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서울 아류로 만들기보단 완전 다른 것 만들어야"

 인구감소 지방소멸 시대, 지방정부 생존법①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이하 임주환) 지난해에 이어 2023년의 한국사회는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의 시대라는 거대한 전환점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좀처럼 대안을 찾기 힘든 난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농업·농촌, 제조업과 일자리, 균형발전과 부동산 분야에서 정책지식 생태계를 대표하는 전문가 세 분을 모시고, 융합적이고 통섭적인 시각에서 지혜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먼저 첫 번째 주제인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원인'에 대한 모두발언을 듣겠습니다.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이하 박진도) 저는 '지방소멸'이라는 말에 이견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로 지방은 수도권이 아닌 지역을 말하니, 지방소멸이라면 수도권 이외 지역은 모두 사라진다는 뜻입니다. 말이 안 되는 이 말의 원조는 '마스다보고서'(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 전 일본 총무상이 2014년 발표한 보고서)인데요. 마스다보고서에서는 지방소멸을 '수도권 일극집중에 의한 극점사회의 도래'라고 합니다. 수도권 집중화의 폐해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두 번째, 지방이라는 것을 하나로 퉁쳐서 말하기 어렵습니다. 지방에는 광역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 등 다양한 공간이 존재하는데, 이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지방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발언입니다. 세 번째, 마스다보고서에서 제기하는 지방소멸론은 굉장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진 것으로 순수하지 않다고 봅니다. 일본 내에서도 지방소멸론 이후 제시된 지방창생정책에 대해 '소멸가능성 도시'를 중앙정부 정책대상에서 '잘라버리기' 위한 시책이라고 크게 반발했습니다. 그래서 지방소멸이라는 말에 이견을 제기합니다.

지방소멸의 원인으로 인구감소를 많이 얘기하는데, 수도권 집중과 지방인구 감소는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인구의 자연감소가 아니라 사회적 감소인데, 특히 청년의 지방이탈이 심각한 상황입니다.

배규식 희망제작소 이사(이하 배규식) 대한민국의 저출생 고령화 현상은 빠르게 진행 중입니다. 전국이 비슷한 상황인데, 지방은 청년들이 많이 유출되기 때문에 그 현상이 더 심화하는 양상입니다. 지방에서 청년들이 이탈하는 원인은 첫 번째가 양질의 일자리 부족이고, 교육과 문화 등 인프라 부족도 문제입니다. 통계를 살펴보면 2000년대부터 청년인구 유출이 빠르게 증가하다가 2010년 중반 줄었는데, 최근 다시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전체의 인구구조를 보면 젊은 층이 많은 알라딘 램프형이었다가 점차 고령자가 많은 청자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베이비붐세대를 중심으로 고령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는 바뀌기 힘들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지역에서 심각하게 나타나는데, 농업이나 축산업, 어업, 지방제조업에서는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관련 산업이 제대로 유지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농어촌 면·리 지역은 급격한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인력의 주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만 겪는 현상은 아닙니다. 일본이나 유럽 국가들, 20세기 초 이탈리아도 비슷한 경험을 합니다. 다만, 우리는 수도권 집중화와 급격한 고령화가 함께 진행되고 있어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나는 것이지요. 결국 노동력 부족 문제는 향후에도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뒤집을 수 없기 때문에 적극적인 이민정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고요.

최근 지방으로 가는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의미 있는 삶, 새로운 생활양식, 돈벌이 되는 일을 개척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적지 않은 청년들이 좌절하거나 기회 부족, 문화적 빈곤감, 외로움 등으로 인해 수도권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방으로 가는 청년들이 지방에서 성과를 내고 정착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교수(이하 변창흠) 지방소멸 문제는 대한민국의 문제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기도 합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강남 3구로 대표되는 지역이 최상위를 차지하고 교육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권력, 심지어 삶의 가치마저도 위계화되어 있습니다. 상위의 모든 것은 수도권에 있고, 지방은 하위로 평가받으니 수도권으로, 서울로 몰리고 지방은 소멸위기를 겪습니다. 때문에 이 문제는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는 풀 수가 없습니다. 지방을 서울의 아류를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완전히 다른 것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는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세부터 39세까지의 여성인구를 65세 이상의 고령인구로 나눈 비율로 측정합니다. 가임여성의 비율이 높을수록 소멸위험이 적다는 식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20세부터 출산이 가능하지도 않지만, 신체적으로 출산 가능한 인구의 비중이 지역의 활력을 나타낼 수도 없습니다. 지방에서 서울·수도권과 다른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여성인구를 몇 명 더 유입하는 수준의 고민을 넘어서, 정말로 다른 길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동안 지역을 살린다고 국가균형발전위원회를 설치하고, 대통령이 위원장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설치하여 수많은 정책을 시행했지만 지금까지 어떤 정책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이 추진되면 현재의 지역불균형, 지방소멸, 저출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정부는 실패한 정책을 이름과 형태만 바꾼 채 반복하고 있습니다. 개별부처 수준의 대책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 근본적 전환의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역의 구체적 현실을 살피라

임주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 두 문제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적절한 상황인식이 아니라는 점, 이민과 청년 문제에 대해 새로운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점, 개별부처의 수준을 넘어선 근본적 전환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점 등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덧붙이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변창흠 배 이사님께서 청년들의 인구이동에 대해 말씀해 주셨는데 수도권 인구유입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구이동통계를 보면 수도권 순유입 인구는 1990년대 중반 이후 2002년에 21만 명으로 최고수치를 기록한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여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순유출을 기록합니다. 그러다가 2017년부터 다시 순유입으로 전환하여 2020년에는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습니다. 수도권 인구유입이 멈췄던 시기는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했던 혁신도시와 같은 지역균형 발전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렇게 특별한 정책이 없다면 수도권 인구집중 추세는 바꾸기 힘들다고 봅니다.

박진도 우리가 흔히 서울과 지방을 비교하면서 혹은 도시와 농촌을 비교하면서 서울(도시)에는 뭐가 있는데 지방(농촌)에는 뭐가 없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지방이 서울에 비해 경제·사회·문화적으로 현저하게 낙후되어 있는 것은 사실인데, 이것을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가. 지방이 모두 서울이 될 수도 없으니, 균형발전이 지방(농촌)이 서울(도시) 따라하기가 되어서는 가망이 없습니다. 지방이 가진 경쟁력과 매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물론 농어촌 지역의 경우 생활인프라가 현저하게 낙후하여 기본적인 생활이 어려운 게 심각한 문제입니다. 간단한 생필품 하나 사기 위해서도 읍이나 면 소재지에 나가야 하는데, 교통이 불편해서 이마저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균형의 좁은 의미는 국민이 어디에 살든 국가가 최소한의 삶의 질을 보장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균형의 적극적 의미를 이렇게 해석합니다. 균형은 영어로 밸런스(Balance)라고도 하고 이퀄리브리엄(Equilibrium)이라고도 합니다. 저는 후자의 의미를 중시하는데, 이퀄리브리엄은 물리학이나 경제학에서 많이 사용하는 개념으로, 회복력 혹은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마치 오뚜기가 외부의 충격에도 제자리로 돌아가는 힘이 있듯이, 균형발전이란 각 지역의 회복력과 지속가능성을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력을 키울 수 있는 내발적 발전이 중요합니다.

배규식 도시로의 인구집중이 세계적인 추세이긴 합니다. 분권화가 잘된 독일도 베를린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데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로의 인구집중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전체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은 매우 특이한 상황입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임금을 비교해 보면, 제조업 분야는 큰 차이가 없지만 전체 취업자의 83%가 고용되어 있는 서비스업 분야는 현격히 차이가 납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몰리는 이유입니다.

한편으로 도시화는 세계적인 추세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습니다. 충남을 사례로 살펴보면 금산군, 계룡군, 논산시에서 활동하는 젊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교육, 문화, 생활공간 등의 이유로 대전에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젊은 층의 도시 이주를 막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듯합니다. 젊은 층을 위해서는 직장과 생활공간이 분리되는 측면은 인정하는 권역별 접근도 고려해서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변창흠 정책의 일관성도 중요합니다. 균형발전이라고 하면 보수적인 입장에서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 '인위적인 나눠먹기'라며 비판합니다. 이명박정부는 법률과 정책에서 '균형'이라는 용어를 빼고 '지역발전'이라는 명칭으로 바꿨고, 윤석열 정부에서도 국가균형발전위원회와 자치분권위원회를 통합하여 지방시대위원회로 변경하는 법률안을 입법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현실이 '균형'을 빼고 시장에 맡길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반문해 보면, 지역균형발전은 여전히 필요한 가치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어떤 균형이어야 하는가? 먼저 광역권으로서 수도권과 지방광역경제권 간의 균형발전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 광역대도시권 내에서 선순환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다음에 광역경제권 내 소지역생활권 간의 균형을 고민해야 합니다. 대도시 중심의 광역경제권은 공공기관, 기업, 지방대학, 연구소 등이 함께 결합해서 일자리, 교육, 의료, 문화인프라 등이 자족가능한 구조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1차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 다음에 권역별 내 소지역생활권 균형, 동 단위 균형, 마을 단위 균형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균형 전략을 수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은 이런 공간적 우선순위 개념이 없기 때문에 국가도, 시장·군수도, 이장도 모두가 균형발전을 이야기하며 각축을 벌이다 보니 지역불균형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균형발전의 공간 단위에 대한 인식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균형발전에 '지역'은 없었다

임주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두 번째 논의주제인 국가균형발전정책으로 넘어갔습니다. 균형발전을 둘러싸고 다양한 입장들이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동안 정부 정책의 한계는 무엇이었는지 등에 대해 계속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배규식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는 협동조합의 도시, 중소기업 혁신클러스터 도시로 유명한 곳입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좌파정부가 집권했던 곳인데, 당시 보수가 집권한 중앙정부와의 차별화에 집중하면서 독자적인 성공모델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 이탈리아에서도 유명한 지역성공모델이 되어 잘 사는 지역이 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각 지역이 가진 소재, 산업 생태계, 분업 등을 활용하여 지역에 업종별로 전문화된 소기업들이 연합한 산업지구(Industrial Districts)를 만들어 대량생산이 지배적인 모델이 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에도 대안적인 생산모델이 된 바가 있습니다. 우리도 균형발전을 고려할 때 국가적 차원에서 자원의 배분에만 집중하지 말고 지역이 스스로 힘을 키워서 선순환할 수 있는 역량강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최근 '광주형 일자리'로 알려진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 11곳을 살펴보았는데, 지방정부 중심으로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해본 몇 안 되는 사례입니다. 중앙정부가 구상하고 지방정부가 실행만 하는 구조로는 지역의 고유한 특성, 다양성을 살린 정책이 나오기 어렵지요. 지방이 스스로 사업을 구상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진도 마강래 교수가 <지방도시 살생부>, <지방분권이 나라를 망친다>라는 책들을 썼는데, 핵심은 모든 지방도시를 살릴 수 없으니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대도시 광역으로 행정을 통합하고 광역 대도시 중심으로 지역을 살리자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압축과 네트워크화를 통한 균형발전이 실제 가능한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사실 광역경제권은 참여정부에서 제4차 국토종합개발계획을 수정할 때 나왔고, 이명박 정부에서 5+2 광역경제권 계획으로 제시되었습니다. 최근 광역경제권의 일환으로 '부울경 모델'이 제시되었지요. 이 모델은 일본 간사이 광역연합모델을 참고했는데, 일본에서도 이게 실제 작동하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결국 SOC만 남고 실체가 없을 수 있습니다. 수도권에 대항할 수 있는 광역경제권이라고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모델링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인구가 일정 규모가 되면 경제가 선순환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없는 환상 아닌가, 마찬가지로 광역도시권 내 거점을 만들고 주변과 협력하는 네트워크라는 것이 가능한 이야기인가? 의구심이 듭니다. 저는 균형이라고 하는 것을 자꾸 중앙정부 중심으로 획일적 기준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각 지방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고 지속가능성, 회복력을 키우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 자원과 매력에 기반한, 아래로부터의 혁신 필요"


임주환 희망제작소 소장(이하 임주환)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과 고향사랑기부금제도가 올해부터 본격 시행됩니다. 이 두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하 변창흠) 지방소멸대응기금 사업은 지방정부가 기획하고 중앙정부가 지원한다고 하는데, 지방정부의 기금투자계획서에서 제시한 사업들을 보니 생활 SOC(기반시설)사업이 대부분입니다. 몇 곳을 샘플링해서 살펴보니, 기존에 각 부처별 보조금을 받기 위해 제안했던 사업들을 기금투자사업으로 다시 제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역을 통합적으로 분석해서 지역의 인구를 늘리거나, 지역의 활력을 높이거나,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이는 사업들을 기획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방식으로 지역소멸기금 사업을 계속 지원하더라도 지역소멸 위기가 극복된다는 확신을 가지기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박진도 (사)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이하 박진도) 지방소멸대응기금이 향후 10년간 10조 원을 배분한다는 것이잖아요. 많은 곳에 돈을 내려보내다 보니 인구감소지역은 2년간 최대 210억 원에서 최소 112억 원, 관심지역은 2년간 최고 53억 원에서 최소 28억 원밖에 지원되지 않습니다. 웬만한 시·군 연간 예산이 1조 원 규모인데, 100억 원 가지고 지역을 살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예요.

변창흠 교수님이 지적했지만, 실제 사업내용을 보면 기존 사업과 차이가 없어요. 그러니 '8억짜리 화장실'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있습니다. 전국에 출렁다리가 200개가 넘는다고 해요. 지자체가 비슷한 사업들을 경쟁적으로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게 지방소멸 대응에 얼마나 도움이 되겠어요? 그런데 지금 지방에서 제출된 사업을 줄세우기 해서 지방소멸대응기금을 지원하고 있어요. 지금과는 다른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이하 변창흠) 사실, 100억 원을 물리적 시설이 아닌 프로그램사업으로 기획하려면 내용을 채우기 어렵고, 집행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SOC사업이나 건축물사업은 토지비와 평당 건축비만 계산하면 총사업비를 추계할 수 있으니 계획수립이 간단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설치된 시설들은 향후 관리·운영하는 데 지자체가 지속적으로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겁니다.

배규식 희망제작소 이사(이하 배규식) 지역에서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 관계자들이 모여 공론화해서 계획을 수립하고, 수립한 계획을 추진할 수 있도록 과정을 컨설팅해 주어야 합니다. '지방정부가 계획을 짜와라, 평가해서 돈 줄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방정부가 지역에서 자원을 찾아내고 제대로 된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하는 시스템을 중앙정부가 고민해야 합니다.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보다 마음이 먼저

박진도 고향사랑기부제는 일본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인데요. 우리 정부가 설계한 제도는 시민들의 돈을 얼마나 끌어올 것인가에 매몰되어 있어요. 고향사랑의 마음을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답례품으로 지역에 돈을 끌어오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지요. 기부자의 입장에서는 10만 원까지 세금 공제하고 답례품을 받으니 이익인 셈이지요. 이것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도권 중심, 성장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어려운 지역에 대한 이해, 지역에 대한 사랑의 마음, 관심을 키우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답례품도 문제죠. 무엇을 누구의 것을 답례품으로 할지를 두고 지역에서 분란이 생길 수 있어요. 답례품을 안 줄 수는 없겠지만 답례품보다 취지를 살리고, 지역에서 재원을 어떻게 잘 쓸 것인지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도시 사람들이 농촌을 찾는 이유로 환경, 문화, 공동체 등 여러 가지 가치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가치를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도시 사람들이 평소에 누릴 수 없었던 가치를 주는 방식으로 가야 합니다. 깨끗한 농촌 환경을 제공하거나 전통문화가 살아있는 지역을 살리는 축제에 지원하거나 공동체를 살리는 사업들을 키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변창흠 수도권 거주자 대부분은 지방출신이기 때문에 자기 고향을 지원할 의지도 있고, 관심도 많습니다. 그런데 고향사랑기부제는 기부금을 내도 손해보는 것이 없어요. 고향사랑을 표현할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정치인 후원금처럼 10만 원을 내면 고스란히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오히려 3만 원 정도의 답례품까지 덤으로 받으니 손해가 안 나요. 지역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답례품을 선정해서 기부금을 유인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절실한 사정과 추진할 정책의 진정성을 알려서 기부금을 유치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지역 청년들을 지원하니 기부해 주세요', '지역에 문화예술단지를 조성하는 데 투자할 예정이니 후원해 주세요' 하는 방식으로, 지역이 진정으로 실현하고자 하는 정책을 홍보하고 후원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설계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재산세 등 지방세의 일부를 본인이 희망하는 지자체에 납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도 적극 고려해야 합니다.

주거플랫폼, 농촌주민수당... 새로운 시도 필요 

임주환 지방소멸대응기금이나 고향사랑기부금 제도에 대해서는 세 분이 비슷한 문제인식을 공유하고 계신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 마지막 주제로, 앞으로 지방정부 입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는지, 국내외 사례를 통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과 시사점을 말씀해 주시지요.

배규식 지방소멸로 비수도권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수도권도 안양, 부천, 광명 등은 서울의 베드타운화 되어 있습니다. 서울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경기도 지역도 어떻게 자기 지역만의 특성을 가진 곳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을까.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고민해볼 문제입니다. 전국을 다녀보면 요즘 지방정부마다 전기차, 반도체, 수소 관련 산업을 유치하겠다고 난리입니다. 각 지역별로 부존자원이나 산업생태계 등을 고려해서 고유한 산업발전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데, 지역산업에 대한 이해와 고민이 부족합니다.

지방정부가 지역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는 기회와 역량을 부여하여 아래로부터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대기업 중에 잘 나가는 것, 추세에 따라가는 것으로는 지속가능한 지역발전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지역에 남아 있는 자원과 산업을 들여다보고 거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변창흠 그동안 지역균형발전대책으로 중앙정부 기관의 지방이전, 사회기반시설의 집중투자, 지방대학 육성 등이 거론되었고, 최근에는 생활SOC 투자를 통한 삶의 질 개선이 제시되었는데요.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주택을 다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지방산업단지를 건설했는데 아버지 혼자 내려와 있고, 혁신도시를 건설했는데 가족들의 정착 비율이 낮아요. 혁신도시에서는 자녀가 초등학교까지만 다니다가 중·고등학교 때는 다시 도시로 빠져 나갑니다.

지역에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살 수 있는 구조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주택을 중심으로 해법을 찾으면 대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방에 제대로 된 주거공간이 마련되면 수도권 지역에서 지방으로 가겠다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가족이 함께 갈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일자리, 교육, 생활여건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지방에 괜찮은 주거 여건이 마련되면 의외로 지방으로 갈 사람이 많다고 봅니다. 실제 함양군 서하나 괴산군 등의 사례를 보면, 좋은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입주 경쟁이 치열했습니다.

그동안 정부는 주택을 주로 주택시장 안정화를 위한 수단으로만 봤지 균형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주거기능에 혁신, 일자리, 돌봄, 교육, 에너지 생산 등의 기능이 결합된다면 지역의 여러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동체 단위로 복합화하는 주거플랫폼 사업을 추진한다면 지방에 인구가 정착하고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박진도 중요한 것은 현재 지방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겁니다. 농촌의 구조를 보면, 면을 살려야 읍이 살고, 소도시가 살아야 대도시가 살 수 있습니다. 거점 지역을 살리는 방식으로는 지역을 살리기 힘듭니다. 관점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지역경제의 실핏줄은 농촌입니다. 청년이 농촌에 오려면 병원, 학교, 가게, 문화 서비스 등이 살아야 하는데, 농촌이 죽어서 올 수가 없습니다. 지금은 지방산업생태계가 붕괴된 상태입니다. 지역에 돈이 좀 돌아야 가게도 생기고 병원도 돌아갑니다.

그래서 저는 농촌수당을 도입하자고 합니다. 농촌주민수당을 만들고, 공동체기금을 만들고, 지역을 위해 자치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돈을 퍼주는 지역개발 보조금 사업은 반대합니다. 큰돈이 아니더라도 지역이 스스로 고민해서 자구책을 만들 수 있도록 공동체기금도 만들고 그러한 사업들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임주환 인구감소와 지방소멸이라는, 대안을 찾기 쉽지 않은 주제를 논의하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습니다만, 어떻게 상황을 인식하고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지방소멸은 인구감소보다 청년의 도시이동이 문제라는 것, 그동안 실패한 정책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 새로운 발상은 마을에서, 지역의 자원을 발굴하고 지방에서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온다는 말씀 등을 해 주셨습니다. 공간 단위를 고려한 주거플랫폼, 농어촌주민수당 등 새로운 접근법도 제시해 주셨습니다. 지방소멸 대안을 고민하는 지방정부에 좋은 참고가 될 듯합니다. 귀한 시간을 내어 열띤 토론을 해주신 세 분께 깊은 감사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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