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 흔한 이 식물,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짓밟히는 사구식물...

 

/진재중

 

자리를 잃어가는 보배 햇빛이 따가운 모래밭에 터를 잡았다. 다른 식물들은 엄두도 못 낼 혹독한 땅이다. 봄꽃들이 다지고 잠들어 있을 때 사람들을 손짓한다. 색깔도 분홍, 빨강, 연분홍 등 다양하다. 모래 위에서 피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예쁘다. 사구식물(염생식물)에 대한 이야기다.

해안이나 사구에서 자라는 식물, 즉 바닷가에서만 자라는 식물을 사구식물이라고 한다. 그들도 꽃을 피우고 번식하며 살아가지만, 소금기가 있는 땅에서 뿌리를 내리다 보니 육상의 식물과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 

동해안 해변에는 갯메꽃, 갯그령, 갯방풍, 해란초, 순비기나무, 해당화 등이 서식하고 있다. 주로 여름에 꽃을 피우고 모래알 속에 생명을 품고 산다. 해안에 흔한 이 식물, 다 사라질지도 모른다

▲ 갯방풍 모래 속에서 옆으로 뻗으며 잔뿌리를 깊이 내려 모래와 엉키면서 모래를 붙잡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모래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거친 파도와 소금기를 이겨내며 연안침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구식물들이 광합성을 통해 땅으로 보낸 탄소는 길게는 수만 년까지 대기와 격리할 수 있어 기후변화를 막는 귀중한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 사구식물 갯메꽃, 통보리사초, 갯그령 등, 동해안 해안가에 분포한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에서 삼척해변까지 바다가 잘 보이는 모래밭은 처참히 짓밟히고 있다. 사구식물이 잘 자라고 있는 장소를 단순하게 풀이 자라는 곳으로 인식해서 그들을 매몰한 채로 개발행위를 한 해변을 목격할 수 있다. 일부 해변은 몰지각한 여행객들이 쳐놓은 텐트나 캠핑카로 방문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강릉원주대 생물학과 이규송 교수는 "사구식물이 자라는 지역을 생명이 사는 공간으로 보지 않고 빈 나지로 생각해서 개발을 하는데 안타까운 일입니다"라며 한숨을 내쉰다.

  ▲ 송지호해변 소나무식재 사구식물이 자라고있는 해변에 사구식물을 파헤치고 소나무를 식재한 해변(2024/6/14) 동해 망상해변

동해 망상해변은 동해안에서 자생하는 갯그령, 갯메꽃, 해국, 해란초 등 80종이 넘는 동식물의 보고로 많은 관광객에게 좋은 반응을 보였던 해변이었다. 그러나 최근에 찾아간 망상해변은 사구식물 자생지는 사라지고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바로 옆에는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큰 파도가 밀려오면 언제 매몰될지 모르는 위험한 자리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아래 사진) 넓은 백사장 한켠에 해양레포츠를 위한 건물과 소나무를 식재한 자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책을 하던 한 동해시민은 "모래밭에 펼쳐진 사구식물이 이채롭고 모래와 잘 어울려 동해시의 보물이었는데 왜 저런 건물을 지었을까요, 보기도 흉하고 뭐 하는 건물인지 모르겠어요, 특혜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저런 자리에 건물이 들어설 수 있겠어요"라고 의구심을 드러낸다.

  ▲ 동해망상윈드서핑장 사구식물을 묻어버리고 그 위에 건축물을 세웠다
해송조성지와 건물 천혜의 자원인 사구식물을 걷어내고 윈드서핑장과 곰솔을 식재한 현장 소나무를 식재한 곳, 입간판은 '탄소상생리본 숲 조성사업' "이곳은 탄소상생리본 숲 조성 사업으로 탄소흡수 및 해안침식방지 등 재해예방, 휴식공간 조성 등을 이유로 동해시 망상동 해변 일원에 조성된 것이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하지만 사구식물이 탄소 저감을 하는데 육상의 식물보다 몇 배 이상으로 효과를 보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고 사구식물이 해안침식을 막는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저버리고 사업을 한 것이다. 

이규송 교수는 "탄소숲을 만들겠다는 발상으로 소나무를 심었는데 크게 잘못된 생각이죠,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아이디어는 좋지만 여기서 소나무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는 관목으로 보아야지 연안침식이나 재해예방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은 사구식물에 대한 몰이해 때문입니다"라고 소나무 식재의 문제점을 제기한다.
 

탄소상생리본 숲 조성사업 입간판
 
삼척 맹방해변

연안침식방지를 위해 곰솔을 식재한 삼척 맹방해변도 마찬가지다. 넓고 하얀 백사장으로 알려진 이곳 역시 사구 식물인 갯그령, 갯방풍, 순비기나무 등이 자랐던 곳이다. 화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연안침식으로 몸살을 앓던  이곳은 아예 사구식물을 파헤치고 소나무 1300본을 식재해 소나무마저 붉게 타들어 가고 있다. 

최광희 가톨릭관동대 지리학과 교수는 "이 곰솔은 빨리 뽑아야 합니다. 도저히 관계당국의 행위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해안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는 공무원이라면 이런 곳에 나무를 심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곳은 곰솔보다도 몇 배 가치가 있는 사구식물들이 자랐던 해변이었습니다"라고 공무원들의 무지를 나무란다. 

  ▲ 맹방해변 곰솔식생지 사구식물이 자라던 지역에 해송을 이식, 붉게 죽어가고 있다.
▲ 맹방해변 염생식물 군락지였던 해변에 해송을 이식, 소나무나저 죽어가고 있는 현장  

고성 송지호 해변

죽도를 품에 앉고 석호인 송지호를 곁에 두고 있는 송지호해변은 사구식물의 보고로 탐방객들이 찾았던 해변이었다. 잘 발달된 모래위에 사구식물들이 자라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14일 찾아간 이곳 역시 동해 망상 해변처럼 '탄소상생리본 숲 조성사업'으로 탄소흡수 및 해안침식방지 등 재해예방, 휴식공간 조성 등을 이유로 조성된 해변이다. 해변은 소나무를 식재하기 위해 돌을 쌓고 바람막이를 설치했다. 자연스럽게 이동해야 할 모래흐름을 차단한 것이다. 해안침식을 방지한다고 설치한 소나무가 오히려 침식을 가속화 시키고 있는현장이다.

연안침식모니터링을 하고있는 장성렬 박사는 "연안침식은 인공행위를 하면 할수록 더 심해지기 마련입니다. 동해안에 잘 발달된 사구지대나 사구식물들은 더 파해쳐져서는 안됩니다. 특히 동해안에서 소나무가 해안가 가까이 식재되었던 지역은 연안침식이 심각했습니다"라고 소나무 식재에 대한 문제점을 말한다.

소나무가 식재된 주변 사구식물군락지에 일부 관광객들은 단속을 피해 텐트를 치고 심지어는 캠핑 카라반 차량까지 버젓이 주차해놓고 사구식물을 짓밟고 있다. 

송지호 해변에 들렸다가 되돌아가는 탐방객 김창렬(57)씨는 "이곳에 오면 사구식물 등 특이한 식생이 있어 올 때마다 들리는 해변인데, 모래밭 식생위에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지자체에서 사구식물을 파헤치고 개발행위를 하니까 관광객들도 따라 하지요"라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 송지호해변 좌로는 죽도와 우로는 석호인 송지호를 품고 4km의 백사장이펼쳐져 있다
▲ 인위적인 공사 잘 형성된 모래해변위에 인위적으로 돌을 쌓고 소나무를 식재한 송지호해변 >    

양양 하조대해변

양양 하조대 해변은 동해안에서 경북 영덕 고래불 해변과 함께 사구식물 자생지로서 좀보리사초, 갯그령, 통보리사초, 갯방풍 등이 있어 해안침식과는 거리가 먼 해변이었다.

이 지역에 많이 자생하는 사구식물은 모래의 이동이 심한 전사구에 주로 분포해서 잎은 바람에 날려 온 모래가 걸리게 하고, 뿌리줄기는 모래 속에서 잔뿌리를 깊이 내려서 모래를 붙잡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해서 연안침식을 막아주었다. 최근에 찾은 해변은 사구식물들은 그들의 자리를 양보하고 윈드서핑을 위한 시설물로 대신하고 있었다.

이규송 교수는 "동해안에서 영덕 고래불 해변과 양양 하조대 해변은 사구식물 군락지로 연안침식이 없었던 해변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해양관광과 연계된 건축행위를 사구식물이 자라던 곳에 하는데 이것은 범죄행위나 다름없습니다. 사구식물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사구식물을 파헤치고 그 위에 건물을 짓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됩니다. 사구식물 자체가 주는 미래에 자원으로서 가치는 지금보다 월등히 클 것입니다"라고 문제를 제기한다.  

   ▲ 사구식물들 모래밭위에 자라는 사구식물들은 모래를 잡아주어 연안침식을 방지한다  

강릉 안인하시동 사구

해안사구'는 파도와 바람에 의해 형성된 모래언덕으로, 육지와 바다 사이의 해안보호,지하수 저장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환경부는 2008년 12월 하시동·안인해안사구를 생태보전지구로 지정했다. 이곳엔 해란초, 갯메꽃 등의 식물이 분포하고 있고 멸종 위기종인 물수리, 수달, 삵, 멧토끼 등 다양한 동물들이 염생식물들과 공생하면서 터전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안인화력 해상공사 이후 연안침식이 가속화되어 사구가 계속해서 깎여 나가고 그 위에 자생했던 사구식물들도 자리를 양보하고 있다. 언제 다 사라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다. 연안침식 방지를 한다고 사구식물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 찾아오는 탐방객은 볼 수가 없고 굳게 걸어 잠근 안내소와 볼썽사나운 침식 현장만이 남아있다.

  ▲ 염생식물 군락지 안인.하시동 해안사구 해변(2020/8)
 
▲ 순비기 나무 군락지 안인.하시동 해안사구에 자생한 염생식물(2020/8)  

사구식물은 줄기와 잎을 모래땅에 파묻는 방법으로 바람을 이겨낸다. 거친 파도와 강풍을 견디며 소금기가 가득한 모래밭에서 자란다. 다들 그들만의 방식으로 모래를 잡아주고 덮어준다. 꽃이 아름답고 특유의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열매도 아름다워 좋다. 일부 꽃은 향수 원료로 이용되고 약재로도 쓰인다. 우리나라의 전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사구식물이 인간의 개발행위에 의해 언제 다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 사구식물 건조한 모래밭에서 견디며 자란다(2024/6/14)

▲ 갯메꽃 바닷가의 모래밭에서 자라며 굵은 땅속줄기가 길게 뻗어 모래를 잡아준다(2024/6/14)
▲ 갯방풍 모래 속에서 옆으로 뻗으며 잔뿌리를 깊이 내려 모래와 엉키면서 모래를 붙잡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모래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거친 파도와 소금기를 이겨내며 연안침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구식물들이 광합성을 통해 땅으로 보낸 탄소는 길게는 수만 년까지 대기와 격리할 수 있어 기후변화를 막는 귀중한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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