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운동 세대교체

현장서 잔뼈 3세대 ‘참여·소통 리더십’ 기대

ㆍ90년대 대학 생활 70년대생, 간사로 시작 10~15년 경험… 시민운동 ‘중심축’으로 부상
ㆍ‘조직·운동 결과’보다 생활형 시민사회운동 추구

녹색연합은 지난 2월26일 정기총회에서 윤기돈 협동사무처장(41)을 2년 임기의 사무처장에 임명했다. 윤 처장은 취임 후 정책국과 조직국을 통합하고, 한 달에 한 번 근무하던 상임대표도 매주 목요일 상근하도록 했다.
대표가 직접 활동가·팀장급과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강화하도록 하자는 취지다.
올해부터 ‘회원이 제안하는 실천 운동’도 시작한다. 활동가들이 이슈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회원과 시민들이 생각하는 의제를 실행하는 것이다. 이슈는 거창하지 않다. 총회 때 육식 줄이기, 종이컵 안 쓰기, 손수건 사용하기 등이다. 윤 처장은 “회원들이 생활 속에서 하고 싶었던 운동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윤 처장은 시민사회운동 3세대다. 윤 처장처럼 1970년 안팎에 태어나 90년을 전후해 대학에 입학한 3세대가 시민단체의 ‘중심축’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시민단체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무처장으로 활동하며 과거와 다른 시민사회운동을 꿈꾸고 있다.

올해 초 임명된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도 70년생이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과 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 사무처장,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도 70~75년 사이 태어났다. 3세대 중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이 69년생, 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이 67년생으로 선배급에 속한다.

(왼쪽부터) 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


(왼쪽부터)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이태호 참여연대 사무처장·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


이들은 90년대 말~2000년대 초 시민사회단체에 ‘간사’로 들어와 한국의 시민사회가 급성장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박원순 변호사, 환경운동가 최열씨 등이 시민사회운동 1세대라면 2세대는 김기식(참여연대)·최승국(녹색연합)·김금옥(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이른바 ‘386’으로 학생운동을 하다가 시민사회운동에 투신했다. 반면 ‘3세대’는 간사로 시작해서 10~15년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이다.

이들은 87년 6월항쟁으로 쟁취한 한국사회 민주화의 직접적 수혜자다. 한층 더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시민사회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모은다.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선배들은 희생을 감수하고 권위를 중요시했다면, 지금 우리는 스스로 즐겁게 참여하고 좀 느리더라도 함께 소통해서 자발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조직’과 ‘운동의 결과’를 중시하는 과거와 달리 ‘생활형 시민사회운동’을 추구한다는 얘기다.

여연은 3·8 여성대회 때 플래시몹(불특정 다수인이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모여 주어진 행동을 하고 곧바로 흩어지는 것)을 시도했고, 참여연대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며 ‘민심 택시’를 운행했다.

시민 강좌도 늘려가고 있다. 참여연대는 참여사회아카데미를 부활했고 여성단체들은 풀뿌리 지역단체 교육을 강화하고 있다. 송상석 녹색교통운동 사무처장은 “시민들과의 소통은 단체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시민단체가 관심 있는 문제를 의제화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금, 통신비, 주거비, 사교육비, 기름값, 청년실업 등 ‘시민에게 관심 있는 의제’에 시민과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정의는 올해부터 마포구 주민들과 함께 에너지 절약, 도시농업, 먹을거리 강좌, 아토피 캠프 등 실천사업을 벌이기로 했다. 녹색교통운동도 지난해 기본 홈페이지 외에 ‘자전거타기 운동’ 홈페이지를 따로 만들었다. 올 상반기에는 경차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이다.

윤기돈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새로운 이슈를 개발하는 것보다 기존 이슈들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자신의 일로 와닿게 할 것인지, 그 방식의 변화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이구경숙 여연 사무처장은 “선배들이 ‘나를 따르라’는 리더십이었다면, 우리는 소통과 참여를 기반으로 하는 통합적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운동권 언어’를 ‘일상 언어’로 바꾸려는 노력도 하고 있다. 이구경숙 처장은 “간사들이 내 성을 따 ‘이구’라고 부르는 식으로 수평적 언어를 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하승수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소장(변호사)은 “시민단체는 리더십만큼 ‘팔로워십’도 중요하다”면서 “3세대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정보공간을 적극 활용하며 시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실련’ 창립 이후 낙선운동으로 ‘절정’…
보수언론 집중 공세 2001년부터 침체
1989년 7월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행동하는 시민’의 시대를 열겠다며 창립을 선언한다. 중산층 개혁 운동을 표방한 경실련은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제도, 재벌 개혁 등을 추진했다.

경실련이 90년대 시민운동의 개화를 알리는 ‘시작점’이었다면 환경운동연합(93년 창립), 참여연대(94년 창립)는 90년대 시민운동을 성장시킨 ‘기폭제’였다.
환경운동연합은 동강 살리기 운동, 새만금방조제 건설 반대 운동에 나섰고 참여연대도 소액주주운동, 부패방지법·국민기초생활법 제정 등에 나섰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여성단체들도 호주제 철폐 운동, 성폭력 제도 개선 운동 등에 대응하면서 성장했다.

이들 단체가 정치개혁운동으로 결합한 것이 2000년 ‘총선시민연대’다.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운동은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낙선 대상자 86명 중 59명이 낙선했다.
당시 시민사회단체는 입법·사법·행정·언론에 이어 ‘제5부’라는 별칭으로 불릴 만큼 절정기를 맞았다.
2001년 부패방지법이 통과되고 2003년 호주제가 폐지되는 등 가시적 성과도 이어졌다.
2001년 ‘안티조선 운동’을 계기로 보수언론의 공격을 받으면서 시민사회운동에 위기가 닥쳤다.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 제정에 따른 연간 150억원 규모의 예산 지원에 대해 “정부 돈을 받아 정부 사업을 하는 단체”라는 논란까지 일었다.

신뢰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조사한 16개 주요 사회기관 신뢰도에서 시민단체는 2003년과 2004년 1위였지만 2005년 5위, 2006·2007년 6위로 하락했다. 2008년 1월 환경운동연합 간부의 공금 횡령 사건은 결정타였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에는 지원금 축소, 후원금 감소 등 재정악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고려대 사회학과 조대엽 교수는 “90년대에 활동가들이 의제를 선점하고 앞서나갔다면 이제 시민단체들도 후원형 조직으로 바뀌고 시민들이 직접 활동할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변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밖으로 ‘시민과 거리 좁히기’… 안으론 ‘재정 확보’ 고민
지난해 말 시작된 홍익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파업 소식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이 알려지면서 많은 시민들이 이들을 지지하고 연대했다.
시민단체와 정치권도 적극 나섰지만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데는 일반 시민들의 역할이 컸다. ‘시민단체 주도형’이 아닌 ‘시민주도형’이었던 셈이다.

시민사회운동 3세대는 “시민운동과 시민의 거리가 너무 멀다”는 비판에 공감했다. 최준영 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이제 시민운동은 단순히 정보 전달에 그쳐서는 설 곳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구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처장은 “지금은 더욱 세밀한 접근과 깊이 있는 정책대안들이 필요하지만 현장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토로했다.
호주제, 가정폭력 등 과거에 시민단체가 주장하던 것들은 그 자체로 새로웠고 즉시 의제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녹록지 않다.

이들은 해법으로 ‘일상의 회복’을 내세웠다. 작고 구체적인 일상의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박용신 환경정의 사무처장은 “그간 시민운동의 의제가 국가적 아젠다 등 거대담론에 치우쳤던 게 사실”이라며 “지역의 풀뿌리 조직과 함께할 수 있는 생활형 운동을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시민 개개인이 운동을 ‘자기 일’로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참여의 확대’도 필요하다고 했다. 강희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지난해부터 시민과 함께하는 협업 방식의 캠페인을 시도하고 있다”며 “단체 이름 아래 모든 걸 가두는 대신 관심 있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게 판을 벌여야 한다”고 말했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팀장은 “등록금과 기업형슈퍼마켓(SSM) 문제는 당사자들이 들고 일어나 조직화된 사례”라며 등록금넷과 중소상인네트워크 등을 모범적 시민참여 사례로 들었다.
안 팀장은 “시민들을 만나 그들의 문제를 직접 풀 수 있도록 돕는 운동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를 예로 들며 “평범한 시민들이 때로는 활동가보다 더한 활동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소통 방식을 점검해야 한다는 자성도 들려온다. 이철재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장은 “지식인과 운동권에만 익숙한 언어로 대중을 가르치려 해서는 더 이상 안된다”며 “표현 방식부터 누구나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생활 언어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강성’으로 불리는 민주노총마저 포스터에 쓰는 용어를 부드럽게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마당에, 시민단체는 고답적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이 줄고 경제위기로 후원금이 감소하는 등 각 시민단체의 재정 상황은 악화되고 있는 것도 3세대 운동가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김유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박봉과 격무 탓에 시민운동에 영입되는 활동가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우리들) 이후 세대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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