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왕산의 겨울... 여기에 꼭 '케이블카'가 필요할까요

2018 평창 올림픽 이후 가리왕산에 남아있는 흔적들, 열 살 아이가 바라 본 풍경

      / 강고운
가리왕산 복원을 바라는 마음을 펼칩니다
아이는 사진의 오른쪽에 있습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아이가 다시 이곳에 오게될까요.
케이블카를 다시 타러 오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남준기관련사진보기


제 딸은 2015년 12월생입니다. 제가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던 시절,

흘려듣던 TV중계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는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지요.

각국 선수들은 시원한 눈밭에서 경주를 벌였고, 육아하느라 보는 둥 마는 둥하며 그 시절을 지났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는 이제 열살이 되었습니다. 산과 물을 좋아하는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로 자라고 있지요.

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사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환경시민단체의 활동에도 참여합니다.

 

얼마 전 <종이 울리는 순간>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고, 동계올림픽 과정에서

가리왕산이 큰 상처를 입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가리왕산은 2008년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평창동계올림픽 알파인스키 경기장 건설을 위해

2013년 전체 면적 중 78.3ha가 해제되었습니다.

당시 산림청은 올림픽 이후 해당 부지를 복원해 다시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는 단서 조항을 달았습니다.

케이블카, 과연 그렇게 필요한 것일까

케이블카를 타고 있는 엄마와 딸탑승장에서 대기하다가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탑승장 대기줄에 산과자연의친구 생태조사단 외에 다른 사람은 없었습니다. ⓒ 강고운관련사진보기


올림픽이 끝난 후 복원 약속 이행을 두고 환경 단체와 지역 주민 간의 오랜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가리왕산 합리적 보전, 활용 협의체'는 최근 합의서를 채택했는데요.

훼손된 산림 지역은 최대한 산림으로 복원한다는 기본 방침이 세워졌지만

지역 활성화를 위해 경기장 하부 구역은 교육, 휴양, 숲 체험 등과 관련된 시설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케이블카는 한시적 운영을 거쳐 최종적으로 존치하는 방향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에 더해 정선군은 가리왕산을 산림형 국가정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며,

이는 현재 주요 지역 현안으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12월 7일, 저와 딸은 생태 복원활동 전개 사단법인 '산과자연의친구' 회원으로서

가리왕산 하봉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영화 이후 가리왕산의 지금 모습이 어떤지,

활용을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작은 전세버스로 회원 20여 명이 같이 서울에서 출발했고, 평창 현지에서 생태학박사님들이 합류하셨어요.

버스가 달리는 동안, 여러 생각을 했습니다. 케이블카로 올라가면 손쉽게

아름다운 산을 감상하니까 행복하고 치유받는 느낌이 들까요?

 

눈이 덮인 산의 아름다움을 보러 관광객들이 많이 왔을까요?

11시쯤 평창에 도착했습니다. 하봉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는 케이블카를 타는 마음이 내키지는 않았지만,

'과연 이게 그렇게 필요한 것인가?' 한번 느끼고 생각해보고자 타보기로 했습니다.

단 3일 동안 치러진 경기, 산 한가운데가 움푹 파였다

숙암계곡의 이끼바위가 사라진 자리에 인공물길이 들어서는 모습
생태복원하천조성공사입니다. 서울의 청계천과 너무도 비슷해보였습니다. ⓒ 남준기관련사진보기


막상 가리왕산 케이블카 탑승장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주차장도 한산했고요.

탑승장에는 저희 회원 외에는 줄서는 사람이 없었어요. 빈 케이블카는 무심히 계속 돌아갔습니다

(강원도민일보 보도에 따르면, 정식 개장한 2023년 1월부터 2024년 말까지

2년간 총 38만 여 명이 가리왕산 케이블카를 탄 것으로 나타났다 - 편집자 말).

 

직원 안내에 따라 탑승을 하고, 문이 닫히자 케이블카는 이따금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발 밑에는 드러난 흙더미와 돌덩이들, 그리고 '생태복원하천'이라는 이름으로

돌을 깔아서 물길을 만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케이블카 중간정류장을 지나서 더 높이 오르니 '휘잉' 하는 바람소리가 무섭게 거칠어집니다.

케이블카가 오를수록, 지난 6년간 스스로 자라난 나무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케이블카 도착지점에 내리니 하차장 건물 2층에 카페가 있었습니다.

몇몇 관광객들이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창으로 보였습니다.

정상부의 벌판을 둘러보다가, 여기가 알파인스키 출발점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실제로 알파인 경기는 2018년 겨울 단 3일 동안 치러졌고, 이후로 산은 한가운데가 파여나간 채

스스로 상처를 메우느라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해지기 전에 산행을 마쳐야 하니

바로 다시 걸어 내려가며 가리왕산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산을 오르지도 않았는데 그냥 내려가자니 산행을 했다는 기쁨이 없어서 영 섭섭했는데,

내려가면서 만난 가리왕산의 선물같은 모습에 섭섭함은 곧 사라졌습니다.

비어있는 케이블카가 끝없이 오르내렸다


저희 모녀는 서울 영등포구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 근교에서는 산에 올라도

야생동물의 흔적은 보기가 힘들었어요. 그런데 가리왕산은 내려오는 발걸음마다 동물발자국이 있었습니다.

 

며칠전 눈이 내린 덕분에 선명하게 찍힌 발자국을 실컷 볼 수 있었지요.

가리왕산 하봉의 정상부는 지난 6년간 사람의 간섭을 덜 받다보니 스스로 상처를 메워가고 있었습니다.

고산지대에 제일 먼저 자라기 시작한다는 거제수나무는 은빛으로 빛나고,

건강한 잔털벚나무는 황금빛으로 빛났습니다. 그러나 하부로 내려올수록 돌더미가 드러나

발이 미끄러지고 아이도 저도 엉덩방아를 찧을 수밖에 없었어요.

 

인공 물길을 조성하느라고 포크레인과 트럭이 드나들며 흙먼지를 일으키고

머리 위로 지나가는 케이블카는 끝없이 오르내리고 있었습니다.

중장비들이 이렇게 많이 다니니 동물들도 얼씬할 수 없고 자라는 식물들이라야 질경이와 망초 정도였어요.

'산과자연의친구' 회원님께서 2015년에 찍은 숙암계곡의 옛 사진을 보여주셨어요.

탄성이 나왔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돌려놓아야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나중에 다시 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서울에서도 실컷 볼 수 있는 청계천 물길같은 모습을 보자고 서울사람이 여기에 다시 올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2015년의 옛모습. 숙암계곡의 이끼바위오래된 바위와 건강한 나무들이 보입니다. ⓒ 남준기관련사진보기


가리왕산을 숲으로 복원하면 당장 돈벌이에는 손해가 날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더 길게 볼 수 없을까요?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어디에 놀고 쉬러 가게 될까요?

 

케이블카가 전국의 산마다 설치되고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러 멀리 가지는 않습니다.

서울에서 볼 수 없는 야생화가 있는 곳으로 놀러가지요.

 

갈수록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자연과 원시가 남은 곳을 찾아다닙니다.

생태관광지가 인기입니다. 케이블카는 시간이 지날수록 낡지만 숲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다워지는데,

지금 정선군 관련 기사들을 검색해보자니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정선군은 오늘도 케이블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1호선 지하철을 타면 지하철 내부 동영상 광고로도 계속 볼 수 있어요.

 

제 딸은 그 동영상 광고를 보더니 저더러도 보라고 소매를 당깁니다.

우리가 멧토끼와 노루와 고라니, 주목과 분비나무를 없애고,

케이블카와 정원을 만들어놓으면 우리의 아이들에게 좋은 유산이 될까요?

어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정말 케이블카와 인공물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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