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당신이 몰랐던 설악산의 특별함
/정명희 녹색연합 활동가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산, 설악산 국립공원,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등 다섯 개의 보호구역으로 중복 지정되어 있는 설악산 | |
ⓒ 박그림 |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산, 설악산! 물론 그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특별하다. 그러나 그 때문만은 아니다.
대한민국 1.5%, 그 5분의 1
설악산은 국립공원,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천연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지역 다섯 개의 보호구역으로 중복 지정해 놓은 산이다.
국립공원을 놀이공원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만한 곳'으로 국가가 지정, 관리하는 대표적인 보호구역이다. 그럼 국립공원에선 어떤 개발행위도 불가능할까? 그렇지 않다. 국립공원 개념을 '보존'으로 엄격히 해석하고 어떤 개발행위도 금지 시키는 나라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국립공원 안에 마을도 있고 관광객을 위한 여려 편의시설도 있다. 국립공원 안에 '공원환경지구'와 '공원마을지구' 등을 두고 어느 정도의 개발을 허용한다.
그러나 한번 훼손되면 복원이 어려운 곳, 원시성을 지닌 자연생태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의 주요 서식지라서 보전해야 할 곳은 '공원자연보존지구'로 지정해 놓고 개발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 면적이 국립공원의 23% 정도이고, 국토 전체로 보면 1.5% 정도에 불과하다. 설악산 국립공원은 면적의 84.3%나 되는 비교적 넓은 지역이 공원자연보존지구이고 이 면적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공원자연보존지구 전체에서 1/5 정도에 해당한다.
그래서 설악산은 특별하다. 설악산 한 곳을 제대로 지키는 일이 이 땅에서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곳, 손대지 말아야 할 곳, 꼭 지켜서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할 곳, 인간 아닌 생명들을 위해 그대로 둬야 할 곳, 감히 욕심내지 말아야 하는 단 1.5%의 그 곳을 지키는 일이라서 특별하다.
국제적으로도 특별한 곳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은 세계적으로 생태계 가치가 높은 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선 1982년 처음으로 설악산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생물권보전지역 역시 핵심, 완충, 전이 지역 등의 구획을 나눠 인위적인 접근이 허용되는 곳과 아닌 곳을 구분하고 있는데 설악산 국립공원 대부분은 개발이 불가능한 '핵심지역'에 들어간다.
핵심지역은 '엄격히 보호되는 하나 또는 여러 개 지역, 생물 다양성의 보전과 간섭을 최소화한 생태계 모니터링, 파괴적이지 않는 조사연구, 영향이 작은 이용(예: 교육) 등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특히 설악산의 식생 중 상부의 아고산대의 식생은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하고 보전가치가 있는 곳으로 핵심지역 중의 핵심지역에 해당된다. 또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국립공원의 정의에 따른 분류에서도 설악산은 개발행위가 금지된 카테고리Ⅱ에 해당된다.
하루 2만 명 이상이 설악산을 오르는 가을철도 아닌데, 왜 이렇게 설악산의 특별함을 강조할까? 바로 케이블카 때문이다. 강원도 양양군은 남설악 지역 오색에서 설악산 정상부를 연결하는 케이블카를 설치하려고 한다. 오색 케이블카 계획은 이미 2012년, 2013년 두 차례 국립공원 공원위원회에서 환경파괴와 낮은 경제성 때문에 계획이 반려되었다.
그런데 양양군은 2015년 또다시 케이블카 종점부 위치를 조금 바꿔 케이블카 사업신청서를 제출했다. 종점부 위치를 조금 바꿨을 뿐인데, 환경적인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고 1, 2차때의 낮은 경제성도 갑자기 높아졌다고 한다. 어떻게 된 일일까?
2. 서식지 아닌 이동통로? 카메라에 찍힌 건 뭐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으려면 정부와 민간으로 구성된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사업의 진행 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 국립공원위원회는 환경부의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 검토기준'에 따라 심의를 하는데 이 환경부의 검토기준에는 다음과 같은 항목이 있다.
1. 정류장 및 지주 설치지점은 다음 항목을 최대한 회피
❍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등 법적 보호종의 주요 서식지·산란처✴ 및 분포지
✴ 산란처 및 번식지 포함
2. 선로 위치는 다음 항목 경유를 최대한 회피
❍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등 법적보호동물의 주요 산란처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 검토기준 중 일부발췌>
이 항목은 지난 두 번의 오색케이블카 심의가 부결된 것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특히 국립공원위원회 소속의 민간전문위원회가 2013년 오색케이블카 심의 때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특히, 산양은 우리나라에서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으로 분류되어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며, 우리나라 전체에 700여 개체 밖에 서식하지 않는 적은 수임에도, 계획노선 전체에서 서식 흔적이 다량 발견되어 서식밀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됨에 따라, 양양군에서 제출한 계획노선은 멸종위기야생동물의 주요서식지로서 이에 대한 보호의 필요성이 큰 것으로 판단됨'
이라고 밝히며 케이블카 노선 구간의 야생동물 중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인 산양의 서식지에 대한 보호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양의 서식지가 아니라 이동통로다?
그럼, 2015년 양양군이 환경부에 제출한 오색케이블카 사업 계획서엔 '산양'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 하고 있을까? 양양군은 국립공원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하기 위해 이번 세 번째 오색케이블카 설치 예정지는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아니라 단순한 '이동통로'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환경부의 기준엔 '서식지'와 '산란지'를 회피하라고 되어 있지, '이동통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는 것을 염두에 둔 노림수다.
양양군 자체 조사 결과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에서 산양 배설물(똥)은 단 세 곳에서만 발견되었고 9대의 무인카메라를 설치해 4개월 동안 조사했지만 산양은 단 1회 촬영되었기 때문에 산양의 서식지가 아니라 이동통로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양양군 산양조사결과 산양이 무인카메라에 단1회 촬영되었다. | |
ⓒ 양양군사업계획서 |
설악산 일대가 산양의 서식지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서식 분포에 차이가 조금씩 있지만, 선을 그어 어디까지는 서식지이고 어디까지는 이동통로라고 구분하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단 한번밖에 산양이 촬영되지 않았다는 것 역시 믿기 어려운 결과다. 그러나 야생동물 조사는 직접 조사하지 않고서는 사실여부를 증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환경단체도 같은 구간을 다시 조사했다. 양양군의 조사와 달리 4개월 동안의 조사에서 산양 흔적이 53군데에서 발견되었으며, 무인카메라에 총 14회나 산양 모습이 촬영되었다.
특히 양양군의 정밀 조사에서는 흔적이 전혀 없다던 곳에서도 20곳 이상의 산양 흔적이 발견되었다. 멸종위기종 Ⅰ급인 산양 뿐만 아니라 Ⅱ급인 하늘다람쥐, 삵, 담비도 보였다.
▲ 환경단체의 산양조사결과 산양흔적 53군데 발견, 무인카메라에 산양이 14회 촬영되었다. | |
ⓒ 녹색연합 |
▲ 산양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에서 촬영된 산양. | |
ⓒ 녹색연합 |
▲ 오색케이블카 예정지의 산양 산양이 이대로의 모습으로 건강히 살아갈 수 있도록 오색케이블카 사업계획은 취소되어야 한다. | |
ⓒ 녹색연합 |
그리고 이곳이 산양의 이동통로가 아닌 주 서식지이자 산란처라는 명백한 증거가 무인 카메라에 잡혔다. 케이블카 상부가이드타워와 상부정류장 사이에서 1년 미만의 새끼산양의 모습이 어미와 함께 있는 모습이 촬영된 것이다. 새끼산양의 똥자리도 발견되었다. 어미가 새끼를 데리고 먹이를 먹고 똥을 누고 쉬는 곳. 이보다 분명한 '서식지'의 증거가 또 있을 순 없다.
▲ 새끼산양 어미와 함께 있는 새끼산양의 모습이 무인카메라에 촬영되었다. 오색케이블카 예정지가 산양산란처이자 서식지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 |
ⓒ 녹색연합 |
산양은 우리나라에 약 800여 마리만 생존해 있고 설악산에 200여 마리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적인 보호종이자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 천연기념물 217호인 산양의 주요서식지에 케이블카가 들어서게 될지는 오는 8월28일에 열리는 국립공원위원회 심의에서 결정이 된다.
설악산에서 없어지면 지구에서도 사라집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은 바로 지주가 들어서는 자리의 수목들이다. 벌목으로 잘려나가기 때문이다.
양양군 "식생들 20년 수령" vs. 환경단체 조사결과 80~226년생
▲ 식생수령 환경단체가 조사한 케이블카 예정지의 수령 | |
ⓒ 녹색연합 |
강원도 양양군은 케이블카가 들어서도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양양군은 "식생들이 20년 정도의 수령이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양양군은 케이블카 노선이 지나는 지역이 아고산대가 아니라고 한다. 한마디로 보전할 만한 가치가 크지 않다는 말이다. '국립공원 설악산에 있는 나무가 20년생이다'란 건 누가 들어도 납득이 안 되는 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20년 전에 큰 불이라도 났든가 고목이 마구잡이로 벌목되었다는 건데 국립공원에서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환경단체의 현장조사결과는 양양군의 주장과 매우 다르다. 중간지주 5번부터 상부 탐방로까지 나무 수령이 80년에서 226년 정도까지라는 걸 확인했다. 불필요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중간정도 굵기의 나무를 선택해 수령을 측정한 결과다. 이를 고려한다면, 200년이 훨씬 넘는 나무들도 많으리라 예측할 수 있다. 양양군 자료와 무려 10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수령이 226년이나 되는 잣나무는 조선시대 정조임금의 시기에 싹을 틔운 나무다. 이 나무도 양양군의 부실조사로 케이블카가 들어선다면 베어질 위기에 처한다.
또한 케이블카 노선 예정지에는 세계자연보존연맹(IUCN) 평가기준에 따른 희귀식물 중 가까운 미래에 자생지에서 매우 심각한 멸종위기에 처할 수 있는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되는 '개회향, 눈향나무', 취약종(VU)인 '백작약, 세잎승마, 주목', 현 시점에서 멸종 위험도는 작지만 분포조건 변화에 따라 멸종위기로 이행할 수 있는 약관심종(LC)인 금강애기나리, 금마타리, 등칡, 만병초, 연영초, 정향나무, 참배암차즈기, 태백제비꽃 등 국제적 멸종위기 식물이 분포해 있다.
한 번 훼손되면 복원 어려운 '빙하기의 유산 아고산대'
무엇보다 양양군의 주장과는 달리, 이 지역은 아고산대에 해당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2012)에서 작성한 '제1차 설악산국립공원 보전·관리계획'에 따르면 6번 지주부터, 상부가이드타워, 상부정류장, 탐방로 등이 모두 아고산대에 있다.
아고산대는 빙하기의 유산이라고 불린다. 빙하기 때 북방에서 한반도로 들어온 수종들이 이후 온난화에서도 살아남은 곳으로 우리나라에선 백두대간과 한라산 등의 일부 고지대에만 분포해 있다. 아고산대는 한 번 훼손되면 복원이 거의 불가능하고 최근의 지구온난화 위협에서 가장 먼저 보호되어야 할 지역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러한 중요성 때문에 아고산대 여부는 국립공원위원회가 검토하는 주요 기준 가운데 하나다. 환경부는 '국립공원 삭도 시범사업 검토기준'과 '자연공원 삭도 설치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라 케이블카 사업을 심의하게 되는데, 이 기준에 따르면 원생림, 극상림, 아고산, 고산대 등을 회피하도록 되어 있다.
▲ 아고산대 설악산국립공원 아고산식생대와 케이블카 예정지 현황 | |
ⓒ 국립공원관리공단 |
양양군도 케이블카 대상지가 아고산대임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대상의 일부인 상부정류장 전망산책로가 아고산대에 입지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으며('공원계획변경(안)' 293쪽) 5번 지주 주변에 아고산대 식생인 분비나무 군락이 있음을 확인한 바 있다('자연환경영향검토서' 172쪽). 하지만 두꺼운 보고서 한 구석에 이런 내용이 적혀 있을 뿐, 종합결론을 제시하는 부분에는 쏙 빠져있다.
케이블카를 건설하느라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는 외래식물이 유입될 수 있다. 양양군도 이러한 위험을 보고서에 적고 있다. 외래종은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 가운데 하나다.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그 험난한 조건을 뚫고 살아남은 한반도 고유의 생태계가 외래식물로 망가진다면, 이것은 한국 국립공원의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설악산 권금성엔 1970년부터 운행되고 있는 케이블카가 있다. 권금성 일대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바위 산이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생기기 전 권금성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다. 권금성에도 '숲'이 있었다. 케이블카가 들어서면서 무수한 사람들의 발자국에 숲은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오색케이블카가 설치된 이후의 케이블카 정류장이 놓이는 '끝청'의 미래는 어쩌면 현재의 권금성일지 모른다.
설악산은 그곳에 깃들어 사는 무수한 생명에게는 유일한 보금자리이다. 설악산의 생명에겐 그곳 아닌 다른 대안이 없다. 빙하기 시대부터 그곳에 살았던 생명들이 있다. 그렇다면 설악산의 주인은 누구일까? 설악산을 마음대로 개발할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반도에서 사라지면 지구에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희귀식물들, 한반도의 역사를 증명해주는 식물들을 대신할 가치가 과연 케이블카에 있을까? 답이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에 케이블카는 멸종위기종 서식지와 아고산대를 피해서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오색케이블카 설치 여부를 결정하는 국립공원위원회가 명심해야 할 기준이다.
'사는이야기 > 구암동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색케이블카 결정 원천 무효 (0) | 2015.08.29 |
---|---|
설악 케이블카 승인 (0) | 2015.08.28 |
아름다운 묘비명 (0) | 2015.08.25 |
지구온난화 (0) | 2015.08.25 |
뚝방마켓 (0) | 2015.08.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