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페이지 연혁
캠프페이지(Camp Page)는 한국전쟁 당시 춘천에 유도탄기지 사령부와
미국 군사고문단 등이 주둔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주한 미군의 주둔지로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 불시착 사건 당시 중국 민항기가 이곳에 착륙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5년 대한민국에 반환되었으며 8년간의 정비를 거쳐서 2013년 6월에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캠프페이지는 한국전쟁 중인 1950년 장진호 전투에 참여하여
명예 훈장을 받은 미군 대령 John U. D. Page 의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반환 이전까지 미군 2사단의 아파치 헬기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남침 저지 血盟" 환영 속 '둥지'
춘천 미군부대 캠프페이지가 48년의 춘천주둔 역사를 마감하고 이르면 3월말 철수한다.
남북분단의 산물이기도 한 캠프페이지는 지난 1958년 춘천에 주둔한 이후 '도심의 섬'으로
지역발전의 걸림돌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한편으로는 지역경제와 대민지원에도 일정부분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광복이후 황폐한 도심에 자리잡은 '리틀 아메리카'는 반세기 동안 때로는 원성의 대상으로,
때로는 주민들이 기댈 언덕이 되기도 했다.
캠프페이지에서 흘러나온 물건을 거래하던 양키시장이 등장하고
부대 인근에는 바(Bar)등 낯선 간판, 낯선 문화가 자리잡기도 했다.
혼혈아가 사회문제화 되기도 했다. 캠프 페이지 주둔 48년의 명과 암을 되돌아본다.
52년 첫 활주로공사 1958년 가을 부대 창설
이전 초기 "전쟁 공포에 헬기소리 안들리면 불안"
2001년부터 반환 본격화… 이르면 3월 철수
광복 4년째를 맞는 1949년 미군은 남한의 신생 방위군 훈련을 위해
KMAG라는 군사자문단만을 남겨둔 채 전 병력을 철수시켰으며
이듬해인 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했다.
53년 정전협정후 같은 해 10월 1일 워싱턴에서 한국의 변영태 외무장관과
미국 J.F덜레스 국무장관이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서명했고
양국 대통령이 이를 비준함으로써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돼 54년 11월 18일부터 발효됐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58년 9월 북한의 침공에 대비키 위해
춘천에 미군부대 캠프페이지가 주둔했다.
당시 시민들은 미군기지가 들어서자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털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군들을 환영했다
전투부대인 캠프페이지의 주 임무는 휴전선에 대한 대공방어와 군수물자, 구호품 수송 등이었다.
그러나 캠프페이지의 정확한 주둔날짜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캠프페이지 관계자는 "1952년에 처음 활주로 공사가 시작됐고
58년 가을쯤 캠프페이지 부대가 창설됐다"고 말했다.
근화동에 거주하고 있는 박봉수(87세) 할아버지는 "춘천 근화1구(당시 근화동은 근화1구와
2구로 나뉘어 졌음)에 미군기지가 들어선 것은 58년 9월쯤인 것으로 기억된다"며
"당시에는 가시철망만 없으면 미군기지인지도 모를 정도로 허허벌판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어디서 나온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높은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춘천을 방문해
이 곳은 북한의 남침을 대비해 건립한 유도탄 기지라고 설명하고 돌아가곤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부대에 헬기가 처음 들어온 것도 59년부터로 기억된다"며 "지금의 헬기소음은 피해도 아니다.
그때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헬기들이 뜨고 내렸지만 전쟁의 아픔을 겪은 주민들은
헬기소리가 안들리면 오히려 불안해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금기시됐던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지역사회에서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고 냉전체제가 종식된 80년대 후반기부터다.
2001년 4월 춘천지역 시민단체들은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춘천시민모임'을 발족,
캠프페이지 반환운동을 본격화했다.
춘천시의회는 2001년 5월 9명의 의원으로 미군부대관련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기지이전문제, 소음피해 보상문제 등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같은해 9월 국방부는 2011년 캠프페이지 반환대상 제외를 발표했으나
이듬인 2002년 3월 국방부는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에 캠프페이지를 포함시켜 2011년 이전을 확정했다.
이러는 과정속에 2004년 7월 한·미당국은 주한미군기지 이전계획을 전격 발표,
캠프페이지는 올해 안에 이전하게 됐다.
춘천 캠프페이지 이전 추진 일지
△ 2001.07.04. 우리땅 미군기지 되찾기 춘천시민모임 발족
- 춘천민주사회단체협의회, 민주노총춘천시협의회, 춘천홍천생명의숲가꾸기운동본부,
경실련, 환경운동연합,여성민우회, 소비자연맹, YMCA, 춘천시민연대 9개 단체
△2001년 춘천시 캠프페이지 반환 국방부 건의 2001년
△2001년 8월16일 국방부 회신
-미군기지 이전 비용 지자체 부담 원칙 입장 확인
△2002년 3월29일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 서명
-이전 시기 2011년, 이전 비용 4,250억원
△2002년 10월18일
-춘천시 이전비용 최소화 국방부에 건의
△2002년 10월30일 LPP 국회 비준
△2003년 1월24일
-춘천지역 기관장 모임 수요회 이전비원 국비지원 요청
△2003년 2월18일 이전비용 관련 국방부 회신
-국유재산관리특별회계 적용, 이전비는 반환 토지 매각 재원으로 충당
-춘천시가 부지 매입할 경우 매입 비용만 부담
△2004년 2월3일 이전 관련 추가 질의 국방부 회신
-2011년 반환, 2013~2015년 매각대금 연납
△2004년 7월23일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회의에서 LPP 수정협상 타결
-춘천 캠프페이지 2005년까지 조기 이전 전격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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