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많은 전기를 옮기려 하는가
생산·소비 분리된 구조, '삶의 터전 관통' 부담은 고스란히 농촌 주민에게...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의 모순
/월간 옥이네 >

▲전남과 전북, 충남, 충북 등은 지역에서 소비하지도 않을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경유지로 내몰리면서,
또 다시 송전선로 갈등을 겪을 상황에 놓이게 됐다. ⓒ 월간 옥이네관련사진보기
지난해 10월, 국토를 가로지르는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확정됐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위원회는 제1차 회의에서 34만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70개 노선과 변전소 29곳의 신설을 결정했다.
전남과 전북, 충남, 충북 등은 지역에서 소비하지도 않을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기 위한 경유지로 내몰리면서, 또 다시 송전선로 갈등을 겪을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같은 계획이 발표된 이후, 해당 지역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있다. 정부와 사업자는 신재생에너지와 신규 양수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력을 국가기간 전력망과 연계하기 위한 사업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설명회에 참석한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명목은 에너지 전환이지만, 실제로는 수도권 산업단지, 특히 용인 반도체 공장에 공급할 전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주민설명회 현장에서는 "왜 우리가 쓰지도 않을 전기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줘야 하느냐"는 질문이 반복된다. 전기를 생산하는 지역과 소비하는 지역이 분리된 구조 속에서 송전선로는 또다시 농촌과 지역을 관통하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이 떠안게 된다. 이번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 계획이 안고 있는 모순 역시 이 지점에서 드러난다.
전자파, 위험하지 않다? "사전예방적 관점 전환 필요"
충북 영동군에는 두 개의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계획됐다. 장수에서 영동에 이르는 58.8km 구간에 34만5천 볼트 송전선과 변전소, 개폐소 등을 설치하는 게 핵심이다. 신장수-무주영동 개폐소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진행되는 곳으로 전북 장수군·진안군·무주군, 충남 금산군, 경북 김천시, 경남 함양군·거창군, 충북 영동군 등 8개 시군이 포함됐다.
영동 개폐소에서 시작해 청주 서원구 개폐소를 잇는 70km 구간에도 34만5천 볼트 송전선과 변전소가 설치될 예정이다. 무주영동-신서원 송전선로 건설사업은 충북 청주시·옥천군·보은군·영동군, 충남 금산군, 대전 대덕구·동구·유성구·서구·중구 등 10개 시군구를 지난다. 각 구간에는 100기가 넘는 송전탑을 세워야 할 상황이다.
주민설명회 자리에서는 송전선, 송전탑에서 나오는 전자계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실질적으로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지만, 그 자리에 모인 주민들을 얼마나 설득했을지는 미지수다. 한전은 전남 여수 봉두마을에서 2개월간 진행한 역학조사 결과를 근거로 전자파와 암 발생 간 관련성이 관찰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833밀리가우스 이하)은 일본(2000), 독일·영국·스위스(1000) 보다 전자계 노출 기준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설명도 더했다. 무엇보다도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가 암을 유발하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2B등급으로 분류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부 연구 자료는 이를 반박한다. 1992년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에서 내놓은 고압송전선 주변 지역 소아암 발병률 관련 논문이 대표적이다. 연구소는 1960~1985년 25년간 고압송전이 지나는 마을 주민을 조사했다. 22만~40만 볼트 고압송전으로부터 300m 이내 거주하는 주민 16만5천여 명이 조사 대상자로 이름을 올렸다.
결과적으로 자기장노출수치의 최대치가 2밀리가우스일 때 백혈병 발병률은 2.7배로 증가했다. 상한치가 3밀리가우스일 경우에는 3.8배로 증가했다. 같은 연구소에서 1997년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주거지에서 자기장노출이 2밀리가우스일 경우 성인 백혈병 상대적 위험도는 1.3배로 증가하고, 급성 및 만성 척수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스웨덴 연구는 한전이 작성한 송전선 전자계 노출량 조사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유의미하다. 조사연구에 따르면 75만5천 볼트 송전선 80m 지점에서 전자파는 평균 3.6밀리가우스가 측정됐고, 35만5천 볼트 송전선 40미터 지점에서는 평균 4밀리가우스가 측정됐다. 이 자료는 2013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장하나 국회의원을 통해 공개됐는데, 이 자료를 두고 장 의원은 전문 연구기관에서 백혈병 발병률 위험치를 넘어서는 전자계 수치가 우리나라 초고압 송전선 주변에서 배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장하나 국회의원은 당시 국립환경과학원이 제출한 '국제암연구소 장기노출에 의한 건강영향 기준'을 분석해 세계보건기구 역학조사 결과를 달리 해석하기도 했다.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송전탑 전자파 발암 위험 등급을 발암 가능성이 있는 물질인 2A등급으로 분류했는데 동물실험 결과 발암을 고려하기에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는 결과가 나와 최종 2B 등급이 됐다는 설명이다.
영동군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이 지나는 마을에서는 이상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호소했다. 34만5천 볼트 송전선이 마을을 관통하는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 이장은 송전탑 인근 거주민 중 23명이 심혈관질환, 뇌질환, 암 등을 앓고 있고, 이 중 12명이 사망했다고 증언했다. 괴목리는 민가 위를 송전선이 지나는가 하면 면사무소 등 주민 다수가 모여 활동하는 공간과 송전선로 거리가 300m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충남발전연구소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전자파 리스크는 '사전예방적'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송전선로의 사회경제적 피해와 충남의 대응방안' 리포트에서 '전자파 리스크가 과학적으로 완전히 규명되는 것은 그 피해가 현실화된 이후에나 가능하며, 인체나 환경에 대한 치명적인 위해가 이미 발생된 이후에는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배경으로 네덜란드(4밀리가우스), 스위스(10밀리가우스), 이탈리아(30밀리가우스) 등 국가에서는 전자파 노출 허용 기준을 한국(833밀리가우스) 보다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결정권 없는데 진행되는 주민의견 수렴
옥천 역시 무주영동-신서원 개폐소 송전선로 건설사업 구간에 포함됐다. 동시에 기존에 운영되고 있는 신옥천-신서원 개폐소 송전선로 용량증대사업이 진행된다. 34만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가 지날 수 있는 입지로는 9개 읍면이 모두 이름을 올렸다. 기존 선로는 2도체를 4도체로 변경해 전력공급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주민설명회 자리에서는 가공송전선로 건설 절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는데, '주민주도형 입지선정위원회'에 대한 모순이 그대로 드러났다. 한전은 송전탑·송전선로 입지를 주민대표가 포함된 입지선정위원회가 결정하도록 제도가 개선돼 주민 수용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지만 그 자리에서 주민들은 "송전선로 계획 자체를 이미 결정해 놓은 상황에서 무슨 소용이냐"며 따지기도 했다.
가공송전선로 건설절차는 기본계획(기후에너지 환경부 수립)-설비계획(한전)-입지선정-사업시행계획-실시계획승인-시공 순으로 진행된다. 입지선정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은 이미 정부와 한전이 기본계획과 설비계획을 사실상 확정했다는 의미다. 입지선정을 두고 아무리 많은 주민의 의견을 수렴한다고 해도 기본계획과 설비계획을 뒤집을 수는 없는 것이다. 송전설비 관련 분쟁의 본질에는 이처럼 기본계획 설립 단계에서 주민수용성이 인정되지 않는 비민주적 절차에 있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자파 위험성 등 건강 침해에 대한 주민의 염려가 사전에 다뤄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구조인 셈이다.
전원개발촉진법,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등 관련 법률안에서도 송전선로 건설 비민주성을 확인할 수 있다. 송·변전시설을 설치할 때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승인을 받으면 도로법, 하천법, 자연공원법 등 수십 개 인허가 관련 규정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지자체가 가진 인허가 권한도 포함돼 있다. 기본계획 및 실시설계 단계에 지자체 의견이 반영되는 의사결정 구조가 아닌데, 이후에는 인허가 권한마저 실질적으로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주민설명회 자리에서는 재산상 피해 문제 역시 지적됐다. 한전은 고압송전선이 지나는 땅 주인에게 보상할 때 필지 규모와 상관없이 '수평 3m'를 기준으로 보상하고 있다. 가장 바깥 선을 기준으로 3m만 보상해 주는 개념이다. 송전선이 지나면서 지가가 하락하거나 토지 활용도가 떨어져도 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받기 어려운 구조다. 주민설명회에서 "송전탑이 있는 농지는 은행에서 담보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이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전 관계자는 "철탑 부지는 추가로 가산해서 보상하는 등 토지주 보상이 강화됐다"며 보상 제도가 개선됐다고 해명했지만, 송전선로 신설을 두고 얼마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는 역시 미지수다.
한국토지공법학회가 2011년 선하지와 잔여지 지가 하락을 분석한 결과는 이 같은 주 민의 말을 뒷받침한다. 76만5천 볼트 초고압 선 주변지역 지가감가율은 선하지 기준 평균 37.15%로 가장 높았고 34만5천 볼트는 29.76%, 15만4천 볼트는 26.3% 순으로 나타났다. 76만5천 볼트 선하지 주변 '택지'의 경 우 47.1%까지, '농지'는 39% 지가감가율을 보였다.
이를 기준으로 충남발전연구원은 충남지역 피해액을 산출했는데 ▲ 76만5천 볼트-약 43억2100만 원 ▲ 34만5천 볼트-약 132억1200만 원 ▲ 15만4천 볼트-약 214억 5400만 원 등으로 나타났다. 합산 금액은 389억 원을 넘어선다.
이처럼 재산권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입지선정위원회가 운영될 경우,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도 크다. 송전선로는 불가피하게 특정 토지를 통과할 수밖에 없고, 그 결정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는 구조는 오히려 책임을 지역 내부로 전가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더구나 현행법은 필요할 경우 토지의 강제수용까지 가능하게 하고 있어, 사업이 강행될 경우 지역 공동체에 깊은 균열을 남길 우려도 크다.
전력망 확충이 불가피 하다면, 그에 걸맞은 절차적 정당성과 실질적인 보상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이미 확정된 계획 위에서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주민 참여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보상 체계로는 주민 수용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주민을 단순한 설득의 대상이 아니라 의사결정의 주체로 인정할 때에만, 반복되는 갈등을 줄이고 사회적 합의에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영동 주민들이 한전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 월간 옥이네관련사진보기
초고압 송전선로란?
'초고압' 송전선로는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먼 거리'까지 보내기 위해 사용하는 전력망이다.
▲ 15만4천 볼트 ▲ 34만5천 볼트 ▲ 76만5천 볼트 등 높은 전압으로 전력을 이동시킨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전압이 220볼트인 점을 감안하면,
초고압 송전선은 약 700배에서 3400배 이상의 전압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처럼 전압이 높기 때문에 초고압 송전탑이나 송전선로 근처에서 작업할 때는 최소 3~7m 이상의 안전거리를 확보해야 한다. 전선에 직접 닿지 않더라도, 높은 전압으로 인해 전기가 공기를 통해 방전(아크)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력 구조는 전기를 생산하는 곳과 사용하는 곳이 뚜렷하게 분리돼 있다. 원자력과 화력발전소 등 대규모 발전시설은 냉각수 확보가 용이한 해안 지역에 집중돼 있는 반면, 전체 전력 소비의 약 40%는 수도권에 몰려 있다. 이처럼 생산지와 소비지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초고압 송전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그 과정에서 지역 간 갈등도 함께 커지고 있다.
변전소란?
변전소는 전압을 조절하는 전력 설비다.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는 먼 거리를 보내기 위해 변전소를 통해 전압을 높여 이동한다. 변전소에 도착한 전기는 용도에 맞게 전압을 낮춘 뒤 가정 등으로 공급된다.
배전망이란?
송전망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먼 거리로 대량 수송하는 역할을 한다면, 배전망은 그렇게 전달된 전기를 지역 내 실 사용자에게 공급하는 전력망을 의미한다. 변전소에서 전압이 낮아진 전기는 배전선을 따라 주택, 상가 등으로 전달된다. 초고압 송전망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는 지산지소(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의 배전망 중심 전력 체계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72조 쏟아붓는 초고압 송전선로, '수도권 특혜 전력망'...
용인 산단 재검토해야"
공익법률센터 농본 하승수 변호사
하승수 변호사는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 자리 잡은 '공익법률센터 농본'을 책임지고 있다. 농본은 법과 제도가 강자의 무기가 아닌, 약자의 보호막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비영리단체다. 단체 이름은 농촌, 농민, 농사가 사회의 뿌리가 된다는 농본주의에서 따왔다. 농촌과 농민을 위한 공익법률단체는 농본이 최초다.
농본은 난개발과 환경오염시설로부터 마을공동체를 지키려는 주민 운동을 지원한다. 법과 행정 절차를 몰라 피해를 보는 주민이 없도록 자문한다. 지역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토론회와 간담회, 지속가능한 농촌을 위한 정책 연구 등에서 농본의 굵직한 활동을 엿볼 수 있다.
전 국토를 가로지를 송전선로 건설사업이 예고된 가운데, 지난 3월말 농본 대표인 하승수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밀양 주민들의 추천으로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협의체'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삶터의 파괴를 넘어 공동체 파괴까지 이어졌던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보다 더 나쁜 양상을 띠고 있다는 송전선로 건설사업을 두고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 싣는다.
"초고압 송전선로 의존한 전력 계통, 위협 상당하다" - 밀양 송전탑 문제와 현재 전라권, 충청권, 강원권 등에서 진행되는 송전선로 건설 계획의 차이점이 있나.
"초고압 송전선에 의존해 장거리를 보내는 전력 계통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사업을 진행하는 방식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노선(시작점, 종점)을 일방적으로 결정한 후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들어설 지역에 보상금을 지원해 회유하는 방식 그대로다. 차이점이 있다면 밀양 때보다 송전선로 건설 계획 규모가 확연히 커졌다는 점이다. 당시 신고리-북경남 한 개 노선을 두고 투쟁했다면, 지금은 전국 70개 노선이 발표됐고 동시다발적으로 34만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들어서게 됐다. 이에 따라 대책위원회도 전국적으로 생기고 있다. 대한민국 전력 계통 문제가 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 밀양 사태를 겪고도 전력 계통 시스템을 개선하지 못했다.
"초고압 송전탑을 우리만큼 많이 짓는 나라가 있는지 의문이다. 초고압 송전은 안정도 문제를 안고 있다. (대형 발전소를 더 짓거나, 대형 발전소가 갑자기 정지해) 전압에 급격한 영향이 생길 경우 전력 계통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특정 송전선로에 문제가 생기면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데 기후 위기나 자연재해, 테러 등 요인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초고압 송전선로에 의존한 전력 계통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위협이 상당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조차도 전력 수요를 집중시켰을 때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느냐를 두고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중앙 집중식 발전을 가져가면) 비수도권이 떠안아야 할 피해가 상당하다. 왜 이런 위협을 그대로 감수하는지 모르겠다."
- 초고압 송전선로 건설이 동일한 속도로 추진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지역별로 편차가 나타나고 있다. 충북의 경우 영동군에서 가장 먼저 대책위원회를 꾸려서 대대적인 반대 투쟁에 나선 반면, 옥천은 이제 주민설명회가 진행 중이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이미 송전선로 건설이 확정된 뒤라 사업 자체를 반대하는 주민 의견이 반영될 수 없다는 데 있다. 주민 수용성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전기위원회'를 둬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지만 이를 두고 주민 의견을 수렴했다고는 볼 수 없다.
"현재 전기위원회는 기후에너지환경부(이하 기후부)로 편제돼 있다. 독립기구가 아니라는 말이다. 결국 한전과 기후부의 카르텔 속에서 소수의 몇 명이 사업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번 송전선로, 변전소 건설 등에 약 72조 원을 쏟아붓겠다고 한다. 이 카르텔의 수혜자는 어마어마한 예산이 수반되는 공사나 용역을 수행할 사업자들이다.
발전소나 송전선 건설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독립된 규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전력수급기본계획 등을 수립하는 근거인) 전기사업법을 대폭 고쳐 이를 통해서 주민 참여가 보장되는 수급 계획을 세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가 전력망확충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민간 전문가가 위원으로) 있다지만 마찬가지다."
- 전원개발촉진법에 따라 주민대표가 포함된 입지선정위원회를 운영해야 한다. 송전탑과 송전선로가 들어설 입지를 입지선정위원회가 결정하는 구조다. 송전선로 건설 유무를 두고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생략한 상황에서, 송전탑 입지 선정은 주민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걸 두고 위선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입지 선정을 둘러싼 주민 간 갈등이 우려되는 것이 현실이다. 입지선정위원회에 이 같은 상황을 떠넘기고 한전은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송전선로의 시작점과 끝점을 한전이 못 박고 그 사이를 주민이 결정하라는 것은 요식 행위 밖에 되지 않는다. 송전탑이 우리 마을에서는 최대한 떨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생길 거 아니냐. 주민끼리 싸우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무엇보다도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주체가 한전인 것이 말이 안 된다. 한전은 이 사업을 하는 주체다. 누구보다도 이해당사자다. 사업자가 의견을 수렴한들 제대로 될 수 없다. '국가기간 전력망'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정부가 나서서 주민 의견을 들어야 한다."
"문제 더 복잡해지기 전에 정부가 재검토해야"

▲용인반도체국가산단재검토·초고압송전탑건설 반대전국행동 주최로 열린
'용인산단 송전선로 전면 재검토와 에너지 지산지소를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촉구
전국 행동 3.4 궐기대회'에 홍성 주민들도 참여했다. ⓒ 월간 옥이네관련사진보기
- 국가기간(國家基幹),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기반이라는 뜻이다.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이라는 이름 자체가 반대를 하는 순간 국가 이익에 반하는 것처럼 만든다.
"지금 송전선로, 변전소 계획을 뜯어보면 국가에 해가 되는 온갖 문제들을 안고 있다. 국가기간 전력망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수도권 특혜 전력망'이다."
- 송전선로 건설을 두고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당진시 등 지자체에서 입지 선정을 지연시키거나, 지자체 몫의 인허가에 비협조적으로 대응하면서 지역의 이해를 대변한 사례가 있지만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에 따라 이 절차마저 간소화 됐다. 산업통상부 장관의 승인을 받으면 건축법, 농지법, 도로법 등 30여 법 인허가가 한 번에 처리된다.
"특별법 만들기 전 전원개발촉진법에도 이미 인허가 간소화 특례가 들어가 있다. (실시계획 승인을 받는 순간) 20여 개 인허가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 (지역 주민이 반대해도) 토지를 강제수용할 수 있는 권한도 이 법에 근거한다. 잘못된 법이기에 고쳐야 한다고 이미 지적됐는데 개선되기는커녕 특별법으로 더 나빠졌다. 특별법은 송전선로 건설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인 법이다. 이 상황에서 지자체, 지방의회가 할 일은 주민들과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국회도 찾아가고 청와대도 찾아가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당진시장은 2016년 당시 단식 투쟁을 하기도 했다."
- 전국적으로 송전선로 건설 대책위원회가 구성되고 있다. 송전선로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이 투쟁에서 이길 수 있는가.
"결국 용인 산단 반도체 공장 신축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 삼성이 들어갈 부지는 '국가산업단지'다. 국가산단 조성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맡는데 현재 주변 땅을 수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아직 그 땅은 삼성 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기업이 들어와 문제가 더 복잡해지기 전에 정부가 재검토해야 한다."
- 대한민국 전력 계통의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초고압 송전탑이 문제가 되자 분산형 전력망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이때 말하는 분산은 '수요의 분산'을 의미한다.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데, 발전은 비수도권에서 하는 구조 이것이 근원적인 문제다. 이번 송전선로 건설 계획 역시 마찬가지다. 이미 수도권에 전력 수요가 집중돼 있는데 전력 소모가 막대한 반도체 공장을 용인에 짓겠다고 해서 문제가 가중됐다.
용인 산단에 필요한 전력은 SK 6GW, 삼성 9GW 등 총 15GW이다. 원전 15기 수준의 발전량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이다. 반도체 공장은 기본적으로 물과 전기를 많이 필요로 한다. 전력 수급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공업용수 대책을 마련하지 못해서 문제가 되고 있다. 한마디로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전기와 물 문제를 두고 엄청난 폭탄을 껴안고 있는 꼴이다.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 전력 수요를 분산하려면 '지역별 요금차등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수요 분산은 규제를 통해서도 할 수 있지만 지역별 요금차등제는 강력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스웨덴 같은 경우 남북 지역 간 전력 수급이 불균형했는데 지역별 요금 차등제를 통해 전력 수요를 분산한 대표적인 사례다. 생산시설은 북부에, 산단은 남부에 집중됐는데 (차이가 클 때는) 두 배 이상 요금 차이가 났다. 전기료가 싼 곳으로 자연스럽게 공장을 이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가정용, 산업용 등 용도별로 전기요금 부과 체계가 나눠져 있다. 전력 소비가 많은 산업용을 대상으로 지역별 요금차등제를 도입해야 한다."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박정 의원이 한국전력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5년 상반기 기준 광역지자체별 전력 자급률은 최고 262.6%(경북)에서 최저 3.3%(대전)까지 79배 차이가 난다. 서울(7.5%), 광주(11.9%) 다음으로 충북(25.6%) 자급률이 낮은 상황이다. 충북 역시 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송전망, 배전망을 통해 소비하고 있는 구조다.
"먼저 지금 한전이 짓겠다는 송전선로는 충북의 전력 소비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 부분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에너지법에 따라 지역별로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게 돼 있다. 충북도 지역에 맞는 자립 계획을 갖춰갈 노력을 해야 한다. 송전망과 배전망 관리를 한전에서 일괄 책임지고 있어서 지역 안에서 할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지만 지역 순환형 에너지 자립 계획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장거리를 보내야 하니 34만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가 필요한 것인데 지산지소(地産地消)로 가면 필요 없게 된다. 배전망으로도 충분히 전력 계통을 할 수 있다.
제주도가 에너지 공기업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나와야 한다. 지금 재생에너지 개발 사업자들은 대부분이 민간이다. 인허가를 따낸 회사가 다른 기업에 웃돈을 받고 팔기도 하는 등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발전기만 설치한다고 끝이 아니다. 유지 관리가 더 중요하다. 이런 부분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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