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집에 지네, 벌레가 매주 나와"... '빈집 공포'에 떠는 주민들

/  한국일보
 
 
 
[ 빈집의 습격, 인기척 없는 139만 가구 ]

서울 곳곳 재개발 무산... 빈집 급증
2020년 전국 빈집 150만 가구
지자체 "사유재산 건드리기 힘들어"

"빈집 때문에 우리 집에 지네, 바퀴벌레 같은 해충이 끝없이 나와요. 냄새도 고약하고, 보기도 싫은데 구청에 민원을 넣으면 '사유재산이라 (처리가) 어렵다'고만 하니 미치겠어요."

서울 종로구 옥인동 주민 김모(63)씨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한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철문이 녹슨 빈집이 나타났다. 스무 개 넘는 술병이 마당에 꽂혀 있고, 쓰레기봉투 더미가 쌓여 있었다. 담배 꽁초와 종이 등 쓰레기가 마당에 흙과 함께 뒤섞였다.

윗집에 30년간 살았다는 김모(63)씨는 "인근에 사는 학생들이 귀찮으니까 빈집에 쓰레기를 던지고 가는 데다 정화조(청소)도 안 돼 냄새가 난다"며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곳이니 피해가 더 커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옥인동에서 2년째 카페를 운영 중인 홍모씨도 마을 곳곳에 있는 빈집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산 고향이라 이곳에 카페를 차렸는데 바로 옆에 5년 넘은 빈집이 있어 악취가 난다"며 "손님들이 와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왜 이걸 방치하냐' 악담을 쏟아낸 적도 많다"고 토로했다.

 

16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의 한 빈집의 대문이 부식돼 열려 있는 가운데 외부인들이 드나들며 쌓인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들이 쌓여있다. 최주연 기자

 
가장 최근 자료인 2019년 서울시 빈집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종로구 빈집은 1,456가구(사전조사 기준)로 서울에서 가장 많다. 그중 옥인동의 이 마을은 전체 150여 가구 중 20여 가구가 빈집으로 남아 주민들의 골칫거리다.

이곳에 빈집이 급격히 늘어나게 된 건 재개발 계획이 틀어지면서다. 2007년 처음 정비구역으로 지정돼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았지만,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개발에서 도시재생으로 기조를 바꾸며 2017년 정비구역을 해제했다. 개발이 좌절되면서 주민들은 하나둘씩 떠나갔다. 이때 해제된 구역만 393곳이다.

홍씨는 "지붕이 서로 엉켜 있는 무허가 건축물과 빈집들이 몇 년째 무분별하게 방치돼 있다"며 "재개발만이 답이었는데, 이젠 정부가 집주인을 빨리 찾든지 해서 하루빨리 이곳이 바뀌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17년째 멈춘 현저동, "폭우에 무너질까 겁나"

쓰레기가 넝쿨과 함께 섞인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빈집 모습. 서현정 기자

8일 찾은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또한 빈집으로 온 동네가 골치 아픈 표정이었다. 서대문독립공원 옆 골목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자 철거업체 광고가 붙은 펜스들이 녹슨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었다. 곳곳에 보이는 빈집들은 벽지가 다 뜯기거나 곰팡이 자국으로 가득했다. 집집마다 막걸리병과 우유팩, 나무판자와 유리조각 등 쓰레기가 쌓였다.

빈집에 누군가 들어왔던 흔적도 보였다. 한 빈집 2층 창문과 벽면엔 스프레이 낙서가 이곳저곳 어지러웠고, 맞은편 집에는 '서대문경찰서 특별순찰구역'이 붙어 있었다.

서대문구 현저동의 한 빈집. 창문과 벽에 낙서가 쓰여 있다. 서현정 기자

이곳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75)씨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에 큰 지네가 나와 못살겠다"며 혀를 찼다. "이번 폭우 때는 높은 곳에 빈집들이 많으니까 오물들이 넘어왔어. 그 집들이 무너질까 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

또 다른 주민 김모(78)씨는 "지난해엔 타지 사람들이 두 명이나 빈집에 들어와 목숨을 끊었다"며 "노숙인들이 와서 숨지기도 하니 동네가 무서워 밤에 나가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서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적어 특별지역으로 관리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빈집 수색을 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엔 원주민 12명과 세입자를 포함해 약 50명이 살고 있다.

이 지역은 2005년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추진됐지만 여전히 멈춰 있다. 한 재개발 추진업체 관계자는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주민 동의 100%를 충족해야 하는데 합의가 어려웠고 결국 15년 넘게 방치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방은 10채 중 1채가 빈집

통계청이 집계한 전국 빈집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빈집으로 방치된 건 이곳뿐만이 아니다. 서울의 빈집은 지난해 9만7,000가구로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전국 빈집은 2020년 151만1,306가구(통계청)로 5년 새 30%나 늘었다. 지난해 소폭 줄었으나 여전히 139만 가구가 비어 있다.

지방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은 전체 가구 중 빈집이 차지하는 비율이 3.2%에 불과했지만 △전남(14.3%) △제주(13%) △강원(12.3%) △전북(11.9%) 모두 10가구 중 1가구꼴로 집이 빈 상태다.

지자체, 인력도 예산도 의지도 부족

지역별 빈집 수. 그래픽=송정근 기자

빈집은 늘어나지만 이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 또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종로구 관계자는 "현행법상 지자체장 직권으로 빈집을 처분할 수 있으나 개인 재산이라 함부로 건드리기 조심스러워 정말 위험하거나 근거가 확실해야만 철거를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종로구에서 직권 처분된 빈집은 아직 한 곳뿐이다.

빈집 소유자와 연락이 닿지 않다 보니 매매나 처분 동의를 받기도 쉽지 않다. 한국국토정보공사(LX)는 빈집 관리 플랫폼인 공가랑을 운영 중인데, 현재 소유자 동의하에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은 1,442건에 불과하다. 전체 빈집 가구에 비해 현저히 적은 수치다.

통계청이 집계한 지난해 지역별 빈집 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관련 인력 또한 부족한 실정이다. 국토연구원 연구 결과, 지자체 내 별도의 빈집 정비팀을 운영 중이라고 답한 지역은 전국에 두 곳(인천시 미추홀구, 경북 포항시)뿐이다. 빈집 관리 담당자는 관련 업무 외에도 평균 2.4개의 다른 업무를 동시에 담당하고 있다.

예산도 마찬가지다. 올해 기준 지자체들이 빈집 관련 사업에 투입한 예산은 평균 2억8,000만 원이었다. 국토연구원은 "빈집 철거 비용을 평균 2,500만 원으로 잡고 예산을 비교해 보면 전체 철거 소요 추정 비용의 3.5%"라고 설명했다. 지자체 빈집 관련 사업에 대한 국비 지원 비율도 평균 4%로 지난해 지방정부 일반재정 세입 예산의 약 26%가 중앙정부 보조금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열악한 수준이다.

빈집 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법적 근거인 관련 조례조차 마련하지 않은 지자체는 전국 228개 지역 중 54개(23.7%)에 달했다. 빈집 실태조사는 19개 지역(8.3%)이 현재 시행하지 않았고, 연내 수행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전담 인력 확보·빈집세 도입해야"

전문가들은 빈집 관리를 위한 보다 적극적인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조정희 국토연 부연구위원은 "현행 빈집 관리 정책 수단이 소유자 동의 없이는 빈집 관리가 이루어질 수 없도록 설계돼 실효성이 낮다"며 "관련 법과 제도를 개선하고 빈집 전담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를 외치고 있지만, 물량에 집중하기보다 재고를 어떻게 충분히 활용하느냐를 생각해야 한다"며 "빈집을 빨리 철거해 다른 용도로 쓸 수 있게 직권 처분 규정을 더 강하게 하거나 집이 비는 기간이 늘수록 세금을 더 물리는 빈집세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빈집' 통계도, 관리주체도 제각각... 정부, 뒤늦게 대책 마련

[빈집의 습격, 인기척 없는 139만 가구]

빈집 통계, 통계청 139만 vs 국토부 10만
도시는 국토, 비도시는 농림·해수부 관리
정의도 법령도 달라... 관리체계 일원화 필요

16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현저2주거환경개선지구에 위치한 한 빈집 안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최주연 기자

전국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지만 빈집 정책이 부처, 법령마다 달라 관리는커녕 현황 파악마저 쉽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올해가 돼서야 뒤늦게 빈집 통합 대책 수립에 나섰다.

①전국 빈집, 통계청 139만 vs 국토부 10만

우선 빈집 통계는 기관별로 다르다. 통계청은 지난해 전국 빈집을 139만 가구라고 발표했지만, 국토교통부는 올해 10만8,000가구로 집계했다. 국토부는 시장, 군수 등이 확인한 1년 이상 거주 또는 사용하지 않은 집을 합한 반면 통계청은 조사일인 11월 1일을 기준으로 집이 하루라도 비어있으면 빈집으로 집계했기 때문이다.

 
 

통계청도 5년에 한 번씩 1년 이상 비어있는 집을 집계하지만, 이 또한 2020년 기준 38만7,326가구로 확인돼 국토부 통계와 차이가 났다. 전체 빈집 중 20%의 표본을 정해 집주인에게 비어있는 기간을 물어 집계한 결과라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이와 달리 국토부 빈집 실태조사의 집계 근거는 전기, 상수도 사용량을 바탕으로 한다.

②'빈집'... 정의도 관리 부처도 달라

현행법이 규정하는 빈집에 대한 정의와 소관 부처도 제각기다. 농어촌 지역 빈집은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소관으로 농어촌정비법을, 도시 지역은 국토부 소관으로 소규모주택정비법을 적용받는다. 두 법안 모두 1년 이상 사용 흔적이 없는 집을 빈집으로 규정하지만, 소규모주택정비법은 미분양 주택, 공공임대주택, 사용검사 후 5년 미경과 주택, 별장 등을 빈집에서 제외한다. 통계청은 미입주 신축 주택을 합해 집계한다.

16일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현저2주거환경개선지구의 한 빈집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최주연 기자

③빈집 조사도 도시와 농어촌 따로따로

빈집 실태조사 또한 도시와 농어촌 지역 간 차이가 있다. 도시는 빈집 실태조사를 통해 빈집 등급을 유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빈집 정비계획을 수립한다. 농어촌 지역은 이와 달리 빈집 정비사업을 생활환경정비계획 일환으로 추진한다. 해수부 관계자는 "적용되는 법이 다르다 보니 국토부와 농식품부, 해수부의 조사 방법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뒤늦게 통합 대책 마련

정부는 올해가 돼서야 흩어진 빈집 관리를 일원화하기 시작했다. 국토부와 농식품부, 해수부는 4월 빈집 관리를 위한 부처 간 업무협약을 하고, 제도 개선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국 차원의 일관된 관리체계를 만들고, 소규모주택정비법과 농어촌정비법의 빈집 조항을 분리해 '빈집법'을 새롭게 만든다는 게 목표다. 정부 관계자는 "용역에 실질적으로 착수한 건 지난달로 아직은 연구 초기 단계"라며 "빈집법 마련 등은 빨라도 내년 상반기나 돼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빈집 실태조사 역시 올해에 들어서야 시행을 의무화했다. 그간 빈집 실태조사는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임의로 진행했지만, 올해부터는 5년에 한 번씩 반드시 빈집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 국토부 관계자는 "도시 지역은 실태 결과를 모아 2023년부터 대국민 공개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일원화한 빈집 대책 마련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5일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번 정부의 공급 대책으로) 270만 가구가 생기면 원래 있던 집들은 어찌 되나, 한두 건 프로젝트 수준이 아니라 전체적인 정부 정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신도시 정책, 공급 대책으로 인구 흐름이 생겨날 때 (남은 지역은) 완전 슬럼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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