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구치 요시카즈·쓰지 신이치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 최종규
|
|
|
일본에서 '자연농'을 한 지 마흔 해 남짓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농 한길을 오랫동안 걸어오면서 느끼거나 생각한 이야기를 이 조그마한 책에 살뜰히 풀어냅니다.
"농촌은 환금 작물을 대규모로 단일 재배하는 공장으로 바뀌,
거기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다수도 기계나 화학비료나 농약을 비롯한
공업 자재를 소비하는 측이 되어 많은 부채를 지고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의존도를 높여 가고 있을 뿐이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11쪽 중에서
예부터 큰바람이 여러 차례 불지 않으면 나락이 제대로 안 익는다고 했어요.
큰바람이 휘몰아쳐서 나락을 흔들어 주어야 볏줄기도 튼튼하고 나락도 알차게 맺는다고 했어요.
큰바람이 휘몰아치면서 풀벌레나 모기도 날려 버리기에, 시골에서는 꼭 큰바람이 불어 주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나 오늘날 시골에서는 바람을 걱정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옛날과 달리 오늘날 볍씨는 품종개량(유전자조작)을 해서 짧고 몽땅합니다.
짤막하면서 열매를 더 많이 맺도록 하는 '품종개량 시킨 볍씨'이기 때문에
바람이 불든 안 불든 대수롭지 않게 여길 뿐 아니라, 바람이 안 불어야 더 잘 된다고까지 합니다.
자연농의 진정한 의미
자연농이란 무엇일까요? 자연농이나 유기농 같은 말은 일본에서 나온 농사법입니다.
자연농은 자연 그대로 자라도록 두는 농사입니다. 유기농은 똥오줌을 거름으로 삭혀서 주는 농사입니다.
자연농에서는 거름을 주지 않고 농약이나 비료도 쓰지 않습니다.
유기농은 거름을 쓰는 농사이기에 농약을 쓸 수도 있고 안 쓸 수도 있습니다.
농약을 안 쓰는 농사는 '무농약'이라 하고,
무농약이라고 하더라도 거름을 안 쓸 수 있고, 화학비료를 쓸 수 있습니다.
'저농약'은 농약을 적게 쓴다는 농사이고,
‘친환경'은 '친환경 농약'하고 '친환경 비료'를 쓴다는 농사입니다.
'관행농'은 농약과 비료를 마음껏 쓸 뿐 아니라, 비닐과 기계도 마음껏 쓰는 농사입니다.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자연농'일 때에는 거름도 비료도 농약도 비닐도 안 쓰지만,
농기계까지 안 씁니다. 오직 사람 손으로만 짓는 농사가 바로 자연농입니다.
그래서 유기농도 '무농약 유기농'일 때에 비로소 농약이 없이 똥오줌 거름을 쓰는 농사가 됩니다.
그런데 똥오줌 거름도 '관행 축사'에서 화학 사료를 먹은 소똥이나 돼지똥을 쓰는 유기농이 있고,
'친환경 축사'에서 덜 나쁜 화학 사료를 먹거나 볏짚을 먹인 소와 돼지가 눈 똥을 쓰는 유기농이 있습니다.
가게에서 파는 유기농 곡식이나 열매 가운데에서
'사람이 눈 똥오줌'만 쓰는 유기농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 똥오줌만으로는 드넓은 논밭에 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는 누구나 시골 사람이었으니 누구나 시골 일을 다 알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도시 사람이기에 누구나 시골 일을 다 모릅니다.
'자연농·유기농·친환경·관행농' 같은 말조차 모르는 시골 사람이 많고,
도시에서 생협 회원이면서 시골 일을 스스로 공부한 사람이 아니라면
이런 농사법이 저마다 어떻게 다른가를 찬찬히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농약에 대한 문제의식이 약한 한국 사회
한국 사회에서는 농약이 어떤 피해를 주는지 알려주는 학교나 기관이 아직 없습니다.
시골에서 '농약 마시고 음독자살을 한다'는 신문글은 곧잘 나오지만,
농약이 어떠한 화학약품인가를 제대로 밝히거나 알리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셔요. 농약을 마시면 죽습니다. 그렇지요?
빚 때문에 죽고 싶어서 농약을 마시는 시골 사람이 있습니다만,
농약을 마시니 죽어요. 마시면 죽는 농약을 뿌리면 어떻게 될까요?
농약을 뿌리는 시골 사람은 농약을 뿌리면서 농약 바람을 함께 마십니다.
'마시면 죽는 농약'을 논밭에 칩니다.
그러니, 시골 사람은 농약을 치면서 늘 앓을 수밖에 없습니다.
농약을 치면 칠수록 관절이며 호흡기이며 온갖 곳이 다 아프기 마련입니다.
'늙어서 아프다'기보다, '힘든 일을 해서 아프다'기보다,
바로 농약을 치기 때문에 아픕니다.
"다양한 풀들과 작은 동물이 동시에 살아야 서로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반년 안에 죽고 그 시체가 다음 생명의 무대가 되는 것입니다.
봄에 싹을 낸 풀이 자라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어미가 죽으면,
지금까지 없었던 다른 성분을 만들어 더욱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79쪽 중에서
도시 사람도 생각해야 합니다. 마시면 죽는 농약을 시골에서 뿌립니다.
농협을 거쳐서 파는 모든 곡식과 열매는 '농협에서 시골 사람한테 내다 판 농약을 뿌려서 얻은' 곡식과 열매입니다.
생협이 아닌 모든 백화점과 가게에 놓인 곡식과 열매는 농약을 아주 신나게 뿌려서 거둔 곡식과 열매입니다.
미국에서는 <침묵의 봄>이라는 책이 나왔다면, 일본에서는 <복합오염>이라는 책이 나왔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아무런 책이 안 나옵니다.
농약이 사람을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죽이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책이 한국에서만큼은 아직 제대로 안 나옵니다.
왜 그러할까요? 한국에서는 왜 농약 이야기를 안 다루거나 못 다룰까요?
사람들이 '참된 지식'을 얻으면 나라가 뒤집힐 테니까요.
농약으로 장사하는 농협과 정부기관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거나 크게 뒤흔들릴 수 있을 테니까요.
'먹으면 죽는 농약'을 논밭에 뿌리면 괜찮을까요?
사람은 죽이지만 풀은 안 죽이는 농약일까요?
포도밭이나 능금밭에 농약을 얼마나 많이 뿌리는지 사람들은 얼마나 아는가요?
배밭이나 딸기밭에도 농약을 얼마나 많이 치는지 사람들은 얼마나 아는가요?
'가장 값싼 쌀'은 농약을 가장 많이 친 쌀입니다.
농약을 덜 칠수록 쌀은 값이 비싸다고 하고, 농약을 하나도 안 치고 유기농으로 지은 쌀은 값이 더 비싸다고 하며,
유기농조차 아닌 자연농으로 지은 쌀은 값이 가장 비싸다고 합니다.
왜 그러할까요? 농약도 비료도, 또 '유기질'이라고 하는 거름조차
사람 몸에는 '안 좋은' 줄 도시 소비자 스스로 알기 때문입니다.
지식으로는 아직 잘 몰라도 '몸으로는 먼저'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시골에서는 관행농을 버리고 적어도 유기농으로 간다면,
나아가 자연농으로 간다면 쌀도 푸성귀도 열매도 '가장 비싸게' 팔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시골에서는 관행농을 못 버리고 안 버릴 뿐 아니라,
유기농이나 자연농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관행농 버리고 자연농으로... 왜 가지 않을까?
"자연의 보살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동안에는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114쪽 중에서
"한 번 갈게 되면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흙이 딱딱해져서 작물의 뿌리에 공기가 닿지 않게 되고 성장이 나빠집니다.
또는 씨를 뿌리거나 모종을 심는 작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계속 갈아야 합니다.
갈지 않으면 흙은 딱딱해지지 않고 계속 말랑말랑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118쪽 중에서
자연농을 하는 까닭은 자연농이어야 비로소 흙이 살기 때문입니다.
흙이 살아야 농사를 짓는 시골 사람이 스스로 튼튼하고 스스로 아름다운 곡식과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시골 사람부터 스스로 튼튼해야
'시골 사람이 지어서 얻은 곡식과 열매'를 도시 소비자한테 기쁘게 내다 팔 수 있습니다.
제대로 지어서 거둔 제대로 된 곡식과 열매이니 '제대로 된 값(제값)'을 받을 수 있어요.
"해충과 익충을 구별하는 것은 전체인 자연계의 존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156쪽 중에서
예부터 시골 사람은 누구나 풀을 아꼈습니다. 예부터 시골에는 '잡초'가 없었습니다.
도시가 생기고 도시 문명이 퍼지면서 '잡초'라고 하는 뜬금없는 말이 불쑥 나왔습니다.
예부터 시골에서는 언제나 그냥 '풀'입니다. 소나 염소나 토끼가 풀을 뜯습니다.
소나 염소나 토끼는 풀을 대단히 잘 먹습니다. 집짐승뿐 아니라 숲 짐승도 풀을 뜯어요.
어디에나 풀이 흔하니 모두 풀을 먹습니다.
숲 짐승이 구태여 '사람 마을'까지 내려와서 밭을 들쑤실 까닭이 없습니다.
오늘날 시골에서 숲 짐승이 왜 사람 마을로 몰래 내려와서 밭을 들쑤실까요?
숲에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숲마다 송전탑을 때려 박고 고속도로와 고속철도 때문에 구멍을 뚫을 뿐 아니라
곳곳에 공장과 골프장과 관광단지와 대형 발전소 따위입니다.
숲 짐승은 참말 숲에서 살길이 없어요. 풀을 맛나게 먹던 숲 짐승이 풀이 아니라
'사람 마을 밭'에 심은 것을 노릴 수밖에 없는 얼거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 사회에서 새마을운동 바람이 불면서
농약·화학비료·비닐·농기계를 쓰게 시키고 도시 개발을 일으키면서,
시골도 도시도 숲도 모두 망가지는 길로 치닫고 말았습니다.
풀이 자라지 못하는 시골에서 풀 내음도 없지만, 사람도 숲 짐승도 모두 고단합니다.
시골에서 시골 사람이 스스로 고단하니 도시 사람도 소비자로서 고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화학물질에 의한 토지 오염을 과학으로 해결하려고 하여
새로운 화학물질을 투입해 정화하려고 하는데, 결코 정화가 되지 않을 뿐더러 반드시 새로운 문제를 초래합니다.
내버려 두면 되는 것입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생명의 작용에 의해 잘못됨 없이 정화가 됩니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244쪽 중에서
시골이 무너지면 도시가 함께 무너집니다. 도시가 무너진대서 시골이 무너질 일은 없지만,
시골이 무너지면 도시는 살아남을 길이 없습니다.
사람이 먹을 온갖 곡식이랑 푸성귀랑 열매를 짓는 시골이 무너져서 사라지면 참말 도시는 어떻게 될까요?
은행이 없어도 한국 사회는 멀쩡할 수 있지만, 시골이 없으면 한국 사회는 끝장입니다.
법원이나 청와대가 없어도 한국 사회는 튼튼할 수 있지만, 시골이 없으면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끝장이에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들이 농사꾼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이끌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땅을 일구면서 삶을 사랑할 수 있도록 북돋아야 합니다.
도시 일자리를 늘리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실업자나 일자리 문제는 풀 수 없습니다.
시골이 살기 아름다운 터전이 되도록 농약·비료·비닐·농기계를 몽땅 밀어내면서,
이 모든 시골 일을 사람 스스로 가꾸고 돌보는 길을 새롭게 찾을 노릇입니다.
먼저 자급자족을 이루는 시골살이를 젊은이 누구나 깨닫도록 이끌면서,
자급자족 다음에는 '넉넉히 남는 곡식·푸성귀·열매'를 도시에 '착한 유통'으로 보급하는 길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된 관행농'이 아니라 '즐거운 자연농'을 누리는 길을 이제부터 새롭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베어낸 풀을 쌓아두면 그 아래는 폭신폭신해집니다.
또한 논두렁길은 풀뿌리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뿐 아니라 딱딱하지도 않습니다.
풀을 없애버리면 풀뿌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무너져버립니다.
땅을 갈지 않으면 흙은 부드러워진 곳과 만나게 되므로
'아, 역시 그랬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 <자연농, 느림과 기다림의 철학> 본문 71쪽 중에서
손수 심어서 기른 푸성귀를 손수 거두어서 밥을 차려서 먹으면 참으로 맛있습니다.
누구나 이를 몸소 겪으면 그야말로 몸과 마음으로 아주 잘 압니다.
우리는 이 나라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손수 짓는 삶 맛'을 알도록 이끌어야 하고,
이 나라 젊은이가 젊을 적에 '손수 짓는 삶 노래'를 깨닫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연농'을 배우거나 아는 일은, 바로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 모두
스스로 '삶 짓기'를 하는 실마리를 푸는 열쇠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는이야기 > 귀촌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눈 내린 농장 (0) | 2015.12.04 |
|---|---|
| 김장배추 (0) | 2015.11.05 |
| 고구마 다이어트에 좋다 (0) | 2015.10.21 |
| 들깨털기 (0) | 2015.10.17 |
| 산후 조리 늙은 호박 (0) | 2015.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