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농업
/안철환
병해충과의 싸움은 기다림
자급할 정도의 배추를 심는 도시농부라면 직접 손으로 벌레를 잡는 게 제일 확실한 생태적인 방제법이다. 그 외 현미식초를 물로 10배 희석해 뿌려준다든가, 목초액을 200배 희석해 뿌려주는 방법도 있다. 우유, 요쿠르트, 마요네즈 등도 희석해 뿌려주면 농약 역할을 한다. 그러나 벌레 꼴이 보기 싫다고 남몰래 화학살충제를 뿌리면 다음해에 벌레가 더 꼬인다. 살충제가 익충마저 죽이기 때문이다. 당장은 먹을 게 줄더라도 보시한다 여기고 참고 기다리면 이듬해엔 확실히 익충들이 찾아와 해충을 막아준다.
생태적인 방제법은 물론 원천적 예방법이다. 화학적인 살균살충제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병해충을 생태적인 방법과 자재로 농약 이상의 효과를 보려는 것은 과욕이다. 그럼 어떤 것이 생태적인 방제법일까?
우선 거름을 과다하게 주지 않아야 한다. 특히 암모니아 냄새가 나는 미숙퇴비는 병해충을 불러들이는 아주 좋은 재료다. 흙냄새가 날 정도의 완숙된 퇴비를 약간 모자라게 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그러면 땅에 좋은 미생물이 많이 증식되고 이들이 천연항생제를 내뿜어 병해충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다음으로는 땅을 뒤집지 않는 것이다. 땅을 뒤집으면 먹이사슬 구조가 다 깨져 해충이 많이 꼬이고 땅속에 숨어있던 벌레 알들이 올라와 더 창궐한다.
훌륭한 병해충 예방법 중의 하나가 혼작(여러 작물 섞어심기)과 윤작(돌려심기)이다. 이는 작물들 간에 서로 농약 역할을 하게 하는 방법이다. 고추 사이사이에 들깨를 심으면 고추 열매를 구멍 내 기생하는 담배나방애벌레를 막을 수 있다. 대파를 채소 옆에 심으면 특유의 향 때문에 방제효과를 내고, 옆에 있는 채소의 생육을 도와준다. 들깨를 거둔 다음 마늘을 심으면 고자리파리 구더기를 예방할 수 있다.
밭둑에 허브 또는 토종 나물들을 심으면 밭의 생물 다양성이 풍부해져 특정 벌레들의 창궐을 막아준다. 그러나 최고의 병해충 예방법은 기다리는 데 있다. 자연은 늘 스스로 균형을 찾아간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땅은 갈지 않을수록 좋다
또 흙을 뒤집고 갈면 병해충이 더 생긴다. 흙을 갈지 않으면 흙 속 생태구조와 먹이사슬이 그대로 살아있어 흙의 균형이 유지되는데 흙을 갈아엎어버리면 이 구조가 교란되고 그 빈틈을 해충들이 메운다. 해충은 초식이고 익충은 육식 벌레다. 생태계가 깨지면 초식성 벌레나 동물이 먼저 생기기 마련이다. 먹을 게 없는데 육식성 벌레, 동물이 먼저 찾아올 리 없다.
뒤집지도 갈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호미로 풀만 매주는 게 좋다. 그러면 간접적으로 가는 효과가 생기는데 그 깊이가 10㎝를 넘지 않는다. 이른바 얕이갈이(淺耕)를 하면 표토에서 날아가는 습기는 잡아주고 작물 뿌리에 도달하는 습기는 건들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가뭄을 덜 탄다.
흙을 뒤집지 않는다면 거름은 어떻게 줘야 하나? 초보농부들은 뿌리가 거름을 잘 흡수하도록 흙 속에 집어넣는다. 그러나 거름을 땅속에 집어넣으면 그걸 먹으러 해충들이 모여든다. 따라서 거름은 땅 위에서 호미로 흙과 살살 섞어주기만 한다. 거름의 양분은 빗물에 의해 충분히 스며들게 되어 있다.
흙을 갈지 않으면 폭우에도 흙과 거름 유실을 줄일 수 있다. 흙을 너무 곱게 갈면 약간의 비에도 쓸려간다. 흙이 유실되면 땅이 딱딱해지고 양분이 쓸려가버려 흙은 산성이 되어 농사도 잘 안된다. 상업 목적의 대규모 단작 농사에선 불가피하게 기계로 땅을 갈아야 하지만 자급 목적의 도시농부들은 갈지 않을수록 땅도 좋고 힘도 덜 들며 병해충을 예방하는 농사를 지을 수 있다. 그래도 그 힘든 삽질을 하시겠는가?
흙을 살리는 거름
몇 년 전 중국 배추에서 해충알이 나와 난리가 난 적이 있다. 인분을 거름으로 써서 그렇다고 했다. 똑같이 인분으로 농사짓는 필자 얘기를 듣고 국내 유명한 한 유기농 연구소에서 내 흙과 배추를 가져가 분석을 해봤다. 결과는 예상한 대로 전혀 문제점이 없었다. 인분을 제대로 숙성시켜 썼기 때문이다. 나는 인분이든 음식물이든 완전히 흙냄새가 날 정도로 숙성시켜 쓴다. 완숙된 퇴비에는 좋은 미생물이 많이 증식되어 해충알은 물론 바이러스도 오지 못한다. 흙 관리를 잘하면 농약은커녕 천연 생물농약도 필요없다. 도시농부들을 특히 괴롭히는 것 중 하나가 병해충이다. 그런데 농약이 필요없는 흙살리기를 잘 모르는데다 알아도 즉각 효과가 나오질 않으니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벌레가 꼴 보기 싫다고 살충제를 뿌리면 벌레들이 점점 더 꼬인다. 벌레를 잡아먹는 천적도 죽기 때문이다.
완숙 퇴비를 만드는 데는 발효도 중요하지만 어떤 재료를 선택하느냐도 중요하다. 제일 좋은 재료는 역시 내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이다.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도 좋다. 옛말에 내 똥 3년 이상 먹지 않으면 큰 탈 난다고 했다. 순환을 말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똥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가축과 달리 항생제나 예방약을 일상적으로 먹지 않기 때문에 인분이야말로 축산분뇨로 만든 퇴비보다 훨씬 양질의 거름 재료다. 이걸로 거름을 만들면 환경에도 도움이 되고 내 몸에도 도움이 되니 일석이조다. 도시농부의 첫걸음은 바로 내 몸에서 나오는 배설물로 거름을 만드는 일이다
최고 웃거름, 오줌
오이, 호박, 토마토 등 과채류 모종들에 웃거름을 줄 때다. “웃거름으로 뭐가 좋아요?” “오줌이 최고이지요.” “오줌을 어디서 구하죠?” “오줌, 안 누세요?” “…?!”
거름에는 작물 심기 전에 주는 밑거름이 있고 작물이 자랄 때 주는 웃거름이 있다. 웃거름으로는 작물이 흡수할 수 있는 액체비료, 곧 액비를 준다. 보통은 화학비료인 요소비료를 물에 타서 주지만 나는 액비 대용으로 오줌을 쓴다.오줌도 요소비료이긴 하지만 화학비료보다 결정적으로 좋은 점이 있다. 오줌에는 유산균이라는 유익한 미생물이 있기때문이다.
유산균은 식중독균과 같은 병원성 세균을 죽이는 살균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유산균이 토양 속에 들어가면 토양을 아주 건강하게 만든다. 또 오줌에는 작물의 뿌리 발육을 촉진하는 물질도 함유하고 있다.
오줌 속 염분 때문에 거름으로 활용하는 걸 꺼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로 희석해 쓰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희석은 최소 5배에서 10배까지 해야 한다. 이렇게 희석한 오줌을 잎사귀에 직접 분무해주면 작물이 오줌을 바로 흡수하게 되어 영양제를 링거액으로 맞는 것과 진배없다.
성인이 한 번에 누는 오줌의 양은 대략 300㏄ 이내인데 이를 변기를 통해 하수구로 내보내는 데 먹는물 10ℓ를 쏟아붓는다. 필자의 집은 똥, 오줌을 모두 거름으로 쓰다보니 수도요금이 거의 안 나온다. 4~5t밖에 안 쓰는 우리집 수도계량기를 검침할 때마다 검침원 아저씨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두 목발을 짚는 필자에게 “물을 20t 이상 쓰면 장애인 할인을 받을 수 있는데 왜 이렇게 아껴 쓰세요”라고 딱하다는 듯 말하곤 한다.
오줌비료를 쓰는 건 단순히 물을 아끼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화학비료는 석유로 만들기 때문에 탄소를 많이 배출하지만 오줌은 유산균과 좋은 물질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면서도 공짜다. 땅도 좋게 해주고 작물의 맛도 좋게 해주는 천연비료, 이렇게 좋은 비료가 또 어디 있겠는가?
씨를 말리는 농사
1950년대 정부에서 광교라는 다수확 콩 종자를 육종해 전국에 보급한 적이 있다. 다수확에다 모자익바이러스에 강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다양한 콩 종자들은 퇴출되고 광교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광교는 괴저바이러스에 무참히 쓰러져 나갔다. 광교는 3년 만에 사라지고 말았고 급기야 콩 수확량은 최저로 급감하고 말았다. 다양한 재래종 콩을 재배했더라면 비록 병에 걸리더라도 종이 전멸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단일 품종을 대량 재배하는 단작 농사는 종자를 단순화한다. 다수확이 되고 돈벌이가 되는 종자 외에는 퇴출되고 만다. 그렇게 단순화된 종자에 치명적인 병충해가 생기거나 사회적인 혼란이 생기면 결국엔 그 종자마저 사라지고 만다. 종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먹을 근본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콩과 밀을 주식으로 100% 자급농사를 하며 평화롭게 살던 레바논은 100년 전 프랑스에 식민화된 후 콩과 밀 대신 강제로 누에 농사를 짓게 되었다. 비단을 프랑스에 팔아 콩과 밀을 수입해 먹고살았는데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무역체제가 붕괴되니 비단을 팔 길이 막혔다. 갑자기 닥친 상황에 전 국민이 굶어 죽게 생겼다. 결국 인구의 3분의 1이 난민 신세가 되었다.
자유무역협정(FTA)은 단작 농사를 부추긴다. 비교우위론에 입각해 경쟁력 있는 농사만이 남게 되고 그 외에는 퇴출되고 만다. 우리나라에서 경쟁력 있는 농사는 손꼽기조차 민망하다. 지금 씨가 마른 자리에서 무엇이 돋는가 보라. 정체불명의 것들만 무성하다.
콩 세 알을 심은 이유
아마존 밀림 가운데 원주민들의 농경지가 자그만치 12%나 됐다고 한다. 그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지었음에도 그들의 농경지는 외부인의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왜? 숲을 파괴하지 않고 숲 그대로에 맞게 농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곳에는 음지 작물을 심고, 습한 곳에는 습지에 맞는 것을 재배했다. 이렇게 자연을 지키며 먹을 것을 얻었던 아마존 원주민 또한 성인군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밀림을 파괴해 농사를 짓는 것보다 밀림을 보호하며 농사를 짓는 것이 그들에게 유익함을 몸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환경운동 단체들이 북극 이누이트인을 찾아가 물개를 잡아먹지 말라고 설득했다. 물개는 보호종이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누이트인들은 이렇게 말했다. “몇 천년 물개를 잡아먹어 왔지만 우리는 결코 물개를 멸종시키지 않았다”고.
생명을 먹어온 인간은 먹는 행위로 그 생명과 먹지 않는 다른 생명까지 지켜왔다. 그게 어쩌면 진정한 공생의 삶이자 공생의 철학일 것이다. 성인군자나 고귀한 학자들만이 공생의 철학을 얘기하면 그것은 죽은 철학에 불과할 뿐이다. 철학은 하찮은 민초들의 삶으로 구현될 때 진정 살아있는 철학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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