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불탄 숲, 자연복원 선택…기다리면 자연은 돌아옵니다”
스님은 마지막까지 산사를 지켰다. 소방 당국이 “어서 하산하시라”고 하기 전까지.
지난해 3월 25일 오후 5시. 바람이 거세지면서 경북 의성 산불은 기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경북 의성의 천년고찰 고운사를 품고 있는 등운산을,
산 이름을 법명으로 삼은 등운 스님이 계속 돌아봤다
. 그곳엔 진화대원 11명이 정말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대한민국 사상 최악이 될 산불과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그러다 그들과의 연락은 뚝 끊겼다.
지난 23일 경북 의성 산불 1년을 앞두고 고운사를 찾았다.
일주문까지 2㎞ 길 양쪽엔 검게 그을린 소나무들이 즐비했다
이곳 주지인 등운 스님은 범종루가 소실된 채 덩그러니 남은 범종을 바라보고 있었다.
범종은 그을리고, 갈라지고, 심지어 뒤틀려 있었다.
“1000도, 1500도의 불길에 범종도 많이 아팠겠죠. 하물며 그때 진화대원 11명은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그런 상황에 하산길 아니, 피난길 발이 떨어지겠습니까.”
대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당국에서도 모두 순직했을 거라고 비관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대웅보전 뒤에 방공호처럼 생긴 콘크리트 목욕탕이 있습니다.
거기에 모두 피해 있었습니다. 산소통이 있기에, 돌아가며 산소를 마시고 버텼답니다.
목욕탕이 일종의 체임버 역할을 한 거죠.”
신속동료구조팀(RIT)이 화마를 뚫고 도착했고, 결국 11명 모두 구조됐다.
고운사는 사찰림 249㏊ 중 97.6%인 243㏊가 피해를 입었다.
국내 사찰림 중 산불로 인한 최대 규모 피해다. 보물인 석조여래좌상과 아미타삼존도·탄생불·
신중탱화 등 유형문화재와 비지정 동산 유물들을 대피시켰지만 보물인 연수전과 가운루는 전소됐다.

경북 의성 산불 발생 1년을 앞둔 지난 2월 24 하늘에서 바라본 고운사의 모습. 김정훈 기자
딱 작년 같은 날씨” 긴장의 대지
“1000도까지 견딘다는 방화복 7~8벌을 대웅보전 옆에 놔뒀는데
모두 타버렸을 정도로 엄청난 불길이었습니다.
이 범종도 보세요. 하지만 대웅보전은 초석만 조금 그을렸을 뿐입니다.
꽃창살의 창호지도 전혀 손상이 없었어요. 안에 계신 부처님이 너무 크셔서 안전한 곳에 모시지 못했는데,
그곳을 지키고 계셨나 봅니다.” 그제야 등운 스님은 옅은 미소를 비췄다.

지난해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고운사 주변에 새로 난 초목들.
복원에 시간이 걸릴 텐데요. “시간이요? 그야말로 시간에 맡기고 있습니다
. 우리 숲은 자연 복원을 결정했습니다. 손을 안 대고 기다림을 택했습니다.
저기를 보세요. 불에 탄 소나무 사이로 작은 참나무와 풀이 올라왔습니다.
불이 난 뒤 생존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내면서 자란 겁니다.
소나무만 살아왔다가, 일종의 세대교체입니다. 그들의 순환 방식을 존중하는 겁니다
.” 다른 의성 산불 피해 지역에선 지금 벌목이 한창인데요.
어차피 등운산에서는 새 묘목을 심기 어려워요.
경사가 급한 바위산에 흙이 20㎝가량 살포시 얹혀 있는 곳이 많아요.
벌목으로 산을 밀면 묘목으로 산사태를 막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다음에 관리를 제대로 하면 모를까요. 그 비용으로 이재민을 도와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참에 방화림으로 차나무를 심으려고도 합니다.”
전소된 전각은 어떻게 합니까. “고려 시대, 조선 시대 사찰이 아니라 ‘현대의 사찰’이 돼야지요.
사찰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의 유산이 돼야 합니다.
입구에 검게 그을린 소나무는 지금은 푸르지만 곧 생명이 다합니다
. 그 나무들을 이용할 계획입니다. 그래도 산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지에서죠.”
등운 스님은 “산불은 일어나서는 안 될 재(災)”라고 연신 말했다.
산불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한 그의 마음에는 어느새 자연에 맡기는 비움이,
다시 그 자리에 파격의 깨달음이 들어선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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