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석기 유적 '혈거유지' 민망한 방치 몽골 항쟁 유적지
'봉의산성'도 등산로 둔갑...
전문가 "문화유산 관리의 기본 과제가 방치된 사례"
/박도협

▲한림대학교에 위치한 신석기 동굴 유적 '혈거유지'의 모습. 유적 향하는 표지판조차 보이지 않는다.
(사진: 박도협 대학생기자) ⓒ 박도협관련사진보기
강의실로 향하는 발길이 분주한 한림대학교 캠퍼스 한쪽, 골프 연습장 옆에 작은 동굴 하나가 입을 열고 있다.
대다수 학생에게는 이름조차 낯선 이 동굴의 정체는 신석기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강원도기념물 제1호 '혈거유지'다.
지난 10월 2일 현장을 찾은 첫인상은 '선사 유적'보다 '방치된 공간'에 가까웠다.
혈거유지는 자연 동굴이 아닌, 사람이 깎아 만든 인공 동굴이다.
1962년 한림대학교의 전신인 성심여자대학교 설립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됐다.
당시 동굴 내부에서는 세 사람의 유골이 발을 모은 상태로 발견됐고,
함께 출토된 돌도끼·돌칼·토기 등 유물은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이에 기자는 다음 날인 10월 3일, 한국 고고학을 연구하는
한림대 이정철 사학과 교수를 만나 혈거유지의 가치를 물었다.
이 교수는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발굴된 선사 유적이 거의 없었기에
혈거유지는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사례"라며 "혈거유지에서 나온 토기가
강원 양양의 신석기 유적 유물과 유사하다는 점은, 동해안 집단이 태백산을 넘어
춘천 내륙으로 들어온 흔적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동굴 천장에 남은 그을음은 이곳이 실제 거주 공간으로 사용됐음을 시사하지만,
유골이 가지런히 묻힌 점에 비춰볼 때 주거지에서 무덤으로 용도가 전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교수는 "당시엔 시신의 안정을 기원하는 의미로 동굴을 무덤화하는 사례가 많았다"며
혈거유지가 단순한 '동굴'이 아니라 선사 시대 사람들의 삶과 죽음,
이동과 정착의 흔적이 응축된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기자가 확인한 혈거유지 주변에선 이러한 의미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동굴 바로 앞에는 벤치가 놓여 있고, 주변에는 쓰레기가 방치돼 있었다. 강원도기념물 제1호라는 이름이 무색한 풍경이다.
이 교수는 "1971년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됐음에도 유적 주변에는 주차장과 골프장이 있다"며
"'보존과 활용'이라는 문화유산 관리의 기본 과제가 방치된 사례"라고 지적했다.
혈거유지가 '보이지 않는 유적'으로 남은 것도 문제다. 동굴 앞 안내문을 제외하면
교내 어디에도 혈거유지로 향하는 표지판은 없다.
캠퍼스 지도나 홍보물에서도 관련 안내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 교수는 "1996년 처음 학교에 왔을 때보다 지금이 더 악화된 것 같다"며
"교내 구성원조차 선사 유적의 존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실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혈거유지는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된 만큼, 책임 소재는 대학을 넘어 강원도와 춘천시에 더 무겁게 돌아간다
. 특히 도 지정문화재의 실질적 관리 주체로 지목되는 춘천시와 이를 감독하는 강원도가
정기 점검과 구조 보강, 안내 시스템 구축, 교육·전시 프로그램 연계 등
구체적인 관리·활용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교수는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이라 붕괴 위험이 있고, 이미 일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며
"현 상태가 지속된다면 유적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행 '문화재보호법'과 강원도 문화재 관련 조례에 따르면 도 지정문화재에 대해
소유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중요한 의무'로 도지정·도등록문화유산 등을 관리·보호를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혈거유지 주변 정비와 안내 체계는 이런 원칙에 한참 못 미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춘천시 문화예술과에 확인한 결과 "혈거유지의 소유권은 한림대 재단인 일송재단에 있으나,
도 지정문화재에 대한 실질적 관리 주체는 춘천시"라고 설명했다.
춘천시는 올해 봉의산 일대를 대상으로 안전 모니터링을 진행해 토질이 약하다는 점을 파악했으나,
이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 대책은 아직 마련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혈거유지와 같은 춘천 봉의산 유적 중 하나인 '봉의산성'의 모습.
입산 금지 구역이지만 출입을 막는 펜스가 무너지면서 어느새 등산로가 돼 있다.
(사진: 박도협 대학생기자) ⓒ 박도협관련사진보기
문화유적 방치는 혈거유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림대 혈거유지 옆 봉의산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봉의산성'이 나타난다. 한반도가 '산성의 나라'로 불릴 만큼 수많은 산성을 보유한 가운데,
봉의산성은 1979년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된 대표적인 역사 유적이다.
지난달 7일 봉의산 문화유적 발굴에 참여한 심재연 한림고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기자의 등산 경로를 듣고 "원래는 펜스로 막아 출입을 금지한 구역이지만,
펜스가 무너져 등산객들이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입산 금지 구역이 일반 등산로처럼 이용되고 있지만 아무런 관리 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봉의산성의 축조 연대 또한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
포털 사이트에는 여전히 '고려시대 산성'으로 표기돼 있지만, 심 교수는 "2004년 발굴 당시
삼국통일 직전 신라 토기가 출토됐다"며 "정확한 축조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673년 신라 문무왕 대 이미 봉의산성이 존재한 것으로 나온다"고 전했다.
이런 학계의 축적된 연구 성과가 행정과 대중 정보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심 교수는 봉의산성의 특징에 대해 "봉의산성은 춘천 전역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에 있다"며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방어의 전초기지였고, 열쇠·자물쇠·벼루 등이 발견된 점을 고려하면
통일 이후 당나라와의 경계 상황 속에서 군사권과 행정권을 모두 가진 산성으로
기능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고려시대 역사서 <고려사>에 따르면 봉의산성은 고려의 대 몽골 항쟁 당시
비극의 현장이기도 하다. 몽골군이 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며칠 동안 공격을 이어가자,
성 안 우물과 샘이 모두 말라붙었다. 병사들은 말과 소의 피를 마시며 버티다
힘이 다하자 식량을 불태우고 몽골군의 포위망을 돌파하려 결사 돌진했지만 전원이 전사했다.
성 안에는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지 않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83년 봉의산성 인근에는 '봉의산 순의비'가 세워졌다.
그러나 현재 봉의산성 일대는 이러한 역사적 무게를 체감하기 어려운 평범한 산길에 가깝다.
심 교수는 "등산객의 무분별한 출입과 수목의 성장으로 성벽 일부가 훼손되고 있다"며
"봉의산성은 이제 '발굴'보다 '활용'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강원도와 춘천시가 과거 여러 차례 연구 용역을 진행했지만,
기존 조사 내용을 관행적으로 인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지 못했다"며
"봉의산 전역에 대한 정밀 실측조사를 다시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중장기적인 보존·활용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봉의산성 역시 춘천시 문화예술과가 관리 주체다.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저희가 봉의산성을 관리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현재로서는 구체적으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여기까지"라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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