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빈집 5만채
'밑 빠진 독' 12년간 1천200억 쏟아부어도 허사
누군가에게 집은 평생 갈망의 대상이기도, 시세 차익을 통한 축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딘가에서는 남아돌아서 문제다.
농촌에서는 해마다 수천여 채의 빈집이 정비되고, 또 생겨난다.
23일 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전국 농촌 빈집은 5만801채. 2011년 5만4천126채, 2012년 5만2천593채, 2013년 4만8천149채로 감소하다
2014년 4만8천901채, 2015년 4만8천685채, 지난해 다시 5만 채 이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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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 정비법에서 빈집이란 1년 이상 아무도 거주·사용하지 않은 농어촌 주택이나 건축물을 말한다.
빈집은 지자체 자체사업, 일반 농산어촌 개발사업비 등으로 해마다 수천 채씩 정비된다.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13만6천758채를 정비하는데 1천196억여원이 들어갔다.
올해도 119억원을 들여 5천500여 채를 정비할 계획이다.
농촌 인구 이탈에 빈집은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도 사라진 만큼 또 늘어난다.
정비사업은 '밑 빠진 독'이 돼가는 모양새다.
막연히 재산 가치 상승을 기대하거나 먼 미래에 귀농을 염두에 두고 빈집을 소유하면서 방치하는 사례도 많아 빈집 정비가 다람쥐 쳇바퀴 도는 형국이다.
농촌 현장에서는 전국 빈집이 5만 채가량이라는 집계도 믿지 못하는 눈치다.
전담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면밀한 실태조사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남도는 최근 시·군별 빈집 현황을 조사하면서 동네 이장들을 총동원했다.
조사 결과 전남의 빈집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만1천154채에 달했다.
이 가운데 4천120채는 활용 가능한 것으로, 7천34동은 철거대상으로 판단했다.
농어촌 정비법은 자진해서 또는 직권으로 빈집을 철거할 수 있도록 했다.
자진 철거를 유도하려고 농어촌 주택개량자금을 우선 지원할 수 있게 하고 빈집 철거 명령을 따르지 않으면 지자체장 직권으로 철거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다만 선출직 지자체장들이 사유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는 철거사업에 과단성을 발휘하기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정비계획을 추진하는 데 필요한 행정절차, 예산 부담을 가중하는 공고·철거·보상비 등도 지자체의 운신 폭을 좁힌다.

전남도 관계자는 "미관을 크게 해치는 포인트에 있는 소유자 불명 빈집이라도 처리하려고 해봤지만, 기초단체에서 공탁조차 엄두 내지 않는 경우도 겪었다"며 "정비도 정비지만 시급한 것은 빈집 정보를 공유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일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치단체마다 빈집 정보를 데이터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통합적인 관리도 미흡하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림수산신품 교육문화정보원이 운영하는 귀농귀촌 종합센터가 제공하는 빈집 정보는 400건에도 못 미친다.
전북도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빈집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다 보면 소유자, 구매 또는 임대 희망자 모두 관심이 커져 빈집 처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제안했다.
빈집을 공공재로…인식 전환·제도 개선 시급
농촌 빈집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방자치단체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거리다.
고민 끝에 집수리나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해 귀농·귀촌자, 저소득층, 청년층의 보금자리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차츰 늘고 있다.
소유자와 협의해 빈집을 허물고 주차장, 텃밭, 소공원, 운동시설을 조성한 곳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늘어나는 빈집 수에 비할 바 아니다.
23일 농림축산식품부와 일선 지자체에 따르면 전북도는 농촌 빈집을 손봐 주거 취약 계층에게 임대하는 이른바 반값 임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수리비 1천만원을 지원하고, 수리한 주택을 주변 시세 반값에 5년간 임대하는 방식이다.
1천만원 초과 비용은 소유자가 부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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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대상자는 귀농·귀촌자, 대학생, 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가구 등이다.
농촌 빈집을 활용하는 전형적 사례로 평가받지만, 사업 규모가 크지 않은 게 아쉽다.
전북도는 시·군과 함께 2015년 700만원씩 지원해 25채를, 지난해에는 1천만원씩 28채를 정비했다.
전북 농촌 빈집이 6천∼7천 채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극히 미미하다.
김양곤 전북도 도시경관팀장은 "임대 들어갈 사람의 문의는 많은데 집을 고치려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며 "지원액 초과 공사비에 대한 부담을 꺼리거나 월 5만∼10만원 임대료에 큰 매력을 못 느끼는 경우도 있다"고 털어놨다.
농촌 지역은 아니지만, 서울시와 부산시 등도 리모델링비를 지원해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임대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구시는 주차장, 텃밭, 소공원, 운동시설 등으로 활용한다.
늘어나는 빈집에 부대끼는 전남도의 정비사업은 전면적이다.
일반 농어촌 개발사업, 농어촌 경관 사업은 물론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등 특화 시책을 통해서도 빈집을 정비하고 있다.
여수시 소라면 장척마을에는 빈집을 철거해 소공원과 주차장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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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 싶은 섬 사업 대상지인 고흥군 금산면 연홍마을에는 빈집이 있던 터에 마을 간판과 꽃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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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구암마을에서는 빈집이 텃밭으로, 화순 성안마을에서는 가로화단으로 변신했다.
전남도는 지자체장 관심도를 높이려고 국·도비 사업 공모 때 빈집 철거 여부를 평가에 반영하기도 한다.
우리보다 먼저 고민에 빠진 일본은 빈집을 등록하도록 한 뒤 매매를 중개하는 빈집 뱅크도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집주인에게 일정액을 받고 빈집을 관리하는 서비스 업체도 생겨났다.
일본에서는 2013년 기준 전체 주택 가운데 13.5%인 820만 채가 비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33년에는 총 주택 수 7천106만7천 채 가운데 30.2%인 2천146만6천 채가 빈집일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은 9명 의원과 함께 지난달 22일 농어촌 정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정비 명령에도 시정하지 않으면 빈집을 직권으로 철거할 수 있지만, 재산권 침해 소지와 복잡한 행정절차 등으로 관리가 미비하다는 인식에서다.
개정안은 빈집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고 정비계획 수립·시행, 건축위원회 심의, 보고 등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도록 했다.
특히 정비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김 의원은 "농촌 폐가에 대한 부정적 인상은 농촌 전체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며 "법률 개정을 통해 행정절차가 정비되고 아름다운 농촌의 이미지가 확립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태식 전남도 주택행정팀장은 "당장, 가까운 미래에 활용할 일이 없다면 빈집을 자신의 소유물로 끌어안고 있기보다 공공적으로 활용하는데 열린 자세를 보여야 한다"며 "소유권을 넘기지 않고 임대 방식으로도 활용할 수 있으니 소유자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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