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소수서원


14:40 소수서원(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330호)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소수’란 조선 중기의 문신인 신광한이 왕명을 받고 서원의 이름을 정할 때

무너진 교학을 다시 이어닦게 하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안향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소수서원이라는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서원 소속의 토지와 노비에 대한 면세·면역의 특권을 내림으로써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중종 39년(1544)에 안축과 안보를 제사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후기에 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의 하나이며,

지금도 매년 봄·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죽계수
소수서원 입구에는 죽계수가 흐르고 있어 운치를 돋우고 있다.
죽계수는 멀리 소백산 초암계곡에서 발원하여 계곡으로 주변의 바위가 병풍처럼 펼처져 있으며,

울창한 노송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소수서원의 경렴정에서 죽계의 경승을 바라보면 경(敬)과 백운동(白雲洞)이란 글씨가 음각된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주세붕이 숙수사를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던 당시, 밤만되면 혼령들이 울 게 되므로 연유를 물어본즉,

예전에 단종복위운동 실폐로 희생된 넋들이었다.

주세붕이 날을 택해 위혼제를 드리면서 경(敬)자에 붉은칠을 한뒤에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경(敬)은 주자철학의 근본으로 공경의 의미가 담겨 있는데,이로써 원귀들의 한이 위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경렴정
정문밖 동쪽 시내(竹溪) 언덕 절벽 위에 있다. 주세붕이 세웠다.

정면 3칸 측면1칸의 팔작집. 호박 주추에 두리기둥, 개방된 마루바닥에 계각난간을 둘렀다.


냇물을 격하여 연화봉을 마주하고, 취한대를 굽어보는 이 정자는 둘레엔 울창한 老松숲,
바로 절벽밑은 잔잔한 푸른 못을, 여울소리가 어울려 더욱 맑고 시원스러운데,
정자에서는 주신재(세붕)·李퇴계·황금계·이준등 명사들의 시판이 있다.


사료관



1.강학당(보물 제1403호)


원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는 강당으로 중종 3년(1543) 주세붕(1495~1554)선생이 건립하였다.

길러낸 원생은 4천여명에 달하며 퇴계 이황(1501~1570) 선생 문하생대부분이 망라되어 있다.

건물의 구조는 팔작지붕에 넓은마루, 작은 마루와 작은 온돌방이 있다.



2.학구재·지락재


유생들이 공부하던 기숙사 자리로서 학문의 숫자인 '3'을 상징하여 세칸을 꾸몄고,

공부 잘하라는 뜻으로, 건물 입면이 '공(工)'자 형으로 지여져 있기도 하다.

학구재는 '학문을 구한다'는 뜻으로 일명 동몽재라고도 하며,

스승의 숙소와 나란히 세우지 않고 뒤로 물려, 방바닥 높이까지 낮추어 지은 것이 특이하다.

지락재는 "배움의 깊이를 더하면 즐거움에 이른다"는 뜻으로

일명 앙고재라고도 하며, 광해군5년 (1613) 창석 이준이 세웠다.



3.일신재 와 직방재


원장·교수들의 집무실로서 양재 가 한 동으로 이뤄진 독특한 건물이다.

일신재는 일반교수,원임 들이 쓰던 방으로서 "나날이 새로워지라"는 뜻으로[대학]에서 딴 것이며,

건물 우측 직방재는 원장(백운동주)이 쓰던 방으로서 안(마음) 과 밖(행동)을

곧고 바르게 하라는 뜻의 [주역]에서 따온 것이다.


4.일영대


이 석조물은 상·하부의 석재로이루어진 해시계 이다. 맑은날,
상부석재 위에 꽂은 막대기그림자가 하부석재위의 12간지에 드리워지므로 시간을 재던 곳이다.

5.관세대
사당참배시 대야를 올려 놓고 손을 씻기 위해 만든 석조물이다.

6.정료대
이 석물은 요판·요주·요대 3개의 석재로 이루어져 밤에 서원을 밝혀주던 것이다.
함지박 모양의 상부석 재위에 관솔을 태원 정원을 밝혔다.




7. 회헌 안향영정(국보제111호)


조선 명종 14년(1559)에 그려진 회헌 안향(1243~1306)의 영정으로 규격은 88.4*53.7cm이다.

안향은 고려 중기 문신으로서 고려 충렬왕 12년(1286) 원(元)나라에 갔을 때

주자서 와 주자초상을 가지고 와 우리나라에 성리학을 최초 로 도입한 인물이다.
옷의 윤곽과 주름은 유연한 선으로 간절히 요약하고, 전체적으로 학자의 차분한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8. 주세붕 영정(보물 제717호)
조선 중기에 그려진 주세붕(1495~1554)의 영정으로 크기는 134*62.5 cm 이다.

그는 문신으로 자는 경유, 호는 신재, 시호는 문민공이다.

중종 17년 (1522)에 문과에 급제하고, 1541년 풍기군수 로 부임해 간 이듬해

백운동에 회헌 안향의 사당인 회헌사를 세우고, 이어 1543년 주자의 백록동학규 를 본 받아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을 창설했다.
그 후 직제학 , 도승지, 호조판서를 지내고 동지 중추부사가 된 다음, 예조판서에 추종되었으며,
인조11년(1633) 에는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숙수사 당간지주(보물 제59호)


소수서원 입구 소나무 숲에 남아 있는 것으로, 절터임을 증명
숙수사는 통일신라 전기에 창건된 사찰로,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오다 소수서원의 건립으로 폐사된 듯하다.

1953년에 이 당간지주의 북쪽 150m 지점에서 금동불상 25구가 출토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5:00 매표소 주차장



15:20 춘천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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