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청첩장이라면...
천편일률적 스드메, 20분 예식, 뿌려 놓은 축의금 걷기, 눈도장 찍기식 참석 등
허례허식 결혼식에서 벗어나 소박하고 특별한 결혼식을 치른,
주인공뿐만 아니라, 참석한 모든 이들의 기억에 남았던 예식을 소개해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에겐 격려를, 돈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이들에겐 기대를 안겨주고자 한다.
- 오마이뉴스-
#1
결혼 잔치에 초대된 게 기뻐야 하는데, 받고도 기분이 떨떠름해지는 청첩장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몇 년이 지났음에도 고이 모셔둔 청첩장이 있다.
청첩장에 적힌 글귀 하나하나가 정성스러워 쉬이 버리지 못했던 그 내용을 잠시 소개하고자 한다.
* 꼭 정장을 입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날씨가 추우니 편하고 따뜻한 옷차림으로 오십시오.
*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능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세요.
* 신부 대기실을 마련하지 않고, 예식 30분 전부터 신랑 신부가 입구에서 하객을 맞이하겠습니다.
* 두 사람이 살림을 합친 후 겹치는 책들을 모아서 입구에 놓아두겠습니다.
원하시는 책이 있으면 골라가세요.
청첩장 글귀 하나하나를 읽으며,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둘의 살림 중에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은 단연 책.
살림을 합치고 보니 중복된 책들이 꽤 많이 나왔다.
중복된 책들을 모두 걷어 결혼식장 앞마당에 쌓아놓았다.
기억에 남는 답례품이 되었다.
결혼식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허례허식이 될 부분은 과감하게 생략했다.
우선 신부 대기실. 대기실에 앉아 억지 웃음을 지으며 흘러가는 시간이 어색하기 그지없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신랑은 사람들을 맞이 하느라 지인들과 사진을 찍을 겨를도 없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예식 30분 전부터 식장 앞에 같이 나와 하객들을 맞이했다.
단체촬영 없이,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싶은 하객들과 두 부부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
또 하나의 고민은 식장에 장식된 꽃. 일회용으로 버려질 꽃장식들은
예식장에서 가장 비싼 비용을 들여야 하는 품목 중 하나다.
이 꽃을 잘 활용했다. 꽃길을 꽃바구니로 만들었고, 그간 고마웠던 사람들의 이름을 써놓았다.
식이 끝나고 미리 말을 들었던 사람들이 꽃바구니를 한아름씩 안고 집으로 돌아갔다.
기억에 남는 근사한 선물이 된 것이다.
웨딩드레스는 나중에 리폼해서 평상복으로도 입을 수 있도록 하나 맞췄다.
하루 대여하는 데 몇 백씩 드는 드레스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그런 화려한 드레스는 저랑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저와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입고 싶었고, 또 이렇게 간직할 수 있으니 좋아요.
#2
그림을 그리는 성아씨는 청첩장을 엽서 모양으로 두 개를 만들었다.
앞면에는 본인의 그림만 넣고, 뒷장에 간단한 예식 알림글을 써서,
사람들이 앞면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
약도는 별도로 준비해 뒷면에 덕담을 쓸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덕담을 쓴 카드를 가지고 온 하객들은 예식장에서 반납했고,
두 부부에겐 반납한 약도가 평생 간직할 소중한 편지가 되었다.
또 덕담카드를 쓴 하객들을 추첨해 선물도 주고, 예식 중에 편지를 읽을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결혼 준비 과정이 그랬듯, 결혼식도 길고 지루하고 형식적인 차례를 과감하게 생각했고,
주례 없이 부부가 하객들을 마주 본 채로 진행되었다.
"내가 꿈꾸는 결혼식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위 사람들은 '우리도 다 그렇게 하고 싶었어.
하지만 결혼은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야.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치지.
결국 기존 결혼식과 똑같이 하게 돼'라고 말했어요.
물론 저희 부모님들도 이 결혼식이 낯설어서 걱정하고 불안해 하셨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 나쁜 게 아니니, 잘 설명해 드렸더니 충분히 이해해 주셨죠.
결혼식이 끝난 후엔 너무나 좋아하셨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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