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한국]

 

 1965년 자동차 생산 북한 4400대 vs. 남한 100대, 지금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은 대한민국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곧 동서 냉전의 축소판이 됐다.

북한은 소련에 의해 사회주의 노선을, 남한은 미군정과 함께 강력한 반공 노선을 추구했다.

그렇게 ‘하나의 한국’은 1948년 두 개로 갈라졌다.
 
분단 70년을 맞은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달라진 남·북의 모습을 살펴본다.  
  
 분단 70년, 통계로 보는 남북 

 

정치

 

 

북한은 세습을 통해 분단 70년간 김일성 일가 3명이 최고지도자 위치를 유지해 왔다.

김일성(1948~1994)·김정일(1994~2011)·김정은(2012~ 현재)이 그들이다.

 

반면 남한은 군부독재 시기를 겪었지만, 현재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총 12명의 최고 지도자가 있었다.

 이중 이승만(1~3대, 1948~1960)과 박정희(5~9대, 1963~1979),

전두환(11~12대, 1980~1988)만이 2차례 이상 대통령을 맡았다.

남한 대통령의 평균 재임 기간이 5.8년인데 반해 북한은 23.3년에 달한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자유도는 2017년 데이터를 반영한 2018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가 나왔지만, 정권과도기라서 제외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자유도는 2017년 데이터를 반영한

2018년 프리덤하우스 보고서가 나왔지만, 정권과도기라서 제외했습니다.

 

국제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남한의 정치적 자유도지수는

 1987년 민주 항쟁 전까지는 5점(7점 척도-최고 1점, 최저 7점)으로

부분적 자유와 비자유 국가의 경계선에 있었다.

 

하지만 민주 항쟁 이후에는 2점으로 자유 국가로 평가됐으며 2004~2012년 1점으로 최고점을 얻었다.

2013년 이후에는 다시 2점으로 하락한 상황이다.

 

북한의 경우 계속 최저인 7점을 기록 중이다.

언론 자유도지수(0점이 최고점, 최저점은 100점)의 경우 한국은 30점 내외로

전 세계 40~60위권인 반면, 북한은 95점 이상으로 세계 최악으로 평가 받고 있다.  


  

경제

분단 70년간 남·북한이 가장 많이 달라진 분야다. 6.25 전쟁으로 남북한은 폐허가 됐다.

1953년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은 연 68달러, 북한은 53달러로

아프리카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세계 최빈국'에 속했다.

 

이후 1960년대~70년대 초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국민소득이 2배 가까이 높았다.

하지만 70년대 중반 이후 남한의 수출주도형 경제가 자리 잡으며 상황은 역전됐다.

 

한국이 1994년 1인당 GNI 1만 달러를 넘어선 데 반해,

북한은 1970년대 수준인 400달러를 벗어나지 못했다.

 

2016년 기준 남한의 1인당 국민소득(2만 7812달러)은 북한(666.9달러)보다 약 41.7배,

남한의 국민총소득(1639조 665억원)은 북한(36조 3730억원)의 45.1배 크다.

 

남·북의 무역총액도 계속 벌어져 왔다. 1970년까지만 해도 양국의 무역량은

남한 28억 2000만 달러, 북한 7억 4000만 달러로 약 4배가량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1990년 남한의 무역량이 1348억 달러까지 늘어난 데 반해,

북한은 41억 달러에 그쳐 격차는 32배로 벌어졌다.

 

이 격차느 2007년 한때 248배까지 벌어졌고,

2016년 기준으로는 남한 9016억 2000만 달러, 북한 65억 3000만 달러로 138배 차이다.   
 

 

북한의 교역국은 중국 편중이 심하다. 2016년 기준으로 약 92.7%나 된다.

핵실험 등으로 국제 제재가 심해진 탓이다.

 

 반면 남한의 교역국은 수출 기준으로 볼 때 중국(24.8%)·미국(12%)·베트남(8.3%) 등 다양한 구성을 보인다.

주요 수출품도 다르다. 북한이 수출품의 절반 이상을 철광석 등 광물성 생산품에 의존하고 있는 데 반해

한국은 반도체, 선박·해양, 자동차, 석유제품, 디스플레이 등 첨단 산업 위주다. 
 
산업

 

경제체제의 차이는 산업 발전의 차이로 이어졌다.

남한은 '한강의 기적'이란 찬사를 받으며 1996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넘어섰다.

소위 '선진국 모임'이라고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이 때 북한은 역대 최악의 기근을 겪으며 소위 '고난의 행군'을 했다.

남한은 동아시아금융위기가 닥친 1997년부터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어려움을 겪었다.
 
분단 직후에는 북한이 산업화에서 앞서 갔다.

중공업 등 기존 산업시설이 북한 지역에 몰려있었고, 남한에는 산업 기반이 거의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6년 남한의 산업구조는 서비스업(55.9%)·광공업(27.2%)·제조업(26.8%) 등

2·3차산업 위주로 재편된 반면, 북한은 농림어업(29%)·광공업(28%) 등 1·2차 산업 위주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북한은 정부(22.4%)·농림어업(21.7%)·광업(12.6%) 등의 순으로 남한과 전혀 다른 형태의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산업화의 상징 중 하나인 자동차 생산량과 자동차 등록 대수를 봐도 남·북의 산업적 차이는 명백하다.

1965년 당시 북한은 4400대의 차량을 생산한 반면 남한은 불과 100대를 생각했다.

 

하지만 2016년을 보면 한국은 422만 8500대의 차량을 생산한 반면, 북한은 3800대 생산에 그쳤다.

등록된 차량을 보면 남한은 총 2180만대로 국민 2.5인당 1대 꼴이다.

이에 비해 북한은 28만 5000대 차량만 등록돼 90명당 1명꼴에 불과하다.

 


북한이 우위를 보이는 부분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탄 생산량이다.

세계 최대 무연탄 매장지 중 하나인 북한은 1965년 이미 1786만t의 석탄을 생산했고

2016년에도 3106만t의 석탄을 생산했다.

 

반면 남한은 1965년에는 1025만t의 석탄을 생산했지만,

산업구조가 바뀌고 탄광이 문을 닫으며 2016년에는 173만t의 석탄만 생산했다. 
  

 

남한의 군사력은 세계 7위, 북한은?


②군사(핵), 사회간접자본(SOC), 생활 
 


 

6.25 전쟁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몇 년에 걸쳐 남침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련제 T-34 전차 242대, 전투기 170여대 등 남한에 없는 화력을 보유했고 일반 병력도 남한의 두배 이상 됐다.

북한은 이를 바탕으로 개전 3일 만에 서울을 함락하고 3개월이 안 돼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   
 

 

 

현재 시점에서 남·북의 군사력 우위는 단언하기 힘들다.

공군ㆍ해군 무기의 질적 측면에서는 남한이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병력이나 재래식 무기의 양을 비교하면 북한이 불리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특히 미사일ㆍ방사포 전력이나 핵ㆍ화학무기 등 비대칭 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종합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의 군사력평가기관 GFP는 2018년 보고서를 통해

남·북의 군사력 순위를 각각 세계 7위와 세계 18위로 평가했다. 
 

북한이 미국을 포함한 남한과의 군사력 경쟁에서 '히든카드'로 삼은 것은 핵이다.

1980년대 말부터 핵시설을 준비한 북한은 1993~94년 1차 북핵 위기를 거쳐 2005년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이어 2006년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잠잠했던 북한은

2013~2017년 사이 3~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사실상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려는 움직임이다.

현재 북한은 10~30여기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이 정권을 보장받으려는 하나의 축이 핵이라면 다른 하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다.

핵을 싣고 미국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있어야 소위 '공포의 균형'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북한은 사거리 6000㎞를 상회하는 화성-14호, 1만㎞로 추정되는 화성 15호 등을 보유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국방성을 인용해 "올해 북한이 ICBM을 실전 배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SLBM)의 개발도 진행 중이다. 



사회간접자본

 

전후 도로ㆍ철도 등 사회간접자본(SOC)이 확충되던 1970년대.

남·북은 모두 도로와 지하철 개통에 박차를 가했다.

북한은 서울 지하철 개통에 1년 앞서 평양 지하철을 개통(1973년)하며 체제 경쟁을 했다.

 

도로는 1965년까지 총연장 면에서 남·북이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남한이 1970년 경부고속도로를 개통하며 차이가 벌어졌다.

 

2016년 현재 남한의 도로 총연장은 10만 8780㎞인데 반해 북한은 2만 6176㎞다.

고속도로는 남한이 4437㎞, 북한은 774㎞로 6배나 차이가 벌어졌다.   
 

북한은 산지가 많아 도로 확충이 힘들다.

때문에 철도를 중심으로 물류를 공급하는 데 힘을 기울여 왔다.

 

북한에서는 ‘주철종도’라는 표현을 쓰는데, 철도가 육상수송의 중심이고

도로와 해운이 이를 보조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북한 화물 수송의 90%, 여객 수송의 62%가 철도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1965년 기준 철도 총연장은 북한이 1000㎞가량 앞섰고,

남한에 KTX 등이 확충된 현재도 남한(총연장 3918㎞)보다 북한(총연장 5226㎞)이 더 길다.

 

단 북한은 철도의 98% 이상이 단선이고 선로가 노후화돼 평균 속력이 시속 30㎞에 그친다.

반면 남한은 복선철도가 많아 궤도연장을 기준으로 보면 2016년 현재 9364㎞가 된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전력 생산은 1970년대까지 북한이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다.

당시 북한은 수력과 화력발전소를 기반으로 남한의 4배가량의 전력을 생산했다.

 

하지만 남한이 1978년 고리 1호기를 시작으로 원자력 발전을 시작하며,

전력 생산에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2016년 기준 전력 생산은 남한이 5404억㎾인데 반해 북한은 239억㎾로 22.6배 정도 차이가 난다.

북한은 인공위성 사진에서 보듯 여전히 전력 부족이 심각한 상태다. 
 
생활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찾은 북한 응원단의 모습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큰 차이가 난다. 단적으로 전화 가입자 수를 살펴보면

남한은 2016년 기준 2800만명, 북한은 118만명이다.

 

스마트폰은 남한이 전체 인구의 90%(2017년 기준)가 사용 중인 반면,

북한의 사용자는 전체 인구의 15% 정도로 추산된다. 
 

남북한 주민의 외형도 과거와 달라졌다. 영양 상태의 변화 등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1945년 광복 당시 한국인의 평균 신장은 남성 166.5㎝, 여성 154㎝ 정도였다.

 

2015년 기준 북한의 남성은 평균 165.6㎝, 여성은 평균 154.9㎝로 70년간 큰 변화가 없었지만,

남한은 남성 173.5㎝, 여성 160.9㎝로 약 6~8㎝ 정도 키가 커졌다.

 

몸무게도 남북 격차가 심하다. 남한 남성은 평균 69㎏인데 반해 북한은 56㎏에 불과하다.

여성도 남한 여성이 53㎏인데 반해 북한 여성은 45㎏에 불과하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10년 기준 통계를 보면 남·북의 주류 소비 패턴도 큰 차이를 보인다.

음주 인구(15세 이상)는 남한이 66.5%로 북한(33.7%)보다 두 배나 많다.

 

 1인당 주류 소비량도 남한은 27.5L인데 반해 북한은 17.5L에 그친다.

주로 마시는 술도 다르다. 북한은 소주 비율이 95%나 되고 맥주 비율은 5%에 그쳤다.

 

반면 남한은 맥주가 25%로 가장 많지만,

소주·와인·막걸리·위스키 등 다양한 주종을 마시고 소비하고 있다. 
 


[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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