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자원 둘러싼 ‘사회적 가뭄’ 우려
양력 4월 20일은 전통 24절기에서 곡우(穀雨)라 불렸다. 봄비가 내려 백곡을 기름지게 하는 날이라는 의미다.
농가에서는 볍씨를 담그고 못자리를 준비한다. 하지(夏至)는 양력 6월 21일이다.
모내기가 이 무렵 마무리된다. 농가에서는 장마철을 앞두고 고추의 잡초를 제거하고,
마늘을 수확해 말리며, 보리와 감자를 거둔다.
한 해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이 시기의 시작과 끝은 모두 ‘비’다.
유난히 비가 안 온 한 해라고 한다.
곡우와 하지 사이 내린 비의 30년어치 평균(평년)을 100ℓ라고 한다면
올해 같은 시기에 내린 비는 몇ℓ에 해당할까. 약 34ℓ다.
2017년 1월 1일부터 6월 29일까지 올 상반기 동안 내린 비로 따져도 평년 대비 49.5%에 불과하다.
1973년 국내에서 본격적인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최악의 가뭄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다만 모두가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 것이 아닐 뿐이다.
농촌과 농민이 도미노의 맨 앞줄에 선 타일처럼 가뭄의 피해를 맞았다.
2013년부터 4년째 이어지는 가뭄이라 피해가 더욱 크다.
바싹 마른 토양이 농민의 일상을 집어삼킨 반면,
가뭄의 고통과 해결방안에 대한 논의는 전국적으로 공유되고 있지 않다.
바짝 마른 논바닥의 풍경만이 ‘혹시 댐과 보를 짓지 않아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지핀다.
하지와 곡우 사이, 최소한 한 달에 두 번은 비가 와야 농사를 제대로 지을 수 있다고 한다.
농장에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농업용수는 마을 저수지물을 끌어다쓰거나 관정에서 퍼올린다
은 팔 생각이 없다. 기존 관정의 물을 빼앗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농장의 저수지는 6월말에도 40%를 기록했다.
전역이 가뭄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그나마 나은 수치였다.
문제는 밭농사다. 참깨는 7월에 수확을 앞두고 있고, 고구마는 9월에 수확한다.
참깨를 거두고 나면 씨만 뿌려뒀던 들깨를 옮겨 심어야 하는데 여의치 않다.
지금처럼 비가 안 오면 흙이 단단하고 뜨거워서 다 타 죽는다
장마만이 희망이다. 이번에도 비가 내리지 않는다면 들깨 등 특정 작물 전체의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고구마, 깨, 고랭지 감자 등의 작물에 피해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극심한 가뭄이 온 이유는 대체 뭘까. 무엇보다도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3년 이래 기상청의 관측자료를 보면 가뭄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1977년, 1983년, 1988년 큰 가뭄이 들었다. 2001년과 2008년에도 가뭄 피해가 심했다.
보통은 6~7년 주기였다. 2013년부터 내리 4년 평년치를 밑도는 강수량은 이례적이다.
2015년 연강수량 949㎜ 수준의 큰 가뭄이 발생했고, 2016년은 평년치는 밑돌았으나 강수량은 상승했다.
2017년에는 평년치를 회복하거나 그 이상이어야 하는데, 2015년과 비슷하거나 밑도는 수준의 가뭄이 예상된다.
지난해의 강수량 상승도 태풍의 영향이었던 것으로 기상학계는 보고 있다.
7년에 한 번씩 강수량이 뚝 떨어지는 패턴이 깨지고 가뭄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있다.
전 지구적 기후변화의 영향인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6월 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비서관 회의에서 “항구적인 가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5월 29일에도 관정 개발과 저수지 물 채우기, 절수 등을 포함한 대책 마련을 언급했다.
정부는 특별교부세 70억원을 편성해 경기에 25억원, 충남에 45억원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가뭄 이후의 상황에 대한 대책도 뾰족하게 나오지 않고 있다.
농업재해보험도 벼와 과일 중심이다. 저수지 등을 활용한 가뭄대책도 모내기 중심이고,
TV나 신문에서도 바짝 말라 갈라진 논두렁이 등장한다.
기상청은 6월 30일부터 장마가 시작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겨울과 올 봄의 강수량이 평년 수준에 미치지 못한 만큼, 장마철도 비슷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기상학계에서는 가뭄을 기상가뭄, 농업가뭄, 수문학적 가뭄, 사회·경제적 가뭄 네 가지로 나눈다.
비가 오지 않는 것은 기상가뭄,
강수량의 부족으로 토양의 수분 함량이 낮아져 농업에 어려움을 겪는 현상은 농업가뭄,
농업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댐 등의 물을 끌어다 쓰면서 생활 및 산업용수까지 부족해지는 현상,
즉 댐 수위가 낮아지는 현상이 수문학적 가뭄이며,
결국 수자원을 둘러싸고 사회적으로 갈등이 벌어지는 일이 ‘사회·경제적 가뭄’이다.
현재로서는 전국적으로 농업가뭄이며, 충청 일부 지역에 경우에 따라 수문학적 가뭄이 나타날 수도 있다.
기상청 기후과학국 이상기후팀 강혜영 주무관은 “미국 평원지역의 경우
이 네 가지 단계가 연쇄적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잘 드러나는데,
산간지형이 많고 지역에 따른 강수 편차가 높으며 댐 관리에 신경 쓰는 한국은
이 과정이 뚜렷하게 구분돼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이 네 가지 과정은 뒤죽박죽 섞여 일어나고 있을 수도 있다.
사회·경제적 가뭄이 우리 옆에 이미 와 있는지도 모른다.

/ 경향신문
'사는이야기 > 구암동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디카용어사전 (0) | 2017.07.10 |
---|---|
부산 조내기 고구마 (0) | 2017.07.08 |
'주황 리본'을 달아주세요 (1) | 2017.06.29 |
2017 세계 삶의 질 지수 (0) | 2017.06.27 |
설악산 케이블카 책임자 고발 (0) | 2017.06.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