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만에 죽었다···제주 앞바다 아기거북의 비참한 최후
[중앙일보]
국립생태원 연구진들이 부검실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바다거북을 부검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지난 10월 23일 충남 서천의 국립생태원 내에 있는 복원생태관.
<플라스틱 아일랜드>
1. 이 많은 쓰레기들 어디서 왔을까
바다거북 부검 현장을 가다
계단을 따라 지하 부검실로 내려가자 몸길이 70㎝가량인 바다거북 한 마리가 죽은 채로 누워 있었다.
6월 13일 경북 포항시 호미곶 해수욕장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붉은바다거북이다.
이날 부검실에는 국립생태원을 비롯해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 해양생물 연구자들이 전국에서 모였다.
“바다거북이 왜 죽었는지 부검을 하면서 밝힐 생각이에요. 일단 복갑(腹甲·배를 싸고 있는 단단한 껍데기)을 열고 내부에 있는 장기를 적출해서 특별한 병변이 있는지, 쓰레기를 많이 먹었는지 보려고 합니다.”
이날 부검을 진행하는 이혜림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 연구원이 바다거북 폐사체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부검이 시작되자 심한 악취가 방 전체로 퍼졌다. 연구팀은 바다거북 뱃속에서 장기를 꺼내 식도에서부터 대장, 직장 내부를 꼼꼼하게 살폈다.
기도 안에서 액체와 함께 하얀 거품이 나왔다. 작은 탄식 소리가 들렸다.
이 연구원은 “기도 안에 액체가 차 있는 거로 봐서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바다거북이 그물 등에 머리나 앞 갈퀴가 걸리는 경우에 빠져나가지 못하고 익사한 채로 발견된 경우가 많이 있다”고 말했다.
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파이프. [사진 강대석]
장 속에는 바다거북이 먹은 수초가 가득 차 있었다. 수초들 사이로 검은 물체가 보였다. 플라스틱으로 된 파이프였다.
이 연구원은 “이런 플라스틱이 장벽을 긁으면서 내려가면 장 염증을 일으킬 수 있고, 단면이 뾰족한 경우에는 장을 뚫게 돼 복막염을 일으키고 심하면 패혈증 때문에 죽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무관, 낚싯줄, 약 포장지…
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각종 플라스틱 쓰레기들. 천권필 기자
10월 22, 23일 이틀 동안 바다거북 5마리를 부검한 결과, 뱃속에서는 여러 종류의 플라스틱이 발견됐다.
수도꼭지 연결용 고무관과 낚싯줄, 알약이 든 플라스틱 포장재도 나왔다.
실제로 우리나라 주변 바다에서는 해마다 20마리가 넘는 바다거북이 죽은 채로 발견된다.
이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과 국립생태원 등은 지난해부터 바다거북 죽음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45마리의 바다거북 폐사체를 부검해 왔다.
조사 결과, 지금까지 부검한 바다거북 가운데 절반이 넘는 31마리에서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됐다.
이 중 절반가량인 15마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섭취가 직·간접적 사인으로 밝혀졌다.
방류 11일 뒤 폐사체로 발견…뱃속엔 쓰레기 가득
방류된 지 11일 뒤에 부산 기장군 해안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붉은바다거북. 뱃속에는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 [사진 국립생태원]
지난해 8월 제주도 중문 해수욕장에서 방류된 새끼 붉은바다거북 한 마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바다거북은 방류된 지 불과 11일 뒤에 부산 기장군 해안에서 폐사체로 발견됐다.
부검을 했더니 이 어린 바다거북 뱃속에서 200개가 넘는 쓰레기가 발견됐다. 사탕 껍데기와 삼다수 페트병 라벨 등 비닐 쓰레기가 대부분이었다.
새끼 붉은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사진 국립생태원]
김일훈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연구원은 “방류가 되고 죽을 때까지 기간이 불과 11일이었는데, 그사이에 그렇게 많은 쓰레기에 노출됐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먹어도 뱉어낼 능력 없어”
지난달 14일 취재팀은 경남 거제시 장목면에 있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남해연구소의 홍상희 박사 연구실을 찾았다.
연구실에서는 바다거북 몸에서 나온 비닐·플라스틱 쓰레기를 종류별로 알루미늄 포일에 싸서 보관하고 있었다.
홍 박사는 알루미늄을 쌓여 있는 비닐 쓰레기를 펼쳐 보이며 "바다거북이 종류별로 사체에서 나온 비닐·플라스틱을 분석한 결과, 해조류를 먹고 사는 푸른바다거북은 밧줄이나 섬유 형태의 비닐을 많이 먹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잡식성인 붉은바다거북은 필름 타입의 비닐, 일회용 비닐봉지를 해파리로 오인해 많이 섭취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해양 쓰레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6종 가운데 푸른바다거북과 붉은바다거북이 포함돼 있을 정도로 바다거북은 해양 쓰레기를 가장 많이 먹고, 또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며 “위장 안에 뾰족한 케라틴 돌기가 아래쪽을 향해 있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한번 먹으면 위장으로 역류해서 뱉어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 박사는 "폐비닐 등이 한번 몸에 들어가면 3주 혹은 한 달은 걸려야 배설되는데, 형태에 따라 체내에 머무는 기간도 달라진다"며 "일회용 비닐봉지가 부피로는 가장 많이 차지했는데, 물에 떠 멀리까지 이동하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비닐 중에는 농협에서 종이상자 포장 때 붙이는 비닐 테이프도 나왔다.
일부 중국 쓰레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는 중국 쓰레기가 해류를 타고 떠내려왔음을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지난해 8월 제주 서귀포시 중문 색달해변에서 해양수산부 주최로 열린 '바다거북 방류행사'에서 인공부화한 새끼 바다거북들이 바다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자란 거북이보다 새끼 바다거북이다. 성체 바다거북의 경우 종종 폐사체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새끼 바다거북은 피해 규모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발견되지 않을 뿐 플라스틱 쓰레기로 인한 새끼거북의 피해는 더 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플라스틱으로 인해 해양생물들이 피해를 보면 결국 먹이사슬을 따라 인간에게도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혜림 연구원은 “작은 플라스틱들이 바닷속에서 미세플라스틱 조각으로 분해되고 우리가 흔히 먹는 해양생물들이 미세플라스틱을 먹게 되면 그런 것들이 우리 식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라며 “플라스틱 쓰레기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생태계는 없는 만큼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해변엔 중국 페트병…거문도 삼킨 플라스틱
전남 여수 거문도 인근 바닷속에서 참돔 한 마리가 폐통발에 갇혀 폐사했다. [사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대한민국에는 3348개의 섬이 있다. 그중 470개 섬에는 사람이 산다. 이 아름다운 섬들이 플라스틱으로 오염되고 있다. 섬이 바다를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종착지가 되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섬의 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산호, 바다거북 등 해양 생태계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다도해국립공원 거문도 해저를 탐사하다
전남 여수시 거문도리의 소삼부도. 거문도 동쪽에 있는 무인도다. [사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육지와 제주도 사이, 남해 한가운데 떠 있는 거문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최남단에 위치한 면적 12㎢의 작은 섬이다.
지난 10월 20일 전남 여수에서 배를 탄 지 두 시간쯤 지나자 세 개의 섬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거문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9명의 스쿠버다이버가 양손 가득 장비를 챙겨 배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이들이 이날 거문도를 찾은 건 섬 전체가 해상국립공원에 속하는 거문도의 수중 환경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과 다이버들은 올해 처음으로 전국 해상국립공원의 수중 쓰레기 실태를 모니터링해 왔다.
여객선에서 내린 이들은 곧장 작은 배로 옮겨타고, 거문도 인근 수중 모니터링 대상지로 향했다.
거문도 갯바위에서 낚시를 하는 모습. [사진 왕준열]
목적지로 가는 도중 섬 갯바위마다 자리를 잡은 낚시꾼들이 보였다. 주변으로는 물고기를 잡는 어구가 있음을 알리는 부표들이 띠처럼 섬을 두르고 있었다.
“거문도 주변에 워낙 다양한 해양생물들이 살다 보니 낚시꾼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포인트에요. 낚싯배들이 섬을 돌면서 바위마다 낚시꾼들을 실어나르죠.”
동행한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이 말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다이버들은 간단한 브리핑을 받은 뒤 곧장 공기통을 매고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다이빙 자격증을 보유한 기자 역시 기자 역시 쓰레기를 수거하는 어망을 들고 입수했다.
물티슈, 낚싯줄, 폐어구…쓰레기장 된 바다
수중 섬 주변으로는 셀 수 없이 많은 물고기 떼와 함께 형형색색의 산호가 화려함을 뽐내고 있었다. 산호에 엉킨 낚싯줄에서부터 누군가 버린 물티슈가 녹지 않은 채로 바닥에 깔려 있었다.
낚시에 쓰이는 납 봉돌도 무덤처럼 쌓여 있었다.
전남 여수 거문도 인근 바닷속에서 발견된 폐통발 안에 문어 한 마리가 갇혀 있다. [사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거문도 동쪽,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소삼부도 역시 바닷속이 쓰레기로 뒤엉켜 있었다.
줄이 끊긴 폐통발 안에는 팔뚝만 한 참돔 한 마리가 죽은 채로 갇혀 있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살점이 떨어져 나갔을 정도였다.
문어들은 그나마 다리를 뻗어 주변의 생물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남았다. 다이버가 칼로 어망을 뜯어내자 문어는 먹물을 뿜으며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모니터링을 마치고 물 밖으로 나왔다. 배 위에는 바닷속에서 수거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주로 어업활동에서 나온 폐어구가 많았고, 낚시꾼들이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생활 쓰레기들도 있었다.
스쿠버다이버 강사인 김윤선 씨는 “물티슈가 녹지도 않고 바닥에 여기저기 뿌려져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바다를 보호해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제 물속에 들어가 보니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고 말했다.
전남 여수 거문도 인근 바닷속에서 발견된 물티슈. [사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해상국립공원에만 축구장 4만개 면적서 어업
한려해상국립공원내 특별보호구역인 홍도 인근 바닷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이상돈 국회의원실이 국립공원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다도해와 한려, 태안 등 해상·해안 국립공원 내에서 운영되는 어장·양식장은 2144곳으로 면적으로 따지면 2만 9000헥타르(ha)에 이른다. 해상국립공원에서만 축구장 4만 1600개에 해당하는 면적의 바다에서 어업 행위가 이뤄진다는 뜻이다.
낚시 관련 규제 역시 모호하다. 자연공원법상 국립공원 내에서 해중동물을 잡으려면 공원관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같은 법 시행령에서는 자연환경의 훼손이나 공중의 이용에 지장을 초래할 염려가 없는 경우 신고를 생략할 수 있게 했다.
바다 중에서도 보호 가치가 높은 해상국립공원마저 사실상 쓰레기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이다.
전남 여수 거문도 인근 바닷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거문도에서 15년 동안 스쿠버다이빙 강사로 활동한 정민교 거문도스킨스쿠버 대표는 “어민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삼치를 잡는 낚싯바늘에 쓰레기가 종종 걸려 올라올 정도로 바닷속에 쓰레기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정인철 국장은 “해상국립공원내 수중환경을 조사한 결과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업활동에서 버려지는 어구라든지 선박에서 버려지는 생활 쓰레기가 많았고, 다도해는 낚시행위가 매우 많기 때문에 낚시 관련 쓰레기들도 굉장히 많이 모니터 되고 있다”고 말했다.
스티로폼 해변이 된 해수욕장…중국 페트병도
거문도 해수욕장이 플라스틱 쓰레기로 뒤덮여 있다. 천권필 기자
이렇게 바다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섬으로 밀려온다. 배에서 내려 거문도 해수욕장으로 이동했다.
해변은 바다에서 밀려온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쓰레기장에 가까웠다.
사이사이로 작은 하얀 알갱이들이 햇볕을 받아 빛을 냈다. 한 움큼 집어보니 모래가 아니었다. 부표로 활용되는 스티로폼이 잘게 부서진 것이었다.
잘게 부서진 스티로폼 알갱이들이 거문도 해수욕장을 덮고 있다. 천권필 기자
해변에 뒹구는 플라스틱 페트병에는 선명하게 중국어가 쓰여 있었다.
정인철 국장은 “한·중·일 등 3국에서 발생한 플라스틱 쓰레기가 남해안에서 뒤엉키고 있다는 하나의 증거”라며 “거의 매일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는데도 하루가 지나면 또 이렇게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서 밀려와 해변에 쌓인다”고 말했다.
매달 828t 쓰레기 쌓여…71%는 플라스틱
전국 섬 해안쓰레기 발생량.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해안 쓰레기는 거문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해양수산부로부터 단독 입수한 ‘도서 지역 쓰레기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섬 전체에서는 매달 828t(톤)의 해안 쓰레기가 발생한다. 섬 전체 쓰레기 발생량의 77.3%를 차지할 정도로 해안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섬이 몰려 있는 전남 남해안과 서해안 도서 지역의 해안 쓰레기가 전체 발생량의 3분의 2 이상(68.1%)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컸다.
섬 해안쓰레기 종류. 그래픽=한지영 디자이너
종류별로는 플라스틱(45.11%), 스티로폼(24.17%), 나무(17.24%), 기타(11.5%), 비닐(1.97%)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쓰레기의 71.2%가 플라스틱 성분으로 구성될 정도로 플라스틱 쓰레기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보고서는 “도서에서 수거한 해안 쓰레기를 위한 집하 시설은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마대자루나 그물망에 담겨 임시 적치장소에 모아 두나 오랜 기간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며 “따라서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생활 쓰레기나 해안 쓰레기를 소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김용진 목포해양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는 “섬 쓰레기의 가장 큰 문제는 접근성이 떨어지다 보니 수거가 어렵다는 것”며 “섬 쓰레기를 전문적으로 수거할 수 있는 인력과 함께 상시로 쓰레기를 운반·관리하는 체계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몸살 앓고있는 백령도..페트병 주워보니 죄다 중국산
인천녹색연합 장정구 정책위원과 박정운 황해물범사민사업단장이 백령도 하늬해변으로 떠밀려온 중국산 페트병 쓰레기를 살펴보고 있다. 해변 100m에서 70여 개가 수거됐다. 강찬수 기자
서해 백령도의 하늬해변.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한 여객선이 4시간가량 달려 도착하는 백령도 용기포 신항에서 북쪽으로 1㎞ 남짓 떨어진 모래 해변이다.
백령도에서도 점박이물범이 휴식하는 바위섬과 그 너머로 북한 장산곶이 건너다보이는 서쪽 해안에 해당하는 곳이다.
백령도와 장산곶 사이 바다는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印堂水)로 알려져 있다. 백령도에는 심청각도 있다.
하지만 심청을 살려준 연꽃 대신 중국산 생수 페트병만 둥둥 떠다니고 있다.
지난 10월 11일 인천녹색연합의 장정구 정책위원과 박정운 황해물범시민사업단장과 함께 둘러본 이곳은 크고 작은 페트병 쓰레기 천지였다.
취재 기자는 장 위원 등과 함께 군부대가 설치해 놓은 경계용 울타리 바깥 모래 해변을 걸으면서 흩어져 있는 페트병을 수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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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개 페트병 모두가 중국산
백령도 하늬해변에서 수거된 페트병. 상표로 보면 모두가 중국산임을 알 수 있다. 강찬수 기자
3명이 100m 정도를 이동하면서 20여 분 동안 수거한 페트병은 70여 개에 이르렀다. 페트병 상표에 적힌 글씨를 보니 모두가 중국산이었다.
‘津美乐(진미락)’이니 ‘鴨綠江(압록강)’, ‘梨花谷(이화곡)’이라고 한자가 적힌 생수병이 대부분을 차지했고, ‘水晶葡萄(수정포도)’ 같은 음료수병도 눈에 띄었다.
모래 해변 반대쪽 경계용 울타리 너머에도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지뢰지대여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울타리가 일부 쓰러진 탓에 그 안쪽까지 쓰레기들이 파도와 바람에 떠밀려 들어간 모양이었다. 페트병은 물론, 농구공 모양의 검은 플라스틱 부이나 스티로폼 부이도 많았다.
해변과 도로를 잇는 통문 옆에는 마대자루 7~8개에 이미 페트병 등이 가득 차 있었고, 그 옆에도 100개 정도 페트병이 쌓여 있었다. 취재팀은 이날 모아들인 페트병도 이곳에 가져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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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 사이엔 병뚜껑과 라이터가
백령도 연화리 해변에서 수거한 섬 쓰레기. 페트병은 없었지만, 플라스틱 라이터나 병 뚜껑이 많았다. 강찬수 기자
백령도 서쪽 해안인 연화리 해변은 자갈이 깔려 있었다. 멀리서는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니 플라스틱 생수병 뚜껑들, 일회용 라이터, 끊어진 노끈들이 자갈 틈에 흩어져 있었다.
취재팀은 대략 가로 60m, 폭 20m 면적을 정해 10분 정도 쓰레기를 모았더니 병뚜껑이 48개, 라이터가 29개나 됐다. 라이터에 적힌 글자로 파악해보니 한국산이 3개, 중국산이 6개였다.
백령도 연화리 해변에서 수거된 섬 쓰레기.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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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쌓인 사곶 천연 비행장
천연비행장인 사곶 해변에도 쓰레기가 떠밀려와 주민들이 축대 아래로 옮겨놓았다. 강찬수 기자
용기포 신항에서 동쪽으로 600여m 떨어진 사곶해안. 천연비행장으로 알려진 고운 모래 해안이고, 천연기념물 제391호다. 자동차가 달리는 모습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해변 가장자리 콘크리트 축대(옹벽) 아래에는 바다 쓰레기가 잔뜩 모여 있었다. 해변에 밀려온 쓰레기를 주민들이 군데군데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여기서도 스티로폼이나 검은색 플라스틱 부이가 눈에 띄었다. 꽃게잡이 통발 6~7개가 모래에 반쯤 파묻혀 있었다. 일회용 그물도 뒤엉켜 있었다.
장 위원은 일회용 그물을 가리키며 “요즘은 어민들이 그물에 걸린 생선을 빨리 떼 내려고 아예 그물을 끊고 생선을 꺼내고 버린다”며 “해변에 이렇게 쓰레기를 모아놓았지만, 파도에 휩쓸려 다시 바다로 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해변에 모인 쓰레기들은 주민들이 인천시가 지원하는 공공근로 사업으로 모은 것들이다. 주민들이 줄을 묶은 플라스틱 상자
에 끌고 다니면서 해변 쓰레기를 모으기도 하고, 집게로 쓰레기를 주워 마대 자루에 담기도 했다. 60대 주민은 “일주일 사흘 정도 해변에 나와서 쓰레기를 줍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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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로 못 가고 쌓인 해양 쓰레기
백령도 폐기물 집하장 한쪽에 쌓아놓은 해양쓰레기. 강찬수 기자
백령도가 속한 인천시의 연간 해양 쓰레기 수거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를 더해 77억 원. 원래는 한강 등에서 떠내려오는 쓰레기를 한강하구와 연평도 사이에서 수거하는 데 사용하게 돼 있지만, 백령도 주변 쓰레기를 모으는 데도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모은 쓰레기는 백령도 내에 쌓아뒀다가 가끔 육지로 가져 나간다. 지난 10월 12일 취재팀이 찾아간 백령도 내 건설폐기물 집하장 한쪽에는 수백 개 마대자루에 나눠 담긴 해양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어떤 마대자루는 만지면 그대로 부스러지기도 했다.
장 위원은 “섬에서 발생하는 생활 쓰레기는 섬에서 그대로 처리, 소각하지만, 해양 쓰레기는 육지로 나가 처리하는데, 마대자루 상태로 봐서는 2~3년 동안 육지로 가져가지 않은 채 계속 쌓여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바다 쓰레기는 스티로폼 조각 등 덩어리가 커 다루기가 어렵고, 염분도 있어 소각 시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이 발생하기 때문에 소각하기를 꺼려 전처리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섬에서는 지역 주민이나 어민이 해양 쓰레기를 보통 부두 근처에 모아 놓게 되는데, 태풍이라도 불면 기껏 모아놓은 쓰레기가 다시 바다로 날려가기 일쑤라는 것이다.
장 위원은 “수거 인력이 점차 노령화하고, 집하장도 부족하거나 부실하고, 육지로 제때 가져가지 않아 섬 쓰레기는 계속 쌓이기만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