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 군부대 울타리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숲 속으로
또렷한 주능선길이 보이는데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한참 동안 계속되더니
드디어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수락산으로 들어서는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른다.
첫번째 철탑을 지나
군부대 후문 철조망을 빠져나가면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11:20 305봉
불타버린 능선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
바로 앞으로 도솔봉이 보인다
두번째 철탑을 지나 밧줄이 걸린 암릉을 오른다.
암릉을 지나자 왼쪽으로 전망좋은 너른 바위가 펼쳐 있고,
등산객들이 한 무리 쉬고 있다.
바위 끝에 서니 지나온 석장봉과 불암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11:30 전망바위
송림의 오솔길로 이어지지만
차츰 암릉길이 많아진다.
멀리 도솔봉이 보이고,
꼭대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중식 12:15출발
12:20 540고개삼거리
중식후에 만나는 오름길
서두른 탓인지 발걸음이 거부를 한다
도솔봉을 포기하고
우측 지름길로
/수락산정상1.3km,수락산역4.2km(수락골).수락산역(노원골)
12:30 치마바위
수락산이 가까워질수록
등산로가 혼잡해진다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피해 바위벽으로 붙는다
너른 바위벽
올라서니 차마바위 끝이다
바위틈마다 서있을 자리조차 없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암릉
도중에 동서로 뚫린 통천문이 있다
12:35 하강바위/철모바위
바위 아래에는 대형 남근바위가 멋지게 서 있다.
철모바위 좁은 암반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올라선 사람은 내려올 줄 모르니
포기하고 뒤돌아선다
좁은 바위틈
내려서기가 힘들어
우측 협곡으로 돌아간다
12:45 코끼리바위
왼쪽 옆의 봉우리에 올라서 보지만
여기도 암릉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
코끼리는 꼼짝도 안하고
집채보다 더 큰 바위상단에 완전히 엎드려 있다.
자연의 힘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통천문
코끼리 바위 좌측 좁은 바위틈으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지체된다
13:05 깔딱고개 매점
다시 이어지는 암릉
고갯길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급한 마음에 우측 암벽을 타고 지른다
바로 앞봉이 철모바위
우회하는 후미를 기다리며
형제바위봉으로 올라서지만 역시 만원이다
되돌아와 삼거리에서 휴식
/수락산역4.7km(수락골).수락산역(노원골)5.2km,수락산정상0.3km
13:15 내원암 갈림길
좁은 암릉
서로 비켜주는 일도 없이 부딪치고
상계역에 올라오는 사람들로 시장을 이룬다
/수락산정상51m, 청학리4.13km, 상계역방향
로프가 매어진 바위옆을 지나
늘어선 행렬을 따라
좁은 홈통길을 타고 오르면..
13:20 수락산(638m)
정상표지석이 있고 그 표지석에 바로 붙어서
더 올라 갈수 있는 바위길이 있다,
다시 한 단을 더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고
태극기가 힘차게 날린다,
서쪽 아파트 숲 뒤로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을 포함한 스카이라인이 선명하며,
그 오른쪽으로 사패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뒤로는 도봉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의 바위 군이 빛나고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코끼리바위 뒤로 불암산이 솟아있고,
북쪽 능선 너머 의정부 천보산과 불곡산의 두 봉우리가 우뚝하다.
큰 바위 밑에 자리한 정상석은 너무 작고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속에 사진조차 남기기 어렵다
정상은 사람들로 오르내리기가 어려워
뒤쪽으로 돌아가본다
바위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정상의 모습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수락산은 은둔의 산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숨어든 곳이 석림사 계곡이다
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어
조용히 숨어 지내기 좋은 곳이지만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13:35 이정표
청학동 마당바위 부근 계곡이 수락산의 절경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산이 하얀 화강암 바위로 덮이고, 석벽과 암반으로 둘러싸인
수락폭포 계곡 은류, 금류폭포가 나온다.
도솔봉 5거리부터 홈통바위(기차바위) 근처까지는
수락산을 산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치는 코스로
휴일에는 아주 많이 붐비는 암릉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보면 앞으로 서울의 북부가 거의 다 조망이되고,
덕소를 지나 팔당대교, 남산, 관악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가까이로는 불암산, 의정부, 남양주시,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불국산 등이 조망되는 경치 좋은 능선길이다,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돌아나가면
수락산장, 석림사, 산지정화감시초소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있다
/기차바위0.3km,산지정화감시초소1.5km,정상0.15km
13:45 기차바위
홈통바위 위험구간 우회로...
직진하여 홈통바위를 타고 내려선다
막상 기차바위 위에 서니 가파르기는 해도
홈통으로 된 바위 양쪽으로 두 개의 로프가 걸려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뒤로 돌아서서 로프를 다리 사이에 끼고
뒷걸음질로 내려가기 시작하지만
이건 경치를 제대로 볼수가 없다
그냥 바위벽을 딛는다
밑에서는 오르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사진촬영...
끝난게 아니가
홈통바위를 쉽게 내려서면 다시 이어지는 로프길
올라오는 단체등산객이 수시로 지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통과시켜주느라 지체된다.
13:55 장암역 갈림길
석림사는 신라의 절터로 박세당이 중창,
6.25동란에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아래에 숙종 때 학자인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궤산정, 매월당 숭모비가 있다.
궤산정자 바위 밑에 새겨진 글씨,
서계유거(서계(박세당가 한가히 산다),취승대, 석천동이 암각되어 있고
박세당의 둘째아들인 박태보의 위패를 모신 노강서원도 근처에 있다.
/동막골2.9km, 신설로
14:05 이정표
가파른 내리막 등산로
선행하는 등산객들을 앞지르며 진행한다.
이곳부터는 오르며 내리는 등산객을 볼 수가 없는
한적함이 시작되고...
/동막골2.7km,정상1.3km
14:30 도정봉(524봉)
뒤돌아보면 큰 암벽인 지나온 기차바위가 매우 가팔라 보인다
바위 아래위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
두줄기 로프에는 개미처럼 매달렸다
천막이 있는 매점
사방의 조망이 매우 좋다.
하산 길은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14:35 십자로
급한 내리막길에 매여진 밧줄을 따라.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스레 한참을 내려서며
갈림길 안내이정목을 지난다.
안부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만가대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
/기차바위2.3km, 만가대1.1km, 도정봉,
올라서는 길에 만나는
암릉에서 잠시 휴식
건너로 도정봉의 모습과
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다
14:40 509삼거리
매점이 있고
동막골로 내려가는 암릉길이 바로 밑에 펼쳐진다
삼거리에서 용현동으로 내려가는 우측길을 버리고
동막골로 내려가는 좌측길로 내려선다.
15:00 425암릉
다시 내리막...
참호를 지나고 짧은 밧줄구간을 지나
장암주공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선다.
다시 밧줄이 길게 걸린 바위
작은 봉우리를 내려서서
한적한 넓은 등산로를 따르면
멀리 차량들이 질주하며 울리는 굉음이 들려온다.
후미를 기다리며 휴식
15:40 동막골 굴다리
날머리에서 굴다리를 통과한 후에
회룡역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우측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보도를 따라 걸어가니
장암주공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암릉을 오르내리는 다소 힘든 산행길을 따라
하루를 넘긴다
* 수락산(638m)
산행하기에 알맞은 높이로 인근 주민들이 쉽게 찾고 있는 산이다.
화강암의 암벽이 노출되어 있으나 산세는 험하지 않고, 남쪽에 있는 불암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동쪽에 금류계곡이 있다. 서쪽 비탈면에 쌍암사․석림사,
남쪽 비탈면에 계림암․흥국사, 동쪽 비탈면에 내원암이 있고,
내원암의 법당 뒤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m의 석조미륵입상이 있다.
1996년 시민 휴식공간 확충을 위해 삼림욕장이 조성되었다.
불암산과 잇닿은 쪽의 능선에는 봄이면 철쭉이 만발해 산행이 더욱 즐겁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km 산책로는 삼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고 기암 괴석과 샘, 폭포가 많은 반면 나무는 매우 적다.
산의 분위기가 다소 삭막하기는 하나 바위의 경치가 뛰어나고 곳곳에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수락 8경이라 불리는 금류폭, 은류폭, 옥류폭포와 신라 때의 흥국사, 조선 때의 내원암이 있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비교적 교통이 편리해서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또한 산세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산 전체가 석벽과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도처에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수락산에 오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데
주저하는 이유는 산의 아름다운 경치 대부분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름난 유원지는 서울의 반대편에 있고,
부근에 있는 벽운동 유원지는 주변의 도봉산과 북한산에 눌리는 형편인 것이다.
* 수락산의 전설
수락산 갈울마을에 사냥꾼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은 항상 넉넉하여 서로를 아끼며 사랑했습니다.
남편이 뒷산으로 사냥을 가면 아내는 칡덩굴 우거진 언덕배기를 열심히 일구어
감자․고구마․콩을 심으며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정답게 주고받으며 하루의 피곤함을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아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다 놓고 신령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사냥꾼 부부의 지극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던지 드디어 아내의 몸에 태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고, 아내를 위한 남편의 보살핌은 대단했습니다.
사냥을 나가지 않는 날이면 집 주변을 말끔히 치워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길어다 주며 아내를 도왔습니다.
또한 밤이면 새로 태어날 아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날이 갈수록 배가 불러오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온 산에 진달래가 사태를 이루던 어느 날, 사냥꾼의 아내는 심한 산기를 느꼈습니다.
사냥꾼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몹시 당황했지만 부리나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며,
아기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아내의 진통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며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사냥꾼은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으……으, 아이고……
차츰 아내는 기진맥진 하고 남편의 말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감았던 눈을 한번씩 힘겹게 뜨곤 할 뿐이었습니다.
아…… 아……
아내의 비명소리와 함께, 우렁찬 사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냥꾼은 기쁨에 들떠서 아기와 아내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심한 출혈 끝에 아기를 낳은 사냥꾼의 아내는 남편의 극진한 간호도 허사로,
삼일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냥꾼은 세상을 다 잃은 듯 했지만,
그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보며 시름을 달랬습니다.
사냥꾼은 아들 이름을 수락이라고 지었습니다.
엄마는 없지만 수락산의 깊고 넓은 계곡이 엄마 품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락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품에서 젖을 얻어 먹고 자랐지만,
배가 고파서 우는 소리가 사립문 밖을 나오지 않았고, 사냥꾼 아버지를 닮아 체질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수락이는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한없이 따랐습니다.
사냥꾼의 아들답게 여섯 살 때는 집 근처를 뛰어다니는 토끼도 잡았고,
장에 간 아버지가 늦게 오는 날이면 동구 밖으로 마중도 나가곤 했습니다.
사냥꾼은 늠름하고 자상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차츰 잊을 수 있었습니다.
수락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갈울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은 불안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호랑이를 잡을 궁리를 했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근심은 깊어만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호환을 막지?
누가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면……
이제는 나다니는 것조차 겁이 나……
동냥젖을 먹이며 어미 없는 수락이를 키운 사냥꾼으로서는
이 기회에 마을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냥꾼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수락이를 맡아줄 집을 물색하며 호랑이 사냥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린 수락이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 길에 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수락아, 호랑이 사냥은 아주 위험한 일이란다.
그러면 아버지는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혼자서 하시려고 해요?
나는 이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 아니냐?
저는 그 사냥꾼의 하나 뿐인 아들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어린 나이다.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위험한 사냥을 나서는데,
하나 뿐인 아들이 어찌 편안하게 남의 집에서 지내겠습니까?
사냥꾼은 끈기있게 수락이를 설득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집요하게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결국 사냥꾼은 아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냥을 나서던 날은 날씨마저 쾌청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사냥꾼 부자가 꼭 호랑이를 잡아오기를 바라며 그들을 떠나보냈습니다.
특히 갓난아이 적부터 수락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여주었던 버들이네는
수락이를 위해 미숫가루와 찰떡도 싸주었습니다.
며칠을 수락이와 함께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찾아다녔건만 호랑이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긴장감은 풀어지고 마치 소풍을 나온 사람들처럼 즐거웠습니다.
아버지, 저기……저 오리바위 아래가 어머니 산소지요?
어디 보자. 으…… 음 그렇구나.
벽운계곡을 내려다보는 사냥꾼의 얼굴에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아침부터 상투봉 부근에서 호랑이의 발자국을 찾아낸 아버지와 아들은
바짝 긴장함과 동시에 몸은 분주해졌습니다.
바람결에 부스럭거리는 갈참나무잎 소리에도 머리끝이 쭈뼛쭈뼛했고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솔부엉이를 항해 활시위를 당기기도 했습니다.
점심 때가 지나자 삿갓봉․감투봉․고식봉에 길게 걸려 있던 구름이 모여들면서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가 올 기미가 분명했습니다. 숲 속의 산새들도 부산을 떨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떡갈나무 잎사귀에는 이미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냥꾼과 수락이는 재빨리 물개바위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비를 피하기 적합한 바위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차츰 빗방울은 굵어졌고 수시로 으르렁대는 천둥소리에 그들은 걸음을 더욱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개바위를 눈앞에 두고 더 이상 비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겁지겁 비를 피해 들어간 바위 굴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넓고 아늑했습니다.
사냥꾼과 수락이는 비에 젖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사냥꾼도 수락이가 아들이라기 보다는 사냥의 든든한 동반자로 느껴졌습니다.
아침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한나절을 쫓아다닌 탓에 그들은 그제야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사냥을 떠날 때 버들이네가 싸준 미숫가루와 몇 덩이 남아 있는 찰떡으로
허기를 면하자 수락이는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졌습니다.
바깥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사냥꾼은 이미 요란하게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주변이 조용해서 보니 굴 속으로 한줄기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덩달아 향긋한 풀꽃향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사냥꾼은 모처럼 즐긴 단잠에서 깨어나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습니다.
수……락아. 내 아들…………
어이 장군, 그만 일어납시다.……
수락아… 수락아…
사냥꾼은 몇 번씩이나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놀라 바깥으로 뛰쳐나가 목청껏 아들을 불렀습니다.
온 산에 수락아 수락아 메아리만 쳤을 뿐 대답은 없었습니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잠이 든 사이 호랑이가 수락이를 물고 가버린 뒤였습니다.
사냥꾼은 미친 듯이 산 속을 헤매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비만 오면 산에서 `수락아` 수락아 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산 이름을 수락산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노원구청 문화공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