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용사지

 

청룡사가 언제, 누가 창건하였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창건 설화는 전해져 내려오는데 어느 화창한 봄날 도승이 지나가다가 소나기를 만나

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하늘에서 용 두 마리가 여의주를 갖고 놀다가

땅에 떨어뜨렸다고 한다.

 

용 한 마리가 떨어진 여의주를 향해 내려오다가 청계산 위로 올라갔고

여의주와 용이 사라지면서 비가 멎었다.

 

도승은 산세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이 비룡상천형(飛龍上天形)의 명당이므로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에 암자를 짓고 청룡사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청룡사 위전비 (충주시 유형문화재 제242호)

 

크기 : 비신높이 140cm, 너비 69cm, 두께 23cm

시대 조선시대

귀부에 비신을 세우고 가첨석을 올려놓은 모습으로

가첨석의 일부가 파손된 것을 제외하면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비문에는 사찰의 경영을 위하여 신도들이 출원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데

음기에 시주한 불자들의 이름과 출원품의 양이 명시되어 있고

이 비를 세운 대표자는 통정대부 崇徽로 되어 있다.

 

 

충주청룡사지석종형부도(忠州靑龍寺址石鐘形浮屠)


충주시문화재자료 제54호
소재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시대 조선시대

 
정사각형의 지대석위에 각형 괴임대가 새겨진 하댓거을 놓고 호감암의 석종형탑신을 올렸다.

탑신 윗부분은 복발모양으로 조각하여 정상부에 3단의 돌출부부을 조식하였고

탑신부 가운데에 부도의 주인공을 새겨놓았는데 '寂雲堂舍利塔'으로 보여진다

 

 

 

보물 제656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륭탑전사자석등(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前獅子石燈)

소재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시대 조선시대

 

이 석등은 보각국사의 명복을 빌어 주기 위해 그의 사리탑 앞에 세워진 것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3단의 받침 가운데 아래받침돌은 앞을 향해 엎드려 있는 사자를 조각하였는데,

이 때문에 사자석등이라 부른다.

 

 

 

국보 제197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륭탑(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

소재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시대 조선시대

청계산 중턱의 청룡사에 자리한 부도로, 보각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았다.

보각국사(1320∼1392)는 고려 후기의 승려로, 12세에 어머니의 권유로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불교의 경전을 두루 연구하여 높은 명성을 떨치었다.

 

특히 계율을 굳게 지키고 도를 지킴에 조심하였으며,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였다.

조선 태조 원년(1392)에 73세의 나이로 목숨을 다하자, 왕은 '보각'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탑이름을 ‘정혜원륭’이라 내리어 탑을 세우도록 하였다.

 

태조 3년(1394)에 완성을 보게 된 이 부도는 양식상 종모양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8각의 평면을 이루는 형식으로 건립된 몇 안되는 부도 가운데 하나로,

조선시대 전기 조형미술의 표본이 되는 귀중한 유물이다.

 

 

보물 제658호 청룡사보각국사정혜원륭탑비(靑龍寺普覺國師定慧圓融塔碑)

 

소재지 충북 충주시 소태면 오량리 산32
시대 조선시대

 

비는 1장의 돌로 된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돌이 서 있는데,

위로 머릿돌을 따로 얹지 않고, 몸돌 양 귀퉁이를 접듯이 깎아 마무리해 놓았다.

 

조선 태조 3년(1394) 문인선사 희달(希達)이 왕의 명을 받아 세운 것으로,

권근이 비문을 짓고, 승려 천택이 글씨를 썼다. 글씨에서는 힘이 느껴지고,

예스러운 순박함과 신비스러움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중국의 어느 명품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품격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후 조선시대를 통하여 이에 대적할 만한 것이 없을 만큼 돋보이는 면이라 할 수 있다.

 

 

억정사 대지 국사비

보물 제16호

충북 충주시 엄정면 괴동리

 

이곳의 비는 대지국사의 비로 조선태조 2년에 건립 되었음을 비의 내용으로

알아볼수 있으며 비의 건립연대 및 대지국사에 대한 내용을 알수 있다

대지사는 양주한씨로 본명은 차영이며, 고려 충숙왕 15년(1328) 충주에서 태어

나 14세에 중흥사에 들어가 32세때부터 62세로 입적한

공양왕 2년(1390) 려왕실을 가까에서 섬겼다.

 

이비는 거북모양및 용머리가 없는 14세기의 전형 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보각국사 정혜원 유탑비와 모양이 같으며 주변에 기와조각이 많이 나오고 있고

석재등이 흩어져 있어 절터임을 짐작할수 있다.

 

대지국사의 부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박의중이 짓고, 승려인 선진이 글씨를 썼으며, 혜공이 새겼다.

힘차고 굳센 필체는 짜임도 우수하고 최근에 새긴듯 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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