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원 쓰고도 못 막아⋯춘천의 산이 죽어간다
'소나무 에이즈' 재선충병 팬데믹
춘천 2만9000그루 피해⋯강원 88%
3년간 예산 100억원, 손 못댄 곳 많아
“감염 대응식이 아닌 선제적 방어 필요”
/오현경
춘천시 남산면 인근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들이 붉게 변해있다. (사진=이정욱 기자)
지난 17일 춘천시 남산면 일대. 한창 푸르러야 할 5월의 야산이 곳곳에서 붉은색으로 변해있었다.
붉게 시든 나무들은 대학가 근처 시내까지 퍼져 가는 곳마다 눈에 띄었다.
가까이서 살펴보니 소나무들의 잎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소나무를 말려 죽이는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들이다.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말라죽은 나무로부터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된
솔수염하늘소가 자라 주변 4km까지 확산시킬 수 있다”며
“이대로 몇년이 지나면 눈에 보이는 모든 나무들이 말라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춘천시 외곽 야산 곳곳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로 붉게 변해 죽어가고 있다.
소나무 에이즈(AIDS)’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은 전염 속도가 매우 빠른데다
치료 방법도 없어 빠른 방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춘천시는 5월 현재 소나무재선충병 확산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성충이 된 솔수염하늘소가 소나무재선충을 품고 이동하고 있어 더는 손쓸 방도가 없어서다.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솔수염하늘소가 성충이 되는 ‘골든 타임’에 선제적 방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MS TODAY 취재진이 이날 춘천 남산면·남면·북산면 일대를 살핀 결과,
차도로부터 관찰할 수 있는 야산은 물론 대학가 근처에도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들이 빼곡했다.
감염된 나무를 그대로 방치하면 재선충이 봄에 우화한 매개충을 통해 다시 주변 나무에 침입하고,
정상목을 감염시킬 수 있다. 산림 전문가들은 감염된 나무를 그대로 방치하면
수분이 없이 말라비틀어진 나무가 건조한 봄철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할 수 있고,
나무의 뿌리가 말라 토양 지지력이 약해지면 집중호우 발생 시 산사태가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소나무재선충은 길이 약 1mm의 실 같이 생긴 선충이다.
솔수염하늘소 등 매개충의 몸속에 서식하다 나무의 구멍을 통해 침입해 병을 일으킨다.
이때 감염된 나무는 재선충에게 수분, 양분 등을 모두 뺏겨
잎이 아래로 쳐지면서 잎이 붉게 변하고 결국 시들어 죽는다.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는 치료 방법이 없어 100% 시들어 죽고,
솔수염하늘소가 재선충병으로 죽은 나무에 산란을 하면 5~7월경 성충이 된 재선충은
주위의 정상목도 감염시켜 병이 계속해서 확산할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신속한 방제와 조기 발견이 매우 중요하다.
춘천시 남산면 방곡리의 한 야산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의 잎이 말라 아래로 쳐져있다. (사진=오현경 기자)
하지만 이 나무들은 올해 9월까지 사실상 방치될 수밖에 없다.
이미 성충이 된 감염 매개충은 손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춘천시는 지난해 9월부터 이어진 1년 치 방제작업을 지난 3월 모두 끝냈고,
다음 방제 작업은 올 9월부터 재개한다. 시는 올해 상반기(1월~3월) 방제사업에서만
남산면, 남면, 북산면 일대 1만 391그루를 제거했다.
김원호 녹색연합 활동가는 “예산 부족에 따른 어려움을 이해하지만 현재와 같은 방제는 하나마나”라고 지적한다.
그는 “현재 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에서 성충으로 우화한 매개충이 활동하면
주위 나무에까지 감염시킬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피해가 더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2~3년 뒤에는 해당 구역의 산림이 완전히 황폐화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강원특별자치도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고사목 발생 현황. (단위:그루) (그래픽=박지영 기자)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유독 춘천지역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각하다.
강원지역 전체의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약 3만 4847그루인데,
이 중 춘천시에서 발생한 피해 고사목이 2만 9193그루로 약 88%에 이른다.
이 기간 춘천시 다음으로 피해가 심한 홍천군은 3187그루 피해 고사목이 발생했다.
강릉시, 화천군, 철원군 등은 같은 기간 피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춘천지역의 피해가 큰 이유는 지자체에서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다.
전국적으로 확산세가 갑작스럽게 심해진 데다가 춘천시 내에 전문가도 부족하다.
춘천시에서도 전담 인력이 단 1명뿐이다.
장석준 도 산림과학연구원 녹지연구사는 “경기에서 극심지로 꼽히는 가평군이
춘천과 맞닿아있어 춘천의 피해가 큰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며
“잠복기가 2~3년으로 길게 나타나는 잣나무가 춘천지역에 많아서 방제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춘천시가 재선충병 발생을 막기 위해 사용한 예산은 지난 3년간 100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춘천시는 이 방제예산도 춘천시 전체 구역을 방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는 단목벌채(고사목을 골라 베기) 방식이 일반적인데,
한 그루를 베는데 인건비로 약 37만원이 든다.
인건비뿐 아니라 소나무재선충병 모니터링을 위한 예찰단 구성부터 시료 채취,
검경의뢰의 과정도 필요하고, 감염 발생시 나무를 파쇄하거나
훈증하는 등 후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시 산림과 관계자는 “국비 지원에 시·도비를 추가 편성하고,
타 병해충 관련 예산을 끌어다 쓸 정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춘천의 야산 곳곳이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들로 붉게 변한 모습. (사진=이정욱 기자)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는 2007년 이후 오랜기간 이어지면서 현재 ‘3차 팬데믹’을 맞고 있다.
산림청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국 재선충병 피해 나무는 264만 9020그루에 달한다.
특히 2022년 37만 8079그루에서 작년 106만 5967그루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2007년과 2014년에도 소나무재선충병으로 몸살을 앓았다.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은 현재의 방제 시스템을 통째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김 활동가는 ”잣나무 농가·보호수에 피해가 간다 해도 산주와 주민들을 설득해
선제적 조치로서 감염 고사목 주변의 구역을 모두베기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며
”더 나아가 앞으로 산림 생태계 연구와 새로 식재한 나무들 관리까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기후 변화로 인한 생물 다양성 악화가 계속해서 진행되는 현 상황에서
단순 병해충 대응 차원의 관습적 방제를 할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 차원에서도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으로 보고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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