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만 새의 무리는 하얀 새가 무리 안에 들어오면 공격을 합니다. 까만 게 정의인 사회에서 하얀 색이라니, 당연히 환영받지 못하지요. <미운 오리 새끼>라던가 하는 제목의 동화에서의 이야기입니다만, 잡색 털의 오리 새끼들 속에 끼어 든 하얀 색 '미운 오리 새끼'가 왕따를 당하지만 실은 백조여서 날개에 힘을 얻은 후 하늘을 날아 떠나는 장면은, 혼탁한 세상에 대한 풍자의 백미였다고 보았습니다.

때 묻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힘든 시대입니다. 전혀 흠결이 없는 사람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습니다만, 나라의 최고위 직분을 맡겠다고 나선 이들이 일반인들의 조소꺼리가 되는 세태는 분명 선비들의 나라인 이 땅의 명성에 걸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을 자랑으로 삼아왔고, 유학의 본 고장인 중국 사람들에게까지 '되놈'이라는 비칭을 붙여 경시해 왔던 전통 있는 문화민족의 후손인데, 온 국민의 사표(師表)가 되어야 할 교육부의 최고위직 후보까지 오염된 인물로 보이는 현실은 백번 다시 생각해 보아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최근에 입수한 <전고대방>(典故大方)과 <보학편람>(譜學便覽)이라는 책에 청백리에 관한 자료가 있었습니다. 때마침 국회의 인사청문회가 중계되고 있어 청백리의 이름이 기록된 두 권의 책이 맞춤한 독서가 되었습니다. 조선조 500년 동안 녹선(錄選)된 청백리로 전고대방은 218명, 보학편람은 227명을 수록하고 있었는데, 어느 쪽이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의정부(議政府)·육조(六曹)·경조(京兆)의 2품 이상 당상관과 사헌부(司憲府)·사간원(司諫院)의 수직(首職)들이, 관리들 중에서 추천하여 선정한 청렴한 벼슬아치로 후세에 귀감으로 삼게 했던 관기숙정(官紀肅正)의 제도이다.

이에 녹선(錄選)되면 자손들은 부조(父祖)의 음덕(蔭德)으로 출사(出仕)의 특전이 부여되었다. 숙종(肅宗) 이후는 청백리의 자손이 많아 삼상(三相)의 추천으로 대개 5명 정도를 특채했다.

<보학편람>에 기록된 청백리에 관한 내용입니다. <보학편람>은 전고대방과 함께 족보학의 교전 같은 책으로 왕조별·성씨별로 청백리에 녹선 된 인물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성군 세종조의 항목에서 좋아하는 황희·맹사성·유관 세 분 정승의 이름을 발견하고 "역시!"하고 기뻐했습니다.

<보학편람>에는 문벌록(門閥錄)의 대항목에 상신록(相臣錄)·문형록(文衡錄)·호당록(湖當錄)·청백리록(淸白吏錄)·공신록(功臣錄)·조선왕후록(朝鮮王后錄)·종묘배향록(宗廟配享錄)·명장록(名將錄)·등단록(登壇錄)·절신록(節臣錄)의 소항목을 나누어 자세히 기술하고 있었는데, 무릇 관리된 자로서 가장 큰 영예를 문형록과 청백리록에 아울러 오르는 것으로 특기하고 있었습니다. 문형(文衡)이란 청요직(淸要職) 중 가장 명예가 큰 대제학(大提學)의 별칭인데 오늘날의 교육부장관과 국립서울대총장을 겸직한 정도의 고상한 자리라고 하였습니다.

문과급제(文科及第)의 문신이라도 반드시 호당 출신이라야만 문형(文衡)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문형이란 대제학의 별칭인데, 문형의 칭호를 얻으려면 홍문관 대제학과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또는 지성균관사(知成均館事)를 겸직해야 했다. 문형은 이들 삼관(三館)의 최고 책임자로 관학계(官學界)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직이므로 더할 수 없는 명예로 여겼고, 품계는 판서급인 정이품(正二品)이었지만 명예로는 삼공(三公) 육경(六卿)보다 윗길로 쳤다.

<보학편람>에서 찾은 문형을 설명한 부분의 옮긴 것입니다. '관학계의 공식 대표자로 삼정승의 윗길 벼슬'이라니, 명색이 선비인 자라면 당연히 바라보고 싶은 자리였던 것 같습니다.

위에 언급된 '호당(湖堂)'은 '독서당(讀書堂)'의 별칭으로 세종 때 젊고 유능한 문신을 뽑아 휴가를 주고 공부에 전념하게 한 데서 비롯된 제도라고 합니다. 이를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하여 문신의 최고 영예로 여겼는데, 요즘 말로 하면 국비장학생쯤 될 것 같습니다. 어릴 때 할아버님께서는 '선비로서 호당에 올라 문형의 직을 얻고 청백리에 녹선 되면 더한 명예가 없다'하고 공부를 독려하는 말씀을 주곤 하셨는데, 보학편람을 읽고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토록 명예가 높은 자리인 문형(文衡)에 당하는 고위직에 추천된 분의 행적이 낱낱이 밝혀진 국회인사청문회는 참으로 좋은 제도입니다. 지금껏 알지 못하던 허공 위의 사람들을 발가벗겨 치부를 드러나게 하는 통쾌함이라니, 욕구불만의 일상에서 모처럼 단비를 만난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정직, 근면…"어쩌고 하던 급훈이 기억납니다. 손수 쓰신 급훈을 교단 위에 거시고 '정직한 워싱턴'의 일화를 들려주시던 담임선생님은 어찌 그리 훌륭해 보이던지…. 어린 마음에 "일생의 사표(師表)를 보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선생님을 가르치던 대선생의 자리에 계시던 분이 교육부장관 후보가 되었다기에 기대를 가졌다가 청문회 덕택에 잔뜩 실망을 안고 말았습니다. 학위 논문 표절에 제자의 논문 도둑질이라니, 도대체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던 분일까 싶었고요.

다행히 낙마하실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만약에 그분이 교육부의 수장이 되신다면 전국의 선생님들과 학부형들이 제자와 자식 가르치기가 힘들 뻔했습니다. "논문 같은 건 직접 쓸 필요가 없다. 남이 쓴 걸 이름만 내 걸로 바꾸어 세상에 내놓으면 된다. 혹 알려질지라도 '관례였다'라고 버티면 다 통과된다."라고 가르칠 수는 없잖습니까?

원래 벼슬자리를 맡겠다고 나서는 무리는 대개 이류 내지 그 이하의 인물들이라지요. 보학편람의 절신록(節臣錄)에 고려 말의 두문동72현과 조선조 초의 사육신(死六臣), 호란 때의 삼학사(三學士), 한말 항일순절의사의 명부가 올라 있었는데, 의를 위해서는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고 벼슬자리 따위 눈길도 주지 않던 진짜 선비들이었습니다.

요(堯)왕이 왕의 자리를 권했을 때 허유(許由)는 더러운 말을 들었다고 강물에 귀를 씻었고, 그의 말을 들은 친구 소부(巢父)는 귀를 씻은 강물을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깨끗한 물을 찾아 상류로 올라갔다지요. 청빈한 이들과 자격이 있는 이들은 기피하는 자리가 벼슬이라 삼류들이 나와서 난 척을 해보려다가 치부가 드러난 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물러나는 현실, 나랏일이니 누군가 하기는 해야 하는 건데 청렴하고 능력 있는 인사들은 기피해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문형(文衡), 당쟁이 심하던 조선조에서도 그 자리만은 당리당략을 떠나서 염리(廉吏)를 추천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지요. 그렇다면 현세의 우리가 본받지 못할 일도 없을 텐데….

그 자리를 특별 별정직으로 만들어 사회 각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이들을 추천받아 투표로 뽑는다면 교육정책이 행정부의 이해에 따라 조석변하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러한 법안을 제안할 분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나라의 교육과 윤리를 책임지는 문형의 직책을 총리급으로 하여 투표로 뽑고, 교육문제에 만은 전권을 드리고 대신 무보수로 하자. 최고의 명예직으로 하고 임기를 마친 후 총리나 대통령으로 가지 않도록 하는 관례를 만들자."

웬 잠꼬대냐고요? 일개 서민인 헌책장사가 모처럼 건설적인 꿈을 꾸어 본 것입니다. 의식용 공포탄처럼 소리만 그럴 듯한 실없는 소리지만서도…. 하기는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쏘는 공포탄을 맞고 부적합한 인사로 지적당했다고 모두 낙마하는 건 아닙니다마는.

까마귀 무리에 끼어들기 싫어 총리 자리를 고사하시던 김준엽님이 생각납니다. 부통령 자리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던 이시영 선생, 김성수 선생이 또한 기억나고요. 위의 잠꼬대는 제 희망사항을 적어 본 것입니다만, 그 분들이라면 이해해 주실 듯합니다. 권력을 따라 해바라기를 하는 걸 당연시하고 부조리를 관행이라고 변명하기 잘하는 분들에게는 한낱 잡소리일 뿐이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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