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란
수컷 딱새(오른쪽)가 지난 2일 대구시 평광동 야산에서
자신보다 몸집이 훨씬 큰 벙어리뻐꾸기에게 먹이를 먹이고 있다.
뻐~꾹, 뻐~꾹. 이즈음 산과 들에서 우리 귓전을 울리는 여름철새 뻐꾸기(cuckoo)다.
두견이과로 5월 하순에서 8월 초순에 알을 낳는다.
그런데 남의 둥지에 알을 낳는 얌체족이다.
알을 위탁한다 하여 탁란(托卵)이라 한다.
제 둥지는 아예 틀지 않기 때문에 소설과 영화로 유명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뻐꾸기 둥지는 틀린 말이다.
이런 새를 탁란조라 하는데 뻐꾸기·두견이·벙어리뻐꾸기·검은등뻐꾸기·매사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이 남의 집에 알을 낳아 부화시키는 과정을 보면
놀라운 생존본능에 모골(毛骨)이 송연해진다.
두견이는 휘파람새의 둥지를 노린다. 이때 휘파람새를 숙주(宿主) 새라 한다.
탁란조는 어떤 새를 숙주로 삼을까. 알의 무늬와 색깔이 자기 알과 가장 비슷한 새다.
집주인이 제 알이 아닌 걸 알면 바로 물어다 버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숙주 새가 알을 낳고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얼른 둥지로 침입해 알을 낳는다.
주인이 알이 하나 늘어난 걸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인집 알을 하나 끄집어 낸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화한 탁란조 새끼는 주인집 새끼와 유사한 소리로 운다고 한다.
뻐꾸기가 숙주 새가 두려워하는 매를 닮는 쪽으로 진화했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올 4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진은 개개비 둥지에 알을 낳는 뻐꾸기를 연구한 결과
이런 사실을 밝혀냈다. 남의 집을 쉽게 뺏기 위한 진화라는 것이다.
숙주 새는 남의 자식인 줄도 모르고 똑같은 정성으로 알을 품는다.
휘파람새의 알은 부화하는 데 약 2주 걸리지만 두견이 알은 9일이면 된다.
남의 집을 빌려 썼으면 작은 보답이라도 해야건만 탁란조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먼저 부화한 새끼가 아직 부화하지 않은 주인집 알들을 바깥으로 내던지고 둥지를 완전히 독점한다.
탁란을 영어로 왜 ‘deposition’이라 하는지 이해가 간다.
군주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한다는 뜻인데,
주인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니까 이런 단어를 얻은 것이리라.
모반(謀叛)이 일어났는데도 휘파람새는 까마득히 모른다.
그래서 두견이 새끼가 홀로 날 수 있을 때까지 먹이를 물어다 준다.
육추(育雛)라 한다. 알에서 막 깬 병아리를 키운다는 뜻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