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대형산불, 무엇이 문제인가

 

입산자 실화·담뱃불·방화 원인…10건중 8건 피할 수 있었던 참사

 

(1)자연보다 인위적 요인 커

 

도내 25년간 31건 분석 결과
26건이 사전통제 가능한 원인
2017년 이후 발생 빈도 급증
“대응체계 종합적 점검해야”

강원도가 사회재난인 ‘대형산불'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돼 있다. 산림보호법에 따르면 대형산불은 산림 피해면적이 100㏊ 이상이거나 24시간 이상 지속된 산불을 의미한다. 지난 4일부터 강릉·동해·삼척·영월 등에서 발생한 대형산불의 피해면적은 5,310㏊(잠정)로 2000년 동해안 산불(2만3,794㏊) 이후 최대 규모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것도 이번이 5번째(2000년·2005년·2019년·2022년 3월6일, 8일)다. 본지는 강원도 대형산불의 원인과 대응체계의 문제점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최근 25년간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10건 중 8.4건은 사람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양간지풍과 가뭄 등 자연적인 요인에 앞서 인위적인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인재(人災)'였다.

본지가 강원도산불방지대책본부를 통해 확보한 최근 25년간(1998~2022년) 강원도 대형산불 31건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84%(26건)가 사전에 통제가 가능한 원인이었다.‘입산자 실화(추정 포함)'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폐기물 소각이 6건, 전기류 문제 5건, 담뱃불 실화(추정 포함) 3건, 방화(추정 포함) 2건, 건축물 화재 2건 등이었다. 그 밖에 북한에서 남하가 3건, 원인 미상 2건 등이었다.

강원도 대형산불은 ‘봄철 동해안 산불'로 봐도 무방할 만큼 같은 시기, 같은 지역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25년간 발생한 대형산불의 87%(27건)는 동해안 시·군에서 발생했고, 발생시기도 ‘3~5월'이 87%를 차지했다. 옥계면의 경우 이번이 4번째(2004년·2017년·2019년·2022년) 대형산불이었다.

심각한 것은 발생 빈도가 2017년 이후 눈에 띄게 잦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25년간 연도별 발생 건수를 보면 1998~2005년 17건이 발생한 이후 2006~2016년까지는 대형 산불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7~2022년 중 한해(2021년)만 제외하고 해마다 발생했다. 특히 2018년 이후부터는 ‘건축물 화재'로 인한 대형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김경남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19년(고성·속초)에 산불이 도시로 확산돼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같은 재난이 또 반복됐다”며 “충분한 대응체계를 갖췄는지 종합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불 잘타는 소나무 위주 조림 매번 되풀이

(2)허술한 재발 방지대책

 

마을 비상소화장치 부족
간이 상수도지역 피해 커
방화림·스프링클러 절실

강원도 대형산불이 봄철 동해안에서 반복되고 있지만 예측과 대비가 가능함에도 해마다 되풀이되는 형국이다. 최근 25년간 강원도 대형산불의 87%(27건)는 동해안에서 발생했고, 발생 시기도 ‘3~5월'이 87%였다. 본지는 대형산불 최다 발생지역인 강릉 옥계면(2004년·2017년·2019년·2022년)을 집중 취재하며 산불 방지대책의 허점을 살펴봤다.

지난 10일 오후 강릉시 옥계면 남양2리. 2019년 산불로 나대지가 된 뒷산에 소나무 묘목이 2.5m 간격으로 심겨 있었다. 산불 후속대책으로 4년간 85억여원이 투입돼 986㏊에 나무 150만 그루를 심는 조림사업이 추진됐지만, 지난 5일 발생한 대형산불로 일부 구역은 또 불에 탔다.

정부는 2019년 동해안 산불백서를 발간하며 “소나무 단순림 위주로 구성된 임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혼효림 조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강릉 옥계면에 지난 4년간 심은 복구 수종의 70%는 소나무였고, 30%만 자작나무, 밤나무 등이었다. 병균에 취약해진 땅에 잘 자라고 산사태를 막을 ‘신속한 산림 복구'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산불 방지 측면에서는 ‘도돌이표 대책'이었던 셈이다.

정작 옥계면 대형산불의 최대 변수인 ‘바람'에 대비한 초기 진화대책은 취약했다.

민가 보호를 위해 마을 비상소화장치가 드문드문 설치됐으나 중심부에 국한됐다. 호명동 등 더 깊은 마을에는 설치되지 않았고 결국 이번에 5채가 전소(빈집 포함)됐다. 지방 상수도 전환이 이뤄지지 않아 간이 상수도 시설을 쓰는 ‘물 부족 마을'의 피해가 특히 컸다. 김영기 남양2리 이장은 “봄 가뭄으로 하천이 말라 산불이 나면 물 확보가 중요한데, 지방 상수도 전환을 모든 마을로 확대해 달라고 숱하게 건의했지만 예산 부족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했다”고 지적했다.

비상소화장치 사용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고령의 주민들은 이번에 경운기 등 농기계에 의존해 초기 진화에 나섰다.

황정석 산불방지정책연구소장은 “옥계면은 양간지풍 외에 골바람까지 강해 산불에 매우 취약한 지형”이라며 “지역 특수성을 고려해 산불 진화차량 상주, 마을 주변 방화림 조성, 초대형 스프링클러 설치 등 국가적 차원의 지역 맞춤형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초과근무 수당없고 보상휴가만
6개 지역은 산불대응센터 전무
자율방재단 고압분무기로 불꺼

지난 5일부터 13일까지 발생한 강원도 산불 현장에 투입된 산림청 산불재난특수진화대 소속인 50대 A씨. 정부가 운용하는 ‘최정예 산불진화대'이지만 A씨에게 지급된 옷과 장갑은 방수도 제대로 되지 않아 헬기가 물만 뿌리만 속옷까지 젖었다. 연기도 제대로 차단되지 않는 마스크는 물에 젖으면 숨 쉬기도 힘들었다.

산 정상부 진화 작업은 1개조당 10~13명씩 짜인 인력 규모로는 역부족이었다. 물이 가득 찬 무거운 호스를 수십~수백m씩 들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간혹 지자체 공무원이나 일반 진화대원이 도왔지만 함께 훈련을 받은 인력이 아니어서 호흡을 맞추기 어려웠다. 1주일 넘게 초과 근무를 했지만, 수당 예산이 없어 보상휴가만 받는 것이 현실이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이하 특수진화대)가 전면 도입된 지 6년째가 됐음에도 대형산불 발생 시 이들의 근무 여건은 열악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헬기나 차량이 접근하기 어려운 산불 현장에 투입되는 특수진화대는 ‘숨은 영웅'으로 불리지만 전문성 증대는 어려운 구조다.

15일 산림청에 따르면 강원권 관할인 동부 및 북부지방산림청의 특수진화대는 182명으로 이 중 63%는 기간제근로자이고 나머지는 공무직이다. 2019년 동해안 산불 이후 정규직화가 이뤄지기 시작했지만 월급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 월 250만원으로 동일하다. 지급 장비가 열악해 사비로 구입하려고 해도 쉽지 않다. 또 2~5월 산불 발생기간에 초과근무가 빈번하지만 수당 대신 보상휴가를 받고 있다.

김경남 강원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산불이 발생하지 않는 기간에는 훈련을 통해 이들의 전문성을 높여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산불진화시설과 장비, 인력을 통합 관리하는 ‘산불대응센터'의 경우 12개 시·군(춘천·원주·강릉·속초·삼척·태백·홍천·횡성·정선·인제·양양·양구)에만 설치돼 있다.

산불 발생 시 민관 협동체계도 중요하지만, 시민 봉사자들의 근무 여건은 안전하지 않았다.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시·군별로 구성된 자율방재단의 경우 단원들이 방염복도 입지 못하고 투입됐다.

임종호 강릉시자율방재단장은 “이번에 코로나 방역용으로 썼던 고압 분무기로 산불 진화를 했는데, 효율적인 산불 진화를 위해서는 장비가 중요한 만큼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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