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는 갈등중]
① 여야 대치로 '시끌'…원구성 잡음에 고소고발까지
곳곳서 '민선 8기 후반기' 원구성 파행…
3개월 지났지만 의장 공석인 곳도
고소고발 후유증…"맹목적 어느 한 편"
"의원들 스스로 자세 바로잡아야"
/연합뉴스
전국 지방의회 중 일부에서 민선 8기 후반기 원구성을 마쳤어야 할 7월을 훌쩍 넘긴 이달 현재까지도 자리다툼을 벌이고 있다.
갈등 끝에 후반기 원구성을 마무리했다고 하더라도 수사기관 고소·고발 등으로 인한 후유증이 여전한 곳도 적지 않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여야간 극한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지방의회도 여야간 기싸움과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3개월여 지났어도 원구성 못 마쳐…거듭된 파행에 고개 숙인 의원들
22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 김포시의회는 여야 간 원구성 갈등으로 파행을 거듭하다가 3개월여 만인 지난 4일에야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했다.
시의회는 당초 지난 6월 하순 후반기 의장단을 선출하려고 했으나 여야가 원구성을 놓고 대립하면서 3개월간 정회를 반복하는 등 파행을 빚었다.
이로 인해 시의회에 상정된 조례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시민들과 지역기업이 피해를 봤다.
지난 7월 17일 준공된 김포 학운5산업단지(89만3천㎡) 입주기업은 관할 구역 조례가 처리되지 않으면서 토지 소유권 확보와 대출 전환 등에 차질을 빚었고, 시행사는 부도 위기까지 걱정하기도 했다.
문제는 의장단 선출 이후에도 여야 갈등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여야가 시의회 상임위원장 3석을 놓고 계속 갈등을 빚으면서 상임위는 개최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서 김포시가 제출한 976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도 처리되지 못하면서 취약계층 지원이나 재난대응 사업 등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시의회는 상임위원장 선출 전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따로 개최해 추경예산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시의회 사무국 관계자는 "현재 상임위는 위원장이 선출되지 않아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상임위원장 선출 없이 예결위에서 추경예산안을 심의해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홍천군의회는 아직도 의장 자리가 공석이다.
후반기 원구성 갈등은 전반기 의장의 연임 문제로 불거졌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이 각각 4명으로 동수인 가운데 현재 국민의힘 소속 의장의 연임을 민주당 의원들이 "의장이 전반기만 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 최이경 부의장이 부의장직 사퇴를 선언했다.
최이경 부의장은 입장문을 통해 "의장단 선거 지연 문제는 기초의회 정치인으로서, 한 주민으로서 매우 죄송스러운 일"이라며 "정치적 상황과 자리싸움으로 인해 초심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성한다"고 사퇴 배경을 밝혔다.
동해시의회는 여야 간 치열한 대결 양상을 보이며 의장단 선출에 실패하며 장기간 파행을 겪다가 네 번째 선거만인 지난달 말 의장단을 선출했다.
경기 수원시의회와 평택시의회에서도 후반기 원구성을 둘러싸고 두 달여 동안 홍역을 치른 끝에 지난달 초에야 갈등을 봉합했다.
경남 거제시의회도 지난달 들어서야 후반기 원구성을 마무리했다.
시의회는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비판이 커지는 가운데 전직 시의회 의장과 시민단체 등의 중재로 원구성안에 합의했다.
당시 시의원 16명 전원은 본회의장에서 머리를 숙이고 그간 본회의장 점거, 단식 농성 등으로 인한 의회 파행에 공식 사과했다.
◇ 원구성 갈등 끝내 고소·고발로 이어져…수사·재판 진행 중
가까스로 원구성을 마쳤어도 여야 간 고소·고발 등 후유증을 겪는 곳도 적지 않다.
광주 남구의회의 경우 후반기 원구성을 둘러싼 의원 간 갈등이 고발전으로 비화했다.
상임위원장직을 두고 이른바 자리싸움을 벌인 일부 의원들은 지난 7월 4일 위원장을 뽑는 선거에서 투표용지 촬영 의혹을 제기하며 동료 의원들을 경찰에 고발했다.
경찰은 고발장 접수 석 달째인 현재까지 의원들을 불러 의혹이 사실인지 수사하고 있다.
민주당 진주시의원들은 후반기 의장 선거가 비밀투표 원칙을 위반했다며 법원에 '의장 선거 무효 확인의 소'와 '의장 선거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민주당 측은 지난 7월 1일 실시된 의장 선거 당시 국민의힘 후보들이 특정 후보자를 찍은 기표 용지를 감표위원에게 보여줄 수 있게 하는 등 특정인을 당선시키기 위한 사전공모를 했다고 주장했다.
창원지법은 지난 8월 말 "선거 당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합의까지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이를 소명할 자료도 없다"거나 "비밀선거 원칙에 위반돼 무효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가처분 신청과 별개로 의장 선거 무효 확인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민주당 경남도당은 후반기 의장단 선거와 관련해 지난 7월 국민의힘 최학범 의장과 같은 당 박인 부의장을 뇌물공여 등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도의회는 국민의힘이 전체 64명 중 60명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민주당 측은 후반기 의장단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도의원들에게 돼지고기 및 장어세트가 전달된 과정에 최 의장 등이 관여했다고 주장한다.
이 중 최 의장은 지난 8월 경남선관위로부터 같은 내용으로 재차 고발된 상태다.
경찰은 고발장과 의혹 정황을 면밀히 확인하는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은 수사 마무리 단계에서 피고발인들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구태 막으려면 의장 선출 방식 바꿔야…최소한의 양심 잊어선 안 돼"
의장단 구성을 위한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러한 구태를 막기 위해서는 의장 선출 방식을 바꿔야 한다거나 무엇보다 의원 각자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송광태 창원대학교 행정학과 명예교수는 "아직도 부족하긴 하지만 인사권 확보 등 지방의회 권한이 점차 강화되고 있고, 앞으로도 점점 더 강화될 텐데 지금의 의장 선출 방식은 변화된 의회의 위상에 걸맞은 사람을 뽑을 수 있는 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장을 의원들이 선출하다 보니 이합집산과 거래가 일어나고, 선출된 뒤에는 의원들이 뽑아줬으니까 의회 개혁에 진척이 없다"며 "단체장과 의장을 직선으로 선출하는 방법이 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배동주 거제경실련 사무국장은 "맹목적으로 어느 한쪽 편을 드는 한국 정치구조를 감안하면 답이 쉽게 안 나오는 문제"라면서도 "분명한 건 어떤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결국 의원들이 스스로 자세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시민의 공복으로 역할을 하겠다고들 얘기하는 데 매번 자리를 탐하는 모습만 반복해서 보여주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고 안타깝다"며 "최소한의 양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② 정책·사업 잇딴 제동…
지방의회 내부 여야 대립으로 해당 지자체의 각종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지자체장과 같은 정당이 지방의회에서 소수당이거나, 지방의회가 여야 동수일 경우 대립은 격화하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정당 양극화를 줄이기 위해 지방의회의 권한을 강화해 자율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 지방의회 '여소야대' 지역서 극한 대립
22일 전국 지방의회 등에 따르면 세종시의 경우 최민호 세종시장의 선거 공약인 정원도시박람회와 빛축제 개최를 놓고 지역 여야가 극한 대립 중이다.
최 시장은 국민의힘 소속이지만, 시의회 다수당은 민주당이다.
축제 예산 통과를 촉구하며 최 시장은 단식농성을 벌였고 국민의힘 시의원 7명 전원은 삭발했다.
민주당은 열악한 재정상황, 비과학적인 관람 인원과 수익산정 등을 이유로 맞섰다.
시의회는 지난 11일 본회의를 열고 상임위에 이어 예결특위가 전액 삭감한
박람회와 축제 예산을 담은 추경 예산안을 가결했다.
최 시장이 사업 추진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서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강원 춘천시의회는 춘천시의 캠프페이지 도시재생혁신지구 등 현안 사업에 대해 반대 입장을 보인다.
춘천시의회는 전체 23석 가운데 국민의힘 의원이 13명이며 춘천시장은 민주당 소속이다.
앞서 춘천시의회는 춘천시가 제출한 조직개편안을 한차례 부결시키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절대다수인 경남도의회는 최근 '경남 마을교육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를 제정 3년 만에 폐지했다.
국민의힘 도의원들은 도시와 농촌간 마을교육 배움터 편차 등으로 조례 제정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고 봤다.
진보 성향의 박종훈 경남도 교육감은 입장문을 내고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경남 곳곳을 찾아 조례 폐지에 대한 도민 의견을 듣고, 재의 요구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경남도교육청은 학교와 지역의 교육자원을 연결해 배움을 확장하는 등 지역소멸 위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여야 동수 경우도 번번이 충돌…소수 야당도 집행부에 '제동'
경기도의회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76명씩 동수다.
도의회는 최근 K-컬처밸리 사업협약 해제와 인사청문회 특별위원회 위원 선정을 둘러싸고 내부 마찰을 빚었다.
이 여파로 경기도의료원장과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 인사청문회를 기한 내 열지 못했다.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2014년 이후 처음으로 관련 절차 없이 기관장이 임명되자 '직무 유기' 비판이 제기됐다.
도의회는 또 'K-컬처밸리 사업협약 부당해제 의혹 행정사무조사' 특별위원회 증인 재택을 놓고 충돌했다.
여야는 전 도지사인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증인 채택 여부 등을 놓고 갈등을 빚었고 특위 회의는 파행했다.
"지천댐 건설 결사반대"
(세종=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충남 청양 지천댐반대대책위원회 소속 청양 주민들이 21일 오전 정부세종청사 환경부 앞에서 지천댐 반대 환경부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2024.10.21 scoop@yna.co.kr
충남에서는 청양 지천댐 건설과 관련해 도의회 내 소수 야당인 민주당이 반대 의견을 냈다.
민주당 이정우 도의원은 지난 8월 임시회 본회의 도정질문에서 "지천댐이 건설되면 약 140여가 가구가 수몰돼 많은 주민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된다"며 "진정 물이 부족하고 그에 따라 수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면 우선 물 수지 분석이 이뤄져야 하고 그에 따른 사회적 토론과 검증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태흠 충남지사는 "수질 보전대책을 마련하고 수생생물 보호를 위해 향후 환경평가 단계에서 면밀히 조사하고 필요하다면 대책을 수립하겠다"며 "리브투게더나 상하수도 지원 등 수몰 지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충북도의회 건설환경소방위원회는 지난달 11일 김영환 충북지사가 추진해오던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사망자 지원'과 관련한 조례안을 부결했다.
찬성이 3표로 반수를 넘지 못했다. 나머지 반대 2표, 기권 2표였다.
건소위는 여당인 국민의힘 5명, 민주당 2명으로 구성됐다.
건소위 의원들은 유가족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금전 지원에는 일부 반대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는 조례안 제정 재추진을 위해 도의회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 전문가 "지방의회 권한 강화…지역 정치문화 형성 필요"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수도권에 있는 지방의회의 경우 지금 국회에서 보이는 정당 양극화 모습과 상당히 유사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수도권 이남으로도 이런 양상이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치가 기본 노선은 달라도 서로 합의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 공간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엄 교수는 "지금 정치는 이념적인 양극화는 사라지고 정서적인 양극화, '그냥 저 사람이 싫어요'라는 거로 가고 있다"며 "정서적 양극화를 그나마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집행부에 끌려가지 않게 국회나 지방의회의 권한을 지금보다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럴 경우 집행부는 의회 동의를 얻기 위해 타협을 하려고 할 거고, 야당은 여당이 되기 위해 더 치열하게 노력을 하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아직 해외 국가에 비해 지방자치에 대한 경험이 상당히 적고 정당 공천제가 기반이 되기 때문에 자율성이 취약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의회 민주주의도 쇠퇴하고 있는데 국회의원들보다 훨씬 자율성이 약한 지방의원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겠나"라며 "단순히 제도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장 교수는 "정치 문화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각 지역마다의 독자적인 의회 민주주의 문화를 만들고 지방의회의 권한도 지금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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