 관광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갇힌 물길은 차츰 도시가 커지면서 썩어갔다. '8할이 똥물'이라는 오명에 이중 삼중의 규제까지 더해졌다.

수도권 수돗물 공급 수원인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 때문이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호수 한가운데 있는 중도에 레고랜드를 만들어 도시개발의 기폭제로 삼기로 했다.

 

 

 

중도에 추진 중인 레고랜드 전경. 지난해 12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도에 추진 중인 레고랜드 전경. 지난해 12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도는 북한강과 소양강이 합류되는 삼각주로 흙이 쌓여

군부대 기동훈련이 가능할 정도의 광활한 황무지를 이뤘다.

 

유재춘 강원대 사학과 교수는 "조선 시대 지도를 보면 옛날 중도는 육지와 붙어 있었다"며

 "의암댐이 만들어지면서 온전한 섬이 됐다"고 말했다.

 

야유회와 야영장 명소로,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와 영화 촬영지로 대중의 사랑받던 중도는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2012년 7월 폐쇄됐다.

 

중도에 들어설 레고랜드는 의암호를 중심으로 한 미래 춘천 관광의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6년째 허허벌판이다.

땅을 파기만 하면 청동기 시대 유물이 줄줄이 나왔다.

 

 

중도 유적지 발굴[연합뉴스 자료사진]
중도 유적지 발굴[연합뉴스 자료사진]

 

 

 

호수 한가운데 선사의 기억이 온이 남아 있으니 춘천은 말 그대로 물의 도시인 셈이다.

사업이 지연됐고, 공사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못 하고 있지만,

향후 반세기 호수 문화를 이을 대안으로 기대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

 

의암호를 순환하는 유람선과 삼악산 케이블카 운행은 레고랜드 기대와 맞물려 있다.

모든 춘천의 미래 모습이 의암호에 집중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암댐은 한때 철거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1998년 환경부가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대책을 발표하자 댐을 철거하자는 지역사회가 요구가 터져 나왔다.

 

앞서 1992년 의암댐의 하천점용 허가 기간이 만료됐을 때도

철거 찬반 논쟁이 불거졌지만 호반의 도시라는 관광경제적 가치가 논란을 잠재웠다.

 

춘천시 관계자는 "호반의 도시라는 메인 밸류 가치가 댐을 존치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인공호수로 인한 득실을 따지는 것은 어렵겠지만,

자연 그대로의 천연의 강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주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춘천 의암호 전경[연합뉴스 자료사진]

춘천 의암호 전경[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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