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퇴시대

-자녀 결혼시키고 노후빈곤에 시달릴 가능성

 

며칠 전 지하철에서 목소리가 큰 60대 남자 두 명이 나란히 앉아 한 명이 혀를 차기 시작했다.

요즘 왜 사람들이 이렇게 자살이 많아. 우리 동네에 여자 한 명이 죽었는데,

공원 옆 나무에서(생략). 쯧쯧. 글쎄 말이야. 딸 결혼시킨다고 빚을 많이 졌는데

그러고는 감당이 안돼서 고민을 그렇게 했다는데 그만. 쯧쯧쯧.”

 

이런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자녀 결혼비용으로 허리가 휘어지는 사람들이 많다.

경제력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동원하는 게 2010년대 한국의 풍속인 듯싶다.

 

최근 다녀온 결혼식 한 곳은 신혼 부부 둘 다 직장에 다니는데도

딸이 부모에게 신혼여행비까지 타갔다고 들었다.

또 어떤 60대 여성은 아들 부부에게 신혼집을 마련해주고

외곽에 있는 주택으로 줄여서 이사를 갔는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자녀 결혼시키고 30년 살아야 하는 반퇴시대

 

반퇴시대에는 자녀의 결혼이 중대한 리스크가 된다.

지하철에서 들은 극단적인 사례는 아니더라도 자칫 노후빈곤은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원인은 고령화다. 과거에는 환갑을 지내고 십년 안팎이면 인생을 마감했다.

1970년 기대수명은 61.9세였다.

이로부터 43년이 흐른 2013년의 기대수명은 81.9세에 이른다.

한 세기도 안 되니까 사실상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데도 기대수명이 20년이나 늘어났다.

 

문제는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데서 비롯된다.

집 팔아서, 빚까지 내가면서 자녀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나서도 30년을 살아야 한다.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남자는 주로 집을 마련하느라 15000여만원이 들고,

여자는 주로 혼수 마련에 8000여만원이 든다고 한다.

 

웨딩컨설팅 듀오웨드가 발표한 ‘2015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신혼부부 한 쌍당 실제 총 결혼자금은 주택 비용을 포함하면 평균 23798만원에 달했다.

 

전체 결혼 비용을 세부 항목별로 살펴보면 예식장 1593만원,웨딩패키지 297만원,

신혼여행 451만원,예물 1608만원,예단 1639만원,가전가구 등 혼수 1375만원,

주택 16835만원으로 집계됐다.

 

주택 자금은 서울수도권 18089만원,

지방(강원, 영남, 충청, 호남 등) 15419만원으로 조사됐다.

 

신혼 주택 마련에 들인 전국 평균 비용은 약 16835만원이었다.

총 결혼 비용 23798만원에서 남성은 15231만원(64%),

여성은 8567만원(36%)을 분담했다.

 

지역별로는 ^서울수도권에서 남성 16476만원, 여성 9268만원,

지방에서 남성 13828만원, 여성 7778만원을 사용했다.

 

이는 어디까지나 평균이다. 경제력이 있는 신혼부부는 더 많을 수도 있고,

이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 수도 있다. 결혼식에 가보면 부모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호텔이든 웨딩홀이든 빛나게 결혼식 치르는 모습을 보면

어느 부모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을까 싶다.

더구나 조금이라도 쾌적한 주거환경에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하지만 퇴직 후에도 생계를 위해 계속 일해야 하는 반퇴시대의 현실은 냉혹하다.

우선 ‘3포 시대에 산다는 자녀의 처지를 보자.

3포 시대는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산다는 의미다.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구해도 나이가 늘어 느지막하게 구하고,

그러니 결혼자금을 모으기도 어렵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부모는 자녀가 결혼만 해도 고마울 거다.

 

금융자산을 최소 10억원 이상 갖고 있는 부유층이 아니라면 장삼이사의 경우

결국 부모가 집 팔고 빚 내서 자녀 결혼자금을 대고 나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부모가 미리 대비하지 못하면 노후빈곤 불가피

 

이 같은 자녀 결혼 리스크를 회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참 어려운 얘기이지만 이 리스크를 피하려면 철처한 대비가 필요하다.

 

왕도는 없다. 그러나 차선책은 있다.

우선 자녀에게 처음부터 결혼에 대한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줘야 한다.

자신의 결혼자금은 최대한 스스로 마련하라고 평소에 교육시켜야 한다.

부모가 지원해줄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라고 선을 그어놓는 것도 필요하다.

부모가 지원해줄 부분은 결혼 직전에 집을 팔거나 빚을 내는 방식이 아니라 평소에 준비해야 한다.

 

계란을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처럼

자녀 결혼에 지원할 자금 역시 다른 용도와 분리해 모아두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준비없이 결혼에 직면해 돈을 융통하려면

집을 팔거나 연금을 깨는 불상사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에도 방법은 많을 것이다. 집집마다 사정도 천차만별이어서 일반화할 수도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남자 평균 15000만원(여자는 8500만원)에 달하는 결혼 자금을

자녀가 스스로 모두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고소득 전문직이 아닌 장삼이사 직장인이 15000만원을 모으려면

아무리 빨라도 6~7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어느 정도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다.

 

어떤 상황이든 부모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결혼이 코앞에 닥쳐서 준비하려면 노후빈곤으로 전락하는

지름길이자 보증수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선 안 되겠다.

 

/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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