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밥'

 

벚꽃, 복숭아꽃, 매화의 붉은 기운이 다하면 산야는 온통 푸른빛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입하를 넘어서며 녹음이 짙어지고 있다.

 

이팝나무. 입하(立夏) 즈음에 꽃이 피어 입하목이 변해 입

(立夏)나무가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은 듣는 이에게 별로 감흥을 주지 못한다.

 

좀 더 그럴듯한 이야기가 있다. 이밥나무가 변해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설이다.

조선 시대에는 흰 쌀밥은 부의 상징이었다.

양반인 이() 씨들만 먹는 밥이라 하여 '이밥'이라고 했다한다.

그들 눈에 비친 이팝나무는 양반들만 먹는 쌀밥 같은 꽃을 피우는 나무였다.

 

밥을 그리는 '이밥'에서 온 이름이니 양반들이 이름 지었을 리 없고,

이팝나무는 서민이 즐겨 보고 부르던 나무라는 이야기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 마령초등학교에는

이팝나무군()이 천연기념물임을 알려주는 게시판이 있다.

 

300년 전 오늘에 전해지는 슬픈 이야기는

오늘 흐드러진 나무의 하얀 꽃이 달리보이기까지 한다.

 

당시 흉년이면 당장 먹을 밥이 없어 식구는 굶기 일쑤였다.

어른이야 풀뿌리라도 먹는다지만 젖먹이 어린아이는 그렇지 못했다.

빈 젖을 빨다 울다 지치기 일쑤였던 아이들. 결국 굶어 죽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래, 죽어서라도 실컷 먹으려무나."

아비는 죽은 아이를 위해 묻은 곳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사연을 아는 이들도 죽은 아이를 생각하며 같은 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아이들의 공동묘지 터에는 이팝나무가 한 무리를 이루고 자라게 되었다.

이팝나무 꽃 천지가 된 아기 무덤을 마을 사람들은 '아기사리'라는 지방말로 불렀다.

 

죽은 아이들의 동산이 살아있는 아이들의 터로 바뀐 것은 약 백 년 전이란다.

한풀이라도 하듯 마을주민들은 무덤을 엎고 학교를 세웠다.

 

1920년에 그 자리, 바로 오늘까지 이어진다.

당시의 무성한 나무는 대부분 베어졌지만 몇 그루는 남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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