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함 상서로움 희생 상징
20세기 이전 ‘未’는 산양·염소
현대인들은 ‘양’하면 면직물 재료를 제공하는 면양(綿羊)을 생각하지만 면양은 유목문화에서 길러진 동물이다.
농경문화인 고대 중국에는 면양(綿羊)은 볼 수 없었지만 산양(山羊)은 살았다.
양과 산양은 모두 소과 동물이다. 그 중 산양은 ‘염소’로 분류한다.
애초 ‘미(未)’에 배정된 동물은 ‘염소’였던 셈이다.
우리 조상들도 20세기 이전에는 ‘未’의 동물로 산양(山羊)이나 염소를 떠올렸다. 그래서 우리문화 속 양은 주로 염소나 산양이다.
양(未)은 12지(十二支) 동물 중 여덟번째 동물이다. 미신(未神)은 오후 1∼3시, 음력 6월의 시간신이며, 남남서쪽 방위신이다.
오후 1∼3시는 양이 풀을 뜯으며 배설 등 활동이 왕성한 시간이다.
음력 6월은 소서·대서를 포함하며 모든 초목의 열매가 성숙하는 시기이고 이미 입에 맞도록 맛이 든 열매도 있다.
그래서 미(未)는 미(味)에서 구(口)자를 떼어낸 것으로 표현한다.
양(羊)은 형태는 ‘상서로울 상(祥)’과, 소리(音)는 ‘밝을 양(陽)’과 통해 길상(吉祥)을 상징한다.
양의 해는 을미(乙未·청양), 정미(丁未·적양), 기미(己未·황양), 신미(辛未·백양), 계미(癸未·흑양)의 순서로 육십갑자에 순행한다.
2015년은 을미년(乙未年) 양띠 해이다. 정확하게는 2015년 2월 19일 설날부터 2016년 2월 7일까지가 양의 해이다.
오방색인 △청(靑)색= 나무·봄 △적(赤)색= 불(火)·여름 △황(黃)색= 흙·중심
△백(白)색= 금(金)·가을 △흑(黑)색= 물(水)·겨울의 색과 어울려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다.
양띠별 특징을 보면 을미생은 두뇌가 명석하고 재주가 있다. 정미생은 말을 잘 하고 총명하다.
기미생은 재치가 있고 똑똑하다. 신미생은 재물복이 좋아 부자가 많다. 계미생은 평생 의식주가 풍족하다.
조상들은 양의 습성과 특징에서 착하고(善), 의롭고(義), 아름다운(美) 모습을 발견했다.
큰 양 ‘大羊’은 아름답다(美). 한국인들에게 양은 순하고 어질고 착하고 참을성 있고, 무릎 꿇고 젖을 먹는 은혜를 아는 동물이다.
특히 양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희생의 상징이다. 속죄양(贖罪羊)·희생양(犧牲羊)의 동물이다.
서양에서는 신에게 희생물로 바쳐졌으며, 우리나라와 중국에서도 제사용으로 쓰였다.
양(未)의 해에 태어난 국내인물은 독립운동가 조만식(1883년생),
조선 성리학자 송시열(1607년생), 조선 태종(1367년생) 등, 외국인물은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1955년생),
에디슨과 벨(1847년생)이 있다. 삼국지의 조조도 155년 을미년에 태어났다.
양띠 해 발생한 주요 사건으로는 1919년 3·1운동,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과 고종 강제퇴위,
1895년 을미의병, 1871년 신미양요, 1607년 조선통신사 일본 파견 등이 있다.
특히 을미의병은 1895년 일본 낭인들에 의한 명성황후 시해 사건으로 분노하고 있던 위정척사계열의 유생들이
명성황후의 폐위조칙이 발표되자 친일내각 타도와 일본세력의 축출을 목표로 하는 의병운동을 일으킬 움직임을 나타냈다.
단발령은 의병 움직임을 촉진했다. 춘천출신으로 제천에서 의병을 일으킨 류인석 선생과
그의 문인 수백 명이 유생대회인 향음례(鄕飮禮)를 하는 중 ‘거의소청(擧義掃淸)’으로 공론을 모았다.
2015년은 류인석 선생 서거 100주년이다.
2015년 새해가 밝았다.
해가 뜨고 저물고 달이 솟고 사라지는 하루가 어디 오늘뿐이겠는가?
천지 만물이 생기고 세상의 온갖 동물이 인간과 더불어 살기 시작하자 털조차 눈처럼 정겨운 양이 한눈에 들어왔다.
양은 고기가 됐고 똥오줌은 밭을 가꾸었고 가죽은 인간의 피부를 감싸주었으며 뿔로는 술을 따르고 노래를 부르도록 악기가 됐다.
그래서 양은 토템이 되기도 했고 양의 피는 하늘에게 바치는 경배로 승화했다.
동한시대 학자 허신이 평생 심혈을 뿌리며 연구한 한자의 교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펼치면 양은 곡 양(祥)이라 해설하고 있다.
경사가 날 정도로 운이 좋아 행복하다고 해야 할길상이자 매우 기쁘고 좋은 징조인 상서이다.
이보다 더좋은 뜻이 또 있을까? 양의 해를 맞아 덕담으로 꽤 믿음직한 동물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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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한시대 학자 허신許愼의 한자 교본 <설문해자說文解字> | |
ⓒ 오성서국 |
▲ 양羊의 고대 글자체, 왼쪽부터 예서??(전국시대), 소전小篆(진나라), 금문金文(주나라), 갑골문甲骨文(상나라), 골각문骨刻文(뼈에 새긴 상형) | |
ⓒ 바이두 |
우리의 가깝고도 쓸모 많은 친구 '양'
왜 12간지의 양이 기분 좋은 양일까? 그 힌트는 시礻/示에게 있다.
상(商)나라의 거북이 껍데기에 긁은 갑골문이나 주나라의 청동기에 새긴 금문 모두 '횡으로 모양을 하고 있는 제사장이
제물을 앞에 두고 행하는 제사'를 뜻하는 상형 문자임을 기억해두고 있다.
우리의 가깝고도 쓸모 많은 친구가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있었을 것이 100% 분명하다.
양은 스스로 인내하며 맑은 눈을 감으며 나약하고 '사악'한 인간을 대신해 천지신명에 드리는 제사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양과 비슷한 등급의 한자는 수없이 많다. 분봉(分封) 국가 주나라가 창안했으며,
장자인 '대종大宗의 세습과 소종小宗의 분화'로 상징되는 종법제도의 '종宗'은 조상이자 가족, 숭배의뜻이기도 한데
한마디로 말하면 제사 지내는 집이자 종묘다. 하늘의 신 '신神'과 땅의 신 '기祇'에도 당연히 제사 행위가 착 달라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장 멋진 양을 위한 '제사'의 언어는 '축복祝福'이다.
'축'은 주문을 비는 주咒을 뜻하고 '복'은 양손으로 술을 술잔에 따르며 제사를 지내는 뜻이라고 갑골문에 새겨져 있다.
역시 갑골문에 나타나는 '제祭'는 위 왼쪽 상형은 희생된 고기이며 위 오른쪽 又는 손(手)이었다.
제사상에 올려진 고기를 어루만지는 행동이니 당연히 양이 주인공이었을 것이다.
이렇듯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두 개이상의 상형이 어우러진 글자를 회의자라고 한다.
2015년을 책임질 양의 가장 기분 좋은 회의자는 미(美)다.
양羊과 대大가 하나로 결합한 글자가 '아름답다'이니 정말 아름다운 글자가 아닐 수 없다.
'양이 크다'거나 '커다란 숫양' 같은 개념을 고대인이 생각했다면 착각이고 평범한 해석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유는 지금껏 위에서 설명한 주인공의 희생정신과 더불어 큰 대자를 품고 있다는 점이다.
갑골문에서 형상하는 것은 사람이 정면으로 서 있는 모습으로 손과 발이 펼쳐진 모양새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양을 앞에 두고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다. 사람 인이 갑골문에서
그저 두 손을 모으고 예를 올리는 모양새인 것에 비해 대大가 내포한 뜻은훨씬 크고 '신앙적'이고 아름답다.
대大자가 '크다'라는 뜻이 된 것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모습이 위대하기 때문이니 바로 제사장을 보고 새겼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냐 여자냐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모계사회의 전통이라면 제사장은 여자일 수도 있다.
사마천이 남긴<사기史記> 중 오吳나라 군주태백과 후세를 기록한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는 여러 번 미美를 경탄하고 있다.
오나라계찰季札이 사신으로 주유하는 도중 주 나라 왕실의 음악과 춤을 듣고(아마 만찬이라도 했을 터) 수 없이 "아름답구나美哉!"라고 했다.
사마천은 계찰의 입을 통해 맛味, 색깔色, 소리聲, 모양態이 좋은(好) 것이라 했다.
▲ 왼쪽 민화는 양을 소재로 길상(경사)가 오길 바라는 주제의 대길상도大吉羊?로 중국민화로 옥션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약 인민폐 3만위안), 오른쪽 삽화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오태백세가吳太伯世家’에는 마음속으로 다짐한 약속을 지킨다는 심허心許, 계찰괘검季札掛劍의 고사가 기록돼 있다. 아름답다는 미美에 대한 표현이 아주 많이 등장하기도 한다. | |
ⓒ 상해숭원예술, <사기史記> |
오 나라의 공자로 아버지와 형들과 조카까지 왕위를 주려고 했으나 끝내 사양했던 계찰이 첫 사신의길로 나섰을 때
서徐나라를경유하게 됐는데 서왕이 자신의 보검을 갖고 싶어하지만 감히 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검은 주유 중에꼭 필요하므로 귀국하는 길에 주고자 마음 먹었는데 다시 서나라를 찾았을 때는 이미 서왕은 죽고 없었다.
그럼에도 계찰은 검을 풀어 서왕 무덤 옆 나무에 걸어놓았다.
마음속으로 다짐한 약속을 지킨다는 심허心許는 계찰괘검季札掛劍의 고사에서 나온 것이다.
신의의 상징 계찰이 칭송한 아름다움이 그 이상인 것은 이런 사람 됨됨이가 전해져서 일 것이다.
새해에는 양띠거나 아니거나, 가정이나 사회, 기업, 나라의 대통령부터 민초에 이르기까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많으면 좋겠다.
양은 인류의 탄생부터 옆에서 줄곧 신의를 지켜왔기에 아름다운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하여간 양이 출연한 무대는 아름답다는 뜻이다. 제사는 축제였기에 위대한 사람이 주관하는 행사는
아름다운 불꽃축제였을 수도 있고씨족 모두가 함께 즐겁게 노는 행사였다.
사마천이 말하고 싶었던 것도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아름다운 축제'가 아니었을까?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새해 맞이
/ 정재서 이대 중문과 교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뒤로 하고 이제 또 새해를 맞이했다.
공자는 시냇가에서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逝者如斯夫, 不舍晝夜)”(『논어(論語)』 ‘자한(子罕)’)라며
시간의 흐름을 냇물에 빗대어 한탄했고(‘끊임없는 노력’을 강조한 것이라는 다른 해석도 있다),
이백은 역시 대시인답게 “시간은 영원한 나그네(光陰者, 百代之過客)”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라고 그 속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시간이 물처럼 흘러가버린다는 생각은 인간의 삶이 짧고 부질없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장자는 “사람이 천지간에 살아가는 것이 백마가 좁은 틈을 지나가는 것처럼 순간일 뿐이다
(人生天地間, 如白駒過隙, 忽然而已)”(『장자(莊子)』 ‘지북유(知北遊)’)라고 설파했고,
『삼국지』의 영웅 조조는 “인생이 그 얼마인가? 비유컨대
아침 이슬(人生幾何, 譬若朝露)”(‘단가행(短歌行)’)이라고 비감하게 노래했다.그러나 시간은 정말 빠르기만 한 것일까.
남조 송의 유의경은 다음과 같은 설화를 전한다.
한 나라 때의 유신과 완조는 천태산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다.
한참을 헤매다 두 명의 미인을 만나 즐겁게 반년을 살았는데 집 생각이 나서 돌아왔더니
7대손이 맞이하더라는 이야기다.(『유명록(幽明錄)』)
그러니까 산속의 반년이 속세의 200년쯤에 해당되는 셈이다.
이런 종류의, 이른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식의 이야기 유형은
세계적으로 분포돼 있다. 설화학에서는 이를 ‘립 밴 윙클(Rip Van Winkle)’형 스토리라고 부른다.
립 밴 윙클은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Washing Irving)의 소설 이름이자 그 주인공이다.
공처가인 립 밴 윙클이 산속에 들어갔다 술에 취해 깨어보니
엽총은 썩어있고 20년이 지나갔다는 이야기다.시간은 이처럼 차원에 따라, 혹은 처한 환경에 따라 그 속도가 다르게 느껴진다.
예컨대 악전고투하고 있는 권투선수에게 1라운드는 한 시간 이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관전하는 사람에게는 3분이란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보면 기실 인생이 짧다는 한탄은 우리의 과도한 욕망 때문이지
시간 그 자체의 길이와는 무관한 것일 수 있다.
하지만 길든 짧든, 한번 흘러가버리고 마는 시간의 파괴력은 변함이 없다.
그 어떤 단단한 것도 파괴하고 마는 시간의 위력은 가공하다.
영화 ‘인터스텔라’는 그 극강한 시간의 파괴력에도 마멸되지 않는
혈육간의 사랑을 그려내 감동을 자아냈다.
영리한 인간은 오래전부터 파괴적인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고안해냈다.
바로 일회적인 시간을 주기적으로 인식하는 일이다.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날을 우주가 생겨났던 태초의 순간으로 상상하고
그 순간을 재현함으로써 우리는 해마다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다시 새해가 왔다.
얼룩진 과거는 흘려보내고 처음처럼 힘차게 삶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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