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 임대⋯‘ 육림고개 청년몰,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상. 육림고개 청년몰, 그 이후
청년 상인의 무책임, 손 놓은 춘천시
문 여는 식당 손에 꼽아, 인적 드물어
젠트리피케이션 심화, ‘임대’ 현수막
춘천 육림고개 상가 십여 곳에 ‘임대’ 현수막이 붙었다. 한때 ‘청년창업의 신화’ ‘춘천의 핫플(핫플레이스)’로 불렸던 곳이지만 최근엔 저녁 시간에 인적을 찾기도 어렵다. 춘천시가 예산을 투입해 청년몰을 육성하고 인프라를 개선했지만 결국 상권은 몰락했다. 상인들의 실질적인 요구와는 동떨어진 행정, 무책임한 일부 청년몰 상인들에 대한 관리 부재가 이어지면서다. 수십억원의 혈세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여기가 육림고개 맞아? 사람도 하나도 없고 문은 다 닫았는데?”
6일 오후 6시30분 춘천시 죽림동 일대. 서울에서 온 20대 여성 관광객 3명이 몇년만에 다시 찾은 육림고개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대부분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지나다니는 사람조차 몇 없었다. 이날 작은 점포 건물 30여 동이 들어선 육림고개 상권에서 문을 연 식당은 6곳뿐이었다. 이들은 결국 “유령이 나올 것 같아 무섭다”고 중얼거리고는 택시를 불러 유명 닭갈빗집으로 향했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청년몰의 모범사례’이자 전국적 핫플레이스로 꼽혔던 육림고개 상권이 급격히 쇠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성기 20곳 가까운 청년몰 창업자들로 활력이 넘쳤던 거리는 이날 현재 절반 이상이 공실이다. 물리적으로 사업장을 유지하고 있는 곳 중에서도 다수는 사실상 휴업 중이다. 춘천시가 청년몰 조성과 임대료 지원, 인프라 구축 등에 쏟아부은 예산 수십억원은 흔적도 찾기 어렵다.
▶‘춘천의 경리단길’에서 ‘유령 상권’으로
춘천의 원도심 상권인 육림고개는 1980년대 전성기 이후 오랫동안 쇠퇴해 가던 곳이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춘천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저렴한 임대료에다 춘천시 지원까지 더해져 청년 창업자들이 모여든 덕이었다. 골목길 특유의 감성에 경양식·전집·공방·브런치 카페가 인기를 끌며 ‘춘천의 경리단길’이란 별명도 붙었다. 당시에는 도시재생과 청년몰의 선도 사례로 전국에 이름을 알렸다. 2018년 공영방송의 유명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육림고개를 조명하기도 했다. 2019년 당시 춘천시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육림고개 상권의 주말 일평균 방문객은 2000명, 점포당 일 매출액은 55만~80만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육림고개는 오히려 ‘몰락한 골목 상권’의 대표 사례로 남을 판이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2020년 8월 당시 육림고개 청년몰 점포는 18곳이었다. 하지만 2024년 2월 현재 같은 주소에서 동일한 업체명으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8곳뿐이다. 나머지 10곳은 폐업하거나 다른 상권으로 이전했다.
남아있는 점포들도 오래 버티기 어려워 보인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상권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육림고개 상권 내 요리주점 업종 3곳의 지난해 11월 월평균 매출액은 645만원으로 춘천 내 같은 업종 평균(1689만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핫플을 상징하는 업종인 ‘카페’는 지난해 8월까진 7곳을 유지했으나, 11월 들어 5곳으로 줄었다. 매출(1193만원) 역시 지역 평균(1777만원)을 밑도는 수준이다.
육림고개에 대한 관광객들의 관심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네이버 데이터랩을 통해 ‘육림고개’ 검색어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8년 11월 당시 100 수준이었던 검색량은 2024년 1월 기준 3으로 급락했다. 코로나19 이전 육림고개 상인회에 속한 이들만 50명이 넘을 정도로 상권이 번성했지만, 현재 상인회 구성원으로 남아있는 이들은 20명 남짓이다.
▶‘지원금 헌터’ 청년 사장님들부터 내뺐다
시로부터 지원금 받은 청년몰의 젊은 사장님들이 지속해서 영업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일부 상인들의 임시 휴업이 반복되면서 언젠가부터 온라인상에 ‘육림고개에는 문 닫은 가게가 많다’는 후기가 늘었고, 외부 관광객의 발길이 점점 끊겼다. 청년몰 상인은 자치 규약에 따라 ‘일 9시간 운영, 주 1회 정기 휴일, 임시 휴무 시 3일 전까지 운영위원회와 협의’ 등을 지켜야 했다. 예산으로 임대료를 지원받는 대신 실천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였다. 어길 시 벌점을 부과하고 상벌 기준에 미달하면 퇴출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강제성 없는 규약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일부 점포가 ‘지각 오픈’과 빈번한 휴업을 반복하자 다른 상인들이 항의해 봤지만, 춘천시는 “규약을 지키지 않아도 실질적으로 제재할 수단이 없다”며 방치했다. 코로나 시기와 겹치면서 육림고개를 찾는 발길은 급격히 줄었고, 코로나가 끝난 이후로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쇠퇴하는 상권에서 가장 먼저 발을 뺀 이들은 낮은 비용으로 창업에 도전했던 ‘청년몰’ 소상공인이었다. 2022년 청년몰 사업이 끝나면서 마침내 육림고개는 성장 동력을 완전히 잃었다.
육림고개에 진지하게 청춘을 걸었던 창업주들은 ‘지원금 사냥꾼’도 문제지만 이를 방치한 춘천시가 더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임대료 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육림고개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A씨는 “특정 업체가 지원금만 챙기고 책임감 없이 영업해도, 춘천시가 실질적으로 이들을 제재할 근거도, 의지도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춘천시는 문제를 일으킨 업체는 지원 기간 종료 후 다른 지원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했지만 청년몰을 나간 이후에도 춘천시 산하 기관의 다른 창업 지원사업에 선정된 곳이 있다”고 말했다.
육림고개에서 공방을 창업했으나 1년 전 춘천 내 다른 상권으로 옮겨간 청년 창업가 B씨는 청년몰 사업 지원 이후 건물 임차 문제로 춘천시와 건물주 간 소통이 되지 않자, 결국 이전을 택했다. B씨는 “임대료가 저렴하긴 했지만, 상권에 장점이 없고 공간도 협소했던 육림고개에 남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춘천시도 ‘육림고개 청년몰 지원 사업’에 대해 사실상 실패를 인정하지만, 실패 원인을 건물주들의 임대료 인상 탓으로 돌린다. 지난해 5월 홍문숙 춘천시 경제진흥국장은 시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손님이 몰리자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받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결국 청년들이 육림고개를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기적인 계획도 없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혈세를 낭비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육림고개에 청년몰을 유치하고 청년 창업을 중심으로 상권을 키워보겠다던 춘천시가 관련 사업에 쏟아부은 예산은 28억원에 달한다.''
육림고개 살리려는 몸부림⋯춘천시는 자책골로 답했다
하. 방치된 청년창업공간
20억원 들이고도 원래 목적과 달리 사용
원치 않은 인프라 공사에 개점 휴업
상권에 부족한 콘텐츠 육성 고민해야
춘천 육림고개 상권이 급속도로 위축되는 과정에서 춘천시의 행정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났다. 춘천시는 창업 지원금(28억원)만 받고 장사는 하지 않는 청년 상인들을 방치했을 뿐 아니라<‘핫플’의 몰락 상. 참조>, 청년창업공간 신축(20억원), 전선 지중화 공사(14억원) 과정에서도 연이은 자책골을 넣어 상권이 무너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 결과 62억원이 넘는 시민 혈세가 허공에 흩어졌고, 전국적인 ‘핫플’이 될 수 있었던 육림고개 상권 위축으로 생긴 경제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상권을 지키는 상인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춘천시의 무관심과 무대책에 속이 타들어 간다.
▶한산한 카페거리 중심엔 취업센터가
16일 오후 육림고개 정상부에는 ‘카페거리’라는 표지판 뒤로 ‘춘천시일자리지원센터’ 현수막이 걸린 3층짜리 신축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이 건물은 춘천시가 약사명동 도시재생뉴딜사업의 하나로 약 20억원을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연면적 552㎡)으로 2022년 9월 준공했다. 당초에는 육림고개 거리를 청년 기업가 육성 거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었다. 2020년 춘천시 도시재생과는 춘천시의회에 지역 청년들에게 소규모 창업 공간을 제공하고 창업 관련 교육, 컨설팅, 포럼을 열겠다고 보고했다. 기자재 구축과 프로그램 운영 등에도 10억원의 예산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건물은 당초 계획과 정반대로 현재 육림고개 상권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 됐다. 신축 공사가 시작될 때쯤부터 코로나 여파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며 당초 목적대로 건물을 사용하기 어려워졌다. 이 건물은 준공 이후에도 1년 이상 빈 상태로 방치됐다. 청년창업공간을 위탁 운영할 예정이었던 춘천시청년청은 지난해 운영비 예산이 전액 삭감되고 사무국이 운영을 종료하면서 사실상 해체됐다.
이 건물은 결국 지난해 12월에서야 춘천시일자리지원센터 직원 4명이 3층에 입주하며 주인을 찾았다. 그러나 이 센터는 취업·구직 지원 기관으로 육림고개 상권을 중심으로 청년 기업가를 육성한다는 당초 목적과는 거리가 멀다. 안 그래도 한산한 카페거리 한가운데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들어서면서 상권의 맥을 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민 다목적실 등으로 쓰일 예정이던 2층은 아직도 공간의 사용 용도를 확정하지 못해 비어있다. 춘천시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청년창업공간을 통해 취업과 창업이 한 번에 이어질 수 있어 육림고개에도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육림고개 상인들은 처음부터 상권의 알짜배기 자리에 춘천시가 관용 건물을 지은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비판한다. 육림고개가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전 음식점을 창업한 C씨는 “상권에 주차 공간이 부족하니 주차타워를 짓거나 아예 ‘차 없는 거리’를 조성해 달라고 건의했는데, 이 건물이 생기고 오히려 주차 공간도 줄었다”며 “춘천시가 보여주기식 성과를 내는 데만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6개월 가까이 이어진 전선 지중화 작업이 두 번째 자책골이었다. 춘천시가 한국전력과 업무협약을 맺고, 예산 14억원을 들여 육림고개 500m 구간에 관로를 매설하고 전신주를 뽑았다. 이 시기는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육림고개를 다시 부흥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었다. 그러나 이 시기 공사 근로자와 차량으로 거리가 막히며 남아있던 점포들이 사실상 개점휴업 할 수밖에 없었다.
2016년 창업 이후 육림고개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어쩌다농부의 경우, 지중화 공사 이후 주말에 찾아오는 외지 손님이 크게 줄었다. 어쩌다농부를 운영하는 김은희 더티파머스 이사는 “공사 기간 예고 없이 전기가 끊겨 냉장고에 보관했던 식재료를 버린 일도 있다”고 말했다.
육림고개의 상인들은 춘천의 경리단길이 될 수 있었던 이곳에 춘천시가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무너뜨린 데 대한 원망이 높다. 그러나 춘천시는 육림고개의 상황을 나 몰라라 하는 중이다. 춘천시는 청년몰 사업으로 지원금을 받은 후 현재 남아있는 상인들 수와 휴‧폐업률, 공실률 등을 묻는 본지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상인들은 육림고개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다. 주차 공간 부족 등의 불편은 옛 춘천교육지원청 부지를 이용하면 된다며 ‘육림고개 알리기’에도 나섰다. 소매상점을 운영하는 D씨는 “각자의 노력이 상권을 다시 살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밤늦게까지 일하고 있다”며 “일부 청년 상인들의 일탈과 지자체의 관리 부재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남아있는 상인들이 상권 부활을 위해 고심하고 있으니 지역 소비자분들이 많이 찾아와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육림고개를 찾은 관광객과 소비자들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희 더티
파머스 이사는 “유동 인구가 모이면 자영업자들은 자연스럽게 상권으로 몰려든다. 지자체의 역할은 주말에 춘천을 찾은 관광객들이 육림고개에서 먹고, 놀고, 즐길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원금 사냥꾼’의 예산 따먹기⋯
춘천시는 누군지 파악도 못 했다(뉴스후)
육림고개 청년몰’ 보도 이후
시의회 ‘지원금 사냥꾼’ 문제 지적
업계에선 이미 중복 수혜 논란도
시는 해당 업체 어디인지 파악 못 해
춘천시가 청년 지원사업에 참여한 일부 ‘지원금 사냥꾼’에 대한 관리 감독에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에는 지원금을 받고 가게를 차렸다가 얼마 안가 접고, 다른 사업의 지원금을 또 받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춘천시는 이런 사례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지난 19일 열린 춘천시의회 경제도시위원회에서는 본지가 보도했던, 육림고개 청년몰에서 빈번하게 나타난 지원금 사냥꾼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청년몰은 청년 상인들을 유치해 지역 상권을 활성화하는 목적으로, 춘천시가 28억원을 투입해 육림고개에 조성했다.
청년몰을 통해 임대료를 지원받은 창업자들은 자치 규약에 따라 ‘일 9시간 운영, 주 1회 정기 휴일, 임시 휴무 시 3일 전까지 운영위원회와 협의’ 등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일부 청년몰 상인들은 사전 예고도 없이 문을 닫거나, 약속된 영업시간을 지키지 않았고, 결국 육림고개를 찾는 소비자의 발길도 줄었다.
인근 상인들이 이런 문제를 항의하자, 춘천시는 “문제를 일으킨 업체는 지원 기간 종료 후 다른 지원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관리가 전혀 안되고 있었다.
지원금을 받아 육림고개에서 창업한 한 공방은 휴업을 밥 먹듯이 했다. 그러더니 가게를 정리한 후에 다른 법인명으로 춘천시의 창업 공간 지원 사업에 또 다시 선정됐다. 이로 인해 상인들 사이에선 ‘중복 수혜’ 논란까지 일었다. 모호한 규정을 이용해 일부 청년 창업가들이 ‘지원금 따먹기’를 하는 동안 춘천시는 현황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본지 보도 이후 춘천시의회에서는 육림고개 청년몰을 중심으로 나타났던
‘지원금 사냥꾼’에 대한 춘천시의 관리 감독 소홀을 지적했다. (사진=MS투데이 DB)
춘천시의회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김운기 경제도시위원장이 지난주 열린 임시회에서 “문제가 된 업체가 어딘지 파악하고 있는지” 질의하자, 육정미 춘천시 경제정책과장은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중복으로 지원받은 사실이 있다면 심각한 관리 부실이 아니냐”며 “지원제도를 오용한 당사자도 문제지만 관리 감독을 못 한 집행부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세금 관리가 부실한 데 대해 시민들의 비판도 거세다. 육림고개 청년몰에 대한 본지 보도에 시민들은 “지원금 헌터는 ‘먹튀’나 다름없다” “청년몰 사업이 끝나니 상권도 죽고, 청년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문제가 확산하자 춘천시도 상황 파악에 나선 모습이다. 28일 춘천시 경제진흥국 소속 공무원들은 육림고개에서 식사한 후, 소양강댐 다목적소양 등 지역 내 청년 창업 공간을 둘러보며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경제진흥국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취재진과 만나 “앞으로 사업이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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