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학교 죽이는 지방교육재정효율화...
사람을 키우는 교육, 우린 못하나
/오마이뉴스
벌써 여러 해 전 우체국은 문을 닫았다. 파출소도 먼 곳으로 옮겨갔다. 은행이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 몇 해 동안 노곡 마을에서는 공공기관 대부분이 사라지고, 젊은 층이 빠져나가면서 마을은 텅 비고 죽어간다. …… 오늘날 많은 마을들이 마치 유령도시처럼 되었다. 한때 학생들이 가득 뛰놀던 학교에는 들풀이 무성히 자라고 유리창은 깨어지고 거미줄만 가득하다.
(뉴욕타임스 기사 원문 As South Korean Villages Empty, More Primary Schools Face Closings)
바깥에서 이 땅의 학교와 마을을 본 것인데 어떤가. 이런 풍경은 서울과 경기만 빼면 이 나라 어디를 가든 앞으로 더욱 자주 만나야 할 우리의 뒷날이기도 하다. 교육부는 통폐합 점수로 시도교육청을 겁주고 정부는 지방교부금으로 목줄을 죈다.
작은학교 통폐합정책, 과연 이득이 뭘까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그간 작은학교 통폐합 정책으로 얻은 이득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학생이 줄어들면 학급 편성이 힘들어지고 복식수업으로 교육 여건이 나빠진다. 하지만, 학교가 문 닫고 나면 학생들이 통학 불편이 따르고 마을은 비고 문화공간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돈의 잣대로 보아도 효과는 크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12년 한국교육개발원이 낸 <농산어촌 소규모 학교 통폐합 효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다섯 해 동안 이루어진 작은학교 통폐합의 비용 대비 수익은 고작 1.1밖에 안된다. 이 기간에 정책을 수행하려고 들어간 인건비와 운영비 같은 직접 비용이 637억~1064억여 원이었고, 통폐합 지원금으로 들어간 돈이 2995억여원이었다. 총수익은 적게는 3729억여 원에서 많게는 4455억여 원을 얻어 작은 학교 통폐합 정책이 비용에 견주어 얻은 수익은 0.95~1.25(평균 1.1)에 그쳤다.
그런데도 여전히 자본의 논리는 꿋꿋하다. 물론 우리들의 비뚤어진 교육열도 알게 모르게 기여하고 있다. 집도 차도 학교도 큰 게 좋은 거라고 여겨오지 않았던가. 놀아도 큰물에서 놀아야 큰 인물이 된다고 너나없이 큰 학교 보내는 것을 내남없이 자랑으로 여겼다. 큰 학교가 어디든 학교가 크니까 덮어놓고 '교육을 잘하는' 학교로 여겼다. 거꾸로 작은 학교는 경쟁에서 밀려나 뒤떨어지고 '교육을 못하는' 학교로 낮잡아봤다.
그 덕에 강원도 내에서는 1992년부터 2009년 사이에 자그마치 348개 학교가 문을 닫아야했다. 그러자 <뉴욕타임스>가 짚은 것처럼 새로운 문제들이 불거졌다. 학교가 사라진 마을에 아이들이 사라졌다. 자녀를 둔 사람들도 교육 때문에 마을을 떠났다. 마을엔 늙고 병든 어르신들이 남아 한숨으로 하루 하루를 보낸다. 남은 아이들은 굽이 산길을 돌아 학교를 다녀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뒤 강원도교육청은 교육부 통폐합 기준이 학생 수 60명 이하라고 해도 주민이 원하지 않으면 통폐합을 하지 않고 버텼다. 작은학교 희망만들기 사업을 펼치면서 학교 통폐합은 최근들어 크게 줄었다. 작은 학교들도 지역 특성을 살린 맞춤형 교육으로 호응하고 지역사회의 협력을 끌어냈다. 작은 학교는 농어촌 인구를 늘려 지역을 되살리는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지난해 정부는 지방교육재정효율화 방안을 느닷없이 내놓는다. 그 속에는 시·도교육청 재정 평가에서 작은 학교를 문 닫게 하면 더 좋은 점수를 준다고 꾀었다. 말이 좋아 효율화 방안이지 속속들이 뜯어보면 학생 수가 적은 지역에는 교부금을 덜 주겠다는, 시도 교육청을 겁주는 소리다. 바꿔 말하면 지역 교육 포기 선언인 셈이다.
얼핏 들어서는 학생 한둘을 위해 학교를 운영해야 하느냐는 말에 고개 끄덕여질 만하다.
학생 수가 줄어든 만큼 거기에 맞게 학교 수를 줄여 교사 수, 학교 운영 비용을 절약하겠다는 계획이라니.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작은 학교가 많은 지역에서는 교사가 줄고 학교도 무더기로 문 닫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 방안을 시행했을 때 강원도만 해도 초·중·고 673개교의 40.1%인 270개교가 통폐합되고 만다. 면 지역 28곳에는 아예 학교가 없는 지역이 되고 만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도 사라진다
▲ 한 학생을 위해 기차가 온다 기차를 타고 통학하는 학생을 위해 기차역 폐쇄를 미룬 일본. 사진은 아사히신문 인터넷판에서 갈무리함. | |
ⓒ 아사히신문 |
우연히 일본 인터넷신문 기사를 보았다. 일본 이야기지만 온종일 그 기사가 떠올라 마음이 따뜻했다. 신문이 전하는 말인즉, 일본 홋카이도 카미시라타키역에는 하루 두 차례 기차가 서는데 기차로 통학하는 오직 한 학생을 위해 선다고 한다. 일본을 두고 돈만 밝히는 경제동물이라고 깔보고 욕하는 말들이 많지만, 이 일 하나만 보면 교육을 생각하는 일본 사회의 수준은 우리보다 한 길 위다. 효율과 자본의 잣대로만 따지면 어찌 기차가 학생 시계에 맞추어 꼬박꼬박 설 수 있겠는가.
만약 여러분이 시골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라면 어찌 하겠는가. 그 부모라면 또 마음이 어떠 하겠는가. 아이들에게 학교는 무엇인가. 아이들은 왜 학교에 다니는가. 지역 주민에게 학교는 무엇이며 또 교육은 무엇인가.
자본의 논리로 교육을 말할 때 우리는 삶도 교육도 지역도 모두 잃고 말 것이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아이들은 과연 어찌 되겠는가. 실개천이 살아야 강도 살아나는 법이다. 거꾸로 실개천이 메말라 버리면 강이라고 멀쩡하겠는가. 기어이 마를 수밖에 없다.
헌법 제31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교육은 이 땅에 발 딛고 자라나는 아이들 누구라도 누려야할 헌법적 권리다. 더구나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은 시도교육청을 길들이라고 있는 게 아니라 '교육의 균형 있는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이 사람답게 자라나자면 땅과 사람이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이문재 시인은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지금 여기서 아이 하나 하나를 우리 아이로 보듬어 안지 않으면 우리에게 좋은 뒷날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러자면 두말할 것도 없이 서로 머리 맞대고 끙끙거리는 어른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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