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산불 30년] 1. 화마가 지나간 자리 /강원도민일보

산불 대응 시스템·관리체계 방향 모색나선다


대형산불 앞 무력 터전 상실
외적 복원 끝마친 30년 세월
일상적 트라우마 고통 여전

봄바람이 거세지는 날이면 마른 낙엽 냄새와 연기 같은 기척만으로도 당시의 공포가 되살아난다고 했다. 1996년 고성 산불은 한국 사회에 대형 산불의 시작을 알린 사건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불이 지나간 자리는 숲이 됐고 마을도 다시 일어섰지만 그날이 남긴 상처와 교훈은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강원도민일보는 1996년 고성 산불 이후 동해안을 중심으로 반복돼 온 대형산불과 최근 경북 산불까지 이어진 흐름을 바탕으로 산불 대응 시스템과 산불 관리 체계의 문제점을 짚는다. 특히 현장에서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는 예방 체계의 한계를 점검하고, 대형 산불로 비화하는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숲의 구조적 취약성과 복구 과정까지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아울러 해외사례를 통해 보다 실효성 있는 산림화재 관리체계의 방향을 모색한다. 바람만 불어도 공포” 삶 옥죄는 그날의 흉터

▲ 30년전 대형 산불로 폐허가 됐던 함종 어씨 집성촌이 20일 평화롭고 고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오른쪽 사진). 1996년 4월 고성 산불로 폐허가 된 함종 어씨 집성촌 모습. 방도겸 기자 1996년 봄, 고성을 삼킨 불길은 마을의 지도를 바꿔놓았다. 목숨은 건졌지만 집이 타고 숲이 무너졌다.

축구장 5269개 면적에 해당하는 산림 3762㏊가 불에 탔고, 3개 읍면 14개리 건물 227동, 가축·농기계 등 5만 3423점이 잿더미가 됐다. 숫자는 차갑지만 그 내면에는 뜨거운 연기와 재의 기억, 그 후 삶을 일으켜야 했던 주민들의 눈물이 담겨있다.

20일 찾은 고성군 죽왕면 삼포1리. 산불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마을은 이제 화마의 흔적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복구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주민들이 기억하는 그날은 가슴 속 아픔으로 남았다. 그들은 지나간 이야기라면서도 ‘억울하게 보낸 세월을 누가 알겠느냐’며 당시를 회상했다.

군부대에서 시작된 불은 강풍을 타고 산을 내려와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다. 평화롭던 일상은 단숨에 공포로 바뀌었고, 마을 전체가 ‘탈출과 대피’의 기억으로 묶였다.

삼포1리 주민 김숙자(83)씨는 그날 집을 잃었다. 김 씨는 “살아야 하니 몸만 겨우 피했는데 돌아와 보니 부지깽이 하나 없이 다 타서 남은 게 없더라. 너무 속상하고 억울해서 땅을 치고 매일 울었다”고 말했다.

복구는 단지 집을 다시 짓는 일이 아니었다. 무너진 삶을 일으켜야 했다. 김 씨는 “장사해서 2000~3000원이라도 벌어보려고 매일 속초시장을 왔다갔다 했었다”며 “민박을 하려 했지만 잘 안 됐고, 소도 모두 죽어버리는 바람에 콩이든 팥이든 밭에 심어서 나는 건 다 갖다 팔았다.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양 무릎이 다 고장났다”며 울먹였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49세대 140명으로, 이들은 주택이 복구될 때까지 마을회관과 구판장, 군용막사, 컨테이너, 이웃집 등을 전전하며 불편한 난민 생활을 해야 했다. 빚을 내어 집을 다시 지어야 했고, 임산물이 불에 타 생계가 끊기는 어려움도 겼었다.

30년이 흐른 지금, 폐허가 됐던 산은 다시 숲의 모습을 되찾았다. 큰 나무들 사이로 덜 자란 나무들만이 그날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주민들은 산불을 ‘과거의 사건’으로만 묻어두지 못한다.  [고성산불 30년]  2. 이재민들의 삶

송이·벼농사 등 생계소득 단절…정부 이재민 지원 미흡
산불 뒤 수년간 2차 재난 이어져
국가배상 주민 신청액 절반 안돼
항의 시위에도 요구사항 미반영


“이게 우리집 소 새끼여. 12마리가 불 타 죽었어.”
20일 고성군 삼포1리 노인회관에서 만난 주민 김숙자(83)씨가 불에 타 죽은 소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김 씨는 1996년 고성 산불로 집과 창고, 농기계와 기르던 가축까지 모두 잃었다.

1996년 고성산불로 집을 잃은 이재민은 49세대 140명. 이들은 주택이 복구될 때까지 마을회관과 구판장, 군용막사, 컨테이너, 이웃집 등을 전전하며 살았다. 당시 삼포1리 이장이었던 어명헌(65)씨와 고성군청 공무원들이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주민들을 깨운 덕에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이들은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고 말았다.

같은 해 5월 11일 중앙사고대책본부의 지원대책안이 발표됐다. 국방부의 귀책 사유가 공식 인정돼 제1군사 배상심의위원회가 피해신청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당시 기록된 ‘동산 및 건축물 피해 국가배상내역’을 보면, 주민 신청액은 80억 2100여만원인데 반해 실제 배상이 이뤄진 인용액은 28억 836만원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유화자(61)씨는 “보상금 2700만원이 나왔지만 집을 짓는데는 한참 모자랐다”며 “급한대로 남의 돈 3000만원을 빌려다 집을 지었다”고 말했다.

어기봉(90)씨도 “나는 금반지 하나 겨우 건지고, 땅문서도 등기도 다 타버려서 지금까지도 등기 없이 살고 있다”며 “누구는 새로 집을 지어주기도 했다는데 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 집을 못 지어준다고 해서 내 돈 들여 지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당장 생계 소득원이 끊어진 것도 문제였다. 당시 주민 약 500세대가 산에서 나는 송이와 산채를 주요 소득원으로 삼고 있었던 만큼, 대형 산불은 치명적인 악재였다. 송이산이 전부 불에 타면서 향후 20~30년간 재생산도 불가능해졌다. 주민들은 배상을 요구했지만 중앙사고대책본부의 배상결정액은 주민 신청액 대비 송이 10% 미만, 임목 5~26%으로 결정됐다.

결국 피해 주민 350여명은 그해 죽왕면 오호리 어린이집 부지 인근에서 산불피해 현실보상을 위한 재심의를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였고, 군부대와 정부 관계부처에 항의 방문했다. 그럼에도 이의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주민들은 임목 289건, 송이 154건 등 총 443건의 민사소송을 접수했다.

정상적인 삶도 무너졌다. 전기는 물론 간이상수도가 폐쇄돼 상수도 공급이 끊겼고, 밭을 갈 소와 농기계가 전부 타버려 영농 준비가 한창이던 봄철 농민들은 벼농사를 짓지 못했다.

또 해수욕장 주변 해송 피해로 관광수입에 의존하던 군민들의 생계가 흔들리면서 지역 경기 전반으로 타격이 번졌다.

이수성 국무총리가 고성군을 찾은 날 도 행정부지사가 특별재해지역 선포를 건의했고, 이영구 고성군수와 고성군의회도 서신을 통해 건의했으나 ‘산불은 발생빈도가 높고,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당시 삼포1리 이장이었던 어명헌(65)씨는 “국무총리를 비롯해 유력 정치인들이 마을을 찾아왔지만 주민들이 요구한 사항이 실제로 이뤄진 것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1996년 고성 산불은 건축물 227동 45억 2800만원, 동산 5만 3000여점 92억 2100만원이라는 공식 피해 기록을 남겼다. 불은 꺼졌지만 이후의 시간은 주민들이 감당해야 했던 또 다른 재난이었다. 

 

[고성산불 30년] 3.‘재앙’을 막는 법

고성산불 1000명 투입 역부족
인재 발생 화재 75% 실형 드물어


“기후위기 환경 대비 교육 중요” 불 붙은 뒤 이미 늦어…산불 예방·관리로 악순환 끊어내야” 대형 산불은 한번 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1996년 고성 산불도 그랬다. 강풍을 탄 불길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산림·소방·진화대원 등 1000여명이 투입됐지만 불길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진화 헬기와 살수차 등 대응 장비는 대폭 강화됐지만 기후위기 속 산불은 더 대형화하며 반복되고 있다. 불이 ‘재앙’으로 번지지 않도록 예방과 초기 대응 시스템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 1996년 대형 산불로 황폐해졌던 고성군 죽왕면의 한 야산(왼쪽)이 30년이

지난 2026년 1월 나무가 빼곡히 들어차며 화마의 상처를 회복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산림·소방·진화대원·공무원 총동원에도 속수무책

1996년 4월 23일 오후 4시 20분쯤. 산불 현장에 초속 20m의 강풍이 불기 시작했다. 사격장 일대에 머물던 불길이 순식간에 숲으로 번졌다. 오후 5시 10분쯤 산림청 헬기 1대가 현장에 도착했고, 이어 군 헬기 1대도 투입됐지만 거센 바람과 기상 여건 탓에 군 헬기는 철수했다. 산림청 헬기가 약 두 시간 동안 사투를 벌였지만 일몰로 더 이상의 진화는 불가능했다. 오후 7시 10분쯤 헬기는 속초비행장으로 철수했다.

불길은 이후에도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심우석 당시 고성부군수가 군청에 총동원령을 내려 읍면동 주민들에게 안전지대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 소방차와 경찰차가 민가 주변에 배치됐고, 군 동력펌프와 소방차가 불길을 막기 위해 연신 물을 뿌리며 방어에 나섰다.

그러나 밤 11시 40분쯤. 강풍을 탄 불길이 순식간에 마을을 덮쳤고, 목숨의 위협을 느낀 소방대원과 군청 직원들은 불길에 쫓겨 안전지대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죽왕면의 가옥들은 차례로 불길에 휩싸였다.

당시 산불 현장에서 총괄 지휘를 맡았던 권순호 제7대 산림국장은 “민가를 지키기 위해 소방차를 배치해 밤새 물을 뿌렸지만 속수무책이었다”며 “그렇게 많은 인력이 동원됐는데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 열기에 민가 3채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 대형 산불 10건 중 7건 실화… 사후 처벌은 한계

1996년 고성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로 시작된 인재(人災)였다. 군부대 소속의 군인이 불량 판정된 TNT(강력폭약) 525발을 폐기 처리하는 과정에서 규정을 무시하고 안일하게 처리하다 발화했다. 실화로 인한 산불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2일 강원산불방지센터에 따르면, 1996년 고성산불 이후 2022년 동해안과 양구 산불까지 강원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건수는 총 32건이다. 이 중 입산자 실화, 쓰레기소각, 담뱃불 실화 등 사람에 의한 실화가 24건으로 75%를 차지했다.

문제는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렵고 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이라는 이유로 실형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지난해 사망자 27명, 부상자 40명, 피해면적 9만 9289㏊, 3500여명의 이재민이라는 역대급 대형 산불을 낸 경북 산불 피고인들 역시 징역형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사후 처벌’만으로는 산불의 악순환을 끊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당시 재판부는 “사망과 부상 등 인명 피해를 피고인들의 행위와 연관을 지으려면, 상당한 인과관계가 합리적 의심 없이 증명되어야 하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명확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 대형 산불로 이어지지 않도록 예방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대형 산불 관리 체계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후 처벌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한 만큼, 예방과 초기 대응 역량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고성 산불 이후 2000년대만해도 예방·대응·대비·복구 중 40~50%를 예방에 투자했다면, 지금은 예방 비중이 10%대로 낮아졌다”며 “대형 산불이 발생한 뒤에는 이미 늦다. 기후위기로 산불이 대형화되기 쉬운 환경이 된 만큼 교육을 포함한 예방 시스템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성산불 30년] 4. 재난의 반복 산불규모 따라 지휘기관 제각각 ‘컨트롤타워가 없다’


고성산불, 국가 산불대응체계 시작점
30년 간 진화차·장비 대폭 강화에도
2022년 울진·삼척, 지난해 경북 등
대형산불 초동대응 실패 지적 잇따라
시군구·산림청·소방당국 지휘권 분산
중앙정부 재난관리 시스템 부재
복잡한 대응 매뉴얼 현장 혼선 가중
분산된 명령권 일원화 구조변화 시급


국가 단위 통합 지휘센터 도입 제언 고성산불은 산불이 재난이 될 수 있음을 알린 사고다. 1996년 산불에 이어 2000년 고성산불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정부는 대형산불의 위험성을 인지해 산불 대응 예산을 크게 늘렸다. 고성산불은 정부가 산불 대응 체계를 갖추게 된 ‘시작점’인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진화 장비와 인력 등이 대폭 강화됐지만, 지난해 경북에서 ‘괴물 산불’로 불린 초대형 산불이 발생하면서 현 대응 체계의 한계점이 드러나게 됐다. 산불 대응 체계를 일원화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지난해 3월 25일 경북 의성군 단촌면 하화1리에 산불 불씨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있다. 연합뉴스 ■ 대형 산불 대응 체계 미흡의 결과

1996년 고성 산불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산불 진화 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 지자체 임차 헬기가 없어 산림청과 군 헬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산불 진화차도 없었다. 진화대원들도 등짐 펌프 등 필수 장비가 한정됐다. 대형 산불 매뉴얼은 없었다.

이 같은 인프라의 부족은 대형 재난의 씨앗이 됐다. 1996년 4월 23일 오후 12시 55분쯤. 산림청 헬기가 양양에서 산불 진화를 마치고 고성 산불 현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통신이 전달됐다. 고성 산불감시초소로부터 산불 발생 신고가 들어온지 약 30분 만이었다. 당시만 해도 강한 바람이 불지 않아 불길은 처음 산불이 시작된 군부대 안에 머물고 있었다. 하지만 20분이 지나도 헬기가 도착하지 않자 당시 심우석 고성부군수는 산림청과 군에 헬기 지원을 재차 요청했다. 약 1시간이 지난 오후 2시 30분쯤 도 상황실은 ‘평창 대형산불 진화지원으로 산림헬기 지원 불가’를 통보했다.

이날 강원지역에는 고성뿐 아니라 평창, 양구, 인제 등에서도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해 한정된 헬기를 어디에 먼저 투입해야 할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 안중걸 전 강원도청 산림국장 당시 도청 상황실에서 산불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안중걸 전 강원도청 산림국장은 “고성 산불은 초반만 해도 현장에 바람이 거세지 않았고, 군부대 화재는 비교적 자주 발생해 긴급성이 낮게 판단됐다”며 “반면 인제 진동 계곡 등은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고 보호 가치가 높아 헬기를 그쪽으로 돌리게 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에 고성군은 전 직원이 현장에 투입돼 군부대 주변에 소방차와 함께 방화선을 구축했다. 그러나 야간이 되며 거세진 강풍으로 인해 연기가 자욱해졌고, 불이 붙은 솔방울이 사방으로 튀면서 방어선은 금세 무너졌다. 이날 오후 5시 10분쯤 산림청 헬기가 뒤늦게 투입됐지만 강한 바람과 일몰로 2시간 뒤 철수하면서 불은 대형화되기 시작했다.

▲김영석 고성군 산림조합장

당시 고성군 산불 담당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김영석 고성군 산림조합장은 “초기 진화가 안돼서 좀 지연됐는데, 야간이 되면서 갑자기 초속 18m의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며 “불과 몇 시간 만에 바다까지 내려왔으니 인간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선이 불에 타 통신망이 끊기는 고립 상황까지 벌어지게 됐지만, 김 조합장이 통신 가능한 지역으로 초소를 옮기는 기지를 발휘해 도와 다시 연락이 이어지게 됐다.

■계속되는 참사

문제는 현재다. 이후 헬기와 산불진화차 등 진화 장비가 대폭 강화됐지만, 대형 산불은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대형 산불의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나오는 이유다.

산불은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인력과 장비를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집중 투입하는 대응 체계와 전략이 필요하다.

지난해 3월 발생한 경북산불 현장에서도 시·군·구, 산림·소방당국 간 혼선이 발생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산불 이재민들 사이에서도 “컨트롤타워가 없었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불길이 번지는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대피 경보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대피 명령이 지연되는 문제까지 발생했다.

중앙 부처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제31대 산림청장을 역임한 김재현 건국대 교수는 월간 시사잡지 ‘사상계’를 통해 “경북 산불의 경우 중앙정부의 시스템이 충분히 작동했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객관적으로 나타난 것을 보더라도 산불 헬기의 주력 기종인 러시아산 카모프의 부품 조달이 어려워 8대가 격납고에서 나오지 못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직무 정지되어 중앙 컨트롤타워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된다”고 했다.

2022년 울진·삼척 산불 때도 초동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감사원이 2024년 발표한 ‘재난 및 안전관리체계 점검’ 감사 결과에 따르면, 당시 산불에 ‘초동 대응 부실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재난관리체계를 손질하고 인프라를 확충했지만 현장은 여전히 대응 혼선이 반복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산불 발화 지점이 CCTV에 찍히고 있었지만, 감시 인력이 없어 초기에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불길이 강원도로 번지며 무선기지국이 파손돼 통신망이 마비됐다.

지자체의 대응도 미흡했다. 24시간 상황실 운영 등 제도적 틀은 갖춰졌지만 인력 부족과 형식적인 교육·훈련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행안부는 2024년 4월 모든 지자체 상황실에 전담 인력을 배치하겠다고 했지만, 감사 결과 지자체 절반은 여전히 당직자가 겸임 근무 중이었다. 당직자 중 재난 교육을 받은 사람도 20%에 채 미치지 못했다.

재난 대응 매뉴얼도 실효성이 떨어진다. 감사원은 “현재 지자체별로 평균 26.9개의 매뉴얼을 관리하고 있지만, 한권당 600쪽에 이르고 재난유형별로 매뉴얼이 따로 존재해 복합·신종 재난 발생 시 어느 매뉴얼을 적용할 지 판단하기 어렵다”며 “각 부서의 행동 요령을 한 권으로 통합하고 실전형 불시 훈련을 강화해 훈련 결과가 현장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1996년 고성 산불 발생 직후 고성군 죽왕면 운봉산 일대. 산 곳곳의 불탄 자국이 그날의 상흔을 보여주고 있다. 고성군청 제공 ■ 산불 대응 체계 일원화 필요성 대두

‘초동 대응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산불 대응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입법조사처의 보고서에 따르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과 해당법 시행령에 따라 산불 대응 주관기관은 산림청이 맡고 있다.

문제는 산불 규모에 따라 지휘 기관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산림보호법’ 제37조 및 제38조에 따르면 중·소형 산불의 경우 시장·군수·구청장 또는 국유림관리소장이 맡고, 대형산불의 경우 시·도지사가 각각 산불현장 통합지휘본부장을 맡는다. 산림청은 중·소형 및 대형산불 진화 시 지휘가 아닌 지원 업무만 수행하고 있다. 1000㏊ 이상의 초대형산불이 발생한 경우에만 산림청장이 통합지휘하게 되지만, 이마저도 시·도 단위로 위임할 수 있는 구조다.

결국 산불 진화의 책임과 지휘권은 대부분 지자체에 맡겨져 있지만, 자원은 산림청에 있어 대응 체계가 일원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 사이에 산불 대응 지휘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다. 현행대로라면 일선 현장의 지휘체계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미국의 NIFC(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처럼 산불 대응 지휘 체계를 통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며 “NIFC는 전국단위로 필요한 항공기나 인력을 모두 센터에서 조정해 배분하고, 주로 국토부와 산림청 소속 직원들로 구성돼 관계 부처 간 대응과 협력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정한 기준에 따라 누구나 대형산불에 대응할 수 있도록 매뉴얼도 객관화하고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최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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