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바빠야 겨울이 따뜻하다

따스하며 시원했던 철은 지났습니다.

앞으로 여러 달 동안 추우며 고단한 철을 보내야 합니다.

다년초는 지상부가 말라버리고

상록성 초본류는 생육이 늦추어집니다.

농부에게 11월은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올해의 농장을 정리해야 하는 동시에

내년을 설계하고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체코의 대표적인 소설가이며 오랫동안 정원을 가꾸었던 카렐 차페크는

11월의 정원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자연이 휴식을 취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연은 미친 듯이 앞을 향해 떠밀며 나아가고 있다.

자연은 단지 가게 문을 닫고 블라인드를 내렸을 뿐이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 자연은 이미 새로운 상품을 풀고는

선반이 축 처질 정도로 가득 채우고 있는 중이다.

친구여, 이것이 진정한봄이다.

지금 행해지지 않는 것은 4월이 되어서도 행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발아의 형태로 여기에 있다.”

- 카렐 차페크의 <초록숲, 정원에서 온 편지> 중에서

카렐 차페크의 글은 바꾸어 말하면 11월에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다음 봄을 기대하지 말라는 경고이자 격문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주는 것만큼 받는다’ 라는 상식은

농촌에서 더욱 철저하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외롭게 남은 인동꽃이 겨울이 다가옴을 알려줍니다


바위솔은 피어보지도 못한채 움츠려 듭니다


여름내내 피고지던 꽃범의꼬리가 하루아침에이삭조차 말라버렸습니다


상록 패랭이가아직은 버틸만 하다고 자랑을 합니다


송엽국도 이제 겨울색으로 변해갑니다


데이지는 더욱 풍성해지고 내년을 기다립니다


하루아침에 갈색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알프스민들레도 녹색이 사라져 갑니다


어제까지 생생하던 붓꽃이 하루 추위에 주저앉았습니다

땅두릅은 종자도 맺지못한채 고개를 떨굽니다


노오란 꽃이 풍성하던 닥풀이추위앞에 모든걸 포기했나 봅니다

이제막 돋아난 새싹들이 긴겨울을 이겨낼지 걱정입니다


나름대로 땅바닥에 바짝붙어 버텨봅니다

이대로 긴 동면을 준비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긴 겨울을 버텨달라고 응원을 합니다


겨우 뿌리를 내린 으아리가 무척이나 추워보이는 아침입니다


차거운 물위로 낙엽이 덮히고 풍성한 여름은 떠났습니다


이곳에서 떠나지못하고 생을 마감할 것입니다.


수련은 우리가 모르게 얼음장 밑으로겨울을 준비하겠지요


용담이 미쳐 가을과 이별할 시간도없이 하루아침에 고개를 뗠굽니다


말라버린 꽃대속으로 내년을 기약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가을을 온통 보라색으로 물들이던 개미취가 이젠 겨울잠을 준비합니다


하얗게 변해버린 고비지만 내년엔봄의 전령사가 되어 돌아오겠지요


보라색 꽃대가 유난히도 고고하던 비비추가 어느새 파김치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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