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속았다"...평창올림픽 이후 7년, 파괴된 가리왕산

 

[인터뷰] 다큐멘터리 <종이 울리는 순간> 김주영-소헤일리 코메일 감독

/이선필

 

세 번의 도전 끝에 유치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92개국 2920명의 선수단과 함께 17일간 벌어진 세계적 축제 이후 남겨진 그곳의 풍경은 삭막했다.

 

스키 활강로를 만들기 위해 천년 넘은 나무들이 사는 원시림이 파괴됐고,

올림픽 후 삶이 나아질 것을 기대했던 마을 주민들은 터전을 잃고 남은 게 없다며 아우성이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종이 울리는 순간>은 동계올림픽 이후 7년,

그곳에 남아 있는 것들에 대한 영화다. 독립 애니메이터 출신의 김주영 감독,

그리고 이란과 한국을 오가며 문화 및 환경 관련 영상을 만들어온

소헤일리 코메일 감독은 "우리가 아닌 가리왕산이 우릴 부른 것 같다"며

"영화로 남기지 않았다면 후회할 것 같았다"고 6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고백했다.

"다시 제안받았을 때 운명임을 직감"

다큐멘터리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관련 이미지.시네마달


영화의 주인공은 바로 국내 몇 안 되는 원시림 지역이자,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가리왕산이다.

삼수 끝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해 낸 당시 강원도는 행사 후 복원을 약속하며

주민과 국민들을 설득했지만,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각종 천연기념물, 고목들이 즐비했던 원시림 일부는 크게 파괴됐고

그곳엔 곤돌라와 흉물스러운 조형물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두 감독과 가리왕산의 인연은 우연과 필연의 연속이었다.

제주 설문대 할망 설화와 페르시아 대서사시 샤흐나메를 소재로 제주 신공항 문제를

은유한 다큐 <7개의 관문>이 2022년 울주산악영화제에 소개됐고,

 

이를 본 시민단체 '산과자연의친구들' 최중기 교수가 가리왕산에 대한

작업을 제안하면서부터가 시작이었다.

 

2022년 5월 무렵, 당시 경남 거제에서 살고 있던 두 사람은 카메라 없이

가리왕산을 오가며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마침 두 사람도 철저한 채식주의자에 환경주의자로 삶의 방향성을 잡고 있었던 터였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소헤일리 코메일 감독.시네마달


"그간 BBC와 CNN,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에 여러 나라의 문화와 환경을 다룬

영상을 보내면서 환경 이슈가 어느 특정한 지역 문제만이 아님은 알고 있었다.

 

큰 결정을 정치인들이 하고, 미디어도 개발 관련 이슈를 지지하는 내용을 주로 담아내지 않나

. 사실 이 작업을 할지 고민은 많았다. 하지만 저도 한국에 머물게 되면서 올림픽을 잊고 지낸 시간이 길었고,

가리왕산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꼭 완성해야 했다." (소헤일리 코메일)

"저와 소헤일리는 서로 장기 여행을 다니면서 떠돌던 시기가 있었다.

그는 이란에서 히치하이킹으로 5년간 여행했고, 전 거리의 초상화 화가 일을 하며 여행했다.

 

그전까진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거나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참여했었다.

그러다 소헤일리를 알게 돼 같이 살게 됐다. 우리 모두 친환경적 삶을 살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자연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고 있었다.

 

1회용품을 안 쓰는 건 물론이고 우리 두 아이 모두 천기저귀를 쓴다거나,

영화작업 때도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등으로 말이다.

2011년인가 평창 올림픽 유치로 가리왕산이 훼손 위기라는 뉴스를 보고 걱정하며 울곤 했는데,

정작 올림픽 때는 까맣게 잊고 경기를 응원하고 있었다. 나중에야 후회했다.

 

<7개의 관문> 때 만난 하상윤 기자님이 가리왕산 이야길 하셨는데 그땐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다 다시 제안받았을 때 운명임을 직감했다." (김주영)

"한쪽의 일방적 생각만 담고 싶진 않았다"

다큐멘터리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 관련 이미지.시네마달


영화엔 산속 숲을 내달리는 온갖 동물들, 희귀종 곤충과 나무들이 등장한다.

동시에 복원 문제를 두고 시위하는 시민단체와 주민 간 갈등, 평창 올림픽 유치를 두고

환경을 끝까지 생각했다던 강원도 정선 군수를 비롯,

다양한 의견이 있는 시민들이 자신들의 사연을 말한다.

 

흥미로운 건 산에서 나고 자라온 마을 주민들도 산의 소중함을 알지만,

경제 개발 논리에 경도돼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내주고도 여전히 일부는 개발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민분들은 모두 친절했다. 다만 올림픽 이후 왜 본인들 마을에 경

제적 이득이 없는지 의문을 품고 계신 상태였다.

 

사실 전문가들은 이미 동계올림픽이 장기적으론 경기 활성화 기능이 없다고들 한다.

지금껏 동계올림픽을 연 나라 중 경제적 이익을 얻은 사례를 찾기 어렵거든.

항상 예산을 초과하는 비용을 쓰게 하고, 2주간 폭발적으로 바쁘게 시간을 보낸 뒤

하얀 코끼리(유지 관리에 거액이 투입되는 쓸모없는 경기장과

조형물을 뜻하는 용어-기자 주)만 남게 되는 셈이다." (소헤일리 코메일)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한쪽의 일방적 생각만 담고 싶진 않았다.

정선 군수님도 젊었을 때 동강댐 반대 운동도 하셨고 나름 환경에 관심이 있더라.

 

어린 시절을 보낸 마을이 댐으로 변한다는 걸 상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이 된 후 올림픽은 포기하기 어려운 달콤한 선물인 것 같았다.

 

삶의 터전이 유전자 보호구역이라 주민들은 나물도 제대로 못 캤다는데,

너무 도에서 모로 가버린 느낌이랄까. 개발 자체가 어려웠던 곳이

개발로 무너져버릴 거라곤 다들 예상 못 했을 것이다." (김주영)

202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는 이탈리아 밀라노다.

영화엔 그곳에서 삼림 훼손 및 자연 파괴 행위에 반대하는 활동가들과 시민들의 모습도 담겨 있다.

 

소헤일리 코메일 감독은 공동 제작 개념으로 우호적이었던 운동가들이

돌연 협조를 거부하고, 촬영분을 삭제해달라고 한 사연을 전했다.

 

정부 및 지자체의 압력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신만고 끝에 게릴라 시위를 벌이는 청년 단체 'Pista da boh'를 만나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내심 이탈리아 민주주의 위기까지 직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김주영 감독.시네마달


"IOC도 그렇고 많은 국가들이 지속가능한 올림픽을 말하는데,

그 실체에 접근하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땅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진실을 말해줄 사람을 찾는 게 힘들었다.

 

놀라운 건 한국이든 이탈리아든 패턴이 똑같더라. 정부와 지자체는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자연을 파괴한 뒤 일부 주민을 내쫓는다.

2018년 이후 7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소헤일리 코메일)

김주영 감독은 파괴된 가리왕산을 보며 산이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젠 영상으로만 남은 하봉(가리왕산의 아래 지점)을 보며 무서웠다"며

"일부 전문가들이 개발을 지지하며 주민들을 현혹하고 있는 현실"이라 짚었다.

수백년, 나아가 천년을 살아온 할아버지 나무가 2주의 축제를 위해 잘려나갔다.

사람들은 그 그루터기를 찾아가 산신제를 지냈다.

이 모습을 담아내며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묻는다.

과연 그 종소리는 올림픽 이후 경제 부활의 신호탄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의 소중함을 잊어버린 사람들을 향한 경고의 소리인지 말이다.

 

어린 주목이 1센티미터 자라는데 1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너무도 쉽게 자연에 가혹해지고 있는 현실이다.

"내레이션 솔비, 꼭 섭외하고 싶었다" 종이 울리는 순간>이

진행되는 곳곳에서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가수이자 화가로 활동 중인 솔비가 이 영화의 내레이터로 참여, 관객과 이야기의 거리를 좁힌다.

두 감독은 솔비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꼭 작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미국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의 제안으로

한국의 악플 문화를 주제로 한 단편을 만들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솔비였다.

 

이들이 연출한 <페인팅 스루 패인>(Painting through Pain)은

지난해 열린 뉴욕 페스티벌 TV&필름 어워즈에서 은상을 받았다.

"당시 작품 인연으로 알게 됐는데 권지안씨가 사회 이슈와 공익 문제에 관심이 많더라.

가리왕산 이야기에 꼭 모시고 싶었다. 그의 차분한 목소리가 영화에 잘 어우러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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