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Violet)
우리나라에 약 50여종이 자생하고 있다. 잎의 생김새, 무늬, 꽃색 등이 매우 다양하며
타식율이 높아 잡종들이 많이 생긴다.
겨울나러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무렵에 꽃이 핀다고 제비꽃이라 부른다는 설과,
꽃의 모양과 빛깔이 제비를 닮아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오랑캐꽃이라는 이름의 유래에는 꽃이 필 무렵 오랑캐가 자주 쳐들어와서 붙었다는 설과
꽃의 생김이 오랑캐의 머리채를 닮아서 그렇게 부른다는 설이 있다.
흰제비꽃은 티없는 소박함을 나타내고 하늘색은 성모 마리아의 옷 색깔과 같으므로
성실·정절을 뜻하며 노란제비꽃은 농촌의 행복으로 표시하고 있다.
근근채, 반지꽃, 병아리꽃, 씨름꽃, 오랑캐꽃, 외나물꽃, 자화지정, 장수꽃이라고도 함.
앉은뱅이 꽃은 키가 작아 앉아있는 것 같다고 해서, 반지꽃은 꽃으로 반지를 만든대서,
장수꽃과 씨름꽃은 꽃 모양이 장수들이 씨름하는 것 같아서,
병아리꽃은 병아리처럼 귀여워서 각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순진한 사랑
봄철화단에서 제일 먼저 꽃을 보여주는 초화는 팬지다.
팬지의 조상은 바로 이 제비꽃과 같은 비올라(Viola)속이다. 팬지는 개량되어 나온 일년생이어서
화단에 심으면 꽃이 핀 다음 죽기 때문에 매년 다시 심어 주어야 한다.
하지만 제비꽃들은 다년생으로 자라기 때문에 한번 조성해 두면 반영구적으로 자라며
번식력도 뛰어나다. 번식은 포기나누기 또는 씨로 한다.
한방에서 뿌리째 캔 줄기를 정독초(靜毒草)라 하여 약으로 쓰는데
열을 내리고, 어혈을 풀어주며, 독을 없애고 염증을 가라앉히는 효능이 있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태독·유방염 등 부인병과 중풍·이질·설사·진통·인후염·황달·독사교상 등의 치료에 약재로 사용하며,
발육촉진제·간장기능촉진제로 쓰인다.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장미·백합과 함께 성모께 바치게 되었는데
장미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백합은 위엄을 나타내며 제비꽃은 성실과 겸손을 나타낸다고 하였다.
옛날 아름다운 '이아'라는 소녀는 양치기 소년인 '아티스'를 사랑했다.
그러나 '아티스'를 귀여워하던 미의 여신 '비너스'는 그녀의 아들인 '큐피드'에게 두 개의 화살을 두 사람에게 각각 쏘도록 하였다.
'이아'에게는 영원히 사랑이 불붙는 황금 화살을, '아티스'에게는 사랑을 잊게 하는 납 화살을 쏘게 하여 이들 사이를 갈라놓게 하였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이아'는 못 견디게 보고 싶은 '아티스'를 보러 갔지만,
납 화살을 맞은 '아티스'는 '이아'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이아'는 결국 비통한 나머지 울다 지쳐 죽고 말았다.
이것을 본 '비너스'는 안쓰러운 마음에 '이아'를 작고 가련한 꽃으로 만들어 주었는데
이 꽃이 바로 '제비꽃'이다.
고대 그리스인은 제비꽃을 사랑하고, 제비꽃으로 장식된 아테네를 많은 시인들이 노래하고 있다.
제비꽃에 얽힌 신화, 전설도 많으며, 미소년 아티스의 피(또는 이오의 숨결)에서 생겼다든지,
페르세포네가 명계의 왕 하데스에게 잡혀갔을 때 핀 꽃으로서 전해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제비꽃을 되살아나는 대지의 심벌로 한 것처럼, 독일에서는 봄의 사자라고 한다.
빈의 궁정에서는 3월에 도나우 강가에 처음으로 피는 제비꽃을 찾아서 거기에 인사하는 습관이 있었다.
16세기의 뉘른베르크의 시인 H. 잭스는 사육제 『나이트 하르트와 제비꽃』에 그것을 극화하고 있다. 독일에서 동유럽에 걸쳐서 퍼진 봄맞이 행사에도 제비꽃은 봄의 심벌로 등장한다. 제비꽃을 좋아하는 시인에는 핀다로스, 괴테, 하이네 등이 있다. 봄의 꽃 외에 제비꽃에는 가련한 소녀의 이미지가 강하다.
나폴레옹은 제비꽃을 무척 좋아하였는데 엘바섬에 유배되었을 때“제비꽃이 필 무렵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였다. 나폴레옹은 젊었을 때‘제비꽃 소대장’으로 불릴 만큼 제비꽃을 사랑하여 동지를 확인하는 표식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의 아내인 조세핀도 나폴레옹처럼 제비꽃을 무척 좋아했지만 나폴레옹과의 이혼 후 한 번도 제비꽃을 쳐다보지도 않았다고 한다.
이른 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에도 계속 성장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꽃받침이나 꽃잎이 열리지 않은 채 자체적으로 꽃가루받이와 수정을 해서
씨앗을 만드는 게 폐쇄화란다.
건강한 후손을 보려면 다른 개체로부터 꽃가루를 받아들여 수정하는 게 바람직하지만
혼자서 끙끙거리며 씨앗을 만들어내는 데는 속사정이 있을 법도 하다.
폐쇄화는 제비꽃·괭이밥 같은 종류 외에도 다양한 식물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보통 건조하거나 온도가 낮을 때, 빛이 부족할 때 폐쇄화로 씨앗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폐쇄화는 식물이 악조건 속에서도 자손을 퍼뜨리기 위해 고안한 방법인 셈이다.
봄에 곤충을 불러들이는 개화수정(開花受精)으로 한 차례 씨앗을 만들어 퍼뜨렸는데도
제비꽃이 다시 폐화수정(閉花受精)에 나서는 걸 보면 여름·가을을 흘려보내기 아쉬운 모양이다.
봄에 다른 꽃보다 먼저 꽃을 피웠을 땐 곤충을 불러들이기 쉽지만
다들 화려한 꽃을 피우는 한여름에는 작은 제비꽃이
경쟁하기 어려운 점을 감안한 해결책이 폐쇄화일 수도 있겠다.
제비꽃이 번식을 위해 애쓰는 모습은 또 있다.
씨앗을 싸고 있는 꼬투리가 익으면 세 조각으로 벌어지고, 씨앗은 멀리 튕겨 나간다.
씨앗에는 ‘엘라이오솜’이란 게 붙어 있다. 단백질과 지방 덩어리다.
개미가 제비꽃 씨앗을 물어다가 개미 유충에게 주면, 유충은 엘라이오솜만 먹고 씨앗을 남긴다.
개미가 남은 씨앗을 개미집 밖에 내다버리면 씨앗은 멀리 퍼진다.
개미와 제비꽃은 이렇게 공생한다.
2011년 브라질에서는 제 스스로 씨앗을 땅에 심는 식물이 발견돼 화제가 됐다.
스피겔리아 제누플렉사란 이름의 이 식물은 키가 2.5㎝에 불과한데,
씨앗이 맺히면 가지를 조심스럽게 땅 위로 내려 부드러운 이끼 속에 씨앗을 묻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